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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의 추억

[스크랩] 자유당 독재 몰아낸 4.19

by 설렘심목 2010. 2. 10.

1960년 3월 15일 치러진 정·부통령선거는 온갖 방법을 동원한 부정선거로 4.19혁명의 직접적인 계기가 된다. 사진은 이승만 대통령이 투표를 마치고 기자들과 인터뷰하는 모습.

이승만 대통령의 독재에 항의하며 거리에 나선 시민들이 규탄 집회를 열고 있다.(왼쪽) 태극기를 앞세우고 가두투쟁을 벌이고 있는 시민들.(1960.4.20)

시위대에 의해 화분이 깨지는 등 어수선한 자유당의 한 사무실(왼쪽)과 창과 출입문이 파손되고 그을린 자유당 중앙당부.

4월 19일 시위로 파손된 차량과 가옥. 격렬했던 당시 상황을 대변해주고 있다.

“국민이 원한다면 대통령직을 사임하겠다.” 이승만 대통령은 이 사건으로 결국 하야성명을 발표한다. 12년간의 경무대 생활을 청산하고 이화장으로 돌아가고 있는 이승만 대통령.(1960.4.28)

이기붕 국회의장은 4월 28일 일가족이 모두 죽음으로 비극적인 생을 마쳤다. 운구차량이 경무대를 나서고 있다.

4.19혁명 희생자 합동 위령제에서 통곡하고 있는 희생자 가족들.(60.4.24)

4.19혁명 이후 구속된 정치깡패들이 재판정으로 들어가는 모습과 재판 장면.(60.7.6) 4·18 고대생 피습 사건으로 동대문사단의 보스 이정재는 사형을 당한다.

4.19혁명 당시 경찰의 발포로 사망자가 발생한 경무대 앞에서 현장검증이 실시됐다.(60.7.20)

서울지법이 4.18발포명령사건 등에서 검찰 공소를 사실상 전면 파기하자 이를 규탄하는 시위가 전국적으로 열렸다.(60.10.11) 이는 사회질서 회복이라는 5.16군사쿠데타의 명분이 된다.

 

 

출처 : 농부와 뜨락
글쓴이 : 농부와 뜨락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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