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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학자들이 보는 대한민국의 조상, 동이족(東夷族).. 글 : 오소운 목사

by 설렘심목 2014. 7. 8.

 

펌글 [*본 글은 오소운 목사가 작성한 글을 스크랩하여 일부 재구성함]

 

 

외국 학자들이 보는 동이족(東夷族) 글 : 오소운 목사

 

▶ 들어가는 말 ◀

 

지금의 중국 중심부, 이 지역의 역사를 논할 때,

그 중심에 있으면서 동아시아를 지배한 어질고, 예절바르고, 창의력이 넘치고 또 평화를 사랑하는「동이족(東夷族)」을 빼놓을 수가 없다.

 

해동성인(海東聖人)으로 추앙받는 공자(孔子)도 동이족이요,

주역과 역법(曆法)을 창안했다는 희화자(羲和子)는 물론,

농사법과 의학을 발전시켰다는 염제신농씨(炎帝神農氏)도 동이족이다.

 

동양의 태평성대를 이룩했다는 최고의 성군(聖君) 요(堯) 임금과 순(舜) 임금 동이족이요,

최초로 철갑(鐵甲)에 구리투구로 무장하여 박치기 전법으로 유명한 치우(蚩尤) 천황도 동이족이요,

갑골문자, 상형문자, 표의문자, 한문자(漢文字, 소위 漢文)를 만든 것도 동이족이요,

절개로 유명한 백이(伯夷)숙제(叔弟)까지도 동이족이다.

 

이 지도는 우리 조상인 동이의 나라인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부여가 아시아의 동방 전체를 지배했음을 알리는 중요한 자료다.

 

이에 놀란 중국 당국은 동북공정(東北工程)이란 것으로 동이족이 한(韓) 민족의 조상이 아니라 자기네 조상이라고,「왜놈의 역사왜곡」보다 더한「뙤놈의 역사왜곡」을 진행 중이다. 그러나 아무리 가랑잎으로 해를 가리는 식의 치졸한 방식으로 저네들이 역사왜곡을 한다 해도, 자기들의 추악한 욕심만 드러낼 뿐 역사는 바뀌지 않는다. 이에 필자는 세계 석학들의 논문 중에서 동이가 우리민족의 조상임을 고증한 글과 그들의 업적을 모아 여기 실림으로써 후학들에게 도움을 주려고 하는 바이다.

 

(1) 서량지(徐亮之) 교수 :

한글재단 이사장인 한갑수(韓甲洙) 선생이 미국 공군지휘참모대학에 입교했을 때, 같은 입학생인 대만학자 서량지가 한 박사를 찾아와 이렇게 말했다.

"귀국 한민족은 우리 중국보다 더 오래된 역사를 가진 위대한 민족으로서, 문자를 창제한 민족인데, 우리 중국인이 한민족의 역사가 기록된 포박자(抱朴子)를 감추고 중국역사로 조작하는 큰 잘못을 저질렀으므로 본인이 학자적 양심으로 중국인으로서 사죄하는 뜻으로 절을 하렵니다. 받아주십시오."  그리고 한국식으로 넙죽 큰 절을 올렸다 한다.

 

서량지 교수는 《중국사전사화(中國史前史話)》(1943년10월초판)에서 이렇게 썼다.

“4천 여 년 전 한족(漢族)이 중국 땅에 들어오기 전에, 중원(中原)의 북부 및 남부를 이미 묘족(苗族=東夷)이 점령하여 경영하고 있었다. 한족이 중국에 들어온 뒤에 점점 서로 더불어 접촉하였다.”

그는 또 이렇게 썼다.

"은(殷)과 주(周) 이전과, 은나라 주나라 대에도 동이의 활동무대가 실로 오늘날의 산동, 하북, 발해 연안, 하남, 강소, 안휘, 호북지방, 요동반도, 조선반도의 광대한 지역을 모두 포괄하였는데「산동반도」가 그 중심지였다."

서량지 교수는 또 이렇게 썼다.

