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경쟁의 시대에 우리는 과연 어떻게 인생을 계획해야 할 것인가? 어떻게 자녀들을 계도해 갈 것인가?
우리 가운데 무한경쟁이라는 냉혹한 현실에서 도망칠 자가 어디 있는가? 산다는 것이 그래서 피곤 그 자체일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쟁을 정면으로 마주해 어차피 한번 가게 되는 자신의 삶을 고품격화해서 자신 뿐 아니라 모두에게 유익이 되게 할 순 없을까? 내 자녀가 훗날 많은 이들의 기쁨과 좋은 소식이 되며 가문과 나라를 빛내며 살게 할 수는 없는가?
많은 이들의 한결같은 소원이다. 그럼에도 인생들은 나남없이 자기만큼 밖에 살지 못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자신을 잘 건축하면서 동시에 홍익의 길을 갈 것인가?
먼저 우리는 쓰디쓴 결론부터 앞세워야 한다. 고난없는 승리는 허상일 뿐이라는 말을...(No pains no crown!)
상처없는 영광은 결국 수치가 되어 돌아온다는 것을...
누군가 말했다. “3년간 죽을 듯 뛰어서 30년이 달라진다면 3년간 죽겠습니다.”
100세 시대에 10년 죽을힘 다해 노력한다면 후회없는 그 평생이 멋지지 않겠나?
1990년 심리학자 앤더슨 에릭슨은 베를린 아카데미학생들을 대상으로 “재능논쟁의 사례A"라는 연구를 진행했다.
연구진은 ①세계적 솔리스트로서의 가능성이 있는 엘리트그룹과 ②비교적 잘한다는 우등생그룹과 ③프로급연주에 관심없고 공립학교 음악교사 정도를 꿈꾸는 일반음악학생그룹으로 구분해서 진행하였다.
연구진은 그들에게 “바이올린을 만난 후 지금까지 총연습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물었다.
세 그룹 모두 5세 전후에 시작한 것은 비슷했으나 20세가 되면서 프로급 그룹은 1만 시간, 우등생그룹은 8천 시간, 일반학생그룹은 4천 시간으로 각각 나뉘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한가지다. 연습했는데 최상위그룹이 되지 않은 학생도 없었고 연습하지 않고 두각이 나타난 학생도 없었다는 것이다.
어린 나이에 세계적인 명성을 차지한 운동선수나 연주가들은 일찍이 자신의 목표를 확정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그것만을 위해 옆을 보지 않아 요일조차 모르고 뛰었으며 20세쯤 되어 주변을 보니 친구하나 없어서 허탈감과 우울증을 겪기도 했다는 것이다. 사생활을 바치고 마치 그것만을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적어도 10년 이상을 뛰면 누구나 최정상에 설 수 있다는 것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인생을 반드시 행복하게 한다고는 보장하지 못한다. 행복은 눈으로 보이지 않는 데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 사람의 달인이 태어나기까지는 주변의 세심한 배려와 균형잡힌 전인격적 교육이 요구된다. 천재들의 성공이 어떤 때는 자살이라는 비참한 최후로 마감되는 것도 성공이 모든 것의 결론이 아님을 증명하는 일이다.
진정한 금메달은 마음의 평강이 동반하는 승리이다. 내가 승리하면 누군가 여러 패배자가 있다는 것이 피할 수 없는 인생이라면 자신의 성공이 주변과 사회와 국가에 얼마나 기여할 것인가를 면밀히 살피고 이웃을 위한 인격체로 성장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라 하겠다.
말년에 그리스도를 영접해 구원받은 톨스토이는 “내 인생에서 그리스도를 뺀다면 그건 빈 수수깡이나 다름없다.”고 고백했고 어거스틴은 “나는 알기위해 먼저 믿었다. 이해는 믿음의 댓가였다.”면서 기독교신앙의 요체를 말했다. 인생뿐 아니라 뵈지 않는 영생까지도 꿰어보는 영안(靈眼)과, 자신을 창조주 앞에서 낱낱이 조명받기 원하는 처절한 심령의 성숙은 다른 여타의 승리를 진정한 의미의 승리로 이끌 것이다. <글:solleim5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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