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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옛 조선 영토 그리고 중국땅의 반은 우리 단군의 땅이며 고구려의 원혼들이 숨쉬고 있다 그 외 왕조계보 역사 자료

by 설렘심목 2010. 1. 30.

 

고조선의 영토

 

 

 

 

고조선 뒤에 옥저,부여,동예의 지도입니다~

 

 

 

 

고구려의 영토입니다.. 고주몽

BC 58~19.

동명성왕[東明聖王]은 대륙 발전을 확장했고 옛조선을 되 찾은후 영토를 더욱 늘렸다

       
       
   
10대 산상왕
   
11대 동천왕
   
 
13대 서천왕
12대 중천왕

 

 
 
14대 봉상왕
     
 
15대 미천왕
     
       
     
       
   
20대 장수왕
   
   
21대 문자왕
   
   
22대 안장왕
23대 안원왕
 
     
24대 양원왕
 
     
25대 평원왕
 
     
26대 영양왕
 
     
27대 영류왕
 
     
28대 보장왕
 

 

 

 

 

가야의 영토입니다.

 

 

 

백제의 영토

 

 

 

 

통일신라와 발해의 영토 김유신과 당나라와 합세 백제 멸망시킨후 고구려 공격 의해

삼국통일을 이룩함

 

 

통일신라 후삼국시대

668년

 신라, 당군과 합세하여 평양성 포위. 고구려의 보장왕 항복함으로써 고구려 멸망.

669년

 당나라가 평양에 안동도호부를 설치.

670년

 고구려 유민 검모잠이 한성에서 안승을 추대하고 부흥운동 전개.

672년

 신라, 고구려병과 합세하여 백수성 근처에서 당군 격파.

673년

 신라, 김유신 죽음(575∼).
 당군이 고구려의 우잠성 공략.

674년

 당나라가 유인궤를 계림대총관으로 삼아 신라를 공격.

675년

 신라, 옛 고구려 남쪽지역에 주군 설치. 설인귀의 당군 대파.

676년

 의상이 부석사 창건.

681년

 신라, 문무왕 죽고(?∼), 신문왕 즉위(∼692). 대왕암에 문무왕릉 조성.

682년

신라, 국학을 개편.

687년

신라, 전국을 9주 5소경으로 편성.

692년

설총이 이두를 정리.

696년

발해, 고구려 유민과 속말말갈을 통합.

698년

발해, 고왕 대조영이 진을 건국.

713년

발해, 국호 진을 발해로 고침.

723년

신라, 처음으로 왜국에 사신을 보냄. 혜초가 서역에서 돌아와 《왕오천축국전》을 저술.

733년

신라, 당나라의 패강 이남 영유를 승인.

751년

신라, 대상 김대성이 불국사 창건.

756년

발해, 돈화 동모산에서 상경용천부로 천도.

759년

신라 국학을 대학감으로 개칭.

768년

신라, 대공의 난 발생. 5도 주군의 96각간이 서로 싸움. 대공 피살.

770년

신라, 성덕대왕신종 주조.

780년

신라, 김지정의 반란. 혜공왕과 왕후 살해됨.
김양상이 김지정을 죽이고 선 덕왕으로 즉위(~785)

785년

신라, 선덕왕 죽고(?~), 원성왕 즉위(~799). 9주의 총관을 도독으로 고침.

788년

신라, 처음으로 독서출신과를 설치.

794년

발해, 대원의 피살되고(?~), 성왕 즉위(~795).
국도를 동경(東京)에서 다시 상경용천부 로 옮김.

801년

신라, 5묘의 제를 개정. 탐라국이 사신을 보내어 조공.

802년

신라, 가야산 해인사 창건. 3층석탑 건립.

804년

신라, 왜국의 국사 와서 황금 3백량을 바침.

805년

신라, ‘공식 20여조(條)’를 반포.

817년

발해, 희왕 죽고(?~), 간왕 즉위(~818). 연호를 태시로 함.

819년

신라, 사방에서 초적이 일어남. 당나라에 군사를 보내어 이사도의 난 평정을 지원.

822년

신라, 김헌창의 난 일어남. 실패하여 김헌창 자살.

828년

신라, 장보고가 완도에 청해진을 일으켜 대사에 임명됨.

838년

신라, 희강왕 자살하고 민애왕 즉위(~839). 김양이 청해진에서 반란.

839년

신라, 문성왕 즉위(~857). 장보고를 청해진장군으로 삼음.

846년

신라의 장보고 반란, 염장에게 피살.

