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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듯한세상

귀감...감동...前 미대통령 트루먼

by 설렘심목 2014. 5. 8.

 

 

★ 해리 에스 트루먼 ★

 

얼마전 퇴임한 김능환 대법관이 퇴임 후 부인
편의점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소탈한 모습을 보고
많은 국민들이 가슴이 찡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런 점에서 누구 보다도 귀감이었던 트루먼
전 미국 대통령의 얘기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정전협정이 체결된지 60주년이 되는 올해에
우리는 대한민국의 오늘을 있게 한 은인인
트루먼 전 미국대통령을 기억하게 됩니다.

트루먼 대통령은 2차 대전 당시 연합군총사령관 자격으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을 투하해 끝까지 항전하는
일본의 항복을 받아내 우리의 독립을 가져다 주었고,

이승만 박사와 더불어
1948년 8월15일 대한민국 탄생의 계기를 마련했으며,

그 후 6.25가 발발 하자 즉시 파병의 결단을 내려
미군을 위시한 유엔군의 결집을 주도하여
대한민국을 방어했던 우리 한국의 은인입니다.

트루먼 대통령이야 말로 참다운 청백리의 삶을 실천했던
훌륭한 정치인의 표상이 되는 인물이라는 사실은
별로 알려져있지 않습니다.

해리 트루먼과 그의 부인 베스 트루먼은
남다른 대통령이 었습니다.

그는 32명의 전임 대통령들에 비해 미국 역사상
매우 중요한 결정들을 가장 많이 내린 대통령일 겁니다.

그렇지만, 그의 위대함은 대통령에서 물러난 뒤
그가 보여준 행동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그가 사망할때 갖고 있던 유일한 재산은
자신이 살았던 미주리에 있는 집이 전부였습니다.

그의 집은 그의 부인이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으로,
그들이 백악관에서 살때를 제외하고는
평생 이 집에서 살았던 집입니다.

그가 대통령에서 물러난 1952년 그의 수입은
미육군 연금으로 받는 연 13,507불이 전부였습니다.

그가 자기돈으로 우표를 사서 직접 침을 발라
편지를 발송하는 사실을 안 의회가 나중에 소급해서
‘수당’을 지급하여 연 25,000불의 연금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의 후임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취임하자
트루만 대통령과 그의 부인 베스는
미주리에 있는 자신의 집까지 직접 운전해서 갔습니다
그들을 따르는 경호원도 없었습니다.

고액의 급여를 받는 회사 경영자의 자리를 제안 받았을 때
그는, “당신들이 원하는건 내가 아니라 대통령이란
직책이오. 하지만 그 자리는 내 것이 아니라
미국 국민들의 것이고, 파는 자리가 아니오” 라는

대답으로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인 1971년 5월 6일 미국 의회가
그의 87세 생일을 맞아 ‘영예의 메달’을 수여하려고 했지만

그는 “저는 의회의 메달이든 그 어떤 상을
받을만한 일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라며
수상을 사양하는 회신을 의회에 보냈습니다.

 

그는 대통령 재임시절 그의 사적여행 경비와 음식값 모두를

자신의 돈으로 냈습니다. 현대 정치인들은 대통령을 하면서
엄청난 부를 챙기는 새로운 성공법을 찾아냈습니다.

요즘은 수많은 의원들도 의원직의 혜택들을 즐기면서
상당한 부자가 되는 길을 찾아냈습니다.

공직은 지금 매매하는 곳이 되었습니다.
“내 인생에서의 나의 선택은 시골팝에서
피아노 연주자가 되거나 정치인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사실을 말하자면 이 둘 사이에는 별차이가 없었습니다”라는
해리 트루만의 얘기가 사실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를 본받았어야 했습니다 라고
많은 사람이 평하고 있습니다.

 

- 옮겨온 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