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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출신 민주당 청년대표 김광진의 변태적 트윗 정치 - 미래한국

by 설렘심목 2012. 11. 9.

민주당 청년대표 김광진의 변태적 트윗 정치
백선엽 장군에 "빈족의 반역자 막말…어버이연합에 원색적 욕설
2012년 11월 09일 (금) 16:38:32 미래한국 futurekorea@futurekorea.co.kr

“백선엽은 민족의 반역자”

지난 10월 19일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이런 소리가 나왔다.

“국방부가 백선엽 장군과 관련된 뮤지컬을 제작하는 민간업체에게 4억 원을 지원하고자 예산 반영을 추진하기로 했다. 민족의 반역자인 백선엽 장군의 뮤지컬 제작에 세금을 지원하는 것은 부당하다.”

이 말은 순식간에 언론을 통해 전파됐다. 6.25전쟁의 영웅이 ‘민족 반역자’라니 무슨 해괴한 논리일까.

언론들의 추적이 시작됐다. 기자들은 그의 트위터에 온갖 막말이 나왔었다는 걸 밝혀냈다.

과거 ‘300억 들여 소를 죽이지 말고 북한에 보내자’고 주장하는가 하면 2011년 6월 북한이 “남측이 정상회담을 제의하면서 돈 봉투를 내놓고 천안함, 연평도 사건 사과를 해달라고 애걸했다”는 주장을 펴자 김광진 의원은 ‘언제부턴가 북한이 더 믿음이 간다’는 말을 트위터에 썼다.

2011년 나경원 前 의원이 서울시장 재보선에서 장애인 어린이 목욕 봉사활동이 논란이 된 것에 대해 ‘취미가 아이와 놀아주기라는 데 알몸으로 벗겨놓고…’라며 희롱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대한민국어버이연합에 대해 ‘나이 처먹었으면 곱게 처먹어. 당신 같은 어버이 둔 적 없어. 개 쓰레기만도 못한 것들’이라는 막말을 하는가 하면, 올해 1월 22일에는 ‘새해소원 명박급사’라는 말을 리트윗하기도 했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비난 여론이 비등했다. 김 의원은 결국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캠프에서의 보직을 사퇴했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의원이 되기 전에 한 말이다. 단순한 풍자에 불과하다”면서 “그래도 백선엽은 민족 반역자”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김광진 ‘막말 트윗’에서 ‘막말’로 발전(?)

이때 김 의원의 ‘막말’에 대한 색다른 보도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지난 10월 27일 김 의원이 대학생 시절 자신의 미니홈피에 부모의 재력을 내세워 여성을 유혹하거나 사람들에게 자랑한 글을 올린 사실이 드러났다.

“아테네...아빠가 간데... 쳇~ 그래서 난 터키와 이집트를 가기로 했소!" (2004. 7. 6.)

“그때가 그립다. 프리아의 밤부 레스토랑이나 모던바자의 독특한 향기도... 하리와나3000을 먹던 그날 밤도 비스도 아이들과 점령했던 옥상도... 제뉴의 그 망고쥬스 아저씨는 아직 그 자리에 있을까..." (2004. 8. 20.)

“이번 겨울에 저와 터키여행 떠나지 않을래요?" (2006. 4. 9.)

“생일 일주일 전! 다른 선물은 필요 없고 저 의자에 같이 앉을 참한 아가씨 어디 없을까.. 내가 성격이 좀 과격해서 그렇지 은근히 여자한테도 잘하고 애교도 많다구~~ 알고 보면 괜찮은 놈이야!" (2006. 4. 22.)

이어 28일에는 2010년부터 2011년 사이에는 트위터 등에 ‘모텔가자’는 말부터 수갑, 채찍 등 변태성욕자를 연상케 하는 글들을 여러 차례 단 것도 드러났다. 이런 글의 수가 적지 않은 것을 보면 김 의원은 ‘성욕에 지배받는 철없는 젊은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 같았다.

