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3:7-8. 열린 비전의 문>
사랑하시는 제자 요한을 찾아 밧모섬에서 나타나신 주님이 지금 여기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필라델피아 교회의 문을 활짝 열어주신 주님이 우리 비젼교회의 문을 또한 활짝 열어주신 줄 믿습니다. 아멘.
주께서 사랑하시던 제자, 늙은 요한이 밧모성에 붙잡혀 가서 피골이 상접한 채로 간신히 수명을 유지하고 있을 때 그와 함께 로마의 폭압에서 고통받는 주님의 백성들을 위로하시고자 친히 요한을 찾아오신 주님은 장차 일어날 장면들을 눈으로 보게 하셨습니다. 계시록은 위로의 책이요, 권면의 말씀이요, 마지막 경고의 음성이십니다. 이 계시록에 나오는 소아시아 7개교회중 칭찬받은 교회는 서머나교회와 빌라델피아교회뿐이었습니다.
빌라델피아교회는 지금의 터어키에 있는 고원지대의 도시로서 당시엔 포도생산지로 유명했고 서머나와 루디아에선 여기를 거쳐야 동쪽으로 갈 수 있는 동방의 관문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교통의 요충지가 지닌 부와 번영을 누리면서 많은 신전과 우상으로 풍요와 타락이 얽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본문은 이러한, 풍요로 부패한 전형적 세상의 도시에서 작은 능력을 갖고도 말씀에 순종하는 빌라델피아교회를 칭찬하는데 주님께선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자신을 소개하시기를 열면 닫을 자가 없고 닫으면 열 자가 없다고 하십니다. 빌라델피아 교회를 향한 우리주님은..
1. 구원의 문과 천국의 문을 열어주시는 예수그리스도십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인간에 구원을 받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다.” -행4:12. 오직 주님만이 열 수 있는 문입니다.
다윗성전의 문은 오직 유대인만의 전유물이라고 여겼던 당시, 예수님은 세계를 향하여 복음의 문을 여셨습니다. 다윗의 문이란 하나님의 집인 다윗궁을 말합니다. 이 다윗성전의 문이 하나님의 나라로 곧장 이어진다는 유대인들의 믿음은 다윗의 문은 항상 자신들에게만 열려있다고 믿었습니다. 열면 닫을 자 없고 닫으면 열 자가 없는 구원의 문, 천국의 문, 주님의 손이 만세전에 감춰져 있다가 이제 모든 믿는 자에게 활짝 문을 열어 주셨습니다. 시24편에서는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라고 함으로 영광의 왕, 그리스도가 우리문안에 들어오심으로 모든 문이 열리는 것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열어주시는 문은 어떤 문입니까?
1) 천국의 문은 인간의 능력에 따라 열리고 닫히는 문이 아닙니다.
빌라델피아교회는 비록 작은 능력을 갖고도 주님말씀을 잘 지키며 그 이름을 위하여 온전히 헌신된 교회였습니다. 자신들의 유익을 위하여 주님의 이름을 배신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에서는 수단방법보지 않고 결과만 보고 평가합니다. 그러나 주님이 보시는 것은 능력의 크고 적음이 아니라 최선입니다. 드러난 결과보다 어떤 중심으로 어떻게 노력했는가를 묻습니다.
성도여러분, 우리안에는 우리도 미처 모르는 놀라운 은사와 능력이 숨어있습니다. 주께선 있는 것 드리라고 하십니다. 어두운 곳에 숨어있는 죄를 끌어내어 떠나보내는 일은 빛되신 주님을 모셔 들임으로 가능한 일입니다. 주님과 깊은 교제가운데 사시기 바랍니다. 주님과 깊이 사귀면 숨은 능력이 나타납니다. 죄가 사라지면 내면이 맑아지고 환히 보여 곳곳에 웅크린 채 사용되지 못하고 있는 갖가지 능력과 은사들이 칭찬을 기다리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2) 주님께서는 빌라델피아교회의 행위를 아신다고 했습니다.
작은 능력가운데 믿음으로 행한 노력을 보신 것입니다. 믿음을 갖고도 여전히 삶이 변하지 않고 무능한 영적존재로 간신히 받은 구원만 연명한다면 그것은 행함이 없는 죽은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거룩한 능력의 삶은 소망하는 것만으로는 결코 이뤄지지 않습니다. 모든 일과 구원의 성취는 하나님께서 맡으시되, 주님의 절대하신 주권과 사람의 순종이 만날 때 아름다운 일들이 나타납니다. 세상만사를 하나님의 뜻으로 돌리는 함정으로 빠지지 않기 바랍니다. 그나마 여기까지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지만 여전히 실수와 착오는 인간의 부족과 욕심으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3) 열린 문은 닫을 자가 없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좋으신 주님께선 작은 능력이지만 최선을 다한 빌라델피아교회에 하늘 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문은 닫을 자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오늘날 작은 능력에도 불구하고 낙심하거나 절망치 않고 주님앞에 반듯하게 세워져가는 성실한 교회들과 작은 교회 곧 가정들에게 여전히 주님은 말씀하고 계신 것을 들어야 할 것입니다.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은 모든 문의 열쇠를 쥐고 계십니다. 창조의 문을 열고 우리 인생의 문을 여실 때에 그 분명한 목적과 계획과 기쁨으로 여셨습니다. 우리가 모여서 교회의 문이 되고 교회의 문들이 모이면 구속사 곧 인류역사의 중심인 교회사의 역사가 하나의 커다란 인류구원의 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구원의 문은 누구를 향하여 열어놓은 것일까?