877년

왕건 출생.     (867년 견훤 상주 가은현에서 출생. 870년 궁예 출생)

887년 7

진성여왕 즉위

888년 2 

진성여왕, 정을 통하던 위홍이 죽자 시호를 혜성대왕이라고 함.

889년 

상주에서 원종과 애노의 난이 일어남.
아자개(견훤 父)가 상주지역을 장악하고 장군을 칭함.
서남해 수군으로 있던 견훤, 예하의 병력을 이끌고  독립

891년

궁예, 죽주의 도적 우두머리 기훤에게 투신

892년

궁예, 북원의 양길에게 투신. 명주 관내의 여러 군현을 습격해 모두 항음.
견훤, 무진주(광주)를 습격하여 왕이 됨.

893년

도선이 다시 와 왕건을 가르침.

894년

2월

신라, 최치원이 <시무10조>를 올림

10월

궁예, 北原(현 원주)에서 溟州(현 강릉)로 들어가  장군을 칭함.
그곳에서 병력을 3500명으로 불림.

895년 

 

궁예, 저족, 성천, 부약, 금성, 철원 등 차례로 장악.

 

신라, 헌강왕의 서자 요를 태자로 책봉.

896년

 

- 평주(평산)의 대호족 박지윤 가문 궁예에 귀
- 왕륭, 왕건 부자 궁예에 귀부.
- 궁예, 왕륭을 金城태수로 삼고 왕건을 송악(개성)  성주로 삼음
- 궁예, 스스로 왕을 칭하며 내외관직을 설치.    

897년

5월

왕륭사망

6월

진성여왕,ㅡ 효공왕에 선위

898년

2월

궁예, 송악성을 수리하고, 천도.
왕건을 정기대감으로 삼아 양주와 견주를 치게 함.
道詵 죽음.

899년

7월

양길, 10여 성주를 시켜 궁예를 공격하다가 非惱城   에서 대패.

11월

최치원, 면직되어 해인사로 은둔.

900년

10월

궁예, 왕건을 보내어 경기 남부와 충북 지역 장악.   왕건을 아찬으로 삼음.
견훤, 완산(전주)에 도읍하고 “백제(후백제)”라는   국가를 건설함.

901년

8월

 - 견훤, 금성군 남쪽의 10여개 주현 공략.
 - 견훤, 대야성을 공격하였으나 패배.
 - 궁예, 왕을 칭하고 국호를 “후고구려”라 일컬음,
 - 궁예, 영주 부석사(浮石寺)의 신라왕 화상을 칼로 침.

902년

3월

 - 신라, 대아찬 효종을 시중으로 삼음.

3월

 - 왕건, 錦城(나주) 등 10여성을 공격하고 귀환.

904년

 

궁예, 백관을 설치. 국호를 마진, 연호를 무태라 함.

905년

2월

신라에 별이 비오듯 떨어짐.

7월

궁예, 국도를 철원으로 옮김. 연호를 성책으로 고침.

8월

궁예, 청주인 一千戶를 철원으로 이주시킴.

9월

궁예, 신라의 변경 읍락 침탈.

906년

1월

신라, 파진찬 김성을 상대등으로 삼음.

4월

- 왕건, 상주 사화진을 공격. 견훤과 여러번 싸워 이김.
- 궁예, 신라로부터 항복해 오는 자들을 다 죽임.

907년

1월

견훤, 일선군 이남 10여성을 빼앗음.

908년

2월

- 혜성이 동방에 나타남.

909년

 

- 궁예, 왕건에게 나주를 지키라 명하고 해군대장군에   임명.
- 왕건, 염해현(영광)에서 오월에 보내는 후백제 使船을   나포.
- 왕건, 알찬 종희, 김언 등을 부장으로 진도군을   함락시킴.
- 왕건, 진격하여 皐夷島 (고이도) 점령.
- 왕건, 다시 나주포구에서 화공으로 견훤을 무찌름.
- 왕건, 압해현 반란군 두령 능창 사로잡아 궁예에게 보냄. 궁예가 능창의 얼굴에 침을 뱉고 그를 죽임.

911년

 

- 신라왕이 천첩에게 빠져 정사를 돌보지 않자 대신이  천첩 죽임.
- 궁예, 국호를 태봉으로, 연호를 수덕만세라 고침.
- 승려 석총이 궁예를 비판하자 궁예가 쇠몽둥이로  때려죽임.

912년

4월

신라, 효공왕 죽음. 신덕왕 즉위
견훤, 궁예의 군대와 덕진포에서 싸움

913년

- 궁예, 왕건을 파진찬겸 시중으로 높혀 소환.
- 아지태 사건.
- 궁예,왕건의 시중 벼슬을 떼고 다시 수군을 통솔하게 함.

