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 미이라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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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부처리를 통한 영생의 갈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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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후 11개월 만에 매듭지어진 사체처리문제
1994년 7월 8일 김일성이 죽은 후 북한이 시신을 어디에 안치할 것인가는 세간의 관심거리가 되곤 했다.
가장 유력하게 꼽힌 곳은 처 김정숙을 비롯한 빨치산 동료들이 묻혀 있는 대성산 혁명열사릉이었다.
우리의 국립 현충원(舊국립묘지)과 유사한 곳이므로 자연스러운 추측이었던 것이다.
어머니 묘소 옆에 묻어 달라고 유언했던 레닌이나 화장 후 조국 산하에 뿌려달라고 했던 마오쩌둥(毛澤東)은
자신들의 의사와는 달리 각각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 마련된 묘와 텐안먼(天安門) 광장 한쪽의 기념관에 안치됐다.
베트남의 호치민(胡志明)도 하노이시 바딘 광장에 있는 무덤에 안치되었다.
이들의 시신은 모두 미라로 만들어져 유리관 안에 누워 있는 상태로 일반에게 공개되고 있다.
따라서 한편으로 김일성의 시신 역시 이들 공산주의 지도자들의 선례를 따르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추측도 있었다.
김일성 시신처리문제가 매듭지어진 것은 사후 11개월이 지난 1995년 6월이었다.
당중앙위 등은 생전의 집무실이었던 금수산의사당을 ‘금수산기념궁전’으로 개축하여 시신을 영구보존한다는
결정을 내렸던 것이다. 김정일의 의견이었다고 한다.
무엇을 위한 보존인가
사체를 살아있는 모습 그대로 유지한다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사체보존작업에 있어 최고의 기술을 보유한 곳은 러시아 ‘생물구조연구센타’라고 한다.
이 구소련의 비밀연구기관은 소련 해체 후 1990년 10월에 처음으로 그 존재가 외부에 알려졌다고 하는데
덕분에 레닌의 사체가 모형인형일 것이라는 의심은 말끔히 사라졌다.
김일성의 사체보존을 책임진 연구소가 바로 이곳이다.
사체에 화장을 시키고 방부처리를 하여 생전 그대로 보존하는 기술을 ‘엠바밍(embalming)'이라고 한다. 세척해서 살균 소독한 후 피를 빼내 착색된 포름알데히드를 죽은 지의 혈관에 주입하는 일이다. 마오쩌둥의 경우도 사망 직후에 포름알데히드를 주입한 사실이 확인됐다고 하는데, 몇 해 전 주한미군이 한강에 방류했다 하여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켰던 바로 그 물질이다.
역사상 처음으로 사체보존에 성공한 레닌의 경우는 신체의 수분을 단계적으로 특수한 발삼향액과 교체해 넣어
사체를 말랑말랑한 상태로 보존하고, 세균이 부패시키지 못하도록 처리한 것이 특징이다.
이 방법을 개발한 사람은 우크라이나 하리코프 의대의 해부학자 블라디미르 비오로비요프와
모스크바 생화학전문가 보리스 즈바르스키 박사라고 한다.
레닌의 영구보존을 성공시킨 공적으로 비오로비요프 교수는 스탈린상을 수상한 적도 있다.
마오쩌둥의 경우는 중국 4천년 역사와 근대의학을 토대로 독자적으로 개발한 방법으로 보존했다고 한다.
유언대로 화장되어 고향 산천에 뿌려진 저우언라이(周恩來)와 달리 그보다 9개월 뒤에 죽은 마오쩌둥은
당중앙위원회의 격론 뒤에 영구보존되었다.
베이징(北京) 시내의 지하에 건설되어 있는 인민해방군 전시최고사령부 내에서 극비 보존작업을 마쳐
이듬해부터 일반에 공개되었다고 한다.
사체보존에 얽힌 이야기들
김일성은 통산 9번째로 영구보존된 공산주의 지도자인 셈이다. 레닌(1924), 불가리아의 디미트로프(1949),
스탈린(1953), 구 체코슬로바키아 고트발트(1953), 호치민(1969), 앙골라의 네트(1979), 가이아나의 바남(1985),
마오쩌둥(1976) 그리고 김일성(1994)이다.
알려진 바에 따른 김일성의 사체보존방법은 이렇다.
▲ 먼저 4, 5명의 숙련된 전문가가 사체를 발삼향의 액체가 담긴 수조에 넣고,
그 향액을 삼투압을 이용하여 피부로 삼투시키는 작업을 한다.
▲뇌와 안구, 내장 등은 빼내고 젤 상태의 발삼액을 사체 내에 채워 넣는다.
