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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예수!!

김일성을 상대로 아직도 '神社참배'하는 從北기독교인들!

by 설렘심목 2012. 5. 3.

김일성을 상대로 아직도 '神社참배'하는 從北기독교인들!

 

신사참배를 합리화하였던 세력이 從北기독교 세력으로 변신?

 

누가 神社참배를 거부하여 한국 기독교의 정신을 지켜냈는가?

趙甲濟
한국 기독교의 主流인 장로교파의 칼빈주의가 日帝 때 신사참배를 거부한 신앙적인 힘이었음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지금 한국 개혁적 보수기독교단의 主流인 고신파와 합동파가 아시아 기독교중에선 유일하게 천황에 대한 경배를 거부하고 수많은 성직자들의 옥살이와 獄死로써 신앙의 자유를 지켜낸 뿌리를 갖고 있다. 반면 김일성 우상숭배주의에 호감이나 이해를 보이는 일부 기독교파의 뿌리를 거슬러올라가보면 日帝 때의 신사참배파와 만나게 된다. 천황과 김일성은 칼빈주의자들의 눈에는 똑 같은 우상들이다. 하나님을 참칭하는 사탄의 제자들인 점에서 같다. 그런 점에서 우상숭배에 넘어가는 기독교가 反共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반대하는 속성을 가진 점도 이해가 간다.

한국기독교의 칼빈주의 신학을 지켜온 가장 핵심적인 두 신학자가 있다. 순교정신과 개혁적 보수주의를 이어가는 高神派의 산실인 (부산) 고려신학교의 교장을 지낸 朴亨龍 朴允善 박사. 이 두 분은 미국 칼빈주의 신학의 거두였던 그레샴 메이첸(J. Gresham Machen) 박사의 제자였다. 메이첸 박사는 칼빈주의 신학의 本山이던 프린스턴 신학교가 자유주의 신학으로 변질된다고 판단하여 이 학교 교수직을 그만두고 필라델피아로 가서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을 세운 분이다. 朴亨龍은 프린스턴 신학교에서 메이첸 교수로부터 칼빈주의 神學을 배운 뒤 귀국하여 평양신학교 교수로 취임했다. 한국의 초창기 장로교 총회는 신학의 정통성을 지켜가기 위하여 1901년에 벌써 평양신학교를 세웠다.

이 학교에서 朴亨龍은 '자유주의 신학'과 맞섰다. 그는 김재준, 송창근 같은 신학자들의 글을 학술지에 싣는 데 반발하여 편집위원직 사표를 내기도 했다. 日帝가 기독교에 神社참배, 즉 천황에 대한 경배를 강요하자 1938년 조선예수교장로회는 신사참배를 수용하는 결의를 하고 말았다. 이에 반대한 평양신학교는 자진폐교로써 대응했다. 朴亨龍 박사는 신사참배 강요가 없는 만주국 봉천으로 망명길에 올랐다. 주기철 목사 등 많은 칼빈주의 목사들이 신사참배에 반대하여 투옥되고 옥사했다. 특히 경남지방의 목사들이 많이 투옥되었다. 주남선(거창읍교회), 최상림(남해), 황철도(진주), 김을길(거제), 이인제(경남), 손양원(경남), 한상동(경남), 손명복(경남), 이원영(안동) 목사들이 투옥되었던 분들이다. 주기철 목사 등 약50명이 獄死하였다.

광복 직후 신사참배를 거부했던 신도들이 박형룡 박윤선 박사를 모시고 세운 신학교가 부산의 고려신학교였다. 이 신학교를 母胎로 하여 만들어진 것이 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파였다. 신사참배를 거부했던 목사들은 신사참배를 했던 기독교인들의 반성을 촉구했다. 이 논란 과정에서 예장은 고신, 합동, 통합측으로 갈라졌다. 일제 시대에 신사참배했던 사람들이나 자유주의적 성경관을 가진 기독교인들이 김재준 박사의 조선신학교를 중심으로 하여 세운 것이 기독교장로회이다. 基長은 1970년대부터 민주화 운동에 있어선 고신파보다 더 활발하게 참여했다. 이 종파 소속 목사중에는 김일성 김정일 정권에 대해서 호의적이거나 비판을 삼가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칼빈대학교의 金義煥 전 총장은 최근에 쓴 '메이첸과 한국 보수신학의 형성'이란 논문에서 "한국 교회의 분열은 성경不信의 자유주의 신학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칼빈주의자들이 신사참배를 거부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하나님主權論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나님이 세상만물을 주재한다고 믿는데 어떻게 천황을 하나님처럼 숭배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金총장은 "아시아에서 신사참배를 정면에서 거부하여 신앙의 정통을 지켜간 것은 한국뿐이다. 대만과 일본의 기독교는 신사참배를 수용했기 때문에 지금도 그 세가 미미하다"라고 말했다. 대다수 기독교인들이 신사참배를 했으나 소수의 반대자들이 목숨을 걸고 신앙의 자유를 불씨처럼 지켜간 것이 한국 기독교 전체의 정통성을 확보한 셈이다.

