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픈 너그러움이 從北의 길을 넓혀 주고 있다.
"이제 '주사(主思)'를 모르면 한반도에서 변혁운동을 할 수 없다." 1985년경 운동권 선배가 한 모임에서 했던 말이다. 그것이 북한의 공식 이데올로기인 주체사상(주사)과의 첫 만남이었다. 당시는 어떤 새로운 이론이 상황에 맞거나 뛰어나서가 아니라 누가 좀 더 과격하고 위험한 사상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주도권을 잡던 시기였다. 아마도 지금 주사파로 지목당하고 있는 사람들도 그런 분위기에 물들어 갔을 것이다. 게다가 불과 2년 후에 전국적인 학생조직으로 탄생한 전대협이 대부분 주사파로 구성됐고 이런 전통은 한총련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주사파의 주장은 위험하다기보다는 뜬금없었다. 그것이 갈림길이었다.
뜬금없다고 생각하는 부류는 전통적인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 즉 PD(Peoples Democracy)의 길을 걸었고 새롭고 위험한 사상으로 주도권을 잡으려는 부류는 민족해방, 즉 NL (National Liberation)의 길을 걸었다.
개인적으로 '주사'에 관심이 없지는 않았다. 그래서 대학 내 연구소에서 합법적으로 공산권 자료를 열람할 수 있는 자격을 얻어 주체사상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마침 그해는 북한에서 '위대한 주체사상 총서'를 펴냈을 때였다. 일주일 정도 시간을 내서 총서 10권을 독파한 결과 내린 결론은 '헛소리'라는 것이었다. 사실 철학에 대한 약간의 이해만 갖춰도 '주체사상의 철학적 원리' '주체사상의 사회력사적 원리' 따위는 수준 이하의 어용(御用)철학임을 간파할 수 있다. 다만 철학이나 역사에 무지한 상태에서 이 '총서'를 읽으면 빠져들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그런 사람을 많이 보았고 토론도 해보았지만 요지부동이었다. 무지의 산물이었다.
그리고 몇 년 후 사회주의가 붕괴됐다. 사회주의 이론에 빠져 있던 사람들에게 당시 사회주의 붕괴는 참으로 충격적이었다. 자신들이 신봉했던 사상과 이념체계가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체험을 겪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 체험은 수많은 사람들의 사상전환으로 이어졌다. 이런 전환은 PD 진영에서 많았다. 백태웅·박노해가 주도한 '사노맹'이라는 극좌모험주의 운동을 제외한 PD 계열은 대체적으로 사회주의 붕괴라는 현실을 어떤 식으로건 수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북한 노선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주사파, 즉 NL은 달랐다. 애당초 깊은 이론적 인식을 토대로 운동을 전개한 것이 아닌 데다가 현실 속의 북한정권이 무너지지 않는 한 주사파는 스스로 간판을 내릴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민주화 이후 한국사회의 얼치기 관용주의가 주사파에게 유리한 분위기를 조성해주었다. 북조선의 앞잡이에 불과한 그들에게 당연한 문제제기를 하는 사람이 냉전적 사고에 물든 수구꼴통으로 몰리게 된 것이다. 안철수 교수가 "요즘 세상에 무슨 빨갱이가 있느냐"고 했다는 것도 바로 이런 '얼치기 관용주의'와 맥이 닿아 있다.
요즘 이런 얼치기 관용주의자들이 '종북(從北) 의원' 탄생에 더 놀라는 것 같다. 늦었지만 다행스럽기는 하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그들의 정체에 조금만 관심을 쏟았다면 진보와 친북(親北)을 구별하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와서 저들의 친북 성향을 왜 제대로 알리지 않았느냐고? 그건 당신들이 들으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종북 의원'이 버젓이 활개 치고 다니게 된 지금도 사정은 크게 바뀌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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