3. 하나님을 믿고 말씀을 지키려고 애쓰는 자에게 열리는 문입니다.
먼저,. 하나님을 향하여 문을 넓게 열기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향하여 닫힌 마음을 열고 그분을 환영해 모시면 우리안에 믿음의 문이 열리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믿음의 문이 열리면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신뢰하게 될 것이고 그분의 놀라운 섭리와 능력과 끝없는 사랑과 구원의 의미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구원의 감격이 있는 사람에게 드디어 기도의 문과 감사의 문이 열리며 그 문을 통하여 천국이 보이며 이 땅의 모든 문들도 따라서 열리게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다음, 세상을 향하여 문을 넓게 열기 바랍니다.
세상과는 거룩함으로 구별된 우리가 다시 찾아가 일할 곳은 타락한 세상 한가운데입니다. 세상은 성도인 우리를 통하여 구세주인 예수님을 보려고 합니다. 그리하여 종은 오늘 주님의 이름으로 여러분께서 온유함와 단호함을 축복하며 당부합니다. 온유한 가운데 한편 단호하길 바라는 것입니다. 아울러 우리에게 지혜로운 분별과 정직이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 악한 세상이 유혹할 때 단호하게 신앙을 고백할 수 있길 바랍니다. 물론 사탄이 친절한 미소로 접근할 때 여러분의 얼굴도 의연한 표정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흥분하거나 놀라거나 겁내지 말아야 합니다. 한번 흔들리면 발목을 잡히게 됩니다. 끝내 우리가 단호해야 할 것은 신앙절개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표정은 부드러워도 외유내강하여 세상을 사랑으로 엄중하게 꾸짖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끝까지 부드럽고 친절해야 하는 이유는 세상가운데 아직도 남겨둔 주의 백성들이 매우 많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과거가 그렇게 화려하고 자랑스런 신앙으로 기억되진 못합니다. 진정 빼어난 추억으로 빛나고 있질 못합니다. 우리가 그러했다면 세상의 누구도 함부로 보거나 정죄하지 말라는 주님의 음성이 우리들의 과거속에 늘 메아리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끝으로, 자신을 향하여 문을 넓게 열기 바랍니다.
자신을 사랑하라는 말은 자칫 잘못 받아들여져서 이기심의 발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은 채 이웃을 통하여 하나님과 자신을 사랑하도록 스스로 타이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교회와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곧 자신의 기초를 북돋는 일임을 알고 자기중심에서 벗어나 공동체중심의 사고방식과 행동을 몸에 익힌다면 이는 결국 교회와 주변을 통한 하나님의 사랑과 채우심으로 최선의 자기사랑이 될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연민에 빠지지 않습니다. 자기연민만큼 위험한 일은 없습니다. 겸손이 가끔 울적한 마음을 만나면 그 동안 숨어있던 열등감과 수치심이 올라옵니다. 그래서 비통한 마음은 세상에서 자신만큼 불쌍한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게 합니다. 그리고 한없이 슬퍼집니다. 이 슬픈 마음은 다시 자학하게 되고 자학은 삶의 가치와 희망을 송두리째 끊어내고 자존감을 때려서 매사에 자신감이 없고 결국 서둘러 죽어버리고 싶은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어서 주의 나라가 왔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는데 이는 믿음이 좋아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천국을 사모함에 있어서 그 이유가 낮아진 자존감인 경우, 우린 재빠르게 산더미같은 거룩한 숙제들을 떠올려야 합니다. 버겁지만 쓰러지지 말고 힘차게 달려서 우리보다는 나은 자녀들의 미래에 도움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주의 나라를 세워가는 충성입니다. 자녀나 후진들을 잘 가르치고 키우는 것은 내안에 주신 주님의 교훈을 다시 일으켜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미력하나마 교회와 주변을 밝게 비추기 위해 한 개의 타오르는 복음의 등불이 되기 간절히 기도하고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주의 나라가 속히 왔으면 좋겠지만 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다는 것입니다. 숙제를 만점으로 말끔하게 한 학생은 속히 아침이 와서 학교에 달려가 선생님에게 칭찬받고 싶겠지만 숙제 못한 아이는 학교가는 게 싫은 것입니다. 그런데 보통 숙제와 무관하게 학교는 싫고 소풍가는 것만 좋은 게 철없는 아이들입니다.
사랑하는 비전가족 여러분. 우리교회의 문을 누가 열어 주셨습니까? 가정마다 누가 문을 열어주셨습니까? 누가 의롭고 새로운 영생의 길을 제시하셨습니까?
우리 좋으신 하나님,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열어 주셨습니다. 우리 앞에 열린 문을 두셨는데 아무도 닫을 자가 없으니 이제 우리는 그 문을 향하여 믿음과 행함과 선포의 결단을 붙잡고 들어가기만 하면 됩니다. 우리교회 열린 하늘과 세상과 자신의 문을 향해 한걸음, 한걸음씩 물러서는 일없이 꾸준히 나아갈 것입니다. 뒤쳐지는 영혼 한 사람도 없이 모두들 기쁜 노래로 춤추는 전도의 삶과 영원한 천국의 삶을 소유하게 되시기 부활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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