한국 칼빈주의 신학의 완성자인 朴允善 목사는 신구약 성경에 대한 註釋集(주석집)을 완간한 분이기도 하다. 이는 칼빈주의 신앙을 한국화한 세계적 업적으로 꼽힌다.
칼빈주의는 준법정신, 근면 성실의 직업정신, 끊임 없는 자기반성과 개혁, 신앙의 자유를 위한 투쟁을 신념체계로 하고 있으므로 한국의 근대화 과정에 딱 맞는 논리와 윤리를 제공했다. 칼빈주의 신앙은 개화기, 독립운동기, 근대화의 시기에 한국의 교회들을 통해서 역사적 역할을 수행했다. 이제 남은 것은 자유통일기에 무엇을 할 것이냐일 것이다. 이는 김정일 정권에 대해서 칼빈주의자들이 어떤 결단을 내릴 것인가로써 결정될 노선이다.

한국 기독교안엔 從北的 기독교인들이 있다. 이들은 천황보다 더 지독한 김일성 우상숭배를 비판하지 않는다. 미이라와 우상이 다스리는 북한과, 국민이 主權을 가진 한국, 절대惡과 상대惡을 同格으로 놓고 兩非論-兩是論을 편다. 무조건 북한정권을 도와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정은(전엔 김정일)이 망하도록 해달라고 기도하지 않고 회개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북한정권을 비판하는 이들을 미워한다. 이들이야말로 日帝가 망한 지 67년이 지난 지금도 神社참배를 하고 있는 셈이다. 숭배의 대상이 되는 우상이 천황에서 김일성으로 바뀐 것밖에 없다.

6.25 때 김일성 세력은 남한에서 350명이 넘는 목사들을 학살하고 납치해갔다.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떼죽음 당하였다. 한국의 기독교인이 하나님을 참칭한 우상 김일성을 공개적으로 비판하지 않는다면 자동적으로 우상숭배자로 간주되어야 마땅하다. 惡과 善, 하나님과 악마 사이에선 중립이 없다.

신사참배를 거부한 高神派 교회가 가장 반공적이고, 신사참배에 가담하였거나 이를 합리화하는 세력 중에서 친북적 요소가 보이는 것은 역사관과 神學觀이 다르기 때문이다. 김정은 정권이 망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세력과 김정은을 돕자고 하는 세력 사이엔 타협이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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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 교회 이용호 목사, 기독교로 들어온 '남북兩是論-兩非論' 비판
李 목사는 "우상이 다스리는 북한과 主權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대한민국을 어떻게 같이 취급하느냐. 기준이 틀렸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趙甲濟

지난 일요일 서울 서대문구 靈泉(영천) 교회 이용호 목사는 설교 중 '통일코리아를 세우는 100일 기도'라는 책의 문제점을 단호하게 지적하였다. 李 목사는 日帝(일제) 때 신사참배를 거부, 순교하거나 투옥되었던 목사들 중심으로 만들어진 '개혁적 보수교단' 高神派(고신파)의 총회장을 지낸 분이다. 그는 '통일코리아를 세우는 100일 기도'라는 冊名(책명)의 문제점부터 지적하였다. 헌법에 분명히 '대한민국'이라는 국호가 있는데 국적 불명의 '통일코리아'라는 명칭을 쓰는 것부터가 잘못된 것이라고 했다. 李 목사는 이 책이 남북한을 兩非論(양비론)이나 兩是論(양시론)으로 다루는 것을 날카롭게 비판하였다.

"북한의 좋은 점과 대한민국의 좋은 점은 같을 수가 없습니다. 북한의 나쁜 점과 대한민국의 나쁜 점도 同級(동급)으로 취급하여선 안 됩니다. 북한은 神(신)이 다스리는 곳이고 한국은 사람이 다스려요. 북한의 神, 김일성 김정일은 살아도 죽어도 神이지만 한국의 대통령은 퇴임 후엔 보통 국민으로 돌아가요. 북한의 神은 수백만을 죽여도 기소조차 되지 않지만 한국의 전직 대통령은 잘못하면 감옥에 갑니다."

李 목사는 "우상이 다스리는 북한과 主權(주권)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대한민국을 어떻게 같이 취급하느냐. 기준이 틀렸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남북한을 兩非論, 兩是論으로 보는 것은 기독교 신학이 절대로 용인할 수 없는 상대주의, 다원주의라고 해석하였다.

