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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강단

2012.04.08.부활주일설교(행2:32. 부활을 증거하는 성도의 삶)

by 설렘심목 2012. 10. 2.

2012.04.08.부활주일설교(행2:32. 부활을 증거하는 성도의 삶)

 

사람이 살면서 가장 싫고 두려운 말은 죽는다는 것입니다. 어느 생명이든 생명이기에 살고 싶어 합니다. 살되 영원히 살은 겁니다. 그러나 영원히 사는 생명은 없습니다. 그런데 인류에게 너무나 놀라운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죽지 않고 다시 살아난다는 소식입니다. 최고의 소식입니다. 최상의 소식입니다. 그것은 실로 인류역사에 가장 크고 놀라우면서도 복된 소식입니다. 부활예수의 소식입니다. 복음은 단순히 소식에 그치지 않습니다. 믿는 모든 자에게 능력이 되고 영생이 되는 창조주 하나님의 권세가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로 인해 그를 믿는 모든 자가 부활의 능력아래 놓이게 되었습니다. 1866년 8월 27일, 토마스선교사의 순교로 시작된 조선의 선교와 1885년 4월 5일, 제물포 항에 첫발을 내디딘 아펜젤러 선교사의 등장은 암흑속의 조선이 문명한국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중요한 날입니다. 그날은 마침 부활절 아침이었습니다. 부활절은 성탄절 그리고 추수감사절과 함께 교회의 3대 큰 잔치입니다. 기억하세요.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은 복음의 핵이요, 우리민족과 개인과 세계가 붙잡아야 할 마지막 유일한 소망입니다. 오늘 부활주일을 맞아 나라와 가정과 개인에게도 놀라운 새 출발의 원년 그 감동의 시간이 되시기를 주님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본문 행 2:32절을 함께 읽습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부활은,

 

1. 예수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명하는 일입니다.

 

성경은 예수님의 부활을 어떻게 말합니까? 하나님께서 친히 죽어 있는 그의 아들을 살리신 것이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이 입고 오신 예수그리스도라는 육신을 백성들이 죽였고 죽은 예수님을 확실히 죽었다고 여겨지는 사흘 째 되던 날 하나님이 살리신 겁니다. 이렇게 부활은 예수님에게서 이루어진 하나님의 가장 높은 희망의 실현이며, 예수가 메시아임을 확증하는 하나님 자신의 역사였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초자연적인 탄생을 통하여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거하셨고 십자가의 죽음과 그 부활을 통하여 하나님의 아들 됨을 한번 더 확증시켜 주셨습니다. 고후5:21절을 찾아봅니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부활, 그건

 

2. 하나님의 의를 확립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는 절대적인 하나님의 선과 사랑이 어떠한가를 보여주는 표식으로서 죽음을 깨부수는 부활이 필요했고 다시 사는 부활은 반드시 먼저 죽어야 하는 십자가를 필요로 했던 겁니다. 그렇게 짊어지신 예수님의 십자가는 절대적 선과 진리와 사랑을 증거하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만 했던 주님의 열정이기도 했습니다. 그 열정이 온 인생들을 살리시되 부활로 인도하신 겁니다. 그리고 평생 크고 작은 모든 일에 십자가부활의 원리를 통과할 때 하나님의 영광을 노래하게 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들 삶에서 고통이 고통자체에 목적을 가졌던 적이 있었습니까? 없습니다. 고통은 반드시 고통이 지니는 고귀한 가치를 반드시 영광으로 드러내고 맙니다. 십자가의 이야기가 십자가로 끝나 죽음이 결론되었다면 그건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랑이 이긴다고 하는 사실은 하나의 망상에 지나지 아니할 것이며 영원히 이 세상은 불의와 폭력이 승리하는 것으로 여겨질 것입니다. 또 의(義)의 표준은 찾을 길이 없을 겁니다. 그러나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가 썩지 않고 다시 살아남으로 선과 진리와 사랑의 절대가치가 보장되었습니다. 결국 하나님과 온 우주가 선한 싸움을 싸운 사람의 편에 서게 되는 것을 알게 되었고 선과 참이라는 것이, 또 사랑이라는 것이 승리하고 만다는 것을 확정하게 됐다는 겁니다. 불의가 선을 십자가에 못 박아도, 참을 거짓이 십자가에 못 박아도, 미움이 사랑을 십자가에 못 박아도 그건 영원히 죽거나 썩지 않고 승리한다는 것을 보증한 것이 그리스도의 부활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결국 사랑과 정의가 이겨서 죄와 악과 사망이 무너지고 생명의 새날을 시작한다는 하나님의 의(義)에 대한 선포요, 결정적인 영원한 생명의 증거입니다.

