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포럼] 北, 어디로 가려는가? | 기사입력 2010-06-23 19:54 | 최종수정 2010-06-24 01:22
북 권력층 가진 달러 안 내놔.. 김정일부터 보리밥 먹어야 조민호 논설위원
북한 국방위원장 김정일의 측근들은 하나같이 부자다. 지난 2일 교통사고로 죽은 이제강 노동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김영춘 국방위 부위원장, 김정일의 매제 장성택, 강석주 외교부 제1부상 등은 갑부로 소문나 있다. 이제강의 사위와 딸은 북한 최고 갑부라고 한다. 이들의 재테크는 ‘독점’이다. 막강한 권력을 이용해 각종 외화벌이 사업과 물품 공급 루트 등을 독식하니 달러가 쌓일 수밖에 없다. 고위 권력자를 추종하는 아류들까지 재산 증식에 몰두한다고 보면 인구 0.1%도 안 되는 권력층이 사실상 돈줄을 다 쥐고 있는 셈이다.
북이 작년 11월30일 실시한 화폐개혁의 전략적 타깃은 개인이 소지한 달러의 국고 환수다. 하지만 실패했다. 신문·방송에는 민심이 동요한 탓이라고들 했지만 그것만은 아니다. 측근들이 거액의 달러를 내 놓지 않으니 화폐개혁은 하나마나다. 실패의 책임으로 박남기 노동당 계획재정부장만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그들이 소지한 달러는 부귀영화의 생활비로, 외국에서 활동하는 자녀들의 도피 자금으로, 훗날 북한체제 붕괴시 보험금으로 써야겠기에 결코 내놓을 수 없었을 것이다. 기껏 보따리 장사하며 힘겹게 모은 취약계층의 달러나 노리니 반발만 클 뿐 실효성이 없었던 것이다.
북의 상층부는 썩었다. 김정일이 20년 전부터 관료주의 부패를 지적했지만 메아리가 없다. 북 체제를 떠받드는 당정군의 강경파들이 없다면 김정일도 국정을 끌어갈 수 없기에 그들의 부패를 묵인하고 마는 구조다.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는 마오쩌둥의 말을 누구보다 잘 아는 김정일이니 군 장성을 벤츠로 달래고 어르는 것이다. 한때 김영춘의 딸을 포함한 친인척 20여명이 군 외화벌이를 독점하다시피 해 조사가 벌어졌지만 흐지부지됐다. 권력자들끼리 밀어주고 당겨주는데 누가 감히 그들 밥통을 걷어찰 수 있겠는가. 김정일은 각종 질병으로 인생이 저물고 있고 아들 김정은의 후계체제는 불확실하다. 측근 권력자들의 지분이 클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국방위에 전진배치된 오극렬, 장성택, 이용무, 김영춘 등 측근에게 힘을 주고 다시 그 힘을 빌려야 체제가 유지되는 것이다.
김정일의 정치체제인 ‘선군정치’는 결국 그들 이너서클의 권력 유지·확장 수단에 불과하다. 핵무기와 대륙간 탄도미사일로, 선군정치사상으로 강경 분위기를 만들어 놓고 그 안에서 권력자들은 달러를 물 쓰듯하며 호의호식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남한에서 달러를 주면 죄다 그들 주머니로 들어가는 건 정해진 수순이다. 달러가 모자란다 싶으면 공갈 협박으로 뜯어간다. 적어도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는 그 방법이 먹혀 들었다. 그런 방식이 통하지 않는 이명박 정부는 당연히 눈엣가시다. ‘역도’ 소리가 절로 나올 것이다. 작년 8월 북한 노동당 김기남 비서와 김양건 통전부장이 청와대를 방문해 정상회담 카드로 생존의 길을 찾았지만 유야무야됐다. 남성욱 국가안보전략연구소장은 “호가와 시가가 어긋나 결렬됐다”고 한다. 정상회담이 만능키는 아닌데도 그들은 한탕하려고만 하는 것이다. 오바마의 미국도, 유엔도 예전 같지 않다. 대북 압박만 강화하는 상황이다. 천안함 사건 이후 북을 둘러싼 환경은 훨씬 팍팍하다.
북은 지금 죽을 맛일 거다. 스스로 “이명박 정권에게 기대할 것이 없다”고 했으니 어디 기댈만한 곳도 없다. 혹자는 중국이 구명줄이라고 하지만 중국은 북이 죽지 않을 만큼만 지원할 뿐이다. 작년 평양에 간 원자바오는 3000만달러만 약속하는 선에서 그쳤다.
북의 궁핍은 바로 그들 집권층 탓이다. 중국식 개혁·개방까지는 못 해도 그들 내부 권력층의 ‘자기개혁’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 김정일부터 가진 돈 내놓고 보리밥을 먹어야 한다. 기름 퍼먹는 벤츠를 내다 팔고 포니를 타야 한다. 핵무기와 미사일을 폐기하고 그 보상금으로 국가 재건에 나서야 한다. 인민은 굶어 죽는데 수십개의 별장이 왜 필요한가. 구조조정이 필요하다. 말로만 박정희식 개발론을 읊어대서는 의미가 없다. 하다 못해 카다피의 ‘리비아 모델’이라도 괜찮다.
남북한 무역규모는 이제 224대 1이다. 남북한 체제경쟁이 끝났음을 말해 준다.
진솔하게 고백하고 협력을 구하는 일이 자존심 상하는 것도 아니다.
기회는 지금이다. 질질끌면 북의 미래는 아주 불확실해 진다.
조민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