"신이 다스리는 북한을 우리가 원조해주면 신을 도우는 일만 하게 된다"면서 "북한과 같은 우상국가는 우상이 파괴되면 무너진다"고 했다. 李 목사는 이어서 "일본도 패전 후 천황이 인간선언을 하여 신의 자리에서 인간의 자리로 내려왔기 때문에 현대국가로 변모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북한이 神이 다스리는 체제로 남아 있는 한 절대로 변할 수 없다"고 했다.

親北(친북)이나 從北(종북)보다 더 위험한 것은 양비론, 양시론의 속임수이다. 북한의 중대한 범죄와 한국의 사소한 실수를 동급으로 놓고 비교하여 "북한도 나쁘고 한국도 나쁘다"고 억지를 부리는 의도는 북한을 감싸고 한국을 폄하하기 위함이다. 이날 李 목사는 평화, 화해라는 명분으로 한국 기독교의 가치관을 좀먹는 현상을 직설적으로 비판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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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위험한 책 《통일코리아를 세우는 100일 기도》를 바로잡습니다. (1)
이 책을 통일 기도 교본으로 택한 분들은 한 번쯤 귀를 기울여 주시기를 삼가 바랍니다.


김미영(세이지코리아 대표)


이 책(이하 100일기도)을 접하고 몇 날을 고민합니다. 이 책에서 보이는 미덕(美德) 때문입니다. 북한과 통일문제에 무관심한 한국교회와 한국사회의 상황과 달리 이 책은 북한에 대한 따뜻한 관심을 보여줍니다. 또한 경세(警世)하여 깨치려는 열정이 감동을 줍니다.

이 책의 책임 편집자가 북한에서 온 탈북 선교사라는 점이 두 번째 이유입니다. 소중한 분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 가지 이유를 더 밝히자면 이미 많은 복음적인 교회들이 이 책에서 말하는 내용에 대해 넓은 문을 열어놓고 있기 때문입니다. 공연히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은 마음이 며칠째 밀려 듭니다.

이 책의 기도 제목에 대체로 동의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이 책에 대해 ‘위험한 책’이라고 말하는 것은 가장 중요한 부분에서 크게 잘못 되어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책에 대해 침묵하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라는 것이 최종 판단입니다. 임박한 통일을 기도로써 준비하는 많은 분들께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서평을 시작합니다.

이 책의 편집에 참여하신 분들뿐 아니라 이 책을 통일 기도 교본으로 택한 분들은 한 번쯤 귀를 기울여 주시기를 삼가 바랍니다.

1. 상대주의는 진리를 보는 눈을 감깁니다.

[100일기도]의 가장 큰 문제는 남한과 북한을 나란히 놓고 상대주의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라고 보여집니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워온 현대사상은 양비론과 양시론, 상대주의와 다원론에 대해 익숙하게 길들여 주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가치의 최전방’에 이르면 상대주의는 무의미해진다는 것입니다. 삶이냐 죽음이냐와 같은 선택이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해방 이후, 남로당 노선에 동조하던 많은 지식인들이 북한을 택해 갔고, 신앙을 지키기 원했던 많은 기독교인들이 남한을 택해 이동했습니다. 이런 종류의 선택은 상대주의적 시각으로는 답을 낼 수 없습니다.

어느 민족, 어느 개인에게 이런 선택이 주어질 때가 있습니다. 해방과 건국의 때에 이런 선택이 주어져 있었다면, 통일의 때에 우리 민족은 다시 한 번 이러한 종류의 선택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100일기도]의 편저자가 북한 출신이고 북한의 엄혹한 현실을 체험했으면서도 북한에 대한 사랑을 잃지 않는 것은 분명히 미덕입니다. 그러나 해방 이후 대한민국이 지켜낸 [가치]는 상대주의적 시각으로는 도저히 읽어낼 수 없는 소중한 것들입니다. 무엇보다 교회를 지켜냈습니다. 한국 교회가 완벽하지는 않지만 훌륭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지도자들 역시 완벽하지 않았지만 대부분 훌륭했습니다. 그들은 모두 사람이었고, 공과 실을 갖고 있었습니다.

대한민국의 지도자들을 북한의 김일성 김정일과 비교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입니다. 북한의 지도자들은 스스로 신들입니다. 이 사실은 영적인 의미에서도 중요하지만 현실적인 의미에서도 아주 중요합니다. 그 신들의 나라에서 [우상]을 제거한다는 것은, 통치자로서 신적인 지위에서 내려오는 것을 말합니다. 권좌에서 내려오는 것을 말합니다.