“중국의 책력법(冊曆法*달력)은 동이(東夷)에서 시작되었다. 책력을 만든 사람은 희화자(羲和子)이다. 그의 혈통은 은(殷)나라, 상(商)나라의 동이족(東夷族) 조상이다. 동이가 달력을 만든 사실은 실로 의문의 여지가 없다.”

역법은 사실 동이가 창시자이며, 소호(小昊) 이전에 이미 발명되었다.” -曆法實倉始於東夷 而且小 以前便已發明.

세석기(細石器) 문화를 지닌 부족이 최초로 거주한 곳은, 지금의 시베리아 바이칼 호수 근처이다.

곧 중국의 전설 가운데 등장하는 염제신농 등의 본래 종족이 있던 곳이다.”

“동방 인종의 오행(五行) 관념은 원래 동북아에서 창시된 것을 계승한 것이다.” (東方人種之五行觀念 原係創始于東北亞洲).―《중국사전사화(中國史前史話)》

 

(2-1) 장개석(蔣介石) :

중국 총통 장개석(1887-1995)은 이시형 상해 임시정부 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자신의 고향이 옛날 백제(*대륙백제) 이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왼쪽이 장개석, 가운데가 부인 송미령

 

"당신들의 선조는 대륙의 주인이었는데 당신은 그것도 모르고 있었소? 그러니 나라를 빼앗겼지."

 

(2-2) 임어당(林語堂):

중국의 석학이요 저명한 문학평론가인 임어당(1895-1976)을 만난 초대 문교부 장관 안호상(1902-1999) 박사가 여담으로 이런 말을 했다 한다.

              

중국이 자랑하는 20세기 최대 학자 임어당     대한민국 초대 문교부 장관 안호상 박사 .

 

▶ 안호상 : "중국이 한자를 만들어 놓아서 한자를 사용하는 우리나라는 한글전용에 문제가 많다."

그러자 임어당이 놀라 정색을 하고 이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 임어당 : "그게 무슨 말입니까? 한자는 당신네들 동이족 조상이 만든 문자를 우리가 빌려 쓰는 것인데 그것도 모르고 있었습니까?"

무안을 당한 안호상 박사는 이후 평생을 민족사관에 매진 역사를 다시 공부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3) 왕동령(王棟齡) :

중국 역사학자인 왕동령(王棟齡)은《중국사》에서 이렇게 썼다.

한족(漢族)이 중국에 들어오기 이전에 현재의 호북(湖北), 호남(湖南), 강서(江西) 등 지방은 본래 묘족(苗族=東夷)의 영속지였다. 이 민족의 나라 이름은 구이(九夷)인데 임금은 치우(蚩尤)였다.”

 

묘족(苗族)은 오늘날 양자강을 중심으로 한 호북, 호남성 등지에 분포되어 있는 소수민족이며, 위의 기록에 따르면 이들도 고대에는 동이족의 한 지류였음을 알 수 있다. 구려(句麗)는 구려(九黎), 구이(九夷)를 말하는 것으로, 이 구이의 군주가 치우(蚩尤)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史記) (五帝本紀). 黎東夷國名也 九黎君號蚩尤是也 蚩尤古天子 三苗在江淮荊州

 

그는 이런 글도 썼다.

“4천 년 전 (…) 현재의 호북성, 호남성, 강서성 등지를 이미 묘족(苗族)이 점령하고 있었으며, 중국의 한족(漢族)이 들어오면서 차츰 이들과 접촉하게 되었다. 이 민족의 나라 이름은 구려(九麗)이며, 군주는 치우(蚩尤)이다.” 《중국민족사(中國民族史)

 

묘족(苗族)은 오늘날 현재 중국변방에 소수민족으로 살고 있다. 묘족 홈페이지에 다음과 같은 치우천황을 기리는 정통 구전가요가 올라 있어 원문과 함께 번역해 실린다.

