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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그림&좋은글

부자들습성따라하기와 록펠러/노숙자에서 억만장자로

by 설렘심목 2010. 2. 4.


   인생관을 바꾼 록펠러

1839년에 뉴욕에서 태어난 록펠러는 18세의 소년으로 한 도매상에서 서기로 있었으나 거기에서 받는 적은 월급만으로는 성에 안차 큰돈을 벌어보겠다는 야망을 품고 석유회사를 차렸다.

몇년후 그는 특수한 판매전술로써 동업자들을 압박해 가며 많은 비난을 받았지만 마침내 미국내의 석유를 완전히 독점하고야 말았다. 그는 운동이나 오락등 돈이 안되는 일에는 일체 눈도 돌리지 않았다. 돈밖에는 모르는 구두쇠라는 평을 받으면서 악착같이 돈 모으기에만 혈안이 되어 마침내 33세때 백만장자가 되었고, 43세때는 세계 최대의 석유회사 사장이 되어 "석유왕"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러나 항상 돈을 벌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늘 억눌려 있었다.
어떻게 하면 우리 회사 석유가 더 많이 팔릴수 있을까,
내가 이룩해 놓은 성공이 하루아침에 무너지지는 않을까, 부하직원이 나를 배신하지는 않을까,
혹시 다른 회사 스파이가 우리 회사 안에 들어와 있지는 않을까?

이러한 걱정과 근심등의 스트레스로 인해 그는 병을 얻었고, 53세때는 결국 혼자서는 서있기조차
힘들정도로 병악해졌다.

 

세계 최고의 부자가 1주일에 먹는 것이 겨우 우유 몇잔과 과자 몇 조각뿐일 정도로 쇠약해졌다.
마침내 그의 주치의는 그에게 이렇게 선언했다.

"당신은 돈과 목숨중 하나를 택하시오. 만일 당신이 끝내 돈을 택한다면 나로서도 어쩔수 없소."
록펠러는 병석에 누어 오랜 고민끝에 의사에게 고백하였다.
"나는 목숨을 택하겠소."

이러한 현명한 결단으로 잃었던 신앙을 사모하면서 그의 생활태도는 180도로 달라졌다.


그때부터 그는 꽃을 가까이 하고 음악감상을 즐기며 예배의 회복을 통해 내면의 안식과 평화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한편 오락과 간단한 운동도 하면서 스트레스를 말끔히 없애자 차차 건강도 회복되었다.

 

어려서 그는 받은 용돈을 오른쪽주머니엔 십일조를 떼어두고 왼쪽엔 용돈을 넣어버릇하였다.

어머니의 뜻을 새롭게 기억하면서 신앙생활에 전념하여 단순하게 살기 시작했다.

교회출석을 통해 그의 영혼은 물질과 환경으로부터 자유하기 시작했고 내세에 대한 소망으로

마치 소년처럼 들뜨면서 전혀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금방 꺼져갈듯 하던 목숨에서 되살아난 록펠러는 놀랍게도 무려 98세라는 나이까지
장수를 누릴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신앙생활을 통하여 신기한 것을 경험하면서 더욱 깊이 신앙생활에 전념하고 손주뻘되는 전도사앞에서도 부동자세를 하면서 겸손한 성도가 되어갔다.

그는 10개의 신앙지침을 마련하면서 남은 생애를 예수위해 살 것을 거듭 다짐하였다.

목사님을 하나님처럼 섬기는 그의 겸손은 많은 성도들에게 깊은 감화를 주었다.

 

돈을 긁어 모을때는 온갖 죄악에도 가책을 받지 않던 그가 마침내 1892년에는 극도로 나빠진
여론에 밀려 법원으로터 10년전에 형성했던 석유독점회사의 해체명령을 받기까지 했었다.

그러나 돈과 목숨중 하나를 택하라는 의사의 충고를 받고 인간 생명의 소중함을 선택하고 그리스도를 다시 찾은 후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그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기부하고 페니실린등 제약과 질병치료법을 연구하는 사업을 지원하였으며 불우한 청소년들을 위한 장학재단을 설립하고, 세계 여러나라 젊은이들의 인도주의적인 사업을 아낌없이 지원하는 등 무수한 자선사업을 벌리면서 100세 가까운 행복을 샀던 것이다.

