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 도발, 침투, 협박 속에서 참아야 하는 건가?
온유함인가? 바보인가? 무능인가? 무감각인가?
총 2600차례에 걸쳐 감행70년대까지 주로 군사도발90년대에는 해상침투 많아
北, 최근엔 ‘특별행동’ 위협“남북 대립구도 전환용 속셈”
북한은 최근 장거리미사일 발사 실패 이후 대남 위협 발언 수위를 높이고 있다.
우리 정부는 수년 전 배치가 끝난 탄도미사일과 순항미사일 시험발사 영상을 공개하면서 맞불을 놨다.
이에 북한은 이례적으로 ‘특별행동’을 경고했다. 북한의 대남도발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극단으로 치닫는 남북관계
북한은 23일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 특별작전행동소조 명의로 이명박 대통령과 김관진 국방장관, 특정 언론매체를 언급하며 사실상 도발을 예고했다. “혁명무력의 특별행동은 일단 개시되면 3∼4분, 아니 그보다 더 짧은 순간에 특이한 수단과 우리 식의 방법으로 모든 쥐XX 무리들과 도발근원들을 초토화한다”는 것이다.앞서 국방부는 19일 이 대통령의 국방과학연구소(ADD) 방문에 맞춰 수년 전 개발 당시 촬영한 탄도미사일 현무-2와 순항미사일 현무-3 시험발사 영상을 공개했다. 이튿날 이 대통령은 통일정책 특강에서 경제난을 겪고 있는 북한을 비판했다. 북한은 이 문제들을 지적하며 특별행동을 개시할 것이라고 주장했다.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북한이 국제사회의 압박과 북·미 대립구도를 남북 대립구도로 전환하려는 계산에 따른 대남도발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도발 예고인지 단순한 위협용 발언인지는 두고 봐야 한다”면서도 “북한 군부가 새 지도부에 대한 과잉충성 차원에서 무리수를 둘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말했다.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도 “북한의 대남 메시지가 누적됐다는 점과 최근 한반도 정세를 고려하면 내부 결속용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며 “사이버 테러나 전자기파(EMP)폭탄 공격을 감행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과거 도발사례
북한은 지금까지 2600여 차례에 걸쳐 대남도발을 감행했다. 국방부 정보본부에 따르면 6·25전쟁 휴전 이듬해인 1954년부터 연평도 포격이 있은 2010년 11월까지 북한의 대남도발은 육상 720여건, 해상 920여건 등 침투만 1640여건에 이른다.
국지도발은 1020여건으로 지상도발 470여건, 해상도발 510여건, 공중도발 40여건 등으로 나타났다.
지상도발은 총·포격이 90여건, 습격·요인납치가 70여건에 달했다. 경비정·어선의 월선은 490여건,
해상교전은 20여건이며, 영공 침범은 20여건, 미사일 사격도 10여건으로 파악됐다.
시기별로 도발 방법에 차이가 있다.
1958년 2월 KNA 여객기가 부산에서 서울로 비행하던 중 간첩에게 납치됐다.
1967년에는 당포함이 어로보호 경비임무 도중 북한 해안포 공격으로 격침돼 39명이 전사했다.
이듬해 1월에는 북한 124군부대 31명이 청와대를 기습했으나 미수에 그쳤고,
1968년 10월에는 무장공비 120명이 강원 울진·삼척 지역에 침투했다.
1974년과 1975년에는 제1땅굴(고랑포)과 제2땅굴(철원)이 발견됐다. 1976년에는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이 발생해 미군 장교가 살해당했다.
1978년에는 제3땅굴이 판문점 부근에서 발견됐다. 이처럼 1970년대까지는 군사도발이 북한의 주요 도발 양상이었다.
1980년대 이후 도발 방법이 다양해졌다.
1983년 12월 간첩선이 부산 다대포 해안침투 중 격침됐고,
1987년 11월에는 대한항공 858여객기 폭파사건으로 탑승객 115명이 사망했다.
1989년 1월에는 선원 20여명이 서해 백령도 공해상에서 조업 도중 납치됐다.1990년 3월에는 강원도 양구에서 제4땅굴이 발견됐고,
1996년 4월 북한군 1∼2개 중대 규모의 병력이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서 무력시위를 벌였다.
1996년 9월에는 북한 정찰국 소속 상어급 잠수함이 강원도 강릉 해안에서 발견됐다.
이듬해 부부로 위장한 북한 노동당 소속 간첩 일당이 경남 거제도 갈곶리 해안으로 침투했다.
1998년 6월 유고급 잠수정이 강원도 양안에서 발견됐고, 그해 11월 소형쾌속선이 강화도에서 발각돼 도주했다.
또 12월에는 전남 여수 돌산도 부근에서 반잠수정이 격침됐다.
이듬해 6월 북한 경비정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 제1연평해전이 발생했다.
1990년대는 해상 도발이 주를 이뤘다.월드컵이 한창이던 2002년 6월에는 제2연평해전이,
2009년 11월에는 대청해전이 발생했다.
2010년 3월 천안함 폭침에 이어 그해 11월 연평도에는 전쟁 이후 첫 육지 포격도발로 민간인과 군인 희생자가 발생했다.
군 정보당국은 2000년대 들어 도발 횟수는 줄었지만, 그 양상이 과격해지고 인명피해가 발생하는 직접 도발이 늘었다는 점에서 과거와 다른 특징을 보인다고 분석했다.
조병욱 기자 brightw@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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