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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인간 샤르키바트만의 눈물, 인종주의가 몰고온 비극의 여주인공 사라이야기

by 설렘심목 2014. 3. 16.
박제인간 사키바트만의 눈물, 인종주의가 몰고온 비극의 여주인공 사라이야기 


지금으로부터 200여년전 남아공 케이프타운 인근에 샤키 바트만(Saartjie Baartman, 1789~1815)이라는 신장 140cm의 코이코이족 흑인여성이 살고 있었다.

바트만은 백인들의 노예사냥 때문에 19살 때 고아가 되었는데 특별한 체형, 커다란 가슴과 심하게 크고 튀어나온 엉덩이로 인해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어느 날 한 영국인 의사가 자신을 따라 유럽에서 가서 순회전시회를 열면 바트만이 돈을 많이 벌 것이라며 그녀를 설득했다.
1810년 ‘샤키 바트만’은 스무살의 나이에 의사와 함께 대서양을 건넌다.
그녀가 처음 전시되었던 곳은 런던의 윌슨스뮤지컬 근처. 당시 인종전시가 유행했던 곳이다.
신체의 특정 부위가 크거나 작은 사람, 그리고 불구가 된 사람들의 특이한 체형을 보여 주는 나체 전시장. 뿐만 아니라 기형의 동물들에게 여자 옷을 입혀 전시하고 그것을 보러 온 사람들에게 돈을 받았다. 이 곳에서는 지금도 포르노쇼 극장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유럽 여성들의 신체와 비교해 특이한 둔부를 가진 ‘샤르키 바트만’은 그 둔부 하나만으로도 당시 유럽 인종학자들의 지대한 관심을 끌게 된다. 이후 '샤르키 바트만'은 학자들뿐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인종적 열등, 흑인 여성의 성적 특질, 나아가 성적 관음증의 대명사가 되었다.

바트만의 성기 음순이 유럽 여성들의 그것 보다 훨씬 컸기 때문이다. 그녀는 런던, 파리, 암스텔담 그리고 기타 유럽의 여러 도시에서 인종 전시를 당하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누리게 된다. 이 과정에서 이름도 부르기 쉬운 ‘사라 바트만(Sara Baartman)’으로 또 사라(Sara)로 바뀌게 된다.

그러나 무려 5년 동안 비인간적으로 이어지는 노역과 수모를 이기지 못하고 ‘샤르키 바트만’은 1815년 1월1일 새벽, 자신의 스물여섯번째 생일을 눈앞에 두고 프랑스 파리의 한 사창가에서 숨을 거둔다. 돌봐 주는 사람 하나 없이 먼 먼 타국 땅에서 애절하게 숨을 거둔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비운은 숨이 멎은 뒤에도 끝나지 않는다.

그녀의 시신은 당시 프랑스의 유명한 해부학자 죠지 쿠비에(Georges Couvier)에게 양도된다.
죠지 쿠비에는 그녀를 인간이 아닌 단지 유인원보다 조금 더 발달한 존재로만 보고 그녀의 시신에서 생식기와 뇌를 분리해 낸 다음 “인간이 멈추고 동물이 시작되는 지점”를 찾아내겠다며 연구에 몰두한다. 그후 ‘샤키 바트만’의 유해는 뇌와 생식기를 절취 당한 채 장장 186년 동안 프랑스의 인류학박물관(Paris's Musée de l'Homme)에 전시된다. 일명 오르쉐 박물관으로 불리는 곳이다.


1993년 남아공에서는 악명높은 인종차별정책이 종말을 맞이하고 새로운 민주정부가 출범했다.

새 정부의 대통령이 된 넬슨만델라는 인종차별의 표상이 된 ‘샤키 바트만’의 유해를 프랑스로부터 돌려받는 것을 외교적 사명으로 내건다. 그리고 오랜 노력 끝에 2002년 5월 마침내 ‘샤키 바트만’의 유해가 고국 남아공으로 돌아온다. 고향으로 돌아온 ‘샤키 바트만’의 유해는 이스턴 케이프의 감투스 강가에 묻힌다.
A caricature of Baartman drawn in the early 19th century

“내 인간성을 돌려주시오. 나의 아름다움, 그리고 인간적인 위엄을 돌려주시오.
나를 내 대상화의 그늘에서, 노예의 사슬에서, 이방인의 마술에서 풀려나게 해주시오...
당신들이 내 머리를 가를지라도 쓰러지지 않도록, 내 자궁을 돌려주시오...”

한/남아공 합작 연극 사라 바트만의 대사 중에서 식민주의가 한창 극성을 부리던 19세기 초.

톡 튀어 나온 엉덩이 때문에 벌거 벗겨진 채 동물원의 원숭이처럼 철창에 갇혀 유럽에서 순회전시됐던 남아프리카 출신의 코이산(일명 부시맨) 여인 사키 바트만. 당시 유럽을 휩쓸던 매독을 일으키는 원주민 창녀의 몸뚱이로 악마시되면서 식민주의 이데올로기로 이용당했던 그녀는 5년간의 비인간적인 노역과 수모 끝에 결국 스물여섯 살 생일을 눈앞에 두고 1815년 파리에서 숨을 거뒀다.


그의 시신을 양도받은 프랑스 해부학자 조지 쿠비에는 시신에서 생식기와 뇌를 떼어내 “인간이 멈추고 동물이 시작되는 자리”를 찾아내는 연구를 시작했고, 바트만의 몸은 186년 동안 프랑스의 인류학 박물관에 내걸린다. 남아공 정부의 끈질긴 노력으로 2002년 5월 바트만의 유해는 남아공으로 돌아와 고향인 이스턴 케이프의 감투수 강가에 묻힌다.

“모르겠다, 없어졌다”는 프랑스의 발뺌에 그의 생식기와 뇌는 여전히 유럽의 어딘가에 숨겨진 채로.이런 샤르키바트만의 고통과 한을 한국의 진도 오귀굿으로 풀어내는 연극 <샤르키 바트만>이 남아공과 한국에서 동시에 열려 관객들의 심금을 울렸다.

남아공에선 2003년 2월7일 부터 15일 까지 일주일 동안 케이프 타운의 대표적 공연장인 아츠케이프시어터에서 공연되었고, 한국에선 한달쯤 지난 3월7일 부터 15일 까지 서울공연장에서 관객들을 만났다.

 

연극 <사키바트만>은 국제게릴라극단의 상임연출자 이석호(40·아프리카문화연구소 소장)씨가 각본을 쓰고, 남아공의 연극인 콜레 오모토소 교수(스텔렌보쉬대 연극학과)와 러셀 카슐라(케이프타운대 부교수)가 공동 연출했다.

연극은 남아공의 여배우와 한국의 여배우가 출연하는 2인극으로 남아공측 주연배우로는 배우겸 가수이자 시인으로 인기를 모으고 있는 안드레아 돈돌로라 샤르키바트만을 대신해 열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