 

말하자면 그의 일생중 반백년은 어떻게 하면 돈을 더 벌수 있을까 하고 노심초사하면서 보냈고,
그가 죽음 직전에서 의사의 경고를 통해 신앙을 회복하고 그로 인해 생명의 위기를 넘기고, 나머지
반백년은 그돈을 어떻게 쓸까 하는 고민으로 하나님과 사회앞에 평생을 바친 사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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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축하고 난 후에  소비 한다.

알부자들은 과거 어려울 때나 지금이나 몸에 밴 습성은 수입의 절반이상을 저축하는 습성이있다. 사실 그런 저축을 고집하지 않았다면 일반서민의 길을 가고 있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반서민들은 늘 생활비도 모자라 죽겠는데 어떻게 절반이상 저축을 하느냐고 투덜거린다. 저축에 대한 알부자들과의 사고의 차이가 확연히 들어난다. 고정된 수입에 저축을 제대로 하자면 생활비를 줄이는 방법이외는 뽀쪽한 방법이 없다. 일반서민들은 생활비는 줄일 생각은 뒷전이고 무조건 있는 대로 쓰고 난 후에 저축하다보니 늘 저축할 돈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부자들은 생각이 다르다 무조건 수입의 절반 이상을 저축통장으로 인출한 후에 생활비를 사용한다. 그리고 저축한 돈을 사용하는 용도에 있어서도 확연히 차이점을 보인다. 일반서민들은 어느 정도 목돈이 모여 적금만기가 되면 집안의 가구를 교체하거나 전자제품을 모조리 바꾸는 등 집안의 치장을 위해 목돈을 사용하지만 알부자들은 집안의 치장은 최소화하고 돈을 더 불리기 위한 투자에 저축액을 집중한다. 가령 현재 가입하고 있는 펀드상품에 투자금을 더 투입하거나 상가건물을 구입하여 임대수입을 늘리거나 목 좋은 곳에 펜션지를 구입하든지 하여 전적으로 투자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일반서민들은 투자에 집중하기보다는 소비에 목돈을 집중하는 차이점이 다르다.

그럼 저축과 소비 그리고 투자에 대한 알부자들의 전반적인 생각을 들어보자.


소비보다 투자를 위한 저축이 우선이다


♦ 저는 지금까지 매월 수입액의 70%는 저축을 고집합니다. 과거부터 해오던 것이라 지금은 습관이 되었습니다. 맨 처음에는 다소 생활비가 부족해서 힘들기도 했지만 허리띠를 졸라매는 수밖에 없더라고요. 그때부터 힘든 저축을 고집한 한 것이 오늘의 성공비결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당시 어린아이들 학원비를 아끼면서 저축을 강행할 정도였으니까요. 그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픕니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아이들은 모두 잘되어 위안이 되어 다행입니다.

사실 저축은 마음먹기에 달려있습니다. 누구나 저축 없이는 부자를 꿈꿔서는 안 된다는 것만 알면 됩니다. 사실 악착같은 저축과 절약이 부자의 출발이거든요


♦ 사실 저는 원래 저축이란 것을 모르고 지냈습니다. 그런데 저축은 하면 할수록 솔솔한 재미가 있습니다. 매월 불어나는 저축액을 보면 흐뭇하죠. 그런데 투자를 하기위해서는 종자돈을 모으지 않을 수가 없어서 정말 악착같이 저축을 시작한 것이죠. 지금은 매년 주기적으로 저축한 돈으로 투자를 합니다. 저축이야 말로 바로 부자 되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  저는 저축한 돈을 찾아서 3번이나 투자를 감행했습니다. 운 좋게도 아직까지는 투자에 실패하지 않아 다행입니다만, 앞으로도 저는 저축과 투자를 계속 이어나갈 겁니다. 사실 일반서민들일수록 저축을 게을리 하는 경향이 있는데 서민일수록 저축과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서서 심혈을 기울려야 하거든요. 그렇게 하지 않고는 절대로 부자가 될 수가 없거든요.


