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랑쉬의 비밀
1. 다랑쉬의 날조
2. 다랑쉬 유해
3. 다랑쉬의 진실
4. 다랑쉬의 폭도들
5. 세화리 폭도 대습격
6. 허위의 굿판들
7. 진술조서 - 함만실. 오지봉.
8. 진술조서 - 채정옥. 김병수.
9. 4.3사건 관련 유골처리 동향 제주경찰청 보고서
4. 다랑쉬의 폭도들
다랑쉬에서 유해가 발견 되었다는 언론보도가 나오자 제주경찰서에서도 진상 파악에 나섰다. 제주경찰서 수사관들은 현장 조사와 현지 탐문을 통하여 당시 다랑쉬 사건에 관련이 있었던 사람들을 찾아내는데 성공했고 그들의 진술도 받을 수 있었다.
다랑쉬 사건에 대해 진술을 남긴 사람은 종달리 채정옥, 오지봉, 세화리 함만실, 김병수 등 네 명이었다. 경찰서에서 진술조서가 작성된 날짜는 1992년 4월 4일이었고, 다랑쉬 사건의 주요 증인이었던 채정옥씨는 4월 4일과 4월 6일 양일에 걸쳐 진술을 했다.
채정옥씨는 다랑쉬 진압이 있었던 날 밤에 남로당 구좌면 총책 정권수의 명령을 받아 시체를 수습하러 다랑쉬굴로 들어갔던 장본인이다. 4.3 당시 그는 종달리에서 마을 자경단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1948년 11월 8일 밤 11경, 채정옥은 친구들과 같이 마을 순찰을 돌던 중 종달리 중동에서 공비 오달용이 이끄는 폭도들에게 붙잡히게 되었고, 채정옥, 윤인현, 김호준 세 사람은 산으로 끌려갔다. 그날 밤 김호준은 산에서 공비들에게 처형당했고, 채정옥은 다랑쉬굴에서 공비들과 생활하던 중 다랑쉬 사건이 터지기 3일 전 거처를 이동했다. 덕분에 그는 다랑쉬 진압이 있던 날 죽음을 면할 수 있었다. 채정옥은 다랑쉬굴에서 시신을 수습한 것이 계기가 되어 시신 수습 직후 경찰에 자수했다.
오지봉씨는 종달리에서 대동청년단으로 활동하고 있었으며, 신변에 위협을 느끼자 세화리로 피난하여 생활하고 있었다. 다랑쉬 진압작전이 펼쳐지던 1948년 12월 4일, 오지봉은 군(軍)‧경(警)‧민(民) 합동 진압작전에 동원되어 다랑쉬 진압에 직접 참가했던 인물이다. 다랑쉬굴 안으로 연기를 피워 넣은 후에 오지봉은 함만실과 함께 상황을 파악하러 동굴 안으로 집입했다.
함만실씨는 세화리에서 민보단 구좌면 감찰부장으로 활동하다가 다랑쉬 진압 작전에 참가했다. 진압이 끝난 후 그는 오지봉과 함께 다랑쉬굴로 진입했다. 김병수씨는 다랑쉬 사건 당시 세화리장을 맡고 있었고, 다랑쉬 합동작전에도 참가했다.
다랑쉬 사건에 관련이 있었던 네 사람의 증언에는 다랑쉬 진압이 있었던 날짜가 불일치한다. 채정옥은 12월 18일로 기억하고, 함만실과 김병수는 12월 4일로 주장한다. 오지봉은 날짜를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 이런 불일치는 당시 사건으로부터 오랜 세월이 흘렀거나, 당시의 토벌 작전이 두 번에 걸쳐 벌어졌기에 착각하지 않았을까 하는 것으로도 추측된다.
다랑쉬 군(軍)‧경(警)‧민(民) 합동 진압작전이 벌어지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세화리 폭도 대습격 사건’ 때문이었다. 다랑쉬 사건이 벌어지기 하루 전, 12월 3일 밤 폭도들은 세화리를 대대적으로 습격했다. 세화리 주민 50여명가량이 피살되었고, 가옥 150채 가량이 불에 탔다.
네 사람의 증언을 종합하여 다랑쉬 사건의 줄거리를 요약해보면 이렇다. 이 증언은 다랑쉬 진압에 참가하여 다랑쉬굴에 진입했던 함만실과 오지봉의 증언을 요약한 것이다.
12월 3일 밤 11시경, 폭도 100명 이상이 세화리를 습격하여 주민을 학살하고 가옥에 방화하며 식량과 의복들을 탈취해 갔다. 그러자 뒷날인 12월 4일 오전 9시 경, 군(軍)‧경(警)‧민(民) 합동작전이 실시되고, 군인, 경찰, 민보단 110명으로 진압대가 구성되어 대대적인 폭도 토벌 작전이 전개되었다.
오전 11시경, 2개조로 나뉘어 다랑쉬오름 근처를 수색하던 중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은 대변이 발견되고, 근처를 수색하다가 조그만 동굴을 발견했다. 굴속에 손을 넣어보니 뜨거운 열기가 느껴지고 사람 냄새가 났다. 동굴을 향해 10여 차례 사격을 가하자 종달리 출신 공비 고태원(23세)이 손을 들고 나왔다. 공비를 심문하자 공비는 굴속에는 자기를 포함 11명이 있고, 자기를 굴속에 들여보내 주면 설득하여 자수를 시키겠다고 나섰다. 그리하여 공비의 허리에 포승줄을 묶고 안으로 들여보내고, 군인들이 줄을 잡고 따라 들어갔으나 중간에 줄을 끊어버리자 군인들은 굴속에서 후퇴했다.
