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9년 2월 12일 링컨은
가난한 개척민(어떤 지역을 개척하기 위하여 이주한 사람) 농부의
아들로 미국 켄터키 주에서 태어났습니다
이 아이가 바로 훗날 노예를 해방시킨 '에이브러햄 링컨' 입니다
링컨의 아버지는 아들 이름에
에이브러햄이란 이름을 붙여주었는데
에이브러햄은 기독교 선지자 '아브라함' 에서 나온 말이며
링컨의 할아버지의 이름이기도 했습니다
링컨의 아버지는
링컨이 할아버지 에이브러햄과 같이 훌륭한 농사꾼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아들의 이름을 '에이브러햄 링컨' 이라 지어주었습니다
링컨의 할아버지는 미국이 영국의 식민지였을 시절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독립전쟁' 을 벌였을 때
참전한 인물이었고
전쟁이 끝나고 개척민들은 자신들의 나라
'아메리카 합중국' 즉 미국을 건국하고
유럽에서 왕들이 나라를 다스리던 시절에
'대통령' 이라는 왕이 아닌 지도자가 나라를 다스리는
'공화정' 을 실시했고
독립전쟁을 승리로 이끈 워싱턴 장군이 미국 초대 대통령이 됬습니다
링컨의 할아버지도 독립전쟁 이후에는
농사꾼으로 살다가
인디언의 습격으로 사망한 인물입니다
그렇게 링컨의 아버지는 어릴적 아버지를 잃고
농사꾼 일을 하다 링컨을 낳았고
땅이 거칠어 농사가 잘 안되자
너브크리크로 이주했고
아버지는 이곳에서 개척민들이 흔히 그렇듯이
'통나무집' 을 지엇고 링컨과 자녀를 키웠습니다
링컨은 어려운 환경에서도 씩씩하게 자랐고
키가 매우 커졌고
아버지는 그런 아들이 훌륭한 농사꾼이 될것으로 여기며
기뻐했습니다
링컨은 6살때부터 학교를 다녔는데
학교는 집에서 매우 멀었지만
링컨은 그곳에서 글과 수학 등을 배우며 좋아했지만
대게 개척민들 집안이 그렇듯 농사일이 바빠지면
아이들은 일을 해야했기에 학교는 문을 닫았다고 합니다
<링컨>조금 더 공부를 하고 싶은데,,
링컨의 아버지는 링컨이 공부보다는 농사일을 열심히 해주길 바랬고
대신 링컨의 어머니는 공부를 해야 훌륭한 사람이 된다는 것을 알고
링컨을 자주 격려해주었습니다
이후에도 링컨은 집안 농사일을 돕다가
7살때 피전크리크라는 외딴 곳으로 이사갔고
이곳에서 다시 링컨의 아버지는 집을 짓고 밭을 일구었습니다
그러나 링컨에게 불행한 일이 닥치었는데
링컨의 어머니 낸시가 당시 유행하던 '밀크병' 에 걸린 것으로
밀크병은 소가 독초를 먹으면 그 소에서 나온 우유를 마신 사람이
걸리는 병으로 안타깝게도 링컨의 어머니는
링컨이 9살때 밀크병에 걸려 사망했습니다
이후 링컨의 아버지는 새어머니를 맞아들였고
새어머니는 다행히도 링컨에게 친절하고 상냥했습니다
새어머니 역시 자녀가 있음에도 남편을 사별한 인물이었고
공부를 좋아했던 링컨을 지지해 주었습니다
링컨의 새어머니는 링컨이 농사일만 하다가는
언젠간 큰 후회를 할 것이라 여겨
링컨의 아버지를 설득해 링컨을 다시 학교에 보냈고
링컨은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링컨이 학교에 다닐때 수학공책에 적어둔 글이
아직도 남아있는데 이렇게 쓰여있습니다
<어린 링컨의 시>
에이브러햄 링컨 ,
그 손과 펜 ,
앞으로는 잘 풀리리
다만 언제일지는 신만이 아시겠지
훗날 대통령이 된 링컨이 노예해방을 선언 할 때
링컨을 경멸하던 국회의원 제임스 가필드는
링컨을 두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임스 가필드>일리노이의 이류 변호사(링컨) 가
미래의 모든 세대가 기억할 만할 말을 하는
신의 도구로 쓰이다니 !