한편으로 소비가 미덕이란 말이 있지만 저는 분수에 넘치는 개인적인 소비는 가난한 삶의 연속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적절한 소비는 필요하고 소비 되지 않으면 국가경제에 엄청난 문제점이 대두 되겠지만 평범한 가정에서만의 지나친 소비는 절대로 반대 입장입니다.

그리고 저축은 소비를 위한 저축이 되어서는 안 되고 어디까지나 적극적인 투자를 위한 저축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 과거 한때 저는 1년간 저축이라고는 보험금으로 자동이체 되어 나가는 것 이외에는 한푼도 저축을 한 적이 없었습니다. 한 푼도 저축을 하지 않아도 맨날 쪼들림은 늘 있더라고요. 1년이 지나고 드디어 저축을 하기로 결심했죠. 그래서 첫달부터 저축으로 매월 50만원을 저축한 후에 생활비를 아껴 쓰기로 마음먹으니까 이상하게도 그런대로 생활이 되더라고요. 외식횟수도 줄이고 주1회 가던 대형할인 마트 가는 것도 절반으로 줄이니까 가능하니 저도 처음에는 놀랐습니다. 흔히 사람들은 저축이라는 것은 소비하고 난후에 남는 여유돈을 저축한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저축이란 매월 저축금액을 우선 공제해놓고 생활비등 소비할 돈을 써야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이것이 바로 투자를 위한 저축이거든요. 이런 원칙을 지키지 않으면 절대로 저축 못합니다. 지금 당장 시작해보세요. 다 되게 되어있습니다.


다음은 일반서민이 참고하기에 좋은 저축방법과 투자에 성공한 사례를 들어보자.

♦ 저는 매월 고정 수입이 400만원이 들어온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매월 절반인 200만원을 4년간 저축하여 1억원을 모았습니다. 물론 고정수입이 200만원인 사람도 저축액의 절반인 100만원을 8년간 하면 1억원이 모아질 겁니다. 또 고정수입이 100만원인 20대초반의 사람도 저축액의 절반인 50만원을 16년간 저축하면 다소 암담하지만 30대중반이면 1억원이 모아질 겁니다. 그만큼 시간이 오래 걸리니까 저축금액을 늘려야 하는 것은 당연한거겠죠. 중요한 것은 하루라도 이른 나이에 1억원을 모으느냐가 중요하고 그만큼 부자 등극에 빨리 도달한다는 말이 되겠죠. 누구나 수입의 절반 이상 저축을 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죠! 생활비가 얼마나 많이 들며 아이들 사교육비는 얼마나 많이 듭니까? 그리고 축의금 내야하는 곳은 왜 이렇게 많은지! 이렇게 수입의 절반 이상 저축 한다는 것이 정말 인간 구실 못하는 생활 같았습니다. 그렇지만 어쩝니까? 1억이란 저축목표를 세웠으니 지켜야죠. 결국 얼굴에 철판 두껍게 깔고 4년간 1억원을 모우는데 성공했죠. 그 당시에 저축을 제대로 못했다면 제가 오늘의 성공을 거두기 위한 투자금을 마련하지 못했고 아마도 그냥 평범한 서민으로 남았을 겁니다.

                               

알부자들은 여전히 저축과 투자를 선호하지만 일반서민들은 투자를 꺼리고 소비만을 선호하는 현저한 차이점이 보였다. 누가 소비하기를 싫어하겠는가? 그렇지만 소비는 소비하고 나면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 반면에 투자는 투자를 하게 되면 땅이나 건물덩어리라도 남지 않는가? 무를 위해 소비하지 말고 유를 위해 투자를 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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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포인트]'노숙자에서 억만장자로', 영화가 된 인생역정

 

2005~2007년 미국의 경제잡지 포춘이 선정한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투자은행'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던 베어스턴스(Bear Stearns)의 몰락을 참담한 심경으로 바라보는 한 사람이 있다.
 