일본에서 신을 표방하던 천황이 인간의 지위로 내려오기까지 세계는 엄청난 대가를 치렀습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 천황의 인간선언은 비로소 일본을 대화 가능한 현대국가로 탈바꿈시켰습니다. 신 지도자에게는 살인도 학살도 무조건 정당화됩니다. 지금 북한이 그런 형국입니다. 십계명을 능멸하는 신들의 통치에 대해서 크리스천이 너그럽게 바라보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거듭 말하건대 북한에서 우상이 무너진다는 것은 그 자체로 정치적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100일기도]는 김일성 김정일 두 구의 시체와 그들에게 권위를 부여 받은 삼대 신의 통치에 대해 너무 순진하게 접근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영적인 우상숭배와 정치적 우상통치를 연결시켜 보는 시각이 부족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상의 제거를 위해 기도하면서 동시에 그들의 통치가 온전해지도록 기도할 수는 없는 이치라고 할까요. 일본 천황의 신적인 통치가 계속되고 권력을 유지했다면 우리의 해방도 없었겠지요. 세계 전쟁의 위험도 끊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100일기도] 방식의 춘추필법은 결국 상대주의와 다원론의 소산이라는 것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이 책은 [통일코리아]라는 제 3의 나라를 만들어냈군요. 이런 초헌법적 월권이 과연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도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참고로 [100일기도]의 남한 정치사 개괄에 있어 끝에 있는 이명박 정부에 대한 기술을 옮겨 봅니다.

총선 직후에 논란이 된 광우병 의혹 미국산 쇠고기 수입 논란과 이로 인해 벌어진 대규모 촛불 시위로 임기 초반부터 지지도가 급격히 하락하여 정국 운영에 어려움을 겪었다. 2009년 5월에는 전직 대통령인 노무현이 자살로 생을 마감하였다. 이때 정부는 장례 과정을 미온적으로 처리했고 이는 당시 검찰의 편파적 수사 의혹과 겹치며 다시 한 번 정권에 위기를 가져다주는 듯 했으나, 얼마 뒤 8월에 김대중이 병사했을 때는 국장으로 대우하는 등 적극적으로 임하였고 이는 정부의 친서민 슬로건과 겹치며 국정 지지도 상승으로 이어졌다. 독단적 정국 운영은 근본적으로 달라지지 않아 지방선거 직전 천암함 사건이 터져 여권에 유리할 것이라는 예상에도 불구하고 2010년 지방 선거에서 대패하였다. ([100일기도] 43면)

전직 대통령 장례처리가 이명박 정부를 기술하는 평가기준이 되는 까닭을 알 수 없습니다. 상대화될 수 없는 사실을 나란히 놓고 진리에 눈을 감기는 것은 옳지 않은 일임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두 구의 시체가 여전히 우상으로 군림하며, 그들에게 권위를 부여받은 김정은이 북한을 통치하고 있다는 사실은 한반도 문제에서 절대적인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기도하는 분들에게 좀 더 분명한 진리에 대한 기준이 필요합니다. 남한도 나쁘고 북한도 나쁘다는 방식의 양비론은 진리의 기준을 흐트러뜨릴 뿐 아니라 명백하고 분명한 악에 대해 방심시키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아직 가증한 인간 신들이 통치하는 나라이며, 그들의 통치 하에 해결될 수 없는 불행을 겪고 있는 동포들이 있다는 사실보다 더 심각한 일은 지금 한반도에서 없습니다.

북한에서 우상의 제거가 곧 정치적 권력의 상실이라는 사실에 진지하게 눈을 떠야 합니다. 한국 교회의 북한에 대한 지원이 쟁점이 되는 것 역시 "어떤 지원도 그들 신들의 통치를 강화시키는 데 쓰여서는 안 되며 그것은 결코 인도적일 수 없다"는 데 있습니다. 인도적 지원은 대환영입니다. 문제는 인도적 지원이 아니라 정치적 지원 때문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 원칙을 잃는 것은 매우 위험합니다. 이 지점 어딘가에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영혼까지 상실하게 되는 지경에 이르고 있는것은 아닌지 걱정스러울 뿐입니다.

(계속- 2. 100일기도가 지적하는 반공은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생명을 지키는 무기였습니다.)

김미영(세이지코리아 대표. 전 한동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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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공은 이데올로기 아닌 생명을 지키는 무기였습니다.
[서평] 위험한 책 [통일코리아를 세우는 100일기도]를 바로잡습니다. (2)
김미영(세이지코리아)


요즘 지성계 뿐 아니라 기독교계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 65년 역사를 관통하는 ‘반공’노선에 대해 가차없이 비판하는 것이 큰 유행입니다. 반공은 태어나서 안 되는 후레자식 같은 사상이며, 없애버리지 않으면 안 되는 악(惡)입니다. 낡은 이념이고, 쓸모도 없으며 ‘평화’와 ‘통일’, ‘인권’,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나쁜 사상이라는 것입니다.

