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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강단

주일강단>2011.12.31.송구영신 자정예배<사43:19~20. 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

by 설렘심목 2012. 10. 2.

2011.12.31.송구영신 자정예배<사43:19~20. 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

 

새날을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움직이는 성령의 권능이신 줄 믿습니다. 그리고 말씀이 적용되지 않는 곳은 세상에 한 군데도 없다는 것도 우린 믿습니다. 그래서 성경말씀은 개인에게 가정에게 민족에게 세계위에 생명의 지침서가 됩니다. 어디든 성경을 거부할 때 가장 먼저 생명, 즉 살아 존재하는 일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바꿔 말하자면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의 말씀으로 생명을 살리시는 능력이고 영생으로 인도하는 길잡이라는 데 핑계할 수 없이 아멘입니다.

한해를 보내고 다시 한해를 맞이합니다. 돌아갈 수도 없고 또 돌아가서도 안되는 2011년도였습니다. 놀라운 변화와 격동이 한바탕 지나갔습니다.

 

2011년도, 미련없이 뒤로 하고 이제 붙잡아야 할 건 지금 이 시간에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2012년도 한 해를 시작하는 이 시간 주시는 생명의 말씀은 “하나님이 새 일을 행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말씀받는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새로운 계획과 새 일을 사모하고 믿는 믿음으로 마음이 설레는 복이 넘치기를 바랍니다.

19절을 읽습니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1. 새 일을 행하실 하나님이십니다.

 

유다는 바알과 아세라와 몰록을 섬겨 그 우상숭배의 죄가 하늘에 닿았습니다. 그리고 사회는 부패해서 가진 자가 가난한 자를 착취하는 등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켰습니다. 그 결과 유다는 바벨론노예로 심한 압제와 고통 중에 들어갑니다. 그렇게 가다보면 유다는 전멸할 거 같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인간이 왜 자살합니까? 돈 때문에 죽은 사람도 알고보면 희망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희망이 끊어졌다는 것을 절망이라고 하고 마음이 벼랑에 떨어져 죽게 된 것을 낙심이라고 합니다. 낙심과 절망이 사람을 죽게 하는 겁니다. 돈이 없고 왕따를 당해도 다른 것에 희망을 본 사람은 결코 죽지 않습니다. 사람은 소망이 끊어질 때 목숨도 끊어지는 겁니다. 부패한 유다가 소망이 끊어지자 죽은 것만도 못한 생명을 간신히 부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이사야선지자를 통해 희망의 예언을 주신 것이 본문입니다. 새 일을 행하실테니 일어나 먹고 힘을 차리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이제 우리 교회에 그리고 우리들의 가정과 생업의 현장위에 임하시는 주님의 권능이신 줄 믿습니까? 지난해를 돌아보면 안 믿을 수가 없습니다. 얼마나 많은 일이 지나가고 또 그 가운데 우리를 보호하시고 살리셨습니까?

올 한해는 더 좋은 일들이 시작된 줄 믿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영이시니 육체를 사용하셔야 합니다. 누구를 사용하시겠습니까? 기도하는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엎드리는 자를 일으켜 Tm십니다. 결단도 내가 하는 게 아닙니다. 기도할 때 결단주시고 새 마음과 새 영을 주십니다. 본문 19절 뒤쪽을 보세요.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하나님이 올해 저와 여러분을 들어서 하실 새 일은 길과 강을 내시는 일입니다. 길과 물줄기, 돌파구와 생명입니다.

 

1) 광야에 길을 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인생은 광야이고 우리는 모두 그 광야길을 가는 나그네, 텐트피플입니다. 성도들에게 이 땅은 영원히 머물 도성과 장막을 제공하지 못합니다.(히) 광야같은 인생길에 가장 확실한 길은 “나는 길이요, 생명이요, 진리”라고 친히 말씀하신 우리구주 예수십니다. 예수님 우리안에 계셔서 2012년도 우리 교회와 가정과 생업의 모든 길이 되신 줄 믿습니다. 광야, 벌판에서 길을 잃으면 어찌 됩니까 죽습니다.