이는 세계 역사상 가장 뜻밖의 사건이네
링컨은 키도 커서 학교아이들보다 힘도 셌고
부지런해서 공부도 열심히 했습니다
다시 농사가 바빠져서
링컨은 평생동안 학교를 1년도 못다녔지만
항상 배우기를 좋아해 책을 많이 읽었습니다
링컨은 낮에는 아버지를 도우며 농사를 지었고
밤에는 난로불빛으로 책을 읽었습니다
링컨은 주변 사람들에게 부탁해서 책을 빌려다 봤고
로빈슨 표류기 , 아라비안 나이트같은 문학이외에도
미국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 대통령의 위인전도 읽었습니다
링컨은 클로퍼드 아저씨에게 빌린 워싱턴 위인전을 읽다가
깜빡 잠들었는데
다음날 일어나보니 비바람에 책이 젖어있었고
링컨은 책을 빌린 클로퍼드 아저씨에게 가서
솔직하게 말씀드리며 용서를 구했고
클로퍼드 아저씨의 농장일을 3일동안 도왔는데
이에 클로퍼드 아저씨는 링컨을 용서하고 책을 링컨에게 주었고
링컨은 워싱턴 위인전을 읽으면서
워싱턴 대통령같은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다 생각했습니다
링컨은 어른이 되가면서도 키가 크고 힘이 세서
오하이오 강에서 나룻배 뱃사공으로도 일했는데
그러다 어느 사람들에게 시비가 붙었고
이는 허가없이 나룻배 일을 한다는 이유였습니다
이에 링컨은 법원에 불려가 판사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 했고
링컨의 조리있는 말에 판사는 감격하며
법률 공부를 하고싶거든 언제든 오라 이야기해주었고
링컨은 법률서적을 구해다 읽었습니다
이후에도 링컨은 부지런히 일했지만 항상 가난한 형편이었고
이에 링컨의 아버지는 또다시 이주를 계획해
일리노이주로 이사 갔습니다
당시 일리노이주로 가던 링컨 가족이
짐마차를 타고 겨울 시내를 건넜는데
멀리서 흑인 한명이 강을 건너지 못해 서성이자
링컨은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바지를 걷어올려 흑인을 앉고 강을 건너게 도와주었습니다
이후 링컨가족은 일리노이주에서도 다시 농사를 지었고
어느덧 건장한 청년이된 링컨은
아버지에게 허락을 구하고 집을 나와 독립하게 되었습니다
링컨은 집을 나와서 짐꾼일을 했는데
거리를 둘러보던 중
거리에서는 흑인들이 노예상들에게 매매되는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백인들은 저마다 흑인 노예들의 가격을 외치며 경매에 나섰고
링컨은 이를 보고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큰 고통스러운 감정을
느꼈습니다
같은 사람이었지만 누구는 백인 , 누구는 흑인이라는 이유로
주인과 노예가 되었고
노예들은 주인의 말 하나로 죽을 수도 있었던
사람이 소유물같이 여겨지던 시대였습니다
이후에도 링컨은 다시 일을 하게됬고
오퍼트라는 인물의 잡화점(오늘날 슈퍼 혹은 편의점) 에서
일을 하게 됬는데
링컨은 항상 일을 성실하게 하고 정직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평판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은 링컨은 어느 할머니에게
돈을 더 받은 사실을 알고
먼 길을 걸어 할머니에게 돈을 돌려주었습니다
이에 사람들은 링컨을
<사람들>링컨은 '정직한 에이브 Honest Abe (어니스트 에이브)' 야 !