[100일기도(사진)](오테레사)의 대한민국 정치사 기술에도 반공에 대한 이런 인식이 충분히 배어 있군요. 이 책은 6.25전쟁과 이승만 정부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1950년에 일어난 6.25전쟁은 영토나 국가 이익 때문이 아니라 이데올로기 대립의 전쟁이었다. 내전의 성격에서 시작된 전쟁이 전면적 국제적 전쟁으로 확대되었다. 그 결과 동족 간의 참살과 함께 민족 분단은 영구화되었고 교회가 입은 상처는 심각했다. 이로 인해 한국교회는 반공 이데올로기에 깊이 사로잡히게 되었고, 그것을 뛰어 넘기 어려운 상황이 지속되었다.> (<<남한 종교영역의 뿌리>>, 73면)

<이에 좌익과 우익 간의 갈등을 극복하고 사회 질서를 확립한다는 명분으로 국가보안법 제정, 반공주의 정책을 내세웠고, 이승만 정권은 1960년 3월 15일 부정선거를 통해 장기 집권을 도모하지만 이에 반발하여 학생을 중심으로 시작한 시위는 수많은 국민들까지 가세하여 4.19혁명을 일으켰고, 이승만 정부는 무너지게 되었다.> (<<제1공화국>>, 42면)

(1)반공은 이데올로기이며, (2) 한국교회는 이 이데올로기에 깊이 사로잡혀 있고, (3) 역대 지도자들은 통치를 위해 반공을 이용했다는 것입니다.

최근 국민일보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선교훈련원이 개최한 ‘에큐메니컬 전국목회자 인문학 심포지엄’에서의 이만열 교수 발언을 이렇게 소개했습니다.

<독립운동에 앞장섰던 한국교회가 해방 이후 시대적 사명을 잃게 된 것은 반공 사상을 추종하며 재물과 안락, 세습이 보장되는 권력에 함몰돼 기독교적 영성을 잃었기 때문”이라며 “종북 세력이라는 가상의 적을 만들어 타인을 정죄하기보다 희생과 사랑, 화해로 인권과 민주화, 통일, 북한 돕기에서 예언자적 목소리를 내놓아야 한다."고 조언했다.>(국민일보 2월 13일자)

(4) 종북은 실체가 없는 가상의 적이며, (5) 반공은 참된 기독교적 가치에 배치되는 잘못된 사상이라는 것으로 정리됩니다.

마르크스주의가 20세기를 풍미했던 세계사를 반추해 볼 때, 이런 주장은 일정한 지성사적 맥락에서 비롯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비공산권 국가에서도 마르크스주의는 근대 학문과 사상으로서 허용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공산권 블록이 붕괴된 지금도 학문 방법론으로, 또는 지적 상상력으로 살아남아 있습니다.

[100일기도]는 북한의 정치이념의 하나로 ‘사회주의’를 지목하고 그 의미를 이렇게 풀이합니다.

<협동적으로 자유 평등한 사회를 형성해 사리사욕, 타인이 지배하는 불공정 빈곤으로부터 사람들을 해방하려는 사상, 사회운동, 사회체제를 총칭하여 이르는 말이다. 그 원류는 사유재산 없는 협동 생활을 찬미한 스토아철학이나 그리스도교 등의 교의(敎義) 속에서도 찾아볼 수 있으며, 중세 말기 농민투쟁의 이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북한 정치이념>>(48면))

이렇게 본다면 공산주의와 기독교는 만날 길이 있겠습니다.

그러나 조건이 필요합니다. 기독교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포기할 때 가능합니다.

공산주의는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마키아벨리즘에 입각해 있습니다. 거짓말도 폭력도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서 정당화됩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십자가는 기본적으로 방법 또는 수단입니다. 스스로를 부인하고, 못박아 피흘리는 희생의 종교입니다. 그리하여 그 십자가 사랑이 동시에 목적이기도 한 것입니다. 이것은 양보할 수 없고, 타협할 수 없는 기독교의 근본입니다.

기독교가 십자가를 들고 공산주의를 따라가고자 한들, 공산주의는 기독교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계열이 다릅니다. 김일성이야말로 자신의 동상이 기독교 십자가와 공존할 수 없는 이치를 꿰뚫었습니다. 그리하여 김일성은 정부 수립 전 북한 땅에서 기독교 십자가를 모두 꺾었습니다. 성경도 찬송가도 예배도 없앴습니다.

