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시선, 불안한 공존… 한국에 무슬림 20만
한국의 무슬림은 요즘… 이슬람 문화 속속 상륙
김군 IS 사건·파리 테러에 위축, 외출 자제… 예배 참석도 줄어
이태원서 무슬림 400여명 행진 "헌담과 전쟁 계속" 피켓 눈길
23일 오후 서울 한남동 이슬람중앙성원에서 무슬림들이 신발을 모두 벗은 채 합동예배를 하고 있다. 평소 때 1,000여명보다 적은 600여명이 참석했다. 신상순 선임기자ssshin@hk.co.kr
18세의 한국인 김모군이 이슬람국가(IS)에 자진 가담했다는 터키 언론보도가 국내에 처음 알려진 지난 17일 오후. 한국인보다 더 놀란 이들은 20만 명에 달하는 국내 이슬람교도, 무슬림이었다. 국내 체류하는 무슬림이 사건에 연루라도 됐다면 그 파장을 가늠하기 힘들었다. 그러지 않아도 색안경을 끼고 경계하는 시선을 한두 번은 경험한 때문이다. 그런데 무슬림들의 대응은 이전과는 달랐다. 다음날인 18일 오전 서울 이태원에선 초록 깃발을 든 무슬림 400여명이 거리행진을 벌였다. 파키스탄 출신이 주축인 모임 다왓떼이슬라미 회원들이 든 피켓에는 ‘나는 무함마드를 사랑합니다’가 아랍말과 영어로 적혀 있었다. ‘험담과의 전쟁을 계속하겠습니다’는 한글도 보였다. 무함마드 탄신을 기념한 거리행진은 프랑스 파리테러에 따른 반(反)무슬림 여론에 우려를 표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여느 때라면 민감한 시기의 단체행동은 사실 금기였다. 실제로 무슬림 사회 내부에서 시점이 나쁘다며 취소를 권고했으나 주최 측이 행사를 강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무슬림 A씨는 파리테러나 김군 사건과 한국의 무슬림이 무관하다는 점을 홍보하는 것도 이번 행진을 밀어붙인 한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한국사회 시선은 이런 기대와는 엇박자였다. 무슬림이 집단으로 서울 거리에서 의사를 표출한 것은 그날이 처음이었고, 그런 이들에게 한국사회는 적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행진을 지켜본 한 인사는 “무슬림들이 우리를 자극하지 말라는 목소리를 낸 것 같아 혼란스러웠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중동문제 전문가 P씨는 “자신들의 불안한 입장을 반전시키기 위해 거리로 나왔지만 오히려 한국인에게 위기감을 불러일으키고 말았다”고 평했다. 거리행진이 끝난 18일 오후 예배 때 이런 반응이 알려지자 서울 한남동의 이슬람중앙성원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결과적으로 한국사회의 이슬람포비아를 자극한 것이 된 때문이다. 이런 기류가 이어진 23일 중앙성원 예배에는 평소의 절반 수준인 600여 무슬림만이 참석했고, 외교관 차량들도 적었다. 무슬림들은 추운 날씨 탓이라고 했지만, 분위기는 이전 같지 않았다.
이처럼 한편에서는 목소리를 내려 하지만 무슬림 대부분은 최근 사건으로 위축된 모습이다. 21일 오전 경기 안산시 원곡동. 39개국에서 온 3만5,000여 외국인이 거주하는 국내 다문화 1번지다. 안산성원을 비롯 500m 거리에 3개 성원이 자리하고 종파, 출신국 별로 작은 기도소가 운영될 만큼 무슬림 움직임이 활발한 곳이다. 그러나 이곳 역시 겉으로는 조용한 모습이었지만 성원들이나 거리의 분위기는 평소와는 많이 달랐다. 신도 한두 명만이 예배를 보고 있었고, 한국인 눈에 거슬리는 행동이나 외출을 자제하려는 모습이 역력했다. 반면에 무슬림에 대한 주민들이 시선은 어느 때보다 불편해 보였다. 인력파견업체를 운영하는 강모(52)씨는 “금요일 저녁부터 주말까지 수백 여명이 몰려온다”며 “최근 들어서 ‘혹시나’하는 두려운 마음이 없지 않다”고 말했다.이슬람교도들이 23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남동 이슬람 중앙성원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ssshin@hk.co.kr
▦한국사회에서 입지 커진 무슬림
국내 체류하는 해외이주 무슬림은 14만3,500명으로, 전체 외국인(175만6,000명) 10명 중 1명 꼴이다. 불법체류 무슬림(2만1,000여명)과 한국인 무슬림 3만5,000명을 포함하면 국내 무슬림은 모두 20만 명에 달한다. 문화부가 이슬람교를 아직 ‘기타종교’로 분류할 만큼 타종교에 비해서는 적은 숫자이다. 그러나 한국이슬람교중앙연합회가 조직된 1965년 3,700명에서 50년 만에 54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외국인 밀집지역인 안산이 있는 경기에 가장 많은 3만3,300여명(30.5%)이 거주하고, 경남(14.4%) 서울(8.9%) 인천(6.6%) 등 공단을 중심으로 퍼져 있다. 이슬람 성원(聖院)은 서울중앙성원을 비롯해 전국에 15개가 운영되고 있고, 크고 작은 기도소는 60여개에 이른다. 