라고 칭찬했습니다
'정직한 에이브' 는 링컨의 별명이 됩니다
링컨의 정직함에 잡화점은 더 잘됬는데
어느날은 한 불량배 청년 '잭 암스트롱'이라는 인물이
힘이 세고 키가 컸던 링컨에게
한번 붙어보자 했고
링컨은 어쩔수 없이 그와 맞섰는데
링컨이 잭을 번쩍 들어 던져서 이겼습니다
잭의 부하들이 링컨을 공격하려 하자
링컨은 한명씩오라 요구했고
이에 잭은 일어나서 부하들을 제지하며
링컨에게 악수를 청하며 외쳤습니다
<잭 암스트롱>에이브 네가 이겼다
이제는 에이브가 우리 중 최고다 !
이에 링컨은 잭과 좋은 친구가 되었습니다
오퍼트씨는 이후 잡화점 운영에 실증을 느껴
다른 지역으로 떠났고
이에 링컨은 직장을 잃었는데
마을 사람들의 권유로 일리노이주 주의원 선거에 나가게 됬고
잭을 비롯한 많은 청년들이 링컨을 지지해 주었습니다
링컨은 일리노이 주를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려는
공약들을 연설하기도 했는데
그때 인디언들이 일리노이주를 습격해왔고
이에 링컨은 마을 청년들과 의용군을 조직해 싸웠고
인디언 추장은 붙잡혔고 인디언들은 도망쳤습니다
'의용군'은 미국 건국의 시초이기도 해서
오늘날에도 미국에서는 이런 의용군 문화와
총기 소지를 개인의 자유로 중요시 여기는
풍조가 있습니다
이후 링컨은 다시 선거에 나섰지만 선거에서 졌고
이후에도 다시 베리라는 사람과 잡화점을 냈는데
둘다 장사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베리는 술에 빠지고 링컨은 법률책을 열심히 읽었고
잡화점은 망했습니다,,
링컨은 이때 큰 돈을 빌려서 잡화점을 낸것이었는데
이 돈을 갚는데만 16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이후 링컨은 마을사람들의 도움으로
우체국 국장일을 했고
이곳에서 글 모르는 사람들을 도와 편지를 대필(대신 써줌) 해주거나
읽어주는 일들을 했습니다
이후 측량공부도 해서 측량기사도 했고
측량기사로도 열심히 일하며 사람들의 인정을 받았고
링컨의 됨됨이를 안 사람들은 그를 '정직한 에이브' 라고 불렀습니다
링컨은 25살에 주변 사람들의 권유로 다시 선거에 나갔는데
이번에는 당선되서 주의원이 됬고
사람들은 그동안 여러 잡일들을 많이 한 새 의원 링컨을 보고
신기해 했습니다
이후 링컨은 27살때 독학(혼자 공부)으로 변호사가 됬고
스프링필드로 가서 변호사 일을 했는데
항상 친절하고 정직하게 일을 해서 좋은 평판을 얻었습니다
링컨의 변호사 시절 유명한 사건으로는
'더프 암스트롱' 이라는 인물을 변호한 것인데
더프 암스트롱은 스프링필드의 숲속에서
매커라는 남자를 죽였다는 죄로 재판을 받았는데
억울하게 범인으로 몰린 것이었고
이에 더프가 매커를 죽인 것을 봤다는 증인 찰스 앨런이 재판석에 나왔는데
찰스 앨런은 사실 진짜 범인에게 매수되어 거짓 증언을 한 것이었습니다
링컨은 이미 서류를 꼼꼼히 보고 더프가 범인이 아니라는 확신이 있었고
증인석에 찰스 앨런이 서자 링컨은 찰스 앨런에게
<링컨>증인은 10월 18일 밤 11시쯤에
피고인이 사람을 죽이는 광경을 직접 목격했다고 진술했는데
어디서 그 광경을 보았습니까 ?
<찰스 앨런>사건이 난 숲속에서 한 50미터쯤 떨어진 곳이었지요
<링컨>그때는 밤이라 컴컴했는데
어떻게 그것을 보았습니까 ?
<찰스 앨런>밤에 보름달이 밝아서 그의 얼굴을 볼 수 있었습니다
<링컨>틀림없습니까 ?
