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0.14. 주일예배<히13:9-15. 입술의 열매인 찬미제사, 찬양예배
본문은 예배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가르치고 있으며 본질이 아닌 것을 보며 우왕좌왕하는 교인들에게 충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올라가신 골고다언덕과 구약시대에 성소에 올려진 제물이 영문 밖에서 태워진 사실을 대비대조하며 설명합니다. 한 절씩 보기로 합니다.
9절 : “여러 가지 다른 교훈에 끌리지 말라 마음은 은혜로써 굳게 함이 아름답고 음식으로써 할 것이 아니니 음식으로 말미암아 행한 자는 유익을 얻지 못하였느니라.”
심령을 단단히 하고 가꾸는 것은 주의 은혜인 복음으로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것이며 공연히 음식먹는 관습이나 율법에 무게를 두어 정죄하는 교훈은 받지 말라는 겁니다.
10~11절 : "우리에게 제단이 있는데 장막에서 섬기는 자들은 그 제단에서 먹을 권한이 없나니 이는 죄를 위한 짐승의 피는 대제사장이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고 그 육체는 영문 밖에서 불사름이라." 제단의 제물처리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피는 성소로 대제사장이 갖고 들어가고, 죄용서를 위한 제물은 백성들의 죄로 채워져 저줏거리가 됐기 때문에 먹지 않고 그 육체는 영문밖에 갖고 나가서 태워 없앱니다.
12절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제사법에 의해 속죄의 어린양으로 오신 주님도 영문밖에 나가서 십자가에 달리셨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죄에 묶인 인간들에게 사슬을 풀고 놓임을 받아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는 엄숙한 제사의 순서였습니다. 13절에서는 “그런즉 우리도 그의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고 합니다. 예수를 개인의 구원주로 모신 사람들은 그의 영원한 생명과 영광만을 받는 게 아니라 그 수치와 능욕까지도 받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롬8:18절에서 바울의 고백을 들어봅니다.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결국 믿음의 문제입니다. 우리가 받을 천국의 기업과 영생을 어떻게 믿어 드리냐가 이 땅을 살아가는 능력입니다. 믿음의 깊이가 아직 깊지 못하다면 고난은 고난 그 자체입니다. 무의미한 고난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어 분명히 알고 있듯이 주님의 나라 천국에 대한 열망과 끊임없는 기쁨이 신앙체질 된다면 어떠한 고통도 견딜 이유와 힘을 얻게 됩니다. 우리는 열두 제자에게서 그 역력한 증거를 봅니다.
열두제자가 열두 사도로 바뀐 건 마가다락방의 성령체험이 직접적인 동기였습니다. 제자들은 주님과 함께 사역을 했고 죽으심과 부활과 승천을 눈으로 똑똑히 본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순교는 그래서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다시 살아나셔서 하늘에 오르신 주님을 따라가는 것은 극히 당연한 것이었고 그것이 극심한 고통일지라도 자신들이 장차 받을 영광에 그야말로 감히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후 초대교회 300여 년간 속사도시대에는 그 믿음과 교회부흥이 절정을 이루었습니다.
서머나 교회의 감독 폴리캅은 화형장에서 의연하게 예수이름을 크게 외쳤습니다. 또 안디옥교회 감독 이그나티우스는 마지막 짐승의 밥이 되기 위해 형장으로 끌려가면서 폴리캅을 비롯한 친구에게 이런 편지를 손에 쥐어줍니다. “그대들은 나를 위해 타협치 말거라. 또 내가 풀려나기도 바라지 말라. 나는 밀알이 되고 짐승의 이빨에 가루가 되어 하나님의 깨끗한 빵이 되기를 원하노라. 그리스도를 위해 벌을 당하고 또 다시 살아나서 그리스도께로부터 오는 자유를 얻을 것을 믿노라. 그리스도를 소유할 수 있다면 불 가운데서나 십자가위에서나 짐승의 아가리에서 뼈가 가루가 되어도 손과 뼈가 잘리우더라도 아무 것도 두려워할 것이 없노라. 나에게는 오직 그리스도만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는 굶주린 사자들이 으르렁거리는 형장으로 들어가면서 기쁜 얼굴로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온 세상을 다스리기보다는 차라리 그리스도를 위하여 죽겠노라.”우리잠시 기도합시다.
