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들 일부러 그랬겠나… 反美단체, 우리 놔달라
미선양과 효순양의 추모제가 열린 13일 오전 11시. 추모공원에서 500m 떨어진 미선양의 집 철문은 닫혀있었다. 수 차례 두드렸지만 기척이 없었다. 걸음으로 10여분쯤 떨어진 효순양의 집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심미선양의 할머니 윤씨(78)와 아버지 심씨(58)가 돌아온 것은 오후 2시쯤. 추모제가 끝난 뒤였다. 아버지는 90도로 허리를 숙이며 "제발 이제는 우리를 놓아달라"고도 말했다.
― 사건이 있은 뒤 10년이 지났다.
(아버지) "딸 잃은 죄가 이렇게 큰 줄 몰랐다. 우리가 미선이를 잊은 적은 한 번도 없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이제 우리를 잊어줬으면 좋겠다."
― '효순·미선 추모공원'에 추모제가 열렸다.
(이하 할머니)"와달라는 요청을 받았지만 거절했다. 몇 년 전부터는 아예 안 간다. 반미(反美)단체들이 연락해 와도 '끼고 싶지 않다'고 답했다. 오늘 추모제도 우리 의지와는 상관없이 치러진 것이다."
― 외부와의 접촉을 끊은 이유가 있나.
"부모가 죽어도 3년이 지나면 무뎌진다고 하는데 지난 10년간 우리 가족 모두가 너무 상처받았다. 남은 가족들이라도 다시 일어서야지 않겠나. 미선이가 죽고 나서 2006년 집을 다시 지었다. 사진과 일기장도 다 태웠고. 자꾸만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게 싫다."
― 아직도 아른거릴 것 같다.
"한 번은 꿈에서 (미선이가) 교복차림으로 내 앞에 섰다. 말없이 물끄러미 바라보더라고. '미선아'하고 부르니까 하늘로 훨훨 날았다. 눈뜨니까 나도 울고 있었고…. 한참 동안 미선이 얼굴이 너무 생생히 떠올라 괴로웠다. 이제야 겨우 눈에 아른거린다."
― 미군에 악감정이 남아 있는가.
"그 사람들이 일부러 그랬겠나. 그날 너무 수가 안 좋았던 거지…."
― 다른 가족은 어떻게 지내나.
"(거실에 걸려 있는 가족사진을 가리키며) 미선이 오빠가 곧 결혼한다. 언니도 올 가을에 결혼 날짜를 잡아뒀고. 남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지 않겠나. 이젠 보내줘야 하는데 아직도 너무 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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