<찰스 앨런>그렇습니다 제 두눈으로 똑똑히 봤습니다
<링컨>재판장님 증인은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날은 초승달이 떳고 밤 11시쯤에는 그나마 있던 초승달도 사라져서
아무것도 볼 수 없었습니다
링컨이 조리있게 묻자 점차 찰스는 궁지에 몰렸고
이외에도 링컨이 준비한 다른 증거들을 보이자
결국 더프 암스트롱은 무죄를 선고받고 나왔습니다
더프의 가족들은 기뻐해서 울음을 터트렸는데
더프는 그럼에도 비싼 변호사 선임료를 내야되는 것을 고민하고 있었고
그런 더프의 형편을 알고 있었던
링컨은 애초에 무료변호를 자처했던 것이었습니다
링컨은 더프의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했습니다
<링컨>걱정하지 말게나
내가 먹고 마실 양식은 하늘에 이미 다 준비되어 있다네
나는 단지 악인의 동조자가 되고 싶지 않아서
이 사건을 변호했을 뿐이네
링컨은 1842년에 메리 토드와 결혼했습니다
그녀는 노예를 소유한 부잣집 집안의 딸로
평소 대통령의 아내가 되겠다 말하던 메리는
사람들의 예상을 깨고 농사꾼 출신 링컨과 결혼했고
남편이 된 링컨의 출세에 노력을 기울였고
링컨은 메리 토드와의 사이에서 자식도 낳고 하다가
이후 링컨은 1847년에 국회의원이 됬습니다
당시 미국은 노예제 존폐문제로 북부와 남부가 서로 맞서고 있었습니다
공업이 발달한 북부지방은 도시가 발달했고
노예제를 반대하는 입장이었고
농장이 많았던 남부지방은 특히 목화농장에 주요 노동력인
흑인 노예들이 있었기에 노예제를 찬성하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러나 링컨은 젊었을때 본 노예시장의 참혹한 광경을 잊지 않았기에
노예제를 적극적으로 반대했고
연설을 하며 사람들에게 자유로 건국된 나라에서
노예제도로 자유를 탄압하는 모순적 행위에 대한 비판을 했고
이에 사람들에게 링컨은 큰 인상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링컨은 상원의원에 출마해 유명정치인 더글러스와 논쟁을 벌였는데
노예제를 찬성하던 더글러스와 달리
노예제 반대 입장을 확고하게 표현했기에
사람들에게 큰 인상을 남기며 노예제 반대 정치인으로 이름알려지게 됬고
당시 더글러스와의 토론은 미국사의 명토론으로 이야기됩니다
<더글러스와의 토론중 링컨의 발언>
저는 노예제도 자체가 적법하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싫습니다
저는 이 제도가 미국이 민주국가로서의 모범을
전 세계에 보이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있기 때문에 싫습니다.
노예제도는 자유에 기반을 두는 민주주의 제도의 적이 될 수 있고,
우리를 위선자로 조롱할 수도 있기 때문에 싫습니다.
이전에도 낙선을 자주하던 링컨이었고
더글라스와의 토론 당시에도 링컨은 낙선했지만
대신 사람들에게 노예제 반대론자로 이름알려지게 됬고
결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에 지명됬고
이후 51세에 링컨은 미국 16대 대통령으로 선출됩니다
링컨의 대통령 선거 당시에 링컨에게
그레이스 베델이라는 소녀가 편지를 보냈는데
편지에는 이렇게 쓰여있었습니다
<그레이스 베델의 편지>
저는 이제 겨우 11살 난 여자 아이일 뿐이지만,
링컨 아저씨가 꼭 대통령이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니 어린 아이가 쓴 편지라고 하찮게 생각하지 말아 주세요.
