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3.30.화요. 오래 전 설교에서 선언했듯이,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은 아주 간단한 일이다. 바람과 전기가 눈에 보이진 않지만 우리는 그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믿는다. 공기의 흐름없이 나뭇가지가 저절로 흔들리거나 구름이 갈 수 없기 때문이다. 눈에는 보이지 않는 전기도 그 에너지 결과를 통해 우리는 전혀 의심없이 받아들인다. 불신자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이 아니다. 열리지 않은 지혜의 문 때문에 믿지 못하는 것뿐이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인류가 지닐 수 있는 최고최상의 지혜와 지식임에(잠1:7) 틀림은 없다. 인간이 깨달았다며 크게 감동하는 것도 하나님편에서 보면 지극히 사소한 것이리라. 이는 마치 태산을 손바닥만한 꽃삽으로 떠서 옮기려는 것과 같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과 그 세계는 무궁무진해서 우리는 작은 화초삽으로 태산을 파헤쳐 다 알겠다는 생각대신 하나님의 물댄 동산 작은 하나라도 기쁨으로 누리면서 믿어 감동으로 나누고 전해서 공유해야한다. 그리고 그 가르침속에서 그의 나라가 확장되어가는 것에 적극 동참하는 것.. 하나님을 섬기는 일 그것이 인간의 본분이다. 그러나 아직도 빠지지 않은 선악과의 독, 죄성은.. 끝까지 하나님을 분해, 분석해서 알려고 한다. 명쾌히 설명할 수 없는 것이 설명할 수 있는 것보다 수만배 더 많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유물론사상은 무지 중 최고의 무지를 뜻하고 있다. 눈에 뵈는 어떤 것이든 그것을 끝까지 설명하려면 결국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에 도달하게 된다. 무신유물론의 궁색한 대답은 늘 뭔가를 남겨놓고 끝을 맺는다. 물질의 최소단위와 최초 생명의 동기, 메카니즘을 어떻게 화학부호로 간단히 정리할 수 있는가? 그것들이 스스로 본래부터 그리 되어 있었다는 말은 차라리 “더 이상은 내 소관이 아니라 신의 소관”이라고 말한 유가와박사의 말로 바꿔야 한다.
2010.03.31.수요예배. 예수안에 예수 안계시고 하나님안에 하나님 안 계시다. 우리구주 예수님안에는 예수께서 그렇게도 사랑하신 아버지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로 가득하다. 하나님안에는 하나님이 그렇게도 사랑하시는 예수님과 그의 교회와 성도들로 가득하다. 나는 진정 누구인가? 내 안에 내가 있나? 없다. 난 누군가에 의한 나이며 그 관계가 없어지면 거긴 죄악뿐이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존재할 수 있는 유일한 조건은 내안에 날 사랑하셔서 대신 죽으시고 다시 사신 예수님과 그의 백성으로 가득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나로 존재할 수 있는 근거는 오직 주님주신 은혜 외에 어떤 것도 찾을 수 없다. 스스로는 물론 존재할 수 없었고 여기까지 올 수 없었다. 지금의 모습이 만족스럽지 못하고 아쉬운 후회뿐이어도 그나마 우리주님의 공급과 도우심과 고치심이 아니었다면 전혀 불가능한 것들로 내 안팎과 주변은 가득하다. 사랑하는 가족과 교회와 구원과 주변과 건강,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과 심지어는 부족과 허물도 주님의 은혜가운데 있는 것이다. 자신넘치는 탁월함이었다면 결코 그리스도의 종이 되질 못하였으리라. 열등감과 서러움과 외로움이 그리스도를 향하게 했던 이유들을 더욱 선명하게 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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