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核포퓰리즘, 절벽으로 가자는 건가 - 박제균 동아닷컴 논설

by 설렘심목 2016. 2. 27.

리더는 누구나 위기를 맞는다. 위기의 리더는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의 유혹을 받을 수밖에 없다. 조직 내부의 분출하는 요구를 들어주면 문제가 한꺼번에 풀릴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자칫 그 길로 갔다간 두고두고 발목을 잡힐뿐더러 조직까지 나락으로 떨어뜨린다.

위기에 창궐하는 포퓰리즘

“청와대 뒷산에 올라가 끝없이 이어진 촛불을 바라봤다. 오래전부터 즐겨 부르던 ‘아침이슬’ 노랫소리도 들렸다. 캄캄한 산중턱에 홀로 앉아…” 지금 봐도 손이 오그라드는 감성 연애편지 같은 내용은 집권 초 촛불시위에 몰린 이명박 대통령이 특별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다. 광우병 쇠고기라는, 돌아보면 황당하기 짝이 없는 선동에서 촉발된 시위에 영합한 결과는 어땠나. 531만 표라는 사상 최대 표차 대선 승리는 한방에 날아갔고, 집권 내내 좌파의 선동에 끌려다녀야 했다.

임기 말 레임덕에 내곡동 사저 문제로 코너에 몰린 MB는 2012년 8월 전격 독도 방문과 ‘일왕 사죄’ 카드를 빼들었다. ‘일왕도 진심으로 사과할 게 아니면 한국을 방문할 필요 없다’는 직정(直情) 발언은 국내에선 잠시 박수를 받았을지 몰라도 이후 한일관계를 수렁으로 빠뜨렸다. 상대가 있는 외교에서의 포퓰리즘은 그만큼 파문이 크고 오래 간다.

진보좌파 정권의 외교 포퓰리즘은 한술 더 뜬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반미면 어때’라며 미국 콤플렉스를 자극했지만, 그 대가는 참으로 컸다. 임기 내내 북한을 옹호하며 대북 퍼주기를 해줬지만, 오늘날 김정은 정권의 가공할 핵·미사일 능력의 발판이 된 1차 핵실험은 그의 임기 중(2006년 10월)에 터졌다. 김영삼∼박근혜 5개 정부 동안 대북지원 총액인 3조2826억 원 가운데 57%인 1조8833억 원이 노무현 정부 때 북으로 넘어갔다.

동북아에 한미일-북중러의 신냉전 구도가 펼쳐지고 있다. 미증유(未曾有) 안보위기에 아니나 다를까, 포퓰리즘이 피어오르고 있다. 제1야당의 대표를 지낸 사람도 개성공단 가동 중단 조치에 ‘진짜 전쟁이라도 하자는 거냐’며 자식을 군에 보낸 부모를 팔아 ‘공포 마케팅’을 하고 있다. 

우파 진영에선 전례 없던 핵무장 주장까지 번지고 있다. 집권당의 원유철 원내대표까지 “비가 올 때마다 옆집에서 우산을 빌려 쓸 수는 없다”며 핵무장을 말하는 지경이다. 핵무장은 우리의 안보 보루인 한미동맹의 폐기 및 미국의 핵우산 철회, 주변국의 제재는 물론 국제사회에서의 고립에 맞닥뜨릴 비현실적인 카드다. 당장은 속 시원할지 몰라도 한국을 절벽으로 내몰 위험천만한 포퓰리즘이다. 

남쪽에도 핵이 필요하다면 1991년 한반도 비핵화 선언 직전에 전량 철수한 미국의 전술핵을 재배치하는 방향으로 미국을 설득해 나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중장기적으로는 일본처럼 미국의 신뢰를 쌓아 핵 재처리를 용인 받고 핵능력을 축적해 나가야 한다.

핵무장 카드는 위험천만

위기에 분출하는 포퓰리즘의 속삭임에 지도자가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조직과 국가의 명운이 갈린다. 십자군 전쟁 때 은자(隱者) 피에르라는 프랑스 수도사가 있었다. ‘이교도의 손에서 예루살렘을 되찾자’는 그의 열광적인 선동에 이끌려 동방으로 떠난 ‘민중 십자군’이 10만 명가량이나 됐다고 한다. 종교적 열정만 있고 리더십은 부족했던 지도자에 조직이나 규율도 없었던 민중 십자군. 결국은 굶거나 병들어 죽고, 더러는 튀르크와의 전투에서 전사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박제균 논설위원 phark@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