아저씨 얼굴은 너무 말라서 수염을 기르면 훨씬 멋있게 보일 거고,
따라서 많은 유권자들이 투표할 겁니다
이에 링컨은 멋쩍스러웠지만 수염을 기르게 됬고
그 덕분인지 대통령선거에 당선되었고
인상이 더 친근하고 부드러워 져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다고 합니다
훗날 '밥 돌' 이라는 미국 정치인은 링컨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밥 돌>가장 위대하고 가장 재밌었던 우리들의 대통령
대통령에 당선된 링컨은 워싱턴의 백악관 (White House)으로 들어가게 됬고
성경책 위에 손을 얹고 엄숙하게 선서하고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오늘날에도 미국 대통령은 취임식때 성경책에 손을 얹고 선서를 하고
그가 노예, 흑인 노예를 해방하자 그 덕분에 훗날 최초의 흑인 출신 대통령이 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링컨이 취임식때 썼던 성경책으로
취임식에서 대통령 선서를 했습니다
링컨은 매우 개방적인 사람이어서
링컨의 백악관은 항상 열려있었고
일반 사람들도 백악관을 들락날락거리며
누구나 정말 쉽게 링컨 대통령을 만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링컨이 대통령에 당선됬을 때
노예제 존폐 문제로 미국은 급격하게 남부와 북부로 분열하고 있었고
노예제를 찬성하던 남부는 임시 대통령을 선출해 독립을 선언하고
노예제를 반대하던 링컨의 북부와 전쟁을 벌이게 되고
링컨이 대통령에 당선된후 40일만에
미국의 '남북전쟁' 이 시작됬습니다
남북전쟁은 미국인들과 미국인들이 싸운 내전으로
'동족상잔의 비극' 이었고
남부연합의 '로버트 리' 장군이 활약하며
초기에는 북부가 계속 지고 있었습니다
남부군은 북부의 수도 워싱턴까지 위협할 정도였지만
북부에 '율리시스 그랜트' 라는 장군이 나타나 활약하며
다시 전세가 역전됬습니다
북부가 유리한 위치에 서자
링컨은 1862년 9월 22일 '노예 해방 선언' 을 발표했고
이 선언의 내용은
'1863년 1월 1일부터
미국 연방정부에 대해 반란 상태에 있는 여러 주(남부)의 노예를 전면 해방한다'
는 내용입니다
링컨의 선언에 수많은 흑인들이 기뻐하며 눈물흘렸습니다
그러다 '게티즈버그 전투'에서 북부군은 승리했지만
수많은 남북 젊은이들이 사망했고
이에 링컨은 1863년 11월 19일 직접 게티즈버그에 가서
그들을 위한 추도식을 올렸습니다
링컨은 이곳에서 이렇게 연설했습니다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 우리 살아남은 이에게 남겨진 일은 오히려
이곳에서 싸운 이들이 오래도록 고결하게 추진해온
끝나지 않은 일에 헌신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에게 남은 일은 오히려 명예로이 죽은 이들의 뜻을 받들어
그분들이 마지막 모든 것을 바쳐 헌신한 그 대의에 더욱 헌신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분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하고
신의 가호 아래 이땅에 새로운 자유를 탄생시키며
국민(=people , 사람 , 인민) 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가
지구상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특히나 여기서
'국민의 , 국민에 의한 , 국민을 위한' 이라는 구절은
역사에 남은 유명한 그의 연설이 됬습니다
이후에도 북부군은 남부 수도 리치먼드를 점령하고
결국 전쟁은 북부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링컨은 남부에 대한 어떠한 보복도 하지 말것을 명했고
상처입은 북부인과 남부인들을 통합하려 애썼습니다
링컨은 전쟁 이후에도
미국의 통합을 위해 애썼지만
이후 포드극장에서 연극을 보던 중
격렬한 남부 지지자이자 링컨에 대한 분노를 가지고 있었던
남부출신의 배우 존 윌크스 부스의 총에 맞고 사망합니다
링컨은 총에 맞은 다음날 1865년 4월 15일 아침에
56세를 일기로 사망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링컨의 죽음을 슬퍼했습니다
<라봉봉>링컨의 노력으로 인류사에서 오랫동안 존재해온 악습
'노예제' 는 미국을 시작으로 세계에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당시 미국인들은 비참한 흑인노예들의 현실을 다룬 소설
'톰 아저씨의 오두막' 등의 소설을 읽고 노예제에 분노했으며
링컨의 결단으로 노예제도는 사라지게 되었고
오늘날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링컨을 기리고 있습니다
출처: https://labongbong.tistory.com/1161 [라봉봉]
'지식.정보.시사.역사.과학.건강 等'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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