914년

- 왕건, 백선장군이 되어 수군을 거느리고 나주에 출진.
- 궁예, 왕건을 불러 역모죄 추궁. 한림랑 최응이  왕건을 구해줌.
- 왕건, 군사를 거느리고 다시 나주로 감.

915년

2월

궁예, 부인 강씨와 두 아들 죽임.

916년

8월

후백제, 신라의 대아성 침공.

917년

7월

신라, 신덕왕 죽음, 경명왕 즉위.

918년

2월

- 마군장군 신숭겸, 홍유, 복사귀, 배현경 등이 왕건을  왕으로 추대.
- 왕건, 정식으로 왕위에 올라 국호를 고려, 연호를 천수라 함.
- 마군대장군 환선길의 역모.
- 왕건, 소판 종간, 내군장군 은부 처형.
- 왕건, 관제를 신라의 제도로 고치라는 조서를 내림.
- 이흔암이 반역을 도모하다가 처단당함.
- 고려, 조세정법을 정함.
- 왕건, 변방의 변란을 우려해 전권 사절들을 파견하라  지시.
- 골암성 성주 윤선 고려에 귀순.
- 견훤, 일길찬 민합을 왕건에게 보내 등극 축하.
- 고려의 웅주, 운주 등 10여개 주현이 모반하여 백제에  붙음.
- 순군리 임춘길 등 모반.
-왕건, 구진을 나주도대행대 시중으로 임명.
- 상주 적수 아자개, 고려 귀부.
- 왕건, 평양을 대도호부로 함.
- 청주인 파진찬 진선, 선장 형제, 반역을 꾀하다가   죽음을 당함.

919년

1월

왕건, 송악으로 천도, 삼성 등 관제를 정함.

920년

1월

신라, 처음으로 고려에 사신을 보내 교빙.

10월

 견훤, 대량, 구사지역을 공취하고 신라의 진례군에    출진. 이에 신라가 고려에 원병 요청. 그 소식을 듣고 견훤이 물러감.

921년

2월

왕건, 왕자 武를 세워 정윤(태자)으로 삼음.

922년

7월

명주 장군 김순식이 아들을 보내 고려에 항복.

923년

4월

고려 유금필, 북번을 초유.

924년

1월

신라, 사신을 후당에 보내 조공.

7월

견훤, 아들 수미강과 양검을 보내 경상도 북부 지역   으로 출병.

925년

9월

발해 장군 신덕 등 500인, 고려에 내투.

10월

- 왕건, 유금필을 파견하여 백제의 연산진(문의)을 침.
- 왕건, 친히 군사를 거느리고 조물군에 와서 견훤과 교전. 유금필이 군사를 이끌고 와 응원.
   견훤과 인질 교환.

10월

신라, 경애왕이 고려에 사신을 파견해 ‘견훤은 화친  할 사람이 못된다’고 함.

12월

견훤, 거창 등 20여성 공취

926년

7월

발해의 103성, 모두 거란에 점령됨. (발해 멸망)

927년

1월

왕건, 친히 후백제의 용주 침공. 신라에서 구원병 보냄.

3월

신라 황룡사탑 북쪽으로 기울어짐.

4월

고려 해군, 후백제의 4개 항을 함락시킴.

7월

고려군이 대야성을 공격하여 그 성의 장군 추허조를 사로잡음

9월

견훤, 신라의 왕경에 침입. 경애왕을 자살케 하고    경순왕을 보위에 올림.

공산 동수 전투. 신숭겸과 김락이 전사.

928년

7월

왕건, 삼년산성(충북 보은)을 공격하였으나 패배.  유금필이 구원.

8월

견훤, 대야성 확보.

930년

1월

고창 병산 전투. 왕건이 크게 이김.

 

12월

고려 태조, 서경에 행차하여 처음으로 학교를 창설.

931년

2월

왕건, 50여기를 이끌고 신라의 왕도를 방문.

932년

6월

후백제 장수 공직(매곡성 성주), 고려에 투항.

 

11월

고려, 내봉경 최응 죽음

933년

3월

후당에서 왕건 책봉. 이때부터 천수 연호 대신 후당  연호를 사용.

934년

7월

발해 세자 대광현이 수만명을 이끌고 내부.

935년

3월

후백제 신검 형제, 아우 금강을 죽이고 견훤을 금산사에 유폐함.

6월

견훤이 나주로 탈출하여 고려에 투항하기를 청함.  견훤이 들어오자 왕건은 상부로 칭하고 남궁을 사관 으로 지정.

