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지방법원 형사 합의12부는 17일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에 대한 1심 선고 공판에서 형법상 내란 음모와 국가보안법상 이적 표현물 소지 등 검찰의 기소 내용을 모두 받아들여 징역 12년에 자격정지 10년을 선고했다. 함께 기소된 6명에 대해서도 징역 4~7년, 자격정지 4~7년을 각각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남한 사회의 변혁을 목적으로 체제 전복과 헌정(憲政) 질서 파괴 등을 꾀한 점 등이 모두 인정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내란 음모 판단의 핵심 쟁점 중 하나였던 'RO(혁명 조직)'의 성격에 대해 '지휘 체계를 갖춘 내란(內亂) 혐의의 주체'라고 했고, 이 의원이 'RO의 총책'이라고 명확히 판시했다.
재판부는 또 작년 5월 10일 경기도 곤지암 및 12일 서울 합정동에서 열린 RO 조직원들의 비밀 회합에 대해서도 "조직 모임"이라며 "사상 학습을 하는 소모임(분임)은 RO의 세포 모임으로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130여명에 대해서는 "모두 (북한) 주체사상을 지도 이념으로 철저한 보안 수칙과 지휘 통솔 체계에 의거하여 비밀리에 활동하고 있는 RO의 구성원들"이라고 했다. 이 회합에는 이 의원 등 이번에 기소된 사람들 외에 통합진보당 김재연·김미희 의원과 통진당 경기도당 간부가 다수 포함돼 있었다. 재판부는 "주체사상과 대남 혁명론으로 무장한 조직원 최소 130여명을 대한민국의 수도 한복판에 규합하여 국가 기간 시설 파괴 등 후방 교란 활동을 구체적으로 모의했다"며 "한 지방의 평온을 해(害)하기에 충분한 정도의 폭동을 모의한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이 의원 등은 북한이 정전협정 파기를 선언하고 매일 전쟁 위협 수위를 올릴 때인 작년 5월 비밀 회합에서 전쟁 발발 시 평택 유류 저장소, 서울 혜화동 KT 지사 등을 파괴할 대상으로 지목한 사실이 드러나 큰 충격을 던졌다. 참석자가 폭탄 제조법을 인터넷에서 내려받은 정황까지 확인됐다.
당시 회합에서 이 의원은 대한민국을 '적(敵)'으로 규정하고 "정치·군사적 준비를 해야 한다"고 했다. "북은 모든 행위가 다 애국적이야. 우리는 모든 행위가 다 반역(反逆)이야"라는 말도 했다. '한 자루 권총 사상' 등 북한 용어를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습관도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국정원이 나를 잡으면 한 명을 죽이려고 칼을 갖고 다닌다" "북이 3차 핵실험에서 엄청난 것을 이뤘다" "오는 전쟁 맞받아치자" "앞으로 정규전 아닌 비정규전 상태가 전개될 것"이라는 참석자들의 말은 모두가 대한민국을 적으로 보고 있는 이들의 생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이들은 북의 주장에 습관적으로 동조하는 관념적 종북(從北)주의를 넘어 북의 편에 서서 우리 사회를 물리적으로 공격하고 파괴하려 했다. 실행 단계 전에 체포됐기 때문에 '내란'이 아니라 '내란 음모'로 처벌받게 됐을 뿐이다. 이들의 충격적 행태는 RO 내부자 이모씨가 국가정보원에 제보한 녹취록과 법정 증언 등을 통해 확인됐고, 재판부는 이씨 진술을 거의 그대로 인정했다.
이 의원 등은 공판 과정에서 늘 그랬듯이 자신들이 표적·조작 수사를 당하고 있다고 반격하는 전략을 폈다. 변론에서도 "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는 주장을 핵심 논리로 동원했다. 수사를 받는 과정에선 예상대로 묵비권을 행사했다. 이들은 속으로는 극단적 반(反)민주 전제(專制) 체제인 북한을 숭상하면서도, 우리 사회에서 활동하기 위한 방편으로 민주주의 제도가 부여한 권리를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 집회 시위의 자유를 이용해 국정원 정문 앞에서 시위하던 옛 민노당 당원 중 간첩이 포함돼 있었던 것이 대표적 사례다.
이번 재판은 피고인들조차 공정했다고 인정했다. 이 의원 등은 지난 3일 최후진술에서 "재판부가 공정한 재판을 이끌어줘 감사하다"고 했다. 피고인들에게 변론 기회를 충분히 보장했고, 증거 채택 여부 등에서도 한쪽에 치우치지 않았다. 그러나 재판부는 자유를 이용해 자유를 파괴하려는 이들의 시도, 민주주의 제도를 활용해 민주주의를 허물려는 음모는 단호히 배척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이번 사건을 국정원이 조작한 것이라고 주장한 데 대해 "보장된 방어권 행사 범위를 넘어 진실 발견을 적극적으로 숨기거나 법원을 오도(誤導)하려는 시도"라고까지 지적했다. 우리 사회는 34년 만의 내란 음모 사건 재판에서 헌법 파괴 세력을 단죄(斷罪)하면서도 헌법이 보장한 자유민주 정신은 모두 지켰다. 자부심을 느껴도 될 일이다.
사실 이석기와 같은 사람들의 존재, 그들의 생각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다. 1990년대 초 이후 최근까지 '민혁당' '일심회' '왕재산'과 같은 명백한 간첩단이 적발되고 유죄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낮은 형량, 습관적 사면·복권으로 관련자 대부분이 종북 활동에 복귀할 수 있었다. 우리 사회의 경각심 부족이 이런 '괴물'들을 키웠다는 측면도 간과할 수 없다.
이석기 일파가 쉽게 존립하고 국회까지 진출할 수 있었던 것은 민주화 세력에 편승했기 때문이다. 민주화 세력과 주사파 세력을 명확히 구분하지 못하면 이 대한민국 파괴 세력은 다시 민주화 간판을 들고 나타날 것이다. 민주화 운동을 했던 사람들이 더 적극적으로 나서서 반(反)민주 주사파 세력을 떼어내야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를 지키는 길이다. - 조선닷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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