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미 참전용사
1952년 12월, 수십 기로 이루어진 전투기의 엄중한 호위를 받으며
김포공항에 비행기가 도착하였습니다. 비행기에서 내린 인물은
제2차 대전의 전쟁영웅이자 차기 미국 대통령으로 확정된 인물인
아이젠하워(Dwight D. Eisenhower 1890~1969)였습니다.
그는 선거 기간 중 6·25전쟁을 조속히 해결하기 위해 만일 대통령에
당선이 되면 그 즉시 한국을 방문하겠다고 공약을 내세웠고
이를 실천하였던 것이었습니다.
[국군 수도사단을 방문한 아이젠하워]
미국 역사상 대통령이나 대통령 당선자가 미국 본토 밖의 최전선을
시찰한 것이 이번이 사상 최초였을 만큼 그야말로 획기적인 일이었습니다.
제2차 대전 당시 오성장군으로 연합군최고사령관이었던 인물답게 저돌적으로
전선을 누비면서 일선부대를 방문하여 의견을 듣고 현황을 파악하였습니다.
그가 미 제8군 사령관이자 후배인 밴 플리트에게 놀라운 부탁을 하였습니다.
[(좌에서 우) 밴 플리트 제8군사령관, 아이젠하워 대통령 당선자,
클라크 유엔군사령관]
제8군 사령부를 찾아 밴 플리트 사령관으로부터 전선 현황에 대해서
브리핑을 조용히 듣고 있던 아이젠하워는 의례적인 질의와 응답 후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였습니다.
“장군, 내 아들 존(John S. D. Eisenhower 1922~)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당시 아이젠하워의 외아들도 6·25전쟁에 참전 중이었습니다.
존 아이젠하워는 둘째 아들이었지만 첫째 아들인 다우드가
어려서 병사하여 외아들과 다름없었습니다.
[제2차 대전 당시 아들 존과 함께한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따라서 어쩌면 이 질문은 아버지가 아들의 소식을 궁금해 하는
지극히 사적인 질문이었습니다. 밴 플리트는 “존 소령은 미 제3사단
대대장으로 현재 중부전선의 최전선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라고
의례적인 대답을 하였는데, 다음에 이어진 아이젠하워의 부탁에
순간 경악하였습니다.
“사령관, 내 아들을 후방 부대로 빼주시겠습니까?” 이번 전쟁에서
외아들을 잃은 밴 플리트가 듣기에는 몹시 거북한 말이었습니다.
[(좌에서 우로 ) 미 제3사단을 방문한 아이젠하워, 클라크, 밴 플리트]
아이젠하워는 조용히 입을 열었습니다. “장군, 내 아들이 전사한다면
나는 가문의 영예로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런데 포로가 된다면 적들은
대통령의 아들을 놓고 미국과 흥정하려들 것입니다.
이 때문에 만일 국민들이 국가의 자존심문제라 생각하여‘대통령의
아들을 구하라’고 나온다면 차후 작전에 애를 먹을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단지 대통령 아들이라는 이유 때문에 차후 작전에 심대한
차질이 생기지 않도록 최소한의 예방조치만 요청하는 것입니다.
[제3사단을 방문하여 아들 존 소령과 면담한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아이젠하워의 말을 들은 밴 플리트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크게 답하였습니다. “각하! 즉시 조치하겠습니다.”존 아이젠하워는
후방의 정보처로 옮겨 근무하게 되었고 이후 육군 준장을 거쳐
주벨기에 미 대사까지 부임하였습니다.
아이젠하워의 부탁은 차기 군 최고 통수권자인 대통령 당선자라는
지위를 남용한 명령이 아니었으며 군 선배라는 신분을 이용하여
청탁이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아이젠하워는 인사권을 가지고 있는 야전사령관에게 아들의
안위를 걱정하는 아버지가 아닌 차후 작전 차질을 우려한
대통령의 입장으로 공개적인 장소에서 당당하게 합리적인
부탁을 하였을 뿐이었습니다.
또한 밴 플리트의 화답도 단지 차기 권력자에게 잘 보이려는
보신책이 아니었음을 누구나 다 알고 있었습니다.
[밴 플리트, 이승만 대통령, 아이젠하워]
6·25전쟁 당시 유엔군 최고 지휘관과 그 아들이 동시에 참전하여
피를 흘린 경우는 지금까지 소개한 사례 외에도 많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휴전 당시 유엔군사령관이었던 마크 클라크(Mark W. Clark
1896~1984) 대장과 그 아들 마크 빌 클라크(Mark Bill Clark) 육군대위의
경우인데, 아들 빌은 금화지구전투에서 중대장으로 복무도중 부상을
당하여 전역하게 되었고 결국 그 후유증으로 사망하였습니다.
[휴전 당시 유엔군 사령관이던 클라크 장군의 아들은
참전 후유증으로 사망하였습니다]
6·25전쟁과 미군의 참전을 떼어놓고 이야기하기 힘들지만
이처럼 고위 미군 장성이나 정치인의 자제들이 앞 다투어 전쟁에
참전하였다는 점은 우리를 숙연하게 만드는 대목임에 틀림없습니다.
총 142명의 장성의 아들들이 참전하여 이중 35명이 전사하거나
부상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아들이 참전의사를 밝혔을 때 대부분의
부모는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들은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던 것이고
우리가 본받아야 할 모습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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