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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그림&좋은글

범려에 관한 소고

by 설렘심목 2009. 12. 21.

난 언제부터인가 중국고사에 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가끔 그 고사들을 보면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기때문이다.
최근에는 케이블 채널을 통해 와신상담이란 드라마가 방영됐다. 이미 두차례에 걸쳐 방영했다. 41부작이다.
HD 화면으로 제작된 것이라 영상의 미려함이 대단했다. 중국의 고풍스러운 의상과 문화가 고스란이 담겨있었다.
낯익은 배우들도 많았는데 영웅이란 영화에서 진시황역을 했던 사람과 이번 적벽대전에서 조자룡 역을 한 사람도 나온다.
와신상담은 너무나도 유명한 고사성어인데 여기서 범려란 인물을 주목한것은 이번 드라마를 보고서였다.
그전까지는 오왕과 월왕의 대결구도만으로 개념을 가지고 있었다.
와신상담은 사실상 범려의 독무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국의 역사가 한 인물에 의해 구도가 바뀐것이다.

중국이 차이나라는 국명을 가지게 된것이 바로 진나라가 최초로 통일을 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영어식 발음으로 친이었고 친아~ 즉, 진의 나라 라는 뜻으로 차이나라고 명명 된것이다.

만약 범려가 아니었다면 오나라가 중국을 통일 했을것이고 중국의 현재 이름은 차이나가 아니라 오아가 되었을수도 있다. 이 이야기는 무려 기원전 600년대의 일이다. 그리도 오랜 옛날에 이토록 뛰어난 인재들이 있었다는것이 놀랍다.

범려의 인물됨은 너무나 파란만장하여 후대의 역사가들은 이것이 범려 1인의 역사가 아닌 여러사람을 짜깁기 한것일수도 있다라는 말까지도 나오고있다. 그만큼 그의 인생은 너무나 놀랍다.

중국에는 거대한 운하가 있다. 황하와 양자강을 잇는 운하인데 이것이 확장되어 중국 남부에까지 연결되어있다. 바로 이 운하가 기원전 600년전부터 파기 시작했으니 이 제안을 처음 꺼내든 사람이 바로 범려다.

오왕 부차는 이 운하에대한 계책을 전해듣고 범려를 자신의 책사로 삼기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다.
이 운하에대한 계책은 오자서도 생각지 못한 대단한 것이었다. 그 유명한 적벽대전이 가능케 한것이 바로 이 운하다. 오왕 부차는 이 계책을 듣고 하루라도 빨리 완성해서 중국을 재패하려는 꿈에 발을 동동 굴렀다.

그런 그의 성급함이 화를 불렀고 오나라는 범려에 의해 철저히 패망하게 된다.
오나라와 월나라의 패권쟁투의 이야기는 춘추전국시대 말기의 일이다. 오나라가 급부상하면서 중국을 재패하기 직전까지 이른다. 오나라에는 중국역사상 다섯손가락 안에 꼽히는 책사인 오자서가 있었다. 오자서가 있기에 오나라가 있다는 말까지 있을정도로 오자서의 능력은 대단했고 충신 이었다. 오자서는 범려의 계략에 말려 모함을 받아 오왕 부차의 명에 의해 자결하는 것으로 생을 마감한다.

오왕 부차는 오자서의 머리를 성문에 걸고 몸은 강에 버려 물고기 밥이 되게 하였으나 백성들의 분노가 심상치 않음을 알고 다시 시신을 건져내어 산중에 제대로 안장하게 된다. 그만큼 오자서에대한 백성들의 신뢰는 대단했다.

백성들은 충신 오자서를 알아봤으나 오왕 부차는 애석하게도 그의 충정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스스로 죽이고만다. 아니나 다를까 오자서가 죽고나서 얼마되지 않아 오나라는 멸망하고 만다.