지금도 북한은 세계 최악의 기독교 박해국입니다. 1974년 [유일사상10대원칙]을 통해 김일성은 확실하고도 분명한 방법으로 신적인 지위를 공표했습니다. 김일성에 대한 신격화, 절대화, 신조화, 무조건화의 원칙을 북한 사람들 일상의 모든 영역에 실천토록 한 것입니다. 한 치의 위반자도 정치범수용소 행을 면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 원칙은 그의 아들과, 손자에게로 이어졌습니다.

이 김일성 숭배사상은 마르크스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기타 아류 사상의 수로(水路)를 타고 곧잘 우리 사회로 흘러 들어왔습니다. 그것은 명백하고 객관적인 사실입니다.

(1) “반공은 이데올로기이다?” 이데올로기는 정의되기 어려운 말이지만 굳이 정의한다면 ‘특정 그룹이나 개인을 이롭게 하는 사상, 곧 보편 사상과는 다른 사상’을 말합니다. 스스로 특정 계급의 이익에 봉사한다고 천명한 공산주의는 이데올로기이겠으나 이 나라에서 반공은 이데올로기가 아니었습니다. 자유와 생명을 지키는 필요불가결한 무기였습니다.

(2) 한국 교회가 반공 이데올로기를 극복하지 못했다? 한 때 북한에서 기독교 박해를 체험한 한국 교회는 반공의 보루와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한국 교회에는 다양한 수로를 타고 공산주의가 흘러 들어갔고, 수월하게 자리를 틀고 있습니다. ‘사랑의 이름으로’ 공산주의도 주체사상도 다 허용합니다. 아닌데 아닌데 하다가 허용합니다. 신학대학은 정도가 더 심각합니다. 도리어 한국 교회의 ‘사랑’이 진실과 거짓에 대한 분별을 포기한 채 이데올로기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사랑 이데올로기’ 앞에 선한 것도 악한 것도 없습니다.

[100일 기도] 147면의 기도제목을 적어봅니다. “하나님. 사랑이신 하나님을 온전히 믿지 못하고 서로 헐뜯고, 비방하기에 정신이 없는 대남 방송, 대북 방송의 죄악을 회개합니다. 분열의 영, 사탄이 조장하는 이데올로기의 감정에만 의존하여 방송하였던 것을 회개합니다.” 이 갸륵한 상대주의! 이 한량없는 사랑! 이것이 한국 교회의 현실입니다.

(3) “역대 지도자들이 반공을 통치를 위해 악용했다?” 그런 사례들이 있었지요. 이 나라의 민주주의는 그런 사례들을 찾아내고, 고발했습니다. 그렇게 성장해 왔습니다. 피로 민주주의를 얻어냈습니다. 대단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것이 반공을 부인할 까닭이 되지 않습니다. 반공이 악용된 사례보다, 비할 바 없이 많은 사례들을 통해서 이 나라가 실질적인 북한 공산주의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나라 지도자들에게 공산주의와의 싸움은 처절한 숙명이었습니다.

북한 공산주의자들은 대통령 시해를 시도하고, 영부인과 최고의 관료들을 암살 테러했으며, 해외파견 노동자들을 대량학살하고, 군인들도 죽입니다. 과거가 아닌 현재입니다. 햇볕정책 이전에도 그랬고, 당시에도 그랬으며,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만열 교수의 권고에 대해서도 몇 마디를 덧붙입니다.

(4) “종북이 실체 없는 가상의 적?” 종북은 엄밀한 용어는 아닙니다. 그러나 김일성 3대 세습체제를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그들의 체제를 보장하며, 그들과 대등하게 손잡고 민족통일을 할 수 있다고 믿는 세력을 ‘종북’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가상이 아니라 실체입니다. 악한 수단도 거짓말도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 세력입니다. 대중들의 비정한 이기주의와 전쟁에 대한 공포심을 활용하여 거대 정치세력으로 탄생할 준비를 갖춘 극 현실의 실체입니다.

김일성 김정일 시체에 절해도 신성을 모독하는 일이 아니라고 믿는 많은 기독교인들이 이 세력에 가세하고 있습니다. 북한에서 3대세습이 무너져도 또 새롭게 변신하며 온존해 나갈 이 신념 집단, 신앙 집단을 ‘가상의 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순진성의 다른 표현이겠지요? 이 세력이 형체를 더 드러낼 때까지 기다려 보시겠습니까?

(5) “반공은 참된 기독교적 가치를 위협하는 극복 대상의 낡은 사상?” 제게 공산주의 사상은 익숙합니다. 그러나 공산주의에 동조하거나 빠진 적은 없습니다. 바로 그 공산주의가 기독교를 부인하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와 구원을 거절하기 때문입니다. 과연 사람을 신적 우상으로 만든 그 사상이 인권과 평화, 자유와 민주주의를 가져다 주었던가요?