10월

신라왕 김부가 김봉휴를 보내 고려 정부로 들어오기  를 청함.

후백제 신검, 새 왕으로 즉위함.

11월

신라 경순왕이 백관을 거느리고 고려에 투항.

936년

2월

견훤의 사위 박영규, 고려에 투항하기를 청함. .

일선군(경북 선산) 전투. 신검이 고려에 항복. 후백제 멸망.

12월

고려 대광 배현경 죽음.

937년

5월

경순왕, 진평왕의 王帶를 태조에게 바침

 

 

후삼국시대 영토입니다. 궁해가 이룩한 삼국 이에 견휀도 배제 부웅하여 후백제 이룩

 

 

 

 

 

 

고려 지도는 재 검토 되어야 한다

 

 

<고려의 대륙 9성(大陸九城)을 왜 반도 9성(半島 9城)이라 하나 ?>


- 출처 : 국사광복의 횃불 187페이지
- 글쓴이 : 김영호


단제 신채호(丹薺 申采浩)는

“고려사지리지에 두만강 건너
700리 선춘령 밑에 윤관이 세운 정계비(定界碑) 가 있는데
9성의 위치가 왜 함흥평야로 내려오는가 ?“

하며

“조선역사상 1,000년 이래 제일 대사건”
속에서 지적하고 있다

물론

뒷날의
공양왕(恭讓王) 실록이나 세종실록 등에서

공험진은
두만강 이북 간도성에 있는 선춘령이며
그곳에 “윤관이 세운 비”가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공양왕 4년에
올랑합(兀良哈)과 알도리(斡都里)족에 속하는
(兀 : 우뚝할 올, 斡 : 관리할 알)
여진인들이 래조(來朝)했을때

그들의 말중에
“시중(侍中) 윤관이 우리영토를 평정하시고 비를 세워 고려의 경계를 하시었다”
는 구절이 있다

그들 부족은
윤관 북벌 당시 동만주 송화강 하류(北伐當時東滿洲松花江下流)쪽으로
쫒겨난 족속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이 말하는 정계비는 두만강 이북에 있다는 뜻이다

세종실록에는
“거양성 선춘령에 윤관의 입비처(立碑處)가 있고
비문에는 고려지경(高麗之境)이란 넉자가 새겨져 있다 한다“

선춘령에서
수빈강(愁濱江)을 건너가면
(-> 수빈강(愁濱江) : 흥개호 인근에 있을 것으로 추정, 찾는중)

옛 성지(城址)가 지금도 남아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일본사적 지내굉(日本史賊 池內宏 : 역사도적놈 일본인 지내굉)이
(宏 : 크다 굉)

9성이 두만강 이북에 있지 않고 함흥평야에 있다고
“날조”한 것을






(1) 교과서 상의 윤관의 9성 위치
-> 일본 "지내굉"의 조작된 위치를 그대로 차용하고 있다

 

(2) 각종사서에 기록된 윤관의 9성 위치
-> 우리의 사서의 기록 등에 의하면 윤관의 9성은 두만강 북쪽에 있어야 한다

 

 

(3) 역사 도적놈들 : 이들은 공통적으로 역사 도적놈들이다
-> 상기 지도 노란선은 송령산맥 - 철령위 - 화주 - 고려모 - 선춘령을 연결하는 선이다
-> 고려의 강역은 과연 어디까지 였는가 ?

(4) 기타 확인중

- 세종실록 등 원문 확인후 스캔받아 올리겠음
- 수빈강 위치는 확인중(이 북쪽에 고려의 성이 있었을 것이다)
- 이름도 이상한 지내굉은 추적중



(참고 : 기존 게시물)


선춘령(先春嶺)의 고려 비석 -> 고려 경계는 두만강 북쪽 700리


(출처) 다음 카페에 “갈릭브레드 님”이 올려주신 글 (지도 등 운영자 일부재편집)


<선춘령(先春嶺)의 비석>

 

척경입비도(拓境立碑圖) -> 고려대 박물관 소장

 

 

고려 예종 2년(1107) 평장사 윤관(尹瓘, ?-1111) 등이
17만 군사를 이끌고 여진족을 물리친 뒤
국경을 넓혀 그곳에 육성을 쌓고,

마침내
선춘령(先春嶺)에 '고려지경(高麗之境)' 네 글자가 새겨진 비를 세움으로써
경계를 삼은 사실을 그린 것이다


그렇다면 선춘령(先春嶺)의 위치는 어디일까요?

다음의 古地圖를 봅시다

 

 

선춘령(先春嶺)의 비석은 두만강의 북쪽에 있습니다.