그러나 한국의 무슬림은 대체로 보수적이거나 극단적이지 않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더구나 한국이 종교활동에 아무런 제약을 하지 않는데다 한류 열풍 덕에 한국사회에 대한 불만이 그리 높지는 않은 편이다. 한국생활 불만요인에 대한 한 조사에서 무슬림들은 직장 내 갈등과 향수병, 음식 등을 꼽았으나, 종교 문제는 거의 제기하지 않았다. KAIST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한 후 국내 기업에서 일하는 파키스탄 출신 무하마드(32)는 “한국에 4년째 있으면서 인종차별은 있을지언정 종교를 가지고 차별당한 적은 없다”며 “종교를 존중해주는 나라에서 무슬림의 문제는 발생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무슬림 증가와 함께 이슬람 문화는 우리 사회 곳곳에 파고 들고 있다. 한국관광공사가 최근 발간한 무슬림 관광객 유치 안내서에 따르면 무슬림 친화 레스토랑이 서울 63곳을 비롯 전국에 140곳이 형성돼 있다. 롯데ㆍ신라ㆍ하얏트 등 전국 32개 호텔에서는 무슬림 관광객을 위한 기도용 카펫과 나침반, 할랄 메뉴, 기도방향 표시 등을 서비스하고 서울대병원 등 대형병원들은 무슬림 환자를 위한 기도실과 할랄식(食)을 제공한다. 우리나라를 찾는 이슬람권 관광객만도 62만4,000명(2013년 기준)에 달한다. 무슬림 자녀 비중이 높은 경기 안산 학교들은 급식 때 무슬림이 먹지 않는 돼지고기를 뺀 식단을 마련한다. 아랍어는 2004년 이래 대학수학능력시험 제2외국어 영역의 선택과목으로 지정돼 있고 매년 15% 이상 학생들이 선택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또 한국인과 외국 무슬림 간 결혼이 늘면서 자녀들이 코슬림(Koslim)이란 별칭으로 불릴 만큼 늘어나고 있다. 장세원 단국대 중동학과 교수는 “한국은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고, 무슬림에 대한 호기심이 크다 보니 이슬람 문화가 쉽게 전파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슬람교도들이 23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남동 이슬람 중앙성원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ssshin@hk.co.kr
▦목소리 내는 무슬림, ‘우리는 IS와는 다르다’
한국에서 입지를 다져가는 무슬림이 최근 IS 관련 국제테러와 김군의 IS가담 정황 등이 알려지면서 새삼 주목 받는 게 사실이다. 접촉 기회가 늘어나면서 무슬림과 한국사회가 새롭게 겪는 갈등도 동시에 불거지고 있다. 한국에서 무슬림은 부정적 이미지로 낙인돼 있다. 2001년 9ㆍ11테러 이후 서방의 부정적 시각이 담긴 사건위주의 뉴스가 그대로 전달되는 것도 큰 이유다. IS같은 무장단체의 극단성을 전체 이슬람 사회의 특징으로 치환해 편견을 만드는 것이다. 서정민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는 “한국은 이질적인 이슬람 문화에 대한 호기심만 있는 상태”라며 “이해도가 낮은 상태에서 미디어가 전쟁이나 테러 등의 갈등을 조명하는 보도를 접하게 되면 부정적인 편견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무하마드도 “이슬람 테러가 발생하면 미디어는 항상 종교를 부각시킨다”며 “팔레스타인 사태만 해도 미디어는 유대인들의 실상에 대해 침묵한다”고 지적했다. 한국에 20년째 거주하며 컴퓨터부품 수출사업을 하는 파키스탄 출신 무스타파(47ㆍ가명)는 “전세계 무슬림 인구가 16억이다. 평화를 추구하라는 교리를 따르는 이들이 대다수지만 극히 일부 지하디스트(성전주의자)들이 잘못된 생각으로 테러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꾸란에는 ‘선량한 한 사람을 죽이는 것은 인류 전체를 죽이는 것과 같다’고 적혀있다고 소개했다. 이태원에서 만난 무슬림 B씨는 “테러범들이 우리와 다르다는 생각에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는 무슬림이 상당수”라며 테러리스트와 무슬림을 일반화는 것에 주의를 당부했다. 명지대 아랍어학과를 졸업한 안지혜(29)씨는 “한국인이든 외국인이든 무슬림 친구들은 생활에서의 몇 가지 규약을 지키는 것 빼고는 특이점이 전혀 없다”며 “지금의 묘한 긴장감은 서로를 잘 알지 못해 형성된 것”이라고 말했다. 문화에 대한 얕은 이해가 충돌을 빚어낼 수 있다는 점은 최근 사건에서도 나타났다. 이달 10일 아이돌 그룹 B1A4의 말레이시아 팬미팅에서 히잡을 쓴 무슬림 소녀팬 3명이 한국가수들과 신체접촉을 해 체포위기에 몰렸다. 다행히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낯선 남성과 접촉이 허용되지 않는다는 이슬람 율법(샤리아)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해 빚어진 사건이었다. 소녀들보다 B1A4에 대한 비난이 한국 비판으로 번지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무슬림들은 지적했다.