월스트리트 금융가에서 자산기준 5위의 투자은행이 부실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로부터 촉발된 금융시장 위기로 인해 85년의 역사를 마감하고 JP모건체이스에 주당 2달러라는 헐값에 매각된다는 사실은 그를 비탄에 빠지게 만든다.
 
크리스토퍼 가드너 인터내셔널 홀딩스의 CEO 크리스토퍼 가드너(54) 회장. 지금은 1억8천만달러(1천800억원)가 넘는 자산을 보유한 억만장자이지만 한때 노숙자였던 그가 자신의 사업을 시작하기 위해 출사표를 던지게 기반을 닦아준 회사가 바로 베어스턴스였기 때문이다.
 
2001년 은퇴 선언 후 베어스턴스에서 현 이사회 위원을 맡고 있는 전설적 경영인 앨런 '에이스' 그린버그(80) 전 회장의 인재등용 철학은 가드너 회장이 성공할 수 있었던 기반이었다.
 
"베어스턴스가 원하는 인재는 PSD 학위 소유자들이다. PSD는 가난하지만 똑똑하고 부자가 되고자 하는 강한 열망(Poor, Smart and Deep desire to become rich)의 소유자이다"
 
결국  MBA는 커녕 대학학위 조자 없던 가드너 회장은 'PSD학위'만을 가지고 1983년 베어스턴스에 입사해 5년만에 최고 연봉을 받는 능력을 발휘한다.
 
가드너 회장은 불우한 어린시절을 보내면서 자식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깨닫게 된다. 친아버지로부터 버림 받고 양아버지 밑에서 불우하게 자란 그는 첫돌을 맞기 전부터 아들을 홀로 기르며 자신의 아이를 절대 아버지 없는 아이로 키우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가정에서 가난과 가정 폭력, 알코올 중독과 성추행에 시달렸던 시절, 친아버지도 모른 채 사랑하는 어머니에게만 의지하면서 불행을 스스로 극복해야 했다. 어머니는 그에게 '출생이 어떻든 자신의 인생은 자신이 펼쳐나갈 수 있으며 어떤 목표든 스스로 정해 노력한다면 이룰 수 있다'고 가르쳤다.
 
어머니와 세 누이에게 행해진 양아버지의 폭력, 게다가 어머니가 최저생계비를 지원받으며 일을 했다는 양아버지의 신고로 어머니는 수감되고, 이후 양아버지가 있던 집에 불을 지르고 다시 재수감된 어머니를 그는 결코 잊을 수 없었다.
 
어머니가 없는 동안 가드너와 누이들은 입양 생활을 해야 했고 그는 고교 졸업 후에도 힘들고 어려운 경제환경 속에 놓여졌다.
 
결혼 후 아내와의 불화로 인해 아들과 함께 노숙자 복지관에서 밤이슬을 피하고 거리의 매춘부가 아들에게 준 돈으로 끼니를 때우며 공중화장실 세면대에서 아들 목욕을 시킬 정도로 힘들었지만 그는 결코 'PSD'에 대한 열정의 끈만은 놓지 않았다.
 
의료기기 영업사원 시절 주차장에서 우연히 만난 주식중개인으로 인해 생의 전환점을 맞게 되는 가드너. 결국 학력 때문에 하루 만에 주식중개 회사에서 쫓겨나지만 아들과 함께 떠돌이 생활을 전전하면서도 실력을 쌓아 마침내 베어스턴스에 입사하게 된다.
 
그는 성공과 더불어 자신의 자산을 이웃과 나누는 사회공헌에 힘써 2002년 미국아버지모임 '올해의 아버지 상'과 2006년 아프리카대륙회의 '아프리카의 친구들상'을 받았다.
 
크리스 가드너 회장의 삶을 다시 한번 생생하게 느끼고 체험하고 싶다면 윌 스미스가 주연한 영화 '행복을 찾아서'를 보라. 영화의 실제 주인공이 바로 가드너 회장이다.
 
(사진 =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과 함께한 크리스 가드너 회장. 출처 www.chrisgardnermedia.com)
 
[아이엠리치 강지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