현재의 지도로 보겠습니다.  
지금 현재 선춘령(先春嶺)의 비석은 어디있을까요?

 

 

1900년초 일본이 작성한
'통감부 임시 間島 파출소 기요' 극비보고서 이책에는 아주 중요한 실마리가 있습니다.

"중국 연길국자가 서쪽 1리반 지점에 있는 포이하통하 강물에서
커다란 석비를 발견 하였는데 비문의 대부분은 알아 볼 수 없고
남은 20여자의 글자 중 다행히 무자년이라는 기록을 알 수 있다"

'무자년은 고려 예종 삼년으로 윤관이 비를 세운 해와 일치한다'
지금의 그 비석은 중국에 의해 사라져버렸습니다.

“高麗之境” 4글자가 씌여져 있었던 그 비석을 꼭 찾아 보고 싶습니다.

 


(완)


 

 

(운영자 추가게시 자료)



(고려의 동북쪽 경계는 함경남도가 아니라 두만강 북쪽 700리 밖)



지금까지는
고려 동북 경계는 함경남도 정도로 배워 왔으나
고려사와 고지도는 두만강 북쪽 700리 임을 나타내고 있다.

고려사 권46에 의하면
서북쪽은 압록강,
동북쪽은 선춘령을 경계로 하고 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선춘령에 대해서는

중앙도서관 소장 한 61-77(고지도) 및
규장각 소장 고 4709-89-2(고지도)에 의하면

두만강 북쪽 700리에 있는 것으로 표기되어 있다

 

 

그림을 보면
위쪽 원안에 선춘령(지금은 윤관비로 표기)이 있으며
아래 원이 두만강 표시이다

서북쪽 압록강을 현재의 압록강으로 볼수 있지만
만주원류고 신라항목과 고려사 137권 철령위 및 고려사 42권에 동령부 기록에 의하면
현재의 요하가 압록강으로 불리웠음을 밝히고 있다

고려강역에 대한 재검토가 요구된다

(강감찬 장군의 구주대첩은 만주에서 일어난 전쟁일 가능성이 높다)


오재성 선생님이 보내주신 글에 운영자가 지도 등을 첨부하여 설명한 글임

 

 

(참고지도)

 

 

 

 

 

 

태조 왕건에 의해 이룩한 고려 통일삼국을 이룩함

 

고려왕조 연대표  (고려시대(高麗, 918~1392, 473년간, 총 34대)