18일 무슬림 400여명이 서울 이태원 거리를 피켓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무슬림의 첫 서울도심 거리행진은 김모군의 IS가담 보도와 맞물려 미묘한 파장을 낳고 있다. 오대근기자 inliner@hk.co.kr
박관규기자 ace@hk.co.kr / 정준호기자 junhoj@hk.co.kr
서울 용산구 한남동 한국이슬람교중앙회 앞 한 점포에 히잡 쓴 마네킹이 진열되어 있다.
● 이슬람 에티켓
무슬림의 하루는 기도에서 기도로 끝난다. 새벽부터 밤까지 하루 다섯 번 하는데 깨끗한 장소에서 얼굴을 씻고 메카방향을 향해 기도한다. 우리나라에서 메카방향은 서북서 285.8도로, 서쪽을 바라보고 약간 오른쪽으로 몸을 틀면 된다. 기도는 양손 엄지를 귓불 가까이 올리고 ‘알라후 아크바라(하나님은 위대하다)’를 외는 것으로 시작해 5개 절차로 진행한다. 이슬람을 아는데 꼭 필요한 것 중 하나가 IBM 문화다. 인샤알라(신의 뜻대로) 부크라(내일) 마알리쉬(괜찮아) 머리글자를 딴 말이다. 인샤알라는 하나님이 길을 정해 놓았다는 운명론이다. 사람 힘으로 일을 좌우할 수 없다는 모호하고 부정적인 말로 쓰인다. 부크라는 약속이나 계획을 미룰 때 사용한다. 내일이란 뜻이나 그 의미는 내주, 다음 달, 내년인 경우가 많아 ‘지금 해줄 수 없다’는 말이 된다. 마알리쉬는 남을 위로하거나 자신 잘못을 사과할 때도 사용한다. 약속시간에 아무리 늦어도 마알리쉬 이외 사과는 없는 게 보통이다.
인사는 오른손으로 하고 친척 친구 간에 오른쪽부터 시작해 왼쪽으로 어긋나게 포옹을 한다. 가까운 사이라면 오른쪽 뺨을 맞추거나 오른쪽 뺨에 입술을 댄 뒤 왼쪽에 맞춘다. 반가우면 두 번 이상 뺨 맞대기 인사를 한다. 식사, 악수를 오른손으로 하고 손톱 자르기, 칫솔질도 오른쪽부터 할 정도로 오른손 문화가 보편화 되어 있다. 눈썹을 치켜 세우고 머리를 위로 약간 올리면 부정적 표시다. 이름 앞에는 호칭을 쓰는데 교수 변호사는 우스타드, 박사는 둑투르, 대통령이나 총리는 싸힙 알 파카마, 왕이나 영왕에게는 잘랄라를 붙인다. 이슬람 요일은 토요일부터 목요일까지가 평일이다. 그래서 아랍권 대사관은 금토일 3개 요일을 쉬는 경우가 많다. 관공서 업무는 아침7시30분 시작해 오후1,2시 마감한다. 상점들은 더운 오후 1,2시에 문을 닫았다가 저녁에 다시 연다. 기획취재팀
● 간단한 아랍 인사말
앗살람 알라이쿰(안녕하십니까?)
마르하반(안녕)
타샤라프나(만나서 영광입니다)
카이팔 할(어떻게 지내세요)
이스미 000(내 이름은 OOO입니다)
푸르사 사이다(만나서 반가웠습니다)
민 아이나 안타(당신은 어디서 왔습니까)
아나 민 쿠리야(나는 한국에서 왔습니다)
마앗 살라마(안녕히 가세요)
슈크란(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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