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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의 교훈-로마 천년왕국은 개방정신의 상징-코리아플러스 김병훈기자

by 설렘심목 2012. 7. 19.

 

세계사의 교훈-로마 천년왕국은 개방정신의 상징

 

 

개방과 교류가 한국 성장의 밑거름.삼국.고려시대 무역 활발, '쇄국조선'넘어 수출대국 성장

 

 

‘지성에서는 그리스인보다 못하고, 체력에서는 켈트·게르만족보다 못하고, 기술력에서는 에르투리아인보다 뒤졌으며, 경제력에서는 카르타고에 한참 뒤졌던 로마인. 그들이 타 민족을 정복하고 1200년이나 영속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 우리나라에서도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로마인 이야기’의 저자 시오노 나나미가 대작의 출발점으로 삼은 문제의식이다.

 

로마는 작은 도시국가에서 출발해서 이탈리아 반도를 통일하고 계속 전진하여 지중해를 중심으로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에 이르는 사상 최초의 대제국을 건설했다. 훨씬 먼저 유럽 최초의 문명을 열고 지중해 일대에 여러 식민도시를 거느렸던 그리스는 로마에 의해 무너졌다. 두 문명의 성쇠를 가른 차이가 해답이 되지 않을까.

 

역사의 통설은 그리스와 다른 로마의 특징으로 ‘보기 드문 개방정신’을 꼽는다. 그리고 그 정신이 외적으로 표현된 사례로써 이민족에게도 개방된 ‘로마의 시민권’과 제국의 영토를 방사선으로 연결하는 ‘로마의 길’을 지적한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자신들은 ‘헬레네스’라고 칭하고 다른 종족들을 ‘바르바로이’라고 부르며 야만인으로 취급했다. 해상무역으로 번창한 아테네조차도 부모가 아테네시민일 경우에만 시민권을 주는 폐쇄성을 유지했다. 고대 그리스 철학을 집대성하여 서양 학문의 아버지가 된 아리스토텔레스도 아테네시민권을 얻지 못하고 이방인으로 지내야 했다.

 

반면 로마는 국가 건설 초기부터 이민족을 받아들이고 시민권을 주는 데 적극적이었다. 플루타르코스가 ‘영웅전’에서 “패자조차도 자기들에게 동화시키는 이 방식만큼 로마의 강대화에 이바지한 것은 없다”고 기록한 것이 로마의 성공요인에 대한 명쾌한 설명이다.

 

국가를 형성하기 시작한 로마는 주변 부족과 대등한 입장에서 서로 합쳐 공존하는 방식을 택했다. 다른 부족의 자유민에게도 로마인과 똑같은 완전한 시민권을 주었고 지도자에게는 원로원 의석도 제공했다. 인구 증가와 병력 증강을 위한 방책이었지만 이 방식이 대제국의 성립을 가능하게 했다.

 

로마 시민권자는 사유재산, 피선거권, 안전, 항소권 등을 보장받는 대신 16~40세까지 현역군인으로 복무해야 한다. 정복전쟁을 통해 영역을 넓혀가면서 정복지의 주민을 시민이자 로마 보병으로 받아 들여 다시 새로운 정복에 나서는 방식은 가장 효율적인 확대재생산을 가능하게 했다. 시민권 개방, 출신과 신분에 관계없이 능력 있는 인재를 우대함으로써 천년왕국의 기틀을 다진 것이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생긴 것처럼 로마는 제국의 구석구석을 연결하는 도로를 건설했다. 전체 길이가 8만km, 지선을 합치면 15만km에 이르는 길에 다리를 놓고 터널을 뚫어가며 연결했다. 4m 이상의 마차길 양쪽에 3m 정도의 인도를 배치한 이 길은 현재 우리나라 고속도로보다 튼튼한 지반공사로 유명하며 2000년 뒤 이탈리아는 로마의 길에 그냥 아스팔트만 깔고 국도로 이용하고 있다.로마는 길을 통해 도·농간, 민족간 교류를 확대하여 제국을 한 경제권으로 통합했으며 갈등을 해소하고 치안을 유지하는 데도 길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비슷한 시기에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은 북방 오랑캐의 침입을 막기 위해 만리장성을 쌓기 시작했다.중국은 화이(華夷)라는 말에서 보듯 이민족을 오랑캐라며 엄격히 구분하고 야만시했다. 역대왕조들은 엄청난 물자와 백성을 동원해 야만족을 막기 위해 만리장성 공사를 계속했다. 그러나 아무리 튼튼하게 장성을 쌓아도 소용없었다. 만리장성은 흉노, 거란, 몽골, 여진 누구도 막지 못했다. 중국 통일왕조의 수명이 200년을 넘기기 어려웠다는 사실은 시사적이다. 길을 만든 로마는 천년왕국이 됐지만 벽을 쌓은 중국 왕조는 단명했다.

 

문명의 발전은 개방을 통해 이루어졌다. 그리스는 고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유산을 바닷길을 통해 받아들여 서양문명의 기초를 세웠다. 로마는 그리스문명을 고스란히 흡수했다.

 

유럽이 중세 암흑기에 들어갈 때 아시아, 아프리카의 로마 영토를 차지한 이슬람제국은 그리스와 로마의 유산을 더욱 발전시킨 뒤 르네상스의 유럽에 돌려주었다. 유럽은 산업혁명을 통해 가장 앞선 현대문명을 일구어 냈고 이것이 곳곳으로 퍼져나간 것이 오늘의 세계다. 문명을 받아들이고 다시 넘겨주는 흐름 속에 인류 문명이 성장한 것이다.

이처럼 문명은 여러 곳으로 전파되며 성장했다. 받아들이고 발전시킨 나라는 융성했고 소외된 나라는 사라졌다. 실크로드와 바닷길이 세계사를 바꾼 것처럼 개방과 교류가 역사발전의 통로였다.

 

석굴암의 아름다운 불상은 그리스 조각으로부터 비롯됐다. 기원전 4세기 알렉산더 대왕의 원정을 따라 헬레니즘 문화가 인도 북부에 전해져 간다라불교문화를 꽃피우게 된다. 여기서 최초의 불상이 만들어지고 서역, 중국을 거쳐 한반도에 전해졌다. 백제가 일본에 불상을 전한 게 6세기 무렵이다. 문호개방과 교류의 의미는 이런 것이다.

 

김병훈 기자 (코리아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