1,태조
(太祖, 877~943) 918~943
이름은 왕건(王建). 신라 궁예의 부하로, 부하에게 옹립되어 송도에 도읍을
정하고 왕위에 오름. 935년 신라와 후백제를 멸망시키고 삼국을 통일함
2,혜종(惠宗, ?~945)943~945
휘는 무(武). 태조의 맏아들. 대광인 왕규(王規)의 음모에 신경쓰다 병사함.
3,정종(定宗, 923~949)945~949
왕규의 난을 평정하고 불교를 숭상함. 서경(평양)에 왕성을 쌓고 천도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음.
4,광종(光宗, 925~975)949~975
휘는 소(昭). 자는 일화(日華). 노비 안검법을 제정하고, 후주에서 귀화한
쌍기(雙冀)의 건의에 따라 과거제를 실시함.
5,경종(景宗, 955~981)975~981
휘는 주(인宙). 자는 장민(長民). 광종의 아들. 전시과를 제정함. 방탕한
생활로 정사를 돌보지 않았음.
6,성종(成宗, 960~997)981~997
휘는 치(治). 문물제도를 정비하고, 유교를 국가지도의 원리로 삼아
중앙집권적 봉건제도를 확립함.
7,목종(穆宗, 980~1009)997~1009
휘는 송(誦). 경종의 맏아들. 전시과를 고치고 학문을 장려하는 등 치적이
많았으나 강조(康兆)에게 피살됨.
8,현종(顯宗, 992~1031)1009~1031
휘는 순(詢). 천추태후의 강요로 중이 되었다가 강조의 옹립으로 즉위함.
거란의 침입으로 혼란하였으나, 강화하여 국내가 안정되고 문화가 발전함.
9,덕종(德宗, 1016~34)1031~1034
휘는 흠(欽). 왕 2년에 천리장성을 쌓고, 국사편찬 사업도 완성함.
10,정종(靖宗, 1018~46)1034~1046
휘는 형(亨). 거란의 침입에 대비하여 천리장성을 쌓고, 장자 상속과 적서
구별을 법으로 정하였음.
11,문종(文宗, 1019~83)1046~1083
휘는 휘(徽). 자는 촉유(燭幽). 많은 법류을 제정하여 내치의 기초를 닦음.
학문을 좋아하고 서예에 능함.
12,순종(順宗, 1046~1083)1083  문종의 맏아들로 즉위한 해에 죽음.
13,선종(宣宗, 1049~1094)1083~1094
휘는 운(運). 문종의 둘째 아들. 동생인 대각국사 의천(義天)이 중국
송나라에서 불경을 연구하고 오는등 고려문화의 융성기를 이룸.
14,헌종(獻宗, 1084~1097)1094~1095
휘는 욱(昱). 즉위하자 이자의(李資義)의 난을 평정하고, 다음해에 신병으로
숙부에게 왕위를 물려줌.
15,숙종(肅宗, 1054~1105)1095~1105
문종의 셋째아들. 조카인 헌종을 폐위 시키고 즉위함. 해동통보를 주조하여
화폐제도를 시작, 고려의 황금시대를 이룸.
16,예종(睿宗, 1079~1122)1105~1122
휘는 우. 학문을 좋아하여 학교를 세우는 등 학문을 크게 진흥 시켰음.
17,인종(仁宗, 1109~1146)1122~1146
휘는 해(偕). 어린 나이로 즉위하여 이자겸의 난, 묘청의 난 등을 격었으나
선정을 베품. 김부식에게 삼국사기를 편찬케 함.
18,의종(毅宗, 1124~1173)1146~1170
휘는 현(晛). 인종의 맏아들. 무신을 천대하고 문신을 우대하다
정중부(鄭仲夫)의 난이 일어나 폐위되고, 명종 3년에 경주에서 살해됨.
19,명종(明宗, 1131~1202)1170~1197
휘는 호(皓). 의종의 동생. 정중부의 추대로 즉위하고 최충헌(崔忠獻)에
의하여 쫏겨남.
20,신종(神宗, 1144~1204)1197~1204
휘는 탁(晫). 인종의 다섯째 아들로 최충헌이 옹립한 왕임.
21,희종(熙宗, 1181~1237)1204~1211
휘는 영. 신종의 맏아들. 최충헌을 없애려다 오히려 쫏겨남.
22,강종(康宗, 1152~1213)1211~1213
휘는숙(璹), 정, 오. 명종의 맏아들. 명종과 함께 쫏겨났다가 최중헌에게
옹립되어 왕위에 오름.
23,고종(高宗, 1192~1259)1213~1259
몽고의 침입을 받아 강화로 천도한 뒤 28년동안 항쟁 하였으나 결국 굴복함.
몽고를 불교의 힘으로 격퇴하기 위하여 팔만대장경을 조판함.
24,원종(元宗, 1219~1274)1259~1274
휘는 정(禎). 몽고에 굴욕을 당한 뒤 즉위. 임연(林衍)의 난, 삼별초의 난
등으로 화평한 날이 없었음.
25,충렬왕(忠烈, 1236~1308)1274~1308
원(元)나라에 굴복하여, 원의 제국공주를 왕비로 맞아들이는 등 원나라의
지나친 간섭을 받았음.
26,충선왕(忠宣, 1275~1325)1308~1313
휘는 장(璋). 몽고 황실의 딸과 결혼하고 1298년 왕위에 올랐으나 7개월만에
충렬왕이 다시 복위. 이후 10년간 원나라에 머물다 다시 즉위하여
원나라에서 국정을 봄. 고려와 원나라의 학문교류에 힘을 씀.
27,충숙왕(忠肅, 1294~1339)1313~30, 32-39
휘는 도(燾). 정사에 염증을 느껴 아들 충혜왕에게 양위하였다가 행실이
좋지 않자 2년만에 복위함.
28,충혜왕(忠惠, 1315~1344)1330~32, 39-44
휘는 정(禎). 행실이 좋지 않아 정사를 혼란에 빠뜨렸음. 원나라로 귀양을
가다 병사함.
29,충목왕(忠穆, 1337~1348)1344~1348
휘는 흔(昕). 원나라에 볼모로 있다가 8세에 원나라에 의하여 즉위함.
어머니 덕녕공주(德寧公主)가 섭정함.
30,충정왕(忠定, 1337~1352)1348~1351
휘는 저. 12세에 즉위하여 외가친척인 윤시우(尹時遇)와 배전(裵佺)
등으로 인해 정치가 문란해지고, 왜구의 침입이 잦아 3년만에 폐위됨.
31,공민왕(恭愍, 1330~74)1351~1374
원나라 배척운동을 벌여 친원파인 기(奇)씨 일족을 제거하고, 빼앗긴
영토를 수복하여 국위를 떨침. 말년에 왕비인 노국공주가 죽자 정사를
그르쳐 최만생 (崔萬生)과 홍륜(洪倫)에게 시해 당함.
32,우왕(禑, 1364~1389)1374~1388
공민왕의 아들. 10세에 즉위하나 1388년 위화도에서 회군한 이성계에게
폐위됨.
33,창왕(昌, ?)1388~1389
이성계 등이 우왕을 내쫏은후, 창왕을 내세웠으나 1년만에 강화도로
쫏겨나 10세때 시해됨.
34,공양왕(恭讓, 1345~1394)1389~1392
휘는 요. 이성계 일파에 의해 왕위에 올랐으나 실권을 빼앗기고,
정몽주가 살해당한 후 폐위 당하고 고려는 멸망함