▲생체의 수분량과 같은 약 80%의 발삼향액을 사체에 넣고, 피부가 건조되도록 몇 시간 공기에 노출시킨다.
▲발삼향액이 새어나오지 않도록 노출부분을 미라처럼 가죽 포대로 감는다.
▲얼굴에 화장을 시키고, 새 옷을 입히면 보존처리가 완성된다.
여기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주 2회 관에서 꺼내 방부제를 얼굴과 손 등의 노출부위에 발라야 한다.
2, 3년에 1회 정도는 발삼향액 수조에 한 달 가량 담궈두어야 한다.
이 작업은 러시아 ‘생물구조연구센터’에서 연수를 받은 전문가들이 맡게 된다.
1995년 7월 7일 러시아의 모스크바 뉴스는 “러시아인 기술자 7인에 의하여 (김일성의)사체보존작업이 완료되었다.
100만 달러가 소요되었지만 이후에도 막대한 비용이 든다”고 보도했고,
1996년 7월 북한을 방문한 인도네시아 골카당 대표단은 조선노동당 간부로부터
“김일성의 사체관리를 위해 연간 80만 달러가 든다”고 들은 얘기를 전하기도 했다.
물론 이 비용은 순전히 사체를 소독하고 관리하는 데 드는 비용을 말한다.
죽은 자가 산 자를 죽이고 있다
북한은 1996년 7월 27일 조국해방전쟁 승리 43주년 기념일을 기해서 금수산기념궁전 3층 중앙홀에 안치된
김일성의 시신을 일반에 공개하고 있다. 외국인 관광객도 볼 수 있다.
올해 이곳을 방문한 프랑스 유력 일간지 「리베라시옹」의 로맹 프랑클랭(Romain Franklain) 기자는
이 광경을 자세히 써서 전하기도 했다(2000년 4월 15일자).
그에 따르면 이곳에는 어떤 소지품도 갖고 들어갈 수 없다고 한다.
X레이를 지나 몸수색을 마친 후, 신발 바닥의 먼지를 자동카페트 위에서 털어내고,
다시 축축한 카페트에 올라 신발에 붙어있는 박테리아를 제거한다.
정작 관이 놓여 있는 방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마치 공상과학영화에 나오는 기계처럼 생긴 흡입여과기에 들어가서
옷에 붙은 병균을 제거해야 한다.
복잡한 살균 과정을 거쳐서야 ‘영원한 주석’으로 추앙된 김일성의 시신을 볼 수 있다는 얘기다.
전 조선노동당 비서였던 황장엽 씨는 망명 후 “북한이 금수산기념궁전 성역화에 엄청난 돈을 들이지 않았다면
그렇게 많은 사람이 죽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라고 했다.
이 기간에 북한에는 유래 없는 홍수와 가뭄이 몰아닥쳤고 수많은 사람들이 기아로 죽어갔다고 알려져 있다.
북한전문매체 데일리NK 등에 따르면, 김일성 시신은 레닌의 시신 영구 보존작업을 수행한
러시아 ‘생물구조연구센터’에서 ‘엠바빙(embalming)’이라는 기술을 이용해 방부 처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연구기관은 김일성과 레닌뿐 아니라 호찌민·마오쩌둥의 시신도 영구보존처리하는 등
시신 방부처리에 세계 최고 기술을 보유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연구기관에서는 시신을
▲발삼향의 액체가 담긴 수조에 넣고 나서 그 향액을 삼투압을 이용, 피부로 삼투시키고
▲뇌와 안구, 내장 등은 빼내 젤 상태의 발삼액을 시신 내에 채워 넣은 다음
▲피부가 건조되도록 몇 시간 공기에 노출한다. 그리고
▲발삼향액이 새어 나오지 않도록 노출 부분을 미라처럼 가죽 포대로 감고
▲얼굴에 화장을 시키는 등 치장하는 방법으로 시신을 영구보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단 시신 영구보존 처리 과정이 끝난 다음에도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시신을 주 2회 관(棺)에서 꺼내방부제를 얼굴과 손 등의 노출부위에 발라야 한다는 것이다.
또 2~3년에 한 번 정도는 발삼향액 수조에 한 달 가량 담가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이 김일성의 시신을 영구보존하는 과정엔 100만 달러(10억5000만원)가 들었으며,
지속적 관리에도 연간 80만 달러(8억5000만원) 정도가 든다고 한다.
북한은 김정일의 지시로 김일성이 생존했을 당시 사용한 집무실 ‘금수산의사당’을
현재 시신이 보관된 ‘금수산기념궁전’으로 개조하며 8억 달러(8500억)를 썼다고 데일리NK는 전했다.
[출처] 김일성 시신/ 김일성 시신 보존료|작성자 아린딜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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