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만 입양아의 주치의, 조병국 원장
다만 엄마의 사랑이, 가족의 온기가 지니는 위대한 힘을 확인할 뿐이다. 조병국 원장의 올곧은 이력은 부모를 잃은 아이들에게 가족의 온기를 되돌려주는 것이었다. 그런 그녀를 사람들은 6만 입양아의 주치의, 입양아들의 어머니를 부른다. ◇아이들은 ‘우유+사랑’으로 성장한다 조병국 원장의 이력은 단출하다. 의사로서의 평생은 버려진 아이들, 입양아들과 함께였다. 단출하지만 또 긴 시간이기도 했다. 그녀는 1993년 정년을 맞아 홀트아동복지회 부속의원(이하 홀트부속의원)을 퇴임했으나, 후임자가 나서지 않아 前 원장이라는 이름으로 2008년까지 활동했다. 그녀의 나이 일흔 여섯이었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면, 그리 긴 시간 동안 한 길에만 매진하지는 못했으리라. “의사가 되겠다고 생각한 것은, 전쟁을 통해 너무나 많은 죽음을 목격했기 때문이예요. 폭격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다치고 죽었죠. 그 가운데서 아파하는 사람을 도와 줄 수 있는 의사라는 직업이 좋아 보였어요. 또 두 동생을 차례로 잃으면서, 유아사망률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 보고 싶었죠. 그래서 소아과를 택하게 됐어요.” 두 동생의 죽음이 그녀에게 소아과 의사가 되어야겠다는 의지를 갖게 했다면, 소아과 의사로서 처음 목격한 현실은 아이들에게는 필요한 것은 다른 무엇보다 가족이라는 신념을 갖게 했다. “당시에는 의료시설이 열악해서 대학의 레지던트들을 여러 기관으로 파견하는 제도가 있었어요. 저는 서울시립아동병원으로 파견되었죠. 그곳에서 수많은 부모를 잃은 아이를 보았어요.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똑같은 우유를 주는 데도 단체 보육시설에 있는 아이들은 더디 자란다는 것이에요. 부러 계란이나 콩을 챙겨 먹여도 그래요. 체중이 좀처럼 늘지 않았죠. 아이들에게 결핍된 것이 무엇인가 하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아이들은 ‘우유+사랑’으로 자라는데, ‘우유-사랑’인 상태였기 때문이었을 거예요.” ◇‘국제 거지’라는 별명을 부끄럽지 않게 한 눈부신 기적들 “입양은 최선은 아니지만 부모를 잃은 아이들을 위한 차선이라고 생각해요. 아이들에게는 가족이 필요하니까요. 입양을 통해 아이들이 ‘내 가족’이라는 든든한 울타리 안에서 올바른 사고를 배우고, 한 명의 책임있는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믿어요.” 그녀의 손으로 돌보고 입양을 보낸 아이들. 그들의 양부모는 편지로 사진으로 아이들의 소식을 알려 오곤 했다. 두 다리를 잃어 입양될 가정을 찾을 수 있을까 걱정했던 아이는 의족을 끼고 건강하게 웃고 있었다. 다음 해에는 정글짐에 매달려 뛰노는 모습으로, 또 다음해에는 롤러스케이트를 타는 모습으로 소식을 알려 왔다. 소아마비의 어려움을 딛고 재활 전문의가 되어 의사 대 의사로 만나게 된 경우도 있었다. 누구는 골프장 주인이, 또 누구는 어려운 사람을 돕는 사회사업가가 되었다는 소식도 전해들을 수 있었다. 사람들이 쉽게 불행을 점쳤던 버려진 아이들, 그들이 당당하게 삶을 만들어가는 모습, 자신의 삶을 해피엔드로 꾸려가는 모습은 눈부신 기적과 같았다고 조병국 원장은 이야기한다. 그만큼 그녀도 주어진 상황에 만족하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가족을 찾기 전까지 아이들을 건강하게 돌보기 위해서 필요한 일이라면, 의사로서의 책임을 넘어서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독일 입양기관의 후원을 받아 미혼모 숙식 보호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장애 아동을 위한 물리 치료 프로그램이 필요했을 때는, 예산도 없이 덜컥 물리치료사를 고용했다. 노르웨이의 입양기관에서 후원을 받는 데 성공해서 고용을 이어갈 수 있었다. 룩셈부르크에서는 심장병 수술비를, 미국 미시건주에서는 간염 검사 비용을 후원받았다. 인큐베이터, 에어컨, 하다 못해 천 기저귀까지 이런 후원을 통해 만들어 냈다. 입양 기관의 기관장들이 모이는 국제 회의에 참석할 때마다 이렇게 후원 기관을 찾기 위해 뛰어다니는 그녀에게 사람들은 ‘국제 거지’라는 별명을 붙여 줬지만 부끄럽지 않았다는 그녀는 이렇게 이야기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여러 아이를 도울 수 있는데, 또 내가 도와 준 아이는 더 많은 일을 할 수도 있을 텐데, 그 노력을 아낄 필요가 없죠.” ◇내 손에도 누군가를 데워줄 온기가 있다 입양을 간 아이들은 성장한 뒤 자신의 아이를 입양하기 위해 다시 입양기관을 찾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조병국 원장은 자신의 노력보다 더 큰 열매가 열리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고 한다. “아이들이 새 가족을 통해 풍성한 사랑을 받았음을 알 수 있어 기쁘죠. 세상에서 받은 사랑을 되돌려 줄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했다는 것이 또한 기쁘고요.” 그러면서 보여 주는 여러 장의 사진 속에서 가족은 입양한 아이와 직접 낳았다는 아이를 구별할 수 없게 닮아 있다. 가족은 혈연으로 맺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맺어짐을 수많은 가족들이 보여 주고 있었다. 은퇴를 했지만 여전히 입양 부모들의 애로사항이 정책에 반영되기를, 입양아들을 위한 심리 상담 프로그램이 만들어지기를, 미혼모들과 싱글맘들을 위한 소통의 자리가 만들어지기를 등을 새해의 바람으로 꼽는 조병국 원장은 이 모든 일을 가능하게 하는 시작으로 사랑을 강조한다. 그리고 그녀는 얼마 전 출간한 책의 서문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그 사랑의 실천을 강조하고 있다. 그녀의 새해 바람이 꼭 실현되기를 빈다. 한편, 조병국 원장은 이러한 공로로 보령제약이 제정하는 제26회 보령의료봉사상 대상에 선정됐다. 시상식은 17일 저녁 6시 30분 서울 신라호텔 다이너스티홀에서 열리며, 조 원장에게는 상패와 순금 10돈 메달, 상금 3천만 원이 수여된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이영수 기자 juny@kmib.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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