 

 

 

 

 조선

 

1대-태조(1392-1398)

휘는 성계(成桂). 고려말 무신으로 왜구를 물리쳐 공을 세우고, 1388년 위화도 회군으로 고려를 멸망시키고 92년 조선왕조를 세움.



2대-정종(1398-1400)

휘는 방과(芳果). 사병을 삼군부에 편입시킴. 즉위 2년만에 방원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상왕이 되었음.



3대-태종(1400-1418)

휘는 방원(芳遠). 태조가 조선을 세우는데 공헌하였으며, 왕자들의 왕위 다툼(왕자의 난)에서 이겨 왕위에 오름. 여러 가지 정책으로 조선왕조의 기틀을 세움.



4대-세종(1418-1450)

휘는 도. 태종의 셋째아들. 집현전을 두어 학문을 장려하고,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측우기, 해시계 등의 과학기구를 창제케함. 외치에도 힘을써 북쪽에 사군과 육진, 남쪽에 삼포를 두었음.



5대-문종(1418-1452)

휘는 향(珦). 학문에 밝고 인품이 좋았으며, 세종의 뒤를 이어 유교적 이상 정치를 베풀고 문화를 발달 시켰음.



6대-단종(1452-1455)

12살에 왕위에 올랐으나 계유사화로 수양대군에 의해 영월에 유배되었다가 죽임을 당함. 200년후인 숙종때 왕위를 다시 찾아 단종이라 하였음.



7대-세조(1455-1468)

휘는 유. 단종을 좇아내고 왕위에오른 수양대군. 국조보감(國朝寶鑑), 경국대전(經國大典) 등을 편찬하고 관제의 개혁으로 괄목할만한 치적을 남김.



8대-예종(1468-1469)

휘는 광(胱). 세조의 둘째 아들. 세조때부터 시작한 경국대전을 완성 시켰음.



9대-성종(1469-1494)

휘는 혈. 학문을 좋아하고 숭유억불, 인재등용 등 조선초기의 문물 제도를 완성함. 경국대전을 편찬함.



10대-연산군(1494-1506)

휘는 융. 폭군으로 무오사화, 갑자사화를 일으켜 많은 선비를 죽임. 중종반정으로 폐위됨.



11대-중종(1506-1544)

휘는 역. 혁신정치를 기도하였으나 훈구파의 원한으로 실패하고 1519년 기묘사화, 신사사화를 초래함.



12대-인종(1544-1545)

장경왕후의 소생. 기묘사화로 없어진 현량과를 부활함.



13대-명종(1545-1567)

휘는 환. 중종의 둘째 아들. 12세에 즉위하여 을사사화, 정미사화, 을유사화, 을묘왜변을 격음.



14대-선조(1567-1608)

명종이 후사없이 승하하자 16세에 즉위. 이이, 이황 등의 인재를 등용하여 선정에 힘썼으나 당쟁과 임진왜란으로 시련을 격음.



15대-광해군(1608-1623)

휘는 혼. 당쟁으로 임해군, 영창대군을 역모로 죽이고(계축사화), 인목대비를 유폐하는 등 패륜을 많이 저질렀으며 한편 서적편찬 등 내치에 힘쓰고 명나라와 후금에 대한 양면 정책으로 난국에 대처함. 인조반정으로 폐위됨.



16대-인조(1623-1649)

광해군을 몰아내고 왕위에 올랐으나 이괄의 난, 병자호란, 정묘호란을 격음.



17대-효종(1649-1659)

휘는 호. 인조의 둘째 아들. 병자호란으로 형인 소현세자와 함께 청나라에 볼모로 8년간 잡혀 갔다 돌아와 즉위후 이를 설욕하고자 국력을 양성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함.