군인들은 계속 굴 안으로 자수를 종용하였으나 자수를 거부하자 군인들은 메밀짚과 잡초로 동굴 입구에 불을 피워 연기를 굴 안으로 집어넣었다. 약 30분가량 되었을 때 굴속에서 공비 한 명이 튀어나와 덕천리 방향으로 도주하다가 총에 맞아 사망했다. 약 3시간 후에 군인들이 굴속에 들어가 확인해야 했으나, 지원자가 없자 세화리 함만실과 종달리 오지봉이 자원하여, 함만실이 앞장서고 오지봉이 뒤따라 동굴로 들어갔다. 두 사람은 굴 안에서 사망자들이 박봉관, 강태용, 고순경, 고두만, 고태원 등임을 확인하였다.
다음 증언은 다랑쉬 진압이 끝난 후 남로당 측 일원으로서 현장을 확인을 위해 다랑쉬굴 내부로 진입했던 채정옥의 증언을 요약한 것이다.
그날 밤(4일 당일이거나 혹은 18일 밤) 어둠이 깔린 다랑쉬굴로 다시 세 사람이 스며들었다. 남로당 구좌면당부에 있던 인민해방군들이었다. 다랑쉬굴 위쪽 산간지대에 있던 남로당 구좌면당 본부에서는 다랑쉬굴 상황을 수시로 보고 받으며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밤이 되자 구좌면당 총책인 정권수의 지시에 따라 오치학을 조장으로 하도리 고완규와 종달리 채정옥이 현장 확인 차 다랑쉬굴로 찾아와 내부로 진입한 것이다. 채정옥은 한 달여 전에 폭도들에게 납치되어 남로당 구좌면당으로 끌려와 부역에 동원되고 있었다. 납치 기간에 채정옥은 두세 군데 장소를 옮겨 다니며 기거를 했으며, 다랑쉬굴에서도 공비들과 10여 일간 생활하기도 하였다.
채정옥 일행이 다랑쉬굴에 도착했을 때 굴 입구는 돌로 입구가 메워져 있었고, 동굴 안에서는 연기가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동굴 입구에는 지푸라기 등으로 화입한 흔적이 있었고, 내부로 들어가니 입구 동굴 이곳저곳에 10여 구 가량의 사체가 있었다. 시신들은 코와 귀 등에서 피를 흘린 흔적이 있었다. 조장인 오치학의 지시에 따라 채정옥은 시신을 한군데로 옮겨 가지런히 눕히고, 오치학이 가지고 간 천으로 시신들을 덮었다. 오치학은 사망자 명단을 작성하고 면당부로 돌아왔다.
채정옥은 당시 다랑쉬굴에 있던 시신들은 고두만, 고순경, 고순환, 박봉관, 강태용, 함명집, 고태환 등이고, 오문규의 자부, 고완규의 처와 아들, 부성오 누나 등으로 추정된다고 진술했다.
증언자들 중 함만실, 오지봉은 다랑쉬 진압에 참가했고 다랑쉬굴에 진입하여 시신들을 확인했던 인물이다. 채정옥은 남로당 폭도 일원들과 다랑쉬굴에 진입하여 시신들을 확인하고 정리한 인물이다. 증언자 중의 김병수는 당시 세화리장으로서 다랑쉬 진압에 참가했던 인물이다. 이 네사람의 공통된 증언은 다랑쉬굴의 주인공들은 당시 구좌면 일대에서 활약했던 폭도들의 일원이라는 것이다.
채정옥은 진술조서에서 다랑쉬굴에 살았던 사람들의 정체에 대해서 ‘공비로서 동부지구(다랑쉬굴 일대)에 주둔하면서 상부의 지시에 의해서 통신연락, 보급, 정보수집 등의 임무를 맡았던 공비들’이라고 증언했다. 김병수도 증언조서에서 ‘양민이 어째서 동굴에 숨어 있겠습니까, 죽은 유골은 반드시 공비로 활약했던 자들’이라고 증언했다. 그러면서 김병수는 ‘동굴에서 죽은 공비들은 당시 세화리 일대에 출몰한 공비가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다랑쉬 유해가 발견되었을 때 제민일보는 이들의 정체를 ‘주민’이라고 밝혔다. 더욱이 제민일보는 그들의 죽음을 ‘희생자’로 묘사하며 군경의 ‘과잉진압’ 탓으로 돌렸다. 엄연한 왜곡이었고 날조였다. 다랑쉬의 유해는 산에서 활동하던 폭도 측의 일원이었고, 그들은 진압대의 자수를 거부하고 굴 안에서 군경에 저항하다 죽음을 맞은 것이다. 김병수는 그들의 죽음에 대해 ‘토벌대의 총에 죽느니 폭도끼리 합동으로 죽자고 결심한 공비들’이라고 밝혔다.
다랑쉬 유해의 정체를 왜곡한 주범은 4.3연구소와 제민일보, 4.3중앙위원회라는 왜곡과 날조의 삼형제였다. 4.3진상조사보고서는 이들의 왜곡과 날조가 그대로 반영된, 주객이 전도된 날치기 보고서였다. 다랑쉬의 왜곡은 4.3진상조사보고서가 얼마나 왜곡되고 날조되었는지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이다. 원문 : http://blog.daum.net/bibalam/15839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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