이 같은 사실이 보도되자 ‘막말돼지 김용민보다 더하다’며 비판 여론이 비등해졌다. 이에 더해 김 의원의 사회 경력도 논란이 됐다. 당초 민통당의 청년비례대표로 뽑힐 때 가장 내세운 ‘벤처사업 CEO’라고 했던 것도 사실은 자기 부모가 운영하는 회사에 이름만 걸어놓은 것이었다.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이 된 이후 재산 신고액에 대한 의문도 나왔다. 김 의원이 신고한 재산은 부채 3,500여만 원. 여기에는 여의도 소재 오피스텔 전세금과 선거 때 지게 된 빚 등이 모두 포함된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여기에는 그가 오너인 회사는 포함되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왔다.

2004년 한 지역 언론 보도에 따르면 김 의원 부모가 운영하는 전통차 업체의 연 매출액은 25억 원 가량이었다. 盧정권 시절 정부 지원금 17억 원을 받아 ‘농업법인’으로 만들면서 사업규모를 더욱 키웠다.

이 과정에서 ‘편의상 설립한 업체’가 김 의원이 CEO를 맡았던 와인회사 ‘갈대나라’다. 이 회사의 CEO로 등재됐던 김 의원의 전 재산이 부채 몇 천만 원 뿐이라는 게 이해가 안 된다는 주장이다.

김광진 의원은 민족문제연구소 작품?

이런 김 의원을 국회의원으로 만들어 준 건 민주통합당이다. 19대 총선 직전 ‘청년비례대표’ 경선 도중 부정의혹이 제기되면서 흥행에는 실패했다. 이 가운데 1위를 차지한 것이 김 의원이다.

김 의원이 ‘청년비례대표’로 뽑히게 된 이유로는 여러 가지가 꼽힌다. 그 중에서도 가장 먼저 꼽히는 게 순천YMCA와 민족문제연구소 경력이다.

김 의원은 전남 여수에서 태어났다. 이후 순천대와 대학원을 졸업한 뒤 순천YMCA(과거 최원석 동아그룹 회장집과 종로 금은방에서 강도를 했던 이학영 의원도 순천YMCA 출신이다), 민족문제연구소 전남동부지부 사무총장을 맡았다.

김 의원은 대학 시절부터 ‘운동권 생활’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2003년 대학 재학 시절 서울에 올라와 국회 앞에서 ‘송두율 처벌 및 추방에 반대’하는 1인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당시 그가 만든 피켓에는 ‘사상과 이념은 비판의 대상이지 처벌의 대상이 아니다’ ‘악법은 법이 아니다’ ‘대한민국 경계인도 못 푸는 쩨쩨한 나라’ 등의 문구가 쓰여 있었다. 이런 ‘운동권 사상’을 기반으로 해서일까. 결국 민족문제연구소 일을 했다.

중요한 건 김 의원이 아니라 민족문제연구소다. 민족문제연구소의 유래와 주요 인물들에 대한 기사는 지금까지 언론에서 많이 다뤘다. 한 마디로 종북적 색채가 강한 편이다.

민족문제연구소가 우리 사회에서 널리 알려진 것은 김대중 정권부터지만 전면에 나서 정부 위원회와 입법까지 주도한 건 노무현 정권부터였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친일청산특별법’과 관련 위원회다.

2004년 3월 22일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주도한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이 통과된 뒤 노무현 정부는 2005년 5월 31일 대통령 직속기구로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를 만들었다.

당시 이 위원회에는 민족문제연구소와 관련이 있는 인사들이 대거 활동했다. 이들은 2006년 12월 7일 노무현 대통령과 국회에 ‘친일반민족행위자 106명’의 명단을 보고서로 제출했다.

이어 두 차례 더 내놓은 보고서를 통해 704명을 추가하는 등 모두 1,006명의 ‘친일파’ 명단을 확정했다. 이후에는 이 보고서보다 더욱 방대한 범위의 ‘친일인명사전’을 만들었다.

그런데 여기에는 ‘친일파’라고 보기 어려운 사람들도 끼어 있어 논란이 일었다. 특히 그 중에는 6.25전쟁을 승리로 이끈 군인들이 많았다.

지금도 한국군과 미군들에게는 ‘전설’로 통하는 백선엽 장군, ‘흥남철수’의 주인공인 김백일 장군, 5.16혁명에 부정적인 의견을 냈던 이종찬 장군, 재향군인회를 창설한 김석범 장군 등도 포함돼 있다.

