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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사랑.시사.

자칭 진보라하는 자들이 진정한 진보로 거듭나야 정치발전 이룬다. - 임혁백교수 -동아닷컴

by 설렘심목 2012. 5. 25.

 

 

대한민국 진보, 이대로는 대중 속에 뿌리내릴 수 없다.

 

근대 서구 진보의 사조(思潮)

 

최근 통합진보당의 당내 갈등을 보면서 진보정치 투쟁은 노동자 정당과 보수 정당 간 투쟁 이전에 무엇이 진보적인 노동자 정당인가에 관한 정의(定義)를 둘러싼 노동자 정당 내부의 투쟁이라는 뉴욕대 셰보르스키 교수의 언명이 떠올랐다. 한국 진보 정당의 문제에 대한 해답이 이 짧은 구절 속에 들어 있지 않나 생각된다.

19세기 말 독일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소수의 착취자 외에는 모두 프롤레타리아트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정통 마르크시즘의 계급 양극화이론을 믿고 혁명이 아니라 ‘선거 참여를 통한 사회주의’를 실현하려 했다. 사민당은 선거에 참여하자마자 제1당이 됐으나 집권에 필요한 다수당은 되지 못했다. 독일 사민당의 장밋빛 꿈은 제1차 세계대전 후 노동자 비율이 감소함으로써 깨졌고 영구적 선거 패배에 직면하자 사민당 내부에서 ‘누가 노동자계급인가’를 둘러싸고 이념투쟁이 벌어졌다. ‘사민당 집권플랜’의 해답은 1959년 ‘고데스베르크 강령’에서 나왔다. 집권하기 위해 사민당은 정통 노동계급의 정당이 아니라 임금생활자의 정당이 돼야 하고 그래야 ‘머리로 노동’을 하는 지식인, 화이트칼라, 중산층, 주부, 퇴직자, 학생까지 사민당의 일원으로 끌어들여 다수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사민당은 마르크스주의, 공산주의 이념과 결별하고 자본주의와 나토를 받아들이고, 국유화 같은 노동계급에만 호소하는 정책 대신 소비자, 납세자, 시민, ‘국민’에게 어필하는 미국 스타일 정강과 정책으로 선거에 승리하고 집권할 수 있었다.

대한민국 진보와 보수는 북한을 잣대로 이뤄진 기형적 편가름

 

민주화 이후 진보 정당 건설이 허용되면서 한국 진보주의자들도 제도 정치권으로의 진입을 시도했으나 2004년 총선까지 의회 진입에 성공하지 못했다. 2004년 그들을 제도 정치권 내에 진입시킨 것은 1인 2표 정당투표제라는 선거제도 개혁의 효과였지 정당 쇄신과 혁신의 결과가 아니었다. 민주화 이후 진보 정당 운동이 선거정치에 실패한 것은 주류 보수 정당들과의 투쟁에 들어가기 전에 한국 진보 정당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 사이에 무엇이 진보인가를 둘러싸고 내부 투쟁이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NL(민족해방)과 PD(민중민주) 논쟁이다. 그러나 한국의 진보운동 노선투쟁은 스탈린주의를 벗어나지 못한 시대착오적 성격을 띠고 있었다. 더구나 치열한 노선투쟁 결과 북한을 추종하고 주한미군 철수, 한미동맹 해체, 애국가 거부 등을 주장하는 NL이 주류가 되면서 친노동이냐 친자본이냐가 아니라 친북이냐 반북이냐가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정체성의 기준이 되는 기형적인 이념 균열구조가 형성됐다. 한국의 진보운동은 이런 기형적 이념 균열구조를 형성함으로써 주류 보수정치세력으로부터 종북주의자 또는 친북주의자라는 색깔론적 공격을 자초했다. 그 결과 한국의 진보 정당은 자신의 핵심 지지자가 되어야 할 노동자, 서민, 빈민, 지식인들로부터 외면당하면서 지지기반의 급격한 축소로 2008년 선거에서 참패했다.

통합진보당 사태는 한국의 진보 정당 운동이 붕괴할지 모른다는 위기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러나 새가 양 날개로 날듯 대의민주주의도 좌와 우의 정치세력이 균형을 이뤄야 잘 작동할 수 있다. 따라서 진보 정당도 의미 있는 의회정치세력으로 살아남아야 한국 민주주의의 질이 높아질 수 있다.


3대세습 北추종하면 진보 아닌 그야말로 수구좌파

현재 ‘진보 정당 구하기’는 진보를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해 문제 인사들을 퇴출시킨 뒤 진보정당을 개조, 혁신하거나 다시 새로운 진보정당을 창당해 진보를 재구성한다고 해서 진보가 살아날 수 없다. 진보를 다시 살려내려면 진보정당 재구성에 앞서 한국 진보의 이념을 재정의하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 김일성 주체사상 체제가 3대째 세습하는 마당에 계속 북한을 모델로 한다면 그것은 진보가 아니라 시대착오적인 수구좌파세력으로의 후퇴다. 민주적인 노동자의 정당이라면서 대기업 귀족노조를 제외한 비정규직, 실업자, 서민의 팍팍한 삶에 관심 없이 통일운동에만 몰두하는 ‘노동 없는 진보정치’도 진보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주사파를 반대한다면서도 세계화 시대에 자본주의 자체를 거부하는 PD의 비현실적인 진보도 아니다.

 

진정 대중깊이 뿌리내릴 수 있는 진보란?


지금까지 한국 진보주의자들은 1980년대 민주화 투쟁 시기에 반미, 민족해방, 반자본주의, 반독재, 민중해방으로 정의된 ‘진보’를 민주화 이후 탈냉전, 세계화 시대에도 계속 사용해 왔다. 그 결과 한국의 진보정당은 선거정치에서 성공하지 못했다. 한국의 진보는 서구의 사민당이 선거에 승리하기 위해 계급보다는 ‘국민’ 또는 유권자를 조직하려 했고 그러기 위해 노동계급의 정당이 아닌 임금생활자 또는 국민의 정당으로 자신을 재정의한 데서 교훈을 얻지 못했다. 헤겔은 ‘법철학’ 서문에서 “합리적인 것은 현실적이고, 현실적인 것은 합리적이다”라고 했다. 생경하고, 급진적이며, 조야한 비현실적인 이념으로 정의된 진보는 대중에 뿌리내릴 수 없다. 오직 현실적 대중의 이익에 기반하여 정의된 진보로 무장한 진보 정당만이 의회에 진입할 수 있고 집권도 꿈꿀 수 있다.

임혁백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