 

蚩尤挽歌 ( 苗族 傳統 口傳 歌謠 묘족 전통 구전 가요 * 오소운 역)

千古奇才?空?,천고기재 횡공현 천고기재 영웅이신 치우 천황을

可堪??炎皇間。가담병론 염황간 염제씨나 황제씨와 어찌 비하랴

五兵刑法君始点 오병형법 군시점 5병기와 형법까지 친히 만드사

九黎生??云天。구려생기 충운천 구려백성 사기높여 충천케 했네

席卷中原?夏?,석권중원 하화련 중원땅의 하화연맹 쳐서 이기니

血染江河五千年。혈염강하 오천년 오천년의 강의물이 피로 흐르네

英名不因?鹿?,영명불인 탁록패 탁록에서 패한것이 원인 아님은

老黑石山百花宣。노흑석산 백화선 흑석산의 고운꽃이 증언 하누나

예기(禮記)에 보면 이런 말이 있다.

묘족은 구려(九黎)의 후예다. 구려를 묘(苗) 민족의 선조로 삼고 있다.”

; 苗九黎之後 九黎爲苗民先祖 [禮記]

 

(4) 임혜상(林惠詳) 교수 :

홍콩대학의 임혜상(林惠詳) 교수는《중국민족사(中國民族史)》에서 이렇게 말했다.

"맹자가 말하기를「순(舜)임금은 동이(東夷) 사람이다」라고 하였으니, 오늘날 우리가 순(舜)임금은 은(殷)나라 사람의 조상임을 추측하여 알 수 있다. 은나라 사람이 바로 동이인데 동방에서 흥기(興起)하였다." (흥기 ; 흥하여 일어나다)

 

(5) 중국의 학자 양관(楊寬) :

중국의 학자 양관(楊寬)은 그의 저서《고사변(古史辯), 1927》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현조(玄鳥)는 은(殷)나라 사람과 동이(東夷)의 조상신이다.”; 玄鳥是殷人東夷的祖先神.

또 같은 책 상편에서는,

동이는 은나라 사람과 동족이며, 그 신화 역시 뿌리가 같다. 태호(太昊), 제준(帝俊), 제곡(帝곡), 제순(帝舜), 소호(小昊), 그리고 설(契) 등이 같다고 하는 것은 근래의 사람들이 이미 명확히 증명하는 바다.” ; 東夷與殷人同族 其神話亦同源….

 

(6) 대만학자 노간(勞幹) :

대만학자 노간(勞幹)은 중국문화론집(中國文化論集(2), 中韓關係論略)에서 이렇게 주장한다.

“우리들은 동방사람들을 동이(東夷)라고 부른다. 이(夷)자와 인(仁)자는 통용된다. 인(仁)자와 인(人)자 또한 한 근원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므로 중국에 있어서 인(人)자를 일컫는 것은 그 근원이 동방에서 나왔으며, 만약 동이족이 문화적으로 선진이고, 먼저 '인(人)'을 사용하였다고 하면 후대에 와서 서방에서 기원한 부족들이 이를 빌어 전 인류의 명사로 쓴 것이다…. 만일 이(夷)가 먼저 문화를 이루어 앞서 나갔다면, 이 사람들이 먼저 사용한 사람 인(人)자는 전 인류적인 이름에 들 것이다. 서방사람들이 이를 빌려 쓴 것이다.”

 

(7) 중국학자 필장박(畢長樸) :

중국의 학자 필장박은《중국인종북래설(中國人種北來說)》에서 중국의 고대 문헌, 고고학적 유물, 언어적 특성, 인류학적 특성, 민속 문화적 특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찰한 뒤, 중국 인종의 시원(始原)이 북방의 시베리아 일대와 동북아 쪽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또 필장박은 위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중국 문자(文字)가 만들어진 것은 필시 중국 중원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다. 그 계통은 멀리 추운 북방에서 시작된 것을 계승한 것이다.” ; 中國文字之制作 必非始于中國中原而係遠始于寒的北方.

 

(8) 일본학자 고꾜 야스히꼬(吾鄕淸彦) :

일본 학자 고꾜 야스히꼬(오향청언, 吾鄕淸彦, こきょうきやひこ)는 이렇게 썼다.

