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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의 추억

5.18에서 10.26까지의 기억들

by 설렘심목 2010. 2. 1.

필자는 1977년도 3월 26일에 육군에 입대하여 홍천에 있는 모사단에서 복무하다 1979년 12월 20일에 전역을 하였다. 그리고 이듬해인 1980년 5월 18일에는 광주사태가 발생하였다. 10.26사태와 12.12사태, 그리고 광주사태를 전역을 전후하여 연이어 겪은 것이다.

 

 

 

 

▲ 故 박정희 대통령이 중정부장 김재규에게 시해되었던 궁정동 舊 중앙정보부 안가의 모습

 

10.26사태는 중앙정보부장이었던 김재규가 故 박정의 대통령을 시해한 사건이다. 군에서 전역하기 불과 채 두달도 남지않은 시기에 발생한 사건이다. 그 당시 바깥은 물론이고 군내에서도 말을 함부로 했다간 '유언비어 유포죄'로 쥐도 새도 모르게 잡혀가 고초를 겪던 그런 시절이었다.

 

그런 시절에 박대통령이 총에 맞아 시해되는 사건이 발생했으니 군내 분위기가 얼마나 살벌했었는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비상(테포컨) 발령과 함께 각 장병들에게 실탄이 지급되고, 완전군장을 꾸려놓은 채 출동명령이 떨어지면 언제든 출동할 수 있는 準전시상태로 돌입하였다.

 

 

▲ 12.12사태 당시 출동해 남대문 앞을 지나는 탱크와 장갑차들...

 

 

▲ 12.12사태 당시 삼청동과 경복궁 등지에 출동한 군의 탱크 모습

 

 

▲ 정승화 참모총장을 거세하고 군부를 장악한 신군부 세력들이 경복궁에서 기념촬영한 사진

 

그렇게 두달여쯤 지났을 무렵에 이번에는 계엄사령관인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이 보안사에 납치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민간인도 아닌 군인신분으로서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하였던 것이다. 당장이라도 남침도발 내지는 내전이 발발할것만 같은 일촉즉발의 살벌한 분위기가 계속되었다.

 

결과론이지만 그때 신군부가 조금만 늦게 군을 장악했더라면 이 나라는 지금 어찌 되었을지 상상하기도 싫다. 아마도 또 다시 북한이 남침하여 전쟁이 발발하였거나 아니면 아군끼리 치고받는 내전이 발발하여 걷잡을 수 없는 내전상태로 빠져들었을 것이다. 실제 그 당시 정승화 장군 추종파와 신군부간에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이 그 와중에도 이미 제대특명을 받아놓은 터여서 전역을 하였다. 하지만 제대한 지 채 5개월도 지나지 않은 1980년 5얼 18일에 또다시 광주사태가 발생하였다. 전역을 하긴 하였지만 도대체 전역한 기분이 전혀 들지를 않았다. 왜냐면 국가비상사태가 발생하면 전역한 지 6개월 이내의 전역병들은 원대복귀 명령을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밤이면 밤마다 악몽을 꿨다. 다름아닌 다시 부대로 끌려가는 꿈을 거의 매일같이 꾸었던 것이다. 한마디로 악몽의 연속인 시기였던 것이다. 군인은 명령에 살고 명령에 죽는 특수한 집단이다. 내가 만약 조금만 군에 늦게 전역했더라면 그 계엄군속에 내가 포함되어 있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지만...

 

이제는 서로 화해하고 보듬어야 할 시점이 아닌가 생각한다. 광주사태에서 유명한 달리한 유가족 모두 우리의 형제자매들이다. 시민군도, 진압군도 다같은 우리의 형제.자매들이었다. 나 또한 광주에 살았다면 시민군이 되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고, 군에 있었다면 진압군으로 차출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시대를 우리는 살았던 것이다.

 

항상 문제가 있는 자들이 있다. 그들은 다름아닌 편향된 정치인들이고 그들을 추종하는 맹신적 추종세력들이다. 그리고 그 당시엔 실제 남북한이 냉전상태를 유지하던 시대였고, 간첩들이 학계와 노동계 깊숙히 침투하여 민심을 교란하고 소요사태를 배후에서 조종했던 것 또한 사실이다. 사실은 사실로 인정할 때 진실의 의미가 있는 것이다.

 

시대가 바뀌었다 해서 진실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실제 주사파가 존재했었고, 김일성의 주체사상을 좇아 민중봉기를 획책하는 무리들이 있었다는 얘기다. 전두환.노태우 정권하에서는 광주사태를 폭동 내지는 내란으로 규정했었다. 실제 군인들이 시위대들에게 끌려가 죽거나 반병신이 되도록 린치를 당한 사건이 있었던 것 또한 사실이다.

 

이후 계엄군이 투입되고 과잉진압이 있었던 것 또한 사실이다. 따지고 보면 진압에동원되었던 군인들도, 시위대에 참가하였던 선량한 시민들도 다 피해자들이다. 시대가 바뀌었다 해서 어느 한쪽면만을 부각해서는 안된다. 문제가 있는 곳엔 그 원인도 반드시 있게 마련이다. 정작 그렇게 되도록 만든 원인제공자들이 누구인지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