아울러 하나님의 모든 역사는 하나님의 본질이신 사랑을 증거하는 것으로 항상 결론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도 잊지 않기 바랍니다. 끝으로 고전 15:20을 찾아 함께 읽습니다.“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3. 부활은 성도부활의 보증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고후5:17말씀처럼 이전의 옛것은 그리스도 밖의 것입니다. 다른 말로 죽음 이전의 것입니다. 새것은 그리스도 안의 것입니다. 그건 죽음 이후의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은 죽음 이전과 이후, 즉 사망권역과 생명권역을 나누어 놓는 사건입니다. 그래서 부활사건은 죽음권내에서 생명권내로 인간생명을 전환시키는 영생권역의 힘이었다는 겁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역사의 연호는 주전(B. C.)과 주후(A. D.)로 나눕니다. 이 기독교 신앙의 기초요, 교회 존재의 본질적 의미인 부활은 그리스도의 부활인 동시 그를 믿는 교회, 곧 우리개인들의 부활이며 능력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십자가와 부활 사건은 바로 새로운 역사의 나이를 측정하는 신기원이 되었다는 것인데 개인적으로도 새 출발을 뜻합니다. 죽음 이후의 새 시대, 그리스도 안의 새 사람이 새 역사를 이뤄간다는 사실을 믿고 아멘하시기 바랍니다.

 

고전 15:14~19절에서는 “만일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전도도, 믿음도 헛것이 고 믿는 자가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자가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19절 말씀처럼 만일 우리가 바라는 것, 즉 우리의 소망과 기쁨과 기대가 이 세상의 삶뿐이라면, 오히려 현실적 황금만능주의로 쾌락을 일삼는 불신자들이 더 행복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지들의 부활을 확증해 주는 보증이 된다고 하신 성경의 말씀을 굳게 믿기 바랍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는다고 한 말씀도 기억하기 바랍니다.(고전 15:22).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 자신이요, 그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라고 했습니다(고전 15:23). 곧 믿음으로 그리스도에게 속하여 잠자고 있는 자들이고, 그 후에는 마지막 그리스도의 사역인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모든 나라들을 아버지께 바칠 것이라고 했습니다(고전 15:24).

신실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 성경이 분명히 예수 재림 때 살아남아서 주를 맞이할 자들이 영광스러운 몸으로 부활할 것을 선포하고 있습니다.(고전 15:24; 살전 4:14~17) 그것은 그리스도의 부활이 그를 믿고 따르는 모든 성도들에게 다시는 죽지 않는 영원한 생명으로서 부활을 보증한다는 걸 말합니다. 영원히 죽지않는 성도의 부활, 오늘 부활절 듣는 최고의 복음입니다. 이 복음은 다만 영생부활만 선포하는 게 아닙니다. 작고 큰 모든 성도의 삶에 그대로 적용되는 줄 믿기 주님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숨막힐 듯 고통스러울 때 그러므로 주를 바라보세요. 부활의 주님은 우리의 미래를 보여주는 가장 확실하고 강한 능력이며 권세이십니다. 역경의 십자가를 잘 참고 이겨내면 주님이 보장하시는 새날이 시작됩니다. 그날은 과거의 눈물을 회상하며 감사의 축제단을 쌓는 날입니다. 춤추며 노래하며 주를 높이며 감사로 노래하는 날입니다. 전혀 새로운 삶의 시작을 자신을 구원하신 거룩한 주님의 이름으로 선포할 것입니다.

 

오늘 부활의 기쁨을 찬송으로 고백하는 예배자에게 그날 부활의 날은 어김없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부활을 만나기 전 이 땅에서 먼저 모든 회복의 날을 경험할 줄 믿습니다. 아멘대로 될지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