오자서가 죽었다는 소식이 월나라에 전해지고 범려도 이를 알게되는데 범려는 이 소식을 듣고 매우 애석해 하였다고한다. 비록 적국의 책사가 죽었지만 전혀 기쁘지않았고 충신이 죽었음에 안타까운 마음을 가진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비록 그가 적국의 책사이지만 오나라 입장에서는 충신인데 그가 죽고 간신 백비가 버젓이 살아있으니 이는 세상이 뭔가 잘못된것이 아닙니까?"

그는 월왕 구천이 오나라를 패망에 이르게 하는데까지만 협력을 하고 그후에는 월나라를 떠나 초야에 잠적하게된다. 그의 뜻은 아마도 패권장악이라는 것이 무의미 한 것임을 이미 알았던것이 아닐까 한다. 그의 능력이라면 당연히 패권장악도 가능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별의미가 없음을 잘 알았던것 같다. 실제 진의 통일은 십수년이 되지못하여 다시 깨지고 다시 중국의 여러 제후국들로 난립하다가 잘아는 삼국지로 갈라지게 된다. 이와같은 길을 걸었던 사람이 또 하나 있었으니 바로 손자병법의 저자인 손무다.

손무와 범려는 근접한 시기였으나 동시대에 활동하지는 않았다. 만약 두사람이 동시대에 활동하였다면 어땠을까 궁금하기도 하다. 적국의 책사가 죽었음에도 기뻐하기보다는 충신의 죽음에 애도했던 그의 평정심은 참으로 본받을만하다. 그런 평정심을 갖는다는 것은 그의 근본적인 세상을 바라보는 패러다임이 보통사람과는 전혀 달랐다는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보통 성공을 추구하고 성공을 위해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않기도 한다.
또한 요즘 교회는 성공을 부추기고 성공하지못하면 믿음도 약하다고 할정도로 몰아붙힌다.
이 얼마나 소인배다운 발상인가? 또한 이것은 전혀 성경적이지도 않은 발상이다. '긍정의 힘' 말이다. 전혀 성경적이지 않다. 범려의 철학은 '희생과 봉사'이다. 결코 '긍정의 힘으로 성공하자'가 아닌것이다.
'희생과 봉사'의 정신으로 삶을 살아가는 것이야 말로 성경적 성공이고 우리의 임무다.
의외로 '희생과 봉사'의 정신이 실제 세상적 성공으로 연결된 예도 많다.

우리는 손자병법을 성공을 위한 가이드쯤으로 생각한다. 모택동도 손자병법을 거의 암기할정도로 수백번을 더 읽었다고 한다. 후진타오가 부시를 만나 '손자병법'을 선물하기도 했는데 부시로서는 참으로 모욕이건만 그것이 모욕인지도 모르는듯 하다. 그러나 이미 미국은 손자병법을 장교들에게 교육한다. 즉, 사관학교에서 필수과목으로 주당 4시간을 할당해 손자병법을 교육한다.

2차대전때 미국은 처음으로 손자병법이란것에 주목했고 그 이후부터 미군장교 교육에 손자병법을 필수로 넣은 것이다. 그러나 손자병법은 일종의 칼과도 같다. 이것이 강도에 주어지면 흉기요 의사의 손에 들려지면 생명을 살리는 수술도구다.
어떻게 쓰여지냐가 매우 중요한데 실제 저자인 손무는 이를 평화적으로 쓰이길 원했다.
우리가 흔히 알기를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알고있다. 이는 후대에 성공주의에 물든 인간들이 만들어낸 허상이다.
원문에는 지피지기면 백전불패라고 되어있다. 비슷한 말 같지만 전혀 의미가 다르다.
즉, 전쟁을 대비하기위한 것으로 병술을 논한것이지 침략하기위해 기술한 병술서가 아니라는 의미이다.
그러나 현대의 국가들은 이를 침략용으로 활용한다. 즉, 강도에게 칼이 들린것이다.
성공주의는 오늘날 사회의 모든 분야에 만연해 있다. 과연 우리는 '성공하기 위해' 살아야 하는 것일까?

교회또한 이 성공주의에 지나치게 물들어 있다. 오히려 교회바깥보다 내부가 더 이 '성공주의'에 진하게 물든것 같다. 교회는 하나님의 뜻을 언제나 깨닫게 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