지적 실험은 어느 정도 가능합니다. 평화 시 평화 지대에서 말입니다. 사상 전장에서 실험조차 위험할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이 그런 곳이었습니다. 이제 그 치열했던 사상전이 끝났다는 것이지요? 토사구팽하듯 반공을 삶아 먹어도 좋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리스도인이라면 달라야 합니다. 끝까지 순결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스스로 십자가에 매달려 평화, 인권, 민주주의, 사랑의 수단되셨고, 또한 살아남은 우리에게 그 십자가 사랑으로 목적되셨기 때문입니다.

피끓는 20대의 두 젊은이 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1848년 이미 말해 주었습니다.

"하나의 유령이-공산주의라는 이름의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공산당선언 서문]) 그리고 이렇게 끝을 맺습니다. “공산주의 혁명으로 프롤레타리아가 잃을 것은 쇠사슬밖에 없으며, 그들이 얻을 것은 전 세계이다. 만국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

창시자들이 밝힌 대로 공산주의는 유령입니다. 그 유령은 아직도 한반도에서 배회 중인가 봅니다. 깨어 기도하는 자, 성령 안에서 무시로 기도하는 자라면 능히 이 유령과의 영적 전쟁에서 승리해야 옳지 않을지요. 때가 악합니다. 우리 승리합시다!

(계속- 3. 북한에 사회주의화된 기독교가 있다는 것은 허황된 믿음입니다.)

김미영 세이지코리아대표(전 한동대교수)

http://www.chogabje.com/board/view.asp?C_IDX=43420&C_CC=AZ



[ 2012-02-21, 22: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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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석 교수, 월간조선 기고문중 일부


6·25 전쟁 중 북한군과 공산당에 피살당한 기독교 교직자는 이름을 확실히 알 수 있는 사람만 174명이 확인되었고, 납북당한 교직자도 184명으로 피살과 납북 피해자는 모두 358명에 이른다. 정부와 적십자사가 조사한 자료는 북한군이 서울에 진주한 직후부터 얼마나 많은 종교인들을 학살하거나 조직적으로 北으로 끌고 갔는지를 구체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이는 정부가 전쟁이 끝나기 전에 조사·작성한 「피살자명부」, 「피납치자명부」, 대한적십자사가 1956년에 희생자 가족들로부터 자진 등록을 받은 명부에 개신교의 「목사」, 「장로」, 천주교의 「신부」 등으로 교직이 명확히 밝혀진 기독교인들과 기독교의 여러 조사자료를 종합한 수이다. 그러나 피살 또는 납북 기록이 남아 있지 않은 교직자도 적지 않을 것이고, 직업에 「종교인」으로 표시되지 않은 일반신도를 포함하면 그 수는 엄청나게 늘어날 것이다. 전쟁이 끝나지 않았던 1952년 6월25일자 「한국기독교신문」은 400명의 牧者(목자)가 희생되었다고 보도하였으며, 이와는 별도로 북한에서만 장로교 교역자 240명, 감리교 46명이 순교 또는 행방불명된 것으로 알려졌다(「기독교연감」 1957판, 대한기독교서회).

납북자와 피살자에 관한 공식 자료는 5 종류가 있다. 정부가 조사한 피살자 또는 납북자 가운데 직업이 기독교인으로 표시되어 있지 않은 사람도 많기 때문에 정확한 수를 파악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지금까지 기독교 연구자들의 조사에 따르면 피살 또는 납치당한 개신교 교역자는 장로교 177명, 감리교 44명, 성결교 11명, 성공회 6명 등이었다(민경배, 「한국기독교회사」, 신개정판, 연세대학교 출판부, 1993). 가톨릭에서는 남북한을 합쳐 한국인 52명(교구장 1, 신부 40, 수녀 7, 신학생 4)의 희생자가 있었고 외국인 98명을 포함하면 150명이 희생되었다(「한국가톨릭대사전」, 한국가톨릭대사전편찬위원회, 1992, p.911).



天主敎, 제2의 박해기

그러나 기독교계의 연구 자료와 정부가 전국에 걸쳐 작성한 피살자와 피납북자의 명부를 조사한 결과 기독교 교역자의 피해는 그보다 많은 것으로 판명되었다. 공산주의자들은 전쟁 전부터 북한에서 많은 기독교인들을 처형 또는 투옥하다가 전쟁을 일으킨 후에는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개별적으로 검거하여 처형하거나 北으로 끌고 갔다. 기독교인들을 수십 명씩 집단으로 학살한 사건도 여러 곳에 있었다.

