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서독의 사회학자 페터 루츠는 ‘내재적(內在的) 동독 접근법’을 제시했다. 사회주의 국가를 자본주의나 자유민주주의적 척도로 분석하는 외재적(外在的) 접근은 일방적이라는 지적에서 출발한 것이다. 동독을 사회주의 체제의 틀 안에서 봐야 한다는 루츠의 새 패러다임은 당시 학계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하지만 루츠식(式) 연구자들은 동독 체제의 억압적이고 비민주적인 구조를 알고 있으면서도 의식적으로 연구 주제로 삼지 않았고, 동독 정권에 타격을 주는 주제는 등한시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1990년 독일 통일 후 서독에서 암약하던 옛 동독 비밀경찰(슈타지)에 관한 비밀문서가 공개됐다. 내재적 접근법으로 동독 사회주의를 우호적으로 평가했던 루츠가 슈타지의 포섭 대상이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동독의 간첩인 그가 서독 학자로 위장해 암약했다는 얘기다. 루츠의 내재적 접근법은 독일 통일로 사실상 막을 내렸고 그는 어느 날 숲 속에서 의문의 변사체로 발견됐다.
송두율은 루츠의 내재적 접근법에 동독 대신 북한을 대입한 버전을 만들었다. 그는 1988년 “북한사회를 평가하려면 북한사회 내부의 내재적 요구를 중점적으로 살펴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한정권의 주요 정책이나 인권문제 등을 북한의 특수성을 감안해 평가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것이 우리나라에서 자생적 주체사상파가 확산되는 불씨가 됐다.
그나마 동독은 당시 사회주의 선진국으로 꼽혔지만 송두율이 선택한 북한은 세계적으로 낙후한 반인륜적 체제였다. 그의 내재적 접근법은 김일성 왕조(王朝)의 관점에서만 북한을 이해하는 이념적 편향성을 안고 출발했다. 내재적 접근법 신봉자들은 수십만의 탈북자 가운데 한국 안착에 성공한 2만여 명이 전하는 북한 내부의 생생한 실상을 ‘믿을 수 없는 헛소리’로 치부했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불편한 것에는 눈을 감아버리는 식이다.
송두율의 내재적 접근법은 볼모로 잡힌 인질보다 인질극을 벌이는 인질범의 안전을 더 걱정하는 역설을 낳았다. 내재적 접근론자는 북한이 핵 실험 등으로 대한민국뿐 아니라 전 세계를 상대로 협박을 해도 북한을 자극해서는 안 된다며 역성을 든다. 천안함 폭침이나 연평도 포격 때도 마찬가지였다. ‘바깥’의 보편적 기준으로 문제의 핵심을 파악한 뒤에 ‘안’의 정황을 헤아리는 것이 누가 봐도 올바른 연구 방법일 텐데 앞뒤가 바뀌었다. 이들이 종북(從北)세력이다. 독일의 루츠가 슈타지의 ‘위장간첩’이었고, 송두율이 ‘김철수라는 가명을 쓴 북한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가 폭로)이었다는 사실이 이상해 보이지 않는다.
통합진보당 당권파 이석기 김재연 이상규는 한결같이 “송두율의 내재적 접근법을 신봉한다”고 말한다. 송두율 패러다임의 세례를 받은 ‘송두율 키즈’다. 이들은 입을 맞춘 듯 “북한 체제도 일리가 있다”며 북한 지배층을 거든다. 북한 체제의 근간을 뒤흔드는 3대 세습, 북한 인권, 북핵 문제는 신성불가침이다. 그러면서 2300만 북한 주민의 지옥 같은 삶에 대해서는 내재적 접근을 하지 않는다.
주사파 당권파 그룹이 외부에서 “사교(邪敎)집단 같다”는 비판을 받아도 아랑곳하지 않는 배경엔 내재적 접근법이 작동하는 것 같다. 외부의 평가보다 당권파 내부의 운영원리가 더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당권파 핵심인 이석기를 살리기 위해 당권파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것도 주체사상의 수령론을 베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송두율 키즈의 철 지난 레퍼토리를 언제까지 지켜봐야 하나.
정연욱 논설위원 jyw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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