 

2) 사막에 강을 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광야와 사막을 인생에 비유하는 것은 적절합니다. 의지할 곳 없는 허허벌판에 허탄한 것들을 붙잡고 살아온 인생들에게 한 평생은 그야말로 사막이요, 벌판입니다. 거기 길이 되시고 강을 내신다고 약속하신 주님이 우리 모두의 구주십니다. 에스겔서, 요한계시록 등 예언서엔 생명수강이란 말이 나옵니다. 요한복음에서도 사마리아 여인에게 주님은 자신을 가리켜 생명수가 흐르는 샘물로 비유했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생명을 주시는 능력이십니다. 거듭 말씀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듣고 설득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권세를 따라 사람의 심령안에 침투되는 믿음의 결산입니다. 믿고 들으면 신기하게도 변화받고 신기하게도 삶 전체가 달라지기 시작하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절대주권의 활동이십니다.

성도여러분, 말씀 안에 “반드시”라는 말을 잊지 않기 바랍니다. 반드시 이룰 주님의 약속은 복음의 강림 이전에 유다의 회복이었지만 이제 우리에게는 다가온 새해의 소원성취라는 것을 주님이름으로 선포합니다. 믿은 대로 될지어다.

20절을 읽습니다. “장차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내가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임이라.”

 

2. 온 땅위에 밝히 드러날 하나님의 통치와 영광입니다.

 

비록 당시엔 범죄로 바벨론노예가 되어 참혹한 삶을 살고 있었지만 머잖아 유다는 회복된다는 예언이 본문메시지입니다. 20절에서 나오는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조는 양과는 전혀 다릅니다. 양을 괴롭히는 짐승들로서 이스라엘과 유다를 공격하고 괴롭히던 불신세력, 이방국가를 말합니다. 결국 그들까지도 하나님을 존경하게 되는 날이 돌아올 줄 우린 믿습니다. 불신가족과 북한땅에 복음의 빛이 들어가길 기도하기 바랍니다. 가문과 친지 이웃가운데 우리를 조롱하는 자들이 돌아올 것입니다. 결국 주님의 뜻이 이뤄집니다. 전도의 희망을 버리지 않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극심한 스트레스로 지치고 힘들면 모든 걸 포기하고 싶어집니다. 텅빈 마음에 남아있는 거라곤 열등감과 자기학대와 자괴감, 낙심으로 거의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상태가 됩니다. 그런 상태가 계속되면 결국 내분비계열에 이상을 일으켜 우울증에 시달리게 됩니다. 2008년도 10월 이후 교회가 힘들어지면서 저와 여러분 심한 스트레스와 외로움을 느끼며 여기까지 우리가 함께 왔습니다. 때론 정말 모든 거 내려놓고 끝내고 싶었던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나약한 인간의 생각으론 당연합니다. 그러나 교회는 우리의 뜻이 전혀 아닌 하나님의 계획에 의해 움직인다는 것을 철저히 말씀하셨고 비전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꿈이 너무나 아름답고 크시다는 것을 보여주신 후로는 소망을 다시 찾고 마음을 추스르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3년간은 너무나 소중했습니다. 더 나은 것을 주시려는 주님의 배려로 우린 여러 가지를 겪으면서 성장해왔습니다. 반드시 필요한 내면세계의 리모델링작업이었습니다. 하나님과 교회를 힘들게 하는 것들, 주변을 힘들게 하는 것과 스스로 불행을 자초하는 것들을 하나하나 보여주시고 제거해 주셨습니다. 아직도 그 구원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통증은 있지만 얼마나 감사하고 얼마나 기쁜 일인지 모릅니다. 3년 전의 스스로를 한번들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감회가 다들 다르겠지만 좀 심했다는 생각이 듭니까? 많이 아픕니다. 정말 아픕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얼마나 원망했을까? 제가 받은 말씀, 나 한사람 변하면 교회가 살아나고 나 한사람 변하면 주변이 환해진다는 교훈을 함께 나누기 주님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새해는 카렌더가 아닙니다. 새 마음을 품고 맞이하는 새아침입니다. 오늘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정녕 전혀 다른 새 영, 새 마음, 새사람으로 거듭나기를 간절히 원하는 분들은 그 자리에 조용히 일어나시면 주님이 약속으로 붙잡아 주실 겁니다. 지금은 주님이 전적으로 일하시는 성령의 시간입니다. 기도합니다. 일어나서 손을 들어도 좋고 아픈 데 손을 얹어도 좋고 가슴에 손을 얹어도 좋습니다. 감동따라 기도속으로 함께 들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