“우리에게도 세상과 육체와 죽음을 이길 믿음을 주시옵소서. 귀한 믿음의 선진들이 간 용감한 믿음의 길에 주님이 함께 하신다면 못이길 것이 없는 줄 믿습니다.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풍요에 찌들어 나태하고 비겁하며 왜소해진 영을 말씀으로 일으켜 주소서. 이땅에 미련을 둔자들이 아니라 하늘에 소망으로 모든 것 이기는 말씀의 영, 하늘에 속한 자들이 다되게 하옵소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잠시 나그네로 이 땅에 왔습니다. 날짜는 달라도 우린 다 하나님 앞으로 갑니다. 거기 놀라운 하나님의 세계가 펼쳐집니다. 손으로 짓지 않은 기가 막힌 집으로 가는 겁니다. 정말 잠시 지나는 게 이 세상입니다. 너무 심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혹시 주의 영광을 위해서 피할 수 없는 고난이라면 죽음이라도 이길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하세요. 이길 힘은 오직 예수님께만 있습니다. 그분은 십자가에서 모진 고통으로 죽으시고 사흘만에 죽음을 이기셔서 다시 일어나셨습니다. 그리고 40일 간이나 열두 제자와 오백여 사람들 앞에 분명히 부활을 증거했습니다. 그리고 또 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구름에 싸여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 아멘, 할렐루야. 오늘 우리가 본문에서 붙잡아야 할 진리가 있습니다. 14절입니다. “우리가 여기에는 영구한 도성이 없으므로 장차 올 것을 찾나니”
1. 다시오실 예수님은 우리의 영구한 도성입니다.
이 땅에는 영원한 도시, 영구한 성읍이 없습니다. 우리에게 영원한 도성은 오직 예수님뿐입니다. 우리가 영원히 살 집은 예수님의 품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우편에 앉아계셔서 모든 것을 지금 통치하고 계십니다. 그분은 보혜사, 곧 돕는 천사와 영으로 성도들과 교회를 돌보고 계십니다. 그분의 품이란 그분이 계신 하늘나라 천국을 말합니다. 주께서 약속하셨습니다. 반드시 속히 다시 오시마고 성경 곳곳에서 수없이 말씀하셨습니다. 계시록 22:20절입니다.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이번엔 본문 15절을 함께 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2. 찬미의 대상은 오직 예수그리스도입니다(15절).
왜 찬미의 대상은 오직 예수 한 분이십니까? 우리가 이 땅에서 우리의 구원이 예수 외에 어떠한 다른 이름을 주신 적이 없다고 성경(행4:12)이 밝혔기 때문입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사람 중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고 잘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예수님만 찬미해야 합니다. 찬미란 그분의 흠없는 의와 사랑과 아름다움을 높이는 것입니다. 찬양의 노래로 높이 올려드리는 것입니다. 우린 춤과 찬양으로 선교하는 교회로 성장해 갈 것입니다. 간혹은 지친 지체간의 위로와 교제를 위해 축복하며 수평적인 노래를 부르기도 하지만 본래 찬양의 의미는 위로만 올려지는 것이어야 합니다. 옆으로 나누는 노래는 그냥 거룩한 노래, 곧 성가로서 공예배중에는 그래서 잘 사용하지 않는 것이 옳습니다. 앞으로 찬양사역자를 소망하는 사람들은 이 부분에 깊은 고찰과 공부가 필요할 것입니다. 다시한번 15절을 함께 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3. 찬미의 본질은 증거입니다.
예수찬미는 결국 예수증거입니다. 곧 예수전도는 예수찬미입니다. 찬미는 기쁨없이 할 수 없는 일이며 믿음없이는 기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찬미예수는 예수증거의 고백적표현이요, 가장 거룩한 예술적 표현이기도 합니다. 시와 노래와 찬미로서 주님을 고백하는 일은 얼마나 감사하고 즐거운 일인지요. 여러분이 부르는 찬양의 노래들은 예수님께서 살아 계시다는 것을 만방에 기쁨으로 공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건 우리의 신앙고백입니다. 만약 우리 예배활동 중에 찬양이 빠진다면 어떻겠습니까?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북한 지하교인들은 모여서 예배를 드릴 때 들키지 않기 위해서 찬송을 입술로만 부르고 소리를 내지 못한다고 합니다. 우리는 지금 세계기독교역사 중 가장 좋은 환경에서 예수믿는다는 사실을 아시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노래는 오직 예수그리스도십니다. 언젠가는 불언간 기도할 수 없고 노래부를 수 없는 계절이 오기 전에 부지런히 찬송하고 기도하며 하나님앞에 나아갑시다. 기도가 멈추지 않고 노래가 멈추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주님은 영원한 도성으로 날마다 함께 하실 줄 믿습니다. 우리의 영원한 도성이신 좋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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