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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교사가 진정 애국교사 - 인천 곽은주교사 학교폭력을 화해법정운영으로 깨끗하게 정리

by 설렘심목 2012. 1. 18.

 

학교폭력 침묵의 카르텔 깨자. -- 어느 여교사의 실험

지난 2011년 1월, 3학년 진급을 앞두고 강화도 흥왕체험학습장으로 이별여행을 떠난

곽은주 교사와 인천 용현중 2학년 4반 학생들. 곽은주 교사 제공

“저희 반에는 왕따 같은 게 진짜 없었어요. 일진 같은 애들이 몇몇 있어서 반 친구들을 살짝 괴롭히기도 했지만, 그 애들이 잘못을 인정하고 저희들에게 용서를 구해서 받아줬어요.”

 

인천 용현중 졸업반인 이승훈(16)군은 지난 2010년의 ‘2학년 4반’ 시절을 떠올리며 자랑스러워했다. 이군은 “공부는 만날 꼴등 하고 그랬는데, 싸움이 거의 없어서 다른 반 애들이 되게 신기해했다”고 했다. 당시 이 학급의 담임이었던 곽은주(36) 교사는 “지속성 있는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고 자평했다. 곽 교사는 지난해 학교를 옮겨 현재는 인천 관교중에서 근무하고 있다.

청소년폭력예방재단의 ‘2010년 학교폭력 실태조사’ 자료를 보면, 왕따 가해 학생의 54.8%는 ‘같은 반 학생’이다. 30~40명의 또래 학생들이 모인 ‘학급’이 학교폭력의 기초 단위인 셈이다. 1년 동안 학교폭력을 근절하는 데 성공한 용현중 2학년 4반 사례가 주목받는 이유다.

 

■ 일진 중심의 학급을 공동체로 재조직화

 

곽 교사는 새학기의 첫날 학생들에게 “평화, 평등, 화목”을 학급 운영방향으로 공표했다. 이를 바탕으로 학생들은 모두가 참여한 학급회의 시간에 11개 조항의 ‘평화규칙’을 만들었다. 이 규칙은 학급 게시판에 1년 내내 공지됐고, 학생들은 이 규칙을 작게 인쇄해 책상에 붙여 놓았다. “교사들은 흔히 사랑과 헌신이면 학급을 지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아이들이 받고 싶은 건 사랑이 아니라 인정이거든요. 아이들에게 규칙과 규범을 지켜야 학급에서 인정받을 수 있다는 걸 알려줘야 해요.”(곽 교사)

 

학생들은 규칙을 지키는 과정에서 공동체 구성원으로 거듭났다. 당시 반장이었던 도기현(16)군은 “규칙이 있으니 그걸 지키기 위해 하기 싫은 것도 하게 됐고 양보도 하게 됐다. 시간이 지나니까 싸움할 필요가 전혀 없어졌다”고 말했다.

 

 

친구 등 ‘화해의 법정’ 참여 “재미로 때려도 폭력” 판결,

교사 “법처벌” 단호히 알려 가해자 사과뒤 폭력 끊어

 

이 과정에서 곽 교사는 규칙과 규범이 지배하는 공동체를 구축하는 데 걸림돌이 되는 이른바 ‘일진’을 파악하고 이들을 새로운 질서에 편입시켰다. “학급에 권력구조가 생기는 것을 미리 차단해야 해요. 학생들이 교사한테 욕하고 반항하는 것도 서로 센 척하는 과정에서 선생님을 희생양으로 삼는 거예요. 이걸 모르고 말려들면 교사들이 피해자가 돼요. 애들도 ‘선생님이 뭘 모르는구나’ 싶으면 무시하고 이용하는데, 이건 수업 준비를 열심히 한다고 해결되지 않아요.”

 

■ 학급공동체가 폭력을 공론화

 

2학년 4반은 교실 안에서 학교폭력이 발생하면 쉬쉬하지 않고 ‘화해의 법정’을 열어 공론화했다. 피해 학생과 가해 학생, 양쪽을 잘 아는 친구 1명씩, 그리고 객관적인 입장에서 시비를 가릴 4~5명의 ‘학생 시민논객’이 참여했다.

화해의 법정은 학교폭력이 ‘나쁜 일’이고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는 것을 공론화하고 이를 학급 공동체가 공유하는 과정이었다. 학급문집에 실린 ‘화해의 법정’ 회의록을 보면, “애들이 아프다고 했는데, 사과하고 또 반복해서 때렸으니까 폭력이다”, “자기 기분에 따라 때린 것이고, 사과를 한 뒤 지키지 않았으니 폭력이다”, “자기를 어필하려고, 자기 재미를 위해 때린 것은 폭력이다”라는 등 학생들이 저마다 규정한 ‘학교폭력’의 개념이 나온다.

 

교실 평화 이뤄낸 교사도 성적 못올려 ‘무능력’ 평가, 생활지도 교육과정 인정 국영수만큼 중요시해야

심각한 폭력이 발생했을 경우, 곽 교사는 화해의 법정에서 “내가 봤을 때 이건 학생부에 넘겨 처리할 사안”이라는 의견을 밝히고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에 따라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알리는 등 단호하게 대응했다.

안지용(16)군은 “상대방이 싫어하는데도 장난을 치는 것은 ‘괴롭힘’이라는 것을 알게 된 친구가 화해의 법정이 열린 뒤 나한테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다”며 “처음에는 괴롭힘과 장난을 구분하지 못했는데 화해의 법정을 통해 알게 됐다”고 말했다. 실제 친구들을 지속적으로 괴롭혀 화해의 법정에 회부된 한 학생은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문을 쓴 뒤 반 친구들 앞에서 낭독하고 용서를 빌었다.

 

■ 학급공동체를 위협하는 조건들

 

2학년 4반은 공동체로서 성공을 거뒀지만, 곽 교사는 학교에서 ‘능력있는 교사’로 인정받지 못했다. “학교에서는 학업성취도 평가 성적이 잘 나오는 학급의 교사를 ‘능력있는 교사’로 생각해요. 체벌을 해서라도 학급을 장악하고 성적을 올리는 교사들이 대우받죠. 하지만 아이들을 무섭게 통제하는 교사의 학급일수록 학교폭력 사건이 숨어 있을 가능성이 높아요.”

 

학력을 높인다며 0교시와 강제 보충수업을 하도록 해 교사와 학생들에게서 공동체를 만들고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시간을 빼앗는 것도 학교폭력의 해결을 어렵게 만드는 원인이다. 학급에서 학교폭력 문제를 해결해도 수준별 이동수업을 하면서 피해 학생이 다른 반으로 이동해 다른 학생들로부터 또다시 피해를 보는 현실도 현재 곽 교사를 무력감에 빠지게 하고 있다.

 

“생활지도를 교육과정으로 인정하고 국·영·수만큼이나 중요한 영역으로 다룬다면 무관심한 교사들도 참여할 수 있을 겁니다. 학급과 학교를 넘어서는 학교폭력이 있지만, 우선 한 학급에서라도 평화의 질서를 만들어나가면 전체적인 학교폭력의 수위는 현저하게 낮아질 거예요.” <끝>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