사마천의《사기(史記)》25권은, 단군 조선이 중원 대륙을 지배했었다는 역사적인 사실을 거꾸로 뒤집어 가지고, 마치 중국이 단군 조선을 지배한 것처럼 힘겹게 변조 작업을 해 놓은 것이다.”

 

(9) 러시아의 역사학자 유 엠 부찐 :

러시아의 역사학자 유 엠 부찐도 그의 저서《고조선(古朝鮮)》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대(漢代) 이전에 현토와 낙랑 지역에 이르렀던 조선의 영역은 한 번도 중국의 제후국(諸侯國)이 된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연(燕)나라나 주(周)나라에 예속된 적이 없다."

 

그리고 기자조선(箕子朝鮮) 설은 주왕(周王)이 자신의 지배하에 있지 않은 영토를 마치 통치한 것처럼 꾸민 전형적인 예라고 말하고 있다. 또 "중국의 역사가들은 연나라가 중국의 동북쪽 변방에 있었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연나라의 역할을 과장해서 표현해 왔다."

그러며, 당시 국력으로 보아 연나라가 조양에서 양평에 이르는 장성(長城)을 쌓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10) 소련의 역사학자 시로코고르프 :

소련의 역사학자요 인류학자인 시로코고르프(シロコゴルフ)는《중국사》에서 이렇게 썼다.

"BC 3,000년경 동이족은 이미 황하 양자강 서강의 중류이동(中流以東)의 중간 지역에 살았으며, 지나족(支那族)은 이보다 1,500~2,000년 후에 동방천자 치우(蚩尤)가 다스리는 동이족의 나라인 강회(江淮)지방에 진출하였다."

 

▶오소운 목사 :

대륙을 지배했던 우리민족의 역사가 분명 존재하건만,

백제가 대륙을 지배했다고 지나족 학자가 증언해왔건만

이 모든 사실에 눈감고 귀닫고 반도사관만 짖어대는 사학자들,..

치우천황은 있지도 않는 인물드립을 치다가 실존인물로 밝혀지자 동이족의 원래의 뜻이 지나족이 존경의 뜻을 담아 부르던 칭호였는데 이것이 어느 순간 오랑캐를 뜻하는 말이 됐으니 우리는 동이족이 아니다 동이족은 우리민족이 아니다 드립 신채호 선생을 과대망상증 환자 쇼비즘이라고 떠들던 것처럼 우리민족이 대륙의 창대한 역사가 있었음을 증언하는 외국학자들을 환빠라고 집단 정신병자들 이라고 말해?

 


 

▶ 퍼온자(선비) : 위 퍼온 글을 탐독하고 원작성자의 글 전체를 토대로 일부 재편집(첨언) 하면서 본인은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하였다.

- 위의 글이 사실이라면 이는 너무 충격적이다.

- 만일 사실이 아니라면 원작성자의 취지를 공감하지만 민족의 자긍심 고취 및 방법을 좀 더 세련되게 하여야 한다.

- 본인은 전문가도 아니고 실증적 증거를 확인하지는 않았으나 위 글은 이미 오랜 기간 다양한 형태로 학계, 방송, 언론, 인터넷에서 거론되었던 내용이라 개인적으로는 위 글의 내용이 사실에 가깝다는 부분에 비중을 더 갖고 있다. 따라서 국가, 민족의 정체성과 올바른 역사 확립을 위해서 정부차원에서 사실 확인에 앞장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 역사의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관련 고서적(古書籍)의 수집 확보 필요함.

- 국내수집 : 개인, 기관 소장 고서적 수집.

*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다량 보관, 공개 거부하고 있음

* 사찰, 서원, 향교, 고택, 고문서 수집상 협조로 사본 확보

- 해외수집 : 외교적 노력으로 수집.

* 일본 황실소장 고서 [일제식민시대 약30만권 수탈 추정]

* 중국/대만 소장 고서 [진실을 알기에 역사 날조 감행]

* 서양 소장 고서 [비단길 교역시대, 식민제국시대 수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