18대-현종(1659-1674)

휘는 연. 즉위 초부터 남인과 서인의 당쟁에 의해 많은 유신들이 희생됨. 대동법을 전라도에 실시하고, 동철제 활자 10만여 글자를 주조함.



19대-숙종(1674-1720)

남인, 서인의 당파싸움(기사사화)과 장희빈으로 인한 내환이 잦음. 대동법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백두산 정계비를 세워 국경을 확정함.



20대-경종(1720-1724)

휘는 윤. 숙종의 아들로 장희빈 소생. 신임사화 등 당쟁이 절정에 이름.



21대-영조(1724-1776)

타평책을 써서 당쟁을 제거에 힘썼으며, 균역법 시행, 신무고 부활, 동국문헌비고 발간 등 부흥의 기틀을 만듬. 말년에 사도세자의 비극이 벌어짐.



22대-정조(1776-1800)휘는 성. 탕평책에 의거하여 인재를 등용하고, 서적보관 및 간행을 위한 규장각을 설치함. 임진자, 정유자 등의 새활자를 만들고 실학을 발전시키는 등 문화적 황금 시대를 이룩함. 화성축성을 하고 수원유수부로 승격시킴



23대-순조(1800-1834)

휘는 공. 김조순(金組淳) 등 안동김씨의 세도정치 시대. 신유사옥을 비롯한 세차레의 천주교 대탄압이 있었음. 1811년 홍경래의 난이 일어남.



24대-헌종(1834-1849)

휘는 환(奐). 8세에 즉위하여 왕5년에 천주교를 탄압하는 기해사옥이 일어났음.



25대-철종(1849-1863)

휘는 변. 헌종이 후사없이 죽자 대왕대비 순원황후의 명으로 즉위함. 왕2년 김문근(金汶根)의 딸을 왕비로 맞아들여 안동 김씨세도정치가 시작됨. 진주민란 등 민란이 많았음. 병사함.



26대-고종(1863-1907)

휘는 희(熙). 흥선대원군의 둘째 아들. 대원군과 민비의 세력다툼, 구미열강의 문호개방 압력에 시달림. 1907년 헤이그 밀사사건으로 퇴위함. 임오군란이일어남.



27대-순종(1907-1910)

이름은 척(拓). 고종의 둘째 아들. 1910년 일본에 나라를 빼앗겨 35년간 치욕의 일제시대를 보내게됨. 이왕(李王)으로 불림.

@@그왜 고려 고구려 증거된 지도들@@

서양사람들의 기록을 보면, 압록강을 거쳐 길림을 포함한 봉황성 부근은 조선에서 관할하고 있었답니다. 이는 서양사람들이 직접실측해서 한것이니 믿을 만 한것이죠.

 

물론 아래의 지도를 더 이해하실려면 한중일 역사전쟁/독도 란에서 일심으로 3129 고려의 강역은 만주까지였따 부터 보시기 바랍니다.

 



 

 

1. 1708년부터 1717년에 걸쳐 야소회의 선교사들이 제작한 지도



2. 1777년 이탈리아 안토니아 차타교수가 제작한 아시아 지도>

 

 




4.18세기초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천하대총일람지도" 

 

모든 왕조에서 적이 침투하여 전쟁을 하진만 모두 승리를 한다

정벌또한 성공을 거두지만 가장 무서운적은 내부 분열이다

커지면 커질수록 발란의 집단이 생기고 왕의 정치성이 확실하지 못함에

분열또한 염여 할수 없다

고조선.가야.고구려.백제.후백제,후고구려,고려.신라.조선왕조 최후의 왕 현종 역시

대원군이 명성황후 사해 부탁 일본군 무사 진입 조선은 내부새력으로 인해 평화를

빼았기고 일제가 정복하여 나라을 멸망시킴

후 독립군 임시 정부로 많은 저항운동 독립운동이 있어으나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는가

이 아시아의 강한 민족은 한국인것 같다 하지만 한국은 첨음엔 단압을 잘하지만 끝을 맺지 못한다

확실한 지조가 없다

이젠 조선에서 한국 대한민국이다.

이제 한국의 정치성과 경제를 어덯게 다스릴까 궁금하다.

이미 한나라의 정치 물란으로 IMF로 나라가 무너 졌으니

대통령이 감옥에 가고 한심하다 노무연 대통령이후 새 대통령에 기대가 크다

 

한국은 무서운 나라다 망할것 같아도 망하지 않으며 멸망해도 내부에서 다시 부웅하고 또

내부에 의해 멸망한다 참 이상한 나라 엘리스 동화의 나라인것 같다

출처 : 담양맛집
글쓴이 : 들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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