해괴한 '친일' 잣대

김광진 의원은 이 중 백선엽 장군에 대해서만 말했지만 2011년에도 유사한 일이 있었다. 경남 거제시에 있는 김백일 장군 동상 철거시위다. 당시 ‘자칭 거제시민단체 회원’이라는 사람들은 김백일 장군을 ‘친일파’ ‘민족 반역자’라고 불렀다.

김백일 장군은 ‘흥남철수’라는 6.25전쟁의 기적을 일궈낸 영웅이다. 1950년 12월 당시 美10군단 아몬드 장군은 중공군의 파상 공세에 밀린 유엔군을 구하기 위해 흥남철수를 준비한다. 이때 북괴군 치하에서는 학살당할 것이라고 판단한 민간인들도 흥남부두로 몰려들었다. 그 수는 수십만 명으로 추산됐다.

이를 본 아몬드 장군은 “이러다 유엔군까지 다 죽는다”며 민간인 탑승을 거절하라고 명령했다. 이때 육군 1군단장이었던 김백일 장군이 “민간인들을 지키기 위한 전쟁이다. 무조건 태워야 한다”고 반발해 결국 탄약과 수송물자까지 모두 버리며 주민 10만여 명과 유엔군을 모두 철수시켰다.

이때 민간인을 태운 상선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가장 많은 민간인을 태운 배’로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할 정도였다. 문재인 민통당 대선후보도 이런 ‘흥남철수’로 탈출한 부모에게서 태어났다. 그래서 고향을 경남 거제시라고 적는다.

김 의원이 백선엽 장군에 대해 말하는 근거도 ‘임관 후 독립군 때려잡던 간도특설대 출신’이라는 민족문제연구소의 주장인데 이 또한 사실과 다르다.

백선엽 장군은 일제시절 만주군관학교 출신으로 간도특설대 소위였다. 이는 백선엽 장군 본인도 확인한 사실이다. 하지만 이때 독립군은 만주에서 사라진 뒤였다. 1920년대 소련이 꾸민 ‘자유시 참변’으로 독립운동가와 독립이 대부분 학살됐기 때문이다.

1940년대 초반 백선엽 장군이 간도특설대 장교로 활동할 때 만주에는 독립군이 거의 없었다. 남은 독립지사들은 상해임시정부 산하의 ‘광복군’ 뿐이었고 만주와 중국 동북지역에서 활동하던 조직은 공산당 세력인 팔로군과 마적떼 뿐이었다. 때문에 백 장군은 “내가 근무하면서 독립군을 구경도 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그럼에도 민족문제연구소 등이 백 장군을 ‘친일파’ ‘민족 반역자’로 꼽는 것은 ‘6.25전쟁 영웅’이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민주당은 민연 출신을 환영한다?

김 의원과 같은 알려진 사람만 이런 게 아니다. 2011년 11월 26일 광화문에서 한미 FTA 반대 불법시위를 막는 박건찬 종로경찰서장이 시위대에게 폭행당했다. 이때 가해자 중 한 명으로 27일 자택에서 체포된 김모 씨(54)도 민족문제연구소 출신이었다. 김 씨는 열린우리당 소속으로 시장 선거에도 출마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이처럼 민통당은 유독 민족문제연구소 출신들에게 관대하게 보인다. ‘친일파’ 문제를 정치 전면에 내세우는 모습도, 김일성 일가 체제의 친일파 등용에 대해서는 문제 제기를 하지 않는 점도 민족문제연구소와 많이 닮았다.

30대 초반의 국회의원이 6·25전쟁 당시 낙동강 방어선, 칠곡 다부동 전투, 38선 돌파, 평양 입성(入城), 1·4 후퇴 뒤 서울 탈환 등의 주인공이었던 백선엽 장군과 다른 6.25전쟁 영웅들에 대해 ‘민족 반역자’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모습도 민족문제연구소와 오버랩 된다.

김 의원의 ‘민족 반역자’ 발언은 자신이 했던 ‘막말 퍼레이드’로 소화되는 분위기다. 하지만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에는 과거 열린우리당 시절 ‘친일파 청산’ 소동에서 보듯 민족문제연구소와 같은 시각을 가진 이들이 많다.

이들이 우리 사회를 주도하게 된다면 6.25 전쟁 영웅은 물론 독립지사, 산업화 역군들까지도 ‘친일파’라는 명목으로 매도당하고 숙청당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미래한국)

전경웅 기자 enoch205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