북한에서의 종교 탄압은 1948년 9월 북한 정권이 수립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북한 정권의 궁극적인 목적은 교회를 청산하고 종교를 말살하는 단계까지 이르게 하려는 것이었다. 광복 이후 북한 공산 정권의 종교 탄압과 기독교의 수난에 대해서 한국 천주교회사는 「침묵의 교회 형성기」 또는 「제2의 박해기, 순교자들의 시대」로 규정한다.

천주교의 경우 한 연구에 의하면 제일 먼저 탄압을 받았던 덕원 면속구와 함흥교구에서는 1949년 5월9일 보니파시오 사우어(B. Sauer, 辛) 주교와 3명의 신부들이 체포된 이래 6·25 전쟁 직전까지 73명이 체포 또는 피살되었다. 독일인 성직자 22명, 수사 25명, 수녀 20명, 한국인 신부 5명, 수녀 1명이었으며, 이 가운데 31명이 희생(외국인 25명, 한국인 6명)되었고, 42명은 후에 생환하였다.

덕원에서 시작된 교회 탄압은 평양교구와 황해도 교회로 이어졌다. 평양교구에서는 1949년 5월14일 교구장 洪龍浩(홍용호, 프란치스코) 주교가 납치된 이래 6·25 직전까지 14명이 체포·구금되어 모두가 행방 불명되었다. 가장 늦게까지 성직자·수도자들이 활동했던 황해도 지역에서 1949년 5월20일에 체포된 韓允勝(한윤승, 필립보) 신부를 비롯하여 모두 5명의 한국인 신부들이 행방 불명되었다(차기진, 「6·25 사변과 천주교회의 순교자들」, 「사목」, 1994.10).

이는 전쟁 이전에 북한 정권이 북한에서 자행한 천주교 박해의 특수한 예에 불과하다. 개신교에 대한 탄압도 이에 못지않았을 것이다. 金日成은 전쟁을 일으킨 후 남한에 진주하여 많은 기독교인들을 처형했다. 공산당은 남한의 몇 개 지역에서는 교인들을 집단으로 학살하는 만행도 저질렀다. 기독교도를 집단학살한 대표적인 사건으로는 1950년 9월, 전남 靈巖(영암)읍 교회에서 신도 24명을 집단학살하였고, 沃溝(옥구)에서도 20여 명의 신도가 학살당했다.

전남 서쪽 바다에 있는 荏子島(임자도)에서도 100명, 혹은 150명씩 구덩이를 파고 양민과 교인을 학살했다. 10월5일 새벽 이판일 장로의 일가족 13명이 학살당했으며, 집단 학살당한 교인은 43명이었다. 충남 논산의 병촌교회에서는 한 살짜리 어린아이부터 육순의 노인에 이르기까지 60여 명의 교인들을 집단으로 학살했다(박완, 「실록 한국기독교 100년」 제6권, 선문출판사, 1973).

정부는 서울이 중공군에게 함락되기 전의 긴박한 상황이었던 1950년 12월 서울에서 납북 또는 피살된 사람들의 실태를 조사하였고, 그 후 두 차례 전국에 걸친 피해상황을 조사하였으며 피살자의 명단을 따로 만들었다. 대한적십자사는 1956년에 납북자들의 가족으로부터 등록을 접수하여 송환을 위한 교섭자료로 활용하였다.

휴전 후 정부는 납북자의 송환을 명시한 휴전협정 제59조의 규정에 근거하여 송환을 위한 노력을 기울여 보았지만 북한의 비협조로 성사되지 못한 채 세월이 흐르면서 점차 이들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어서 반세기가 흘렀다. 그러나 아무리 오랜 세월이 흘렀다 한들 종교인들의 생명에 관련된 문제를 외면하고 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정부와 적십자사가 수집한 피살 또는 납북당한 사람들의 수는 별표와 같다.

위의 5종류 자료 가운데 치안국 정보과가 1954년에 조사한 「피납치자명부」는 프린트 인쇄가 조악하여 글자가 보이지 않거나 판독이 어려운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자료로 활용하기에 애로가 있다.

납북된 종교인은 치안국 자료를 제외한 4종류 명부를 조사하여 종합한 것이다.

이 자료들에 수록된 명단에는 중복 포함된 사람도 있고, 3개나 2개 자료 또는 하나의 자료에만 들어 있는 사람도 있다.

그러므로 이 5개 자료 가운데 4개 자료를 토대로 피살 또는 납북된 종교인을 찾아내어 종합하고 교회사 자료를 종합해 본 결과 아래에 상술하는 피살 또는 납북 종교인들을 밝힐 수 있었다. 정부 기록 외에도 여러 기독교 자료를 참고로 하여 정부가 조사한 명단에 없는 이름을 추가하였다. 피살·납북 연도는 1950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