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라사랑.시사.

위대한 대한민국대통령의 조건 - 강천석주필

by 설렘심목 2012. 6. 24.

올바른 역사관, 닳지 않는 정신적 목표, 분열병 치유할 복지 비전, 안보 혜안(慧眼)
우리라고 어느 나라에나 있는 위대한 대통령 갖지 말란 법 없다

강천석 주필
대한민국 나이가 올해 예순다섯이다. 집안 형편 때문에 출생 신고가 늦어져서 그렇지 실제론 예순여덟이다. 살림이 얼마나 옹색했으면 태어난 해(1945년)에 얼마 벌어 얼마 썼는지 기록조차 남아 있지 않겠는가. 그로부터 8년이 흐른 1953년 우리 국민 한 사람 한 해 수입이 고작 67달러였다. 2007년 한국 도시 근로자 가정의 월평균 외식비(外食費) 지출이 400달러를 웃돌았다. 보릿고개 마루의 고단했던 그 시절이 짐작이 간다.

뒤주 바닥이 보이는데 울타리인들 성했겠는가. 덩치 큰 옆 동네 더벅머리들이 무너진 담장을 넘어와 주인 행세를 하던 게 1945~1948년 무렵이었다. 그때 흩어져 왕래가 끊기다시피한 북쪽 집안은 그 후 무능한 주제에 걸핏하면 폭력을 휘두르는 가장(家長)이 대물림하면서 더 폭삭 주저앉았다. 그들의 흉포성(凶暴性)은 위아래 마당에 경계선이 그어진 지 5년 되던 해(1950년)의 어느 새벽 아랫집도 제가 차지하겠다며 집안 전체를 쑥대밭으로 만들 때 벌써 드러났다. 딸들이 씨받이로 국경 너머 중국에 팔려가도, 아들들이 시베리아 벌목(伐木) 벌이터에서 홑옷 바람으로 겨울을 나도 부끄러운 줄을 모른다. 대명천지(大明天地) 황해도 땅에서 수천명이 굶어 죽고 있다는 믿기지 않은 소식이 날아들고 있다. 이것이 간추린 '한반도 해방이후사(解放以後史)'다.

대한민국은 오는 12월 19일 새 대통령을 뽑는다. 벌써 한 다스 가까운 정치인·비정치인, 전직 지사·현직 지사, 전직 교수·현직 교수가 사전 속 온갖 좋은 단어는 몽땅 끌어내 '내가 적격자(適格者)'라고 나서고 있다. 누가 쌀이고 겨인지 당최 분간하기 힘들다. 이 체 저 체로 쳐보는 수밖에 없다. 그때마다 대통령 지망생의 가점(加點)요인과 감점(減點)요인을 기록해둬야 한다. 그래야 12월 19일 투표 날 기표소 안에서 머뭇거리지 않는다.

첫째는 '남북의 해방이후사'에 대한 올바른 이해 여부를 가리는 체다. 속된 말로 역사가 밥 먹여 주지 않는다. 요즘 세태에선 표(票)가 되기도 어렵다. 그러나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의 역사관을 묻지 않고 표를 던지는 건 눈을 감고 나라의 고삐를 그냥 쥐여주는 거나 한가지다. 전투적 이념전(理念戰)을 벌이라는 주문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역사의 사생아(私生兒)인 북한 세습 왕조를 대한 입장만은 확고해야 한다. 겉으론 내색(內色)하지 않더라도 북한 동포를 동물 우리보다 못한 처지에서 구출한 날을 앞당기겠다는 민족 해방의 열망은 가슴 바닥에 깔고 있어야 한다.

둘째는 대한민국의 국가 목표를 새로이 제시하는 능력을 가리는 체다. 우리는 지금껏 국민소득 몇만달러, 수출 몇천억 달러라는 구호를 국가 목표로 알아왔다. 입에 풀칠하기 어려운 시절엔 그게 당연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닳아지는' 목표만으론 더 이상 국민의 전진 의욕을 북돋을 수 없다. 경제 외곬의 목표는 그것이 달성되는 순간 추진력을 잃고 만다. 우리도 이제 나라의 위상(位相)에 걸맞고 국민이 자긍심(自矜心)을 품고 세계를 상대할 '닳지 않는' 정신적 목표를 장만해야 한다.

셋째는 가슴과 머리에 '가난한 평등시대'로부터 '부유한 양극화시대'로 접어들며 앓기 시작한 갈등과 분열의 병을 치유할 복지 비전을 담고 있는지를 가리는 체다. 스웨덴·덴마크·핀란드를 베끼는 건 커닝의 재주이지 비전 제시 능력이 아니다. 그런 나라들의 500만명, 900만명 국민 등을 다습게 하는 복지정책과 5000만 국민에다 언젠가 2400만 북한 동포를 새 식구로 보듬어야 하는 대한민국 복지가 같을 순 없다.

넷째는 삐걱거리는 소리가 커져 가는 동북아 안보 지형(地形)을 뚫어 보고 그 급변(急變)에 대비할 능력을 가리는 체다. 전 세계 국방비 총액이 1조6000억달러 안팎이다. 그 가운데 60% 가까이가 한반도 주변국의 국방비다. 중국·북한에 이어 일본마저 핵 단추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미국·중국·러시아·일본과 한반도 남북 사이의 '안보 방정식'은 수퍼 컴퓨터로도 정답을 내놓기 어렵다. 발을 헛디디는 순간 수천 길 낭떠러지 아래로 추락한다. 대한민국 대통령에게 안보의 혜안(慧眼)만큼 절실한 자질(資質)이 따로 없다.

이 네 과목 가운데 하나라도 과락(科落)을 받으면 탈락이다. 나라와 국민 생사(生死)가 여기 달려 있기 때문이다. 물론 훌륭한 대통령에겐 정치와 행정이 어떻게 다른지, 또 공(公)과 사(私) 가운데 무엇을 우선해야 하는지 정도는 기본이다.

대통령이란 기대를 걸머지고 단상에 올라왔다가 비웃음을 받으며 퇴장하는 직업이다. 과거를 한탄하고 현재를 불평하고 미래에 대해선 턱없는 환상을 갖는 게 인간 본성인 이상 이 운명을 비켜가긴 어렵다. 그래도 어느 나라 역사에나 위대한 대통령이 몇은 있는 법이고, 우리라고 해서 그런 부푼 꿈을 안고 12월 19일을 맞지 말라는 법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