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 방향으로 윌리엄 틴데일(영국), 조나단 에드워드(미국), (중간)존 낙스(스코틀랜드), 마틴 루터(독일), 존 칼빈(스위스)
종교개혁 493주년
16세기 근대사는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에서 출발합니다.
그는 1483년 10월 10일 아이스레벤에서 시골 광부의 아들로 태어나 아내 캐더린과 4자녀가 함께 63년간 세상에 있다가
1546년 2월 18일에 세상을 떠나 고향에 묻혔습니다.
1505. 7. 2 친구와 함께 비를 피하러 나무 밑으로 갔다가 옆에 있는 친구가 낙뢰로 인하여 죽는 것을 보고는 충격을 받아
어거스틴 수도원으로 들어가 1506년에 수도사의 맹세를 하고, 1507년에 신부 안수를 받고,
1509년에 신학사로 승진하고, 1510년 11월부터 1511년 4월까지 소위 성(聖) 로마 순례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 때 이미 그의 마음속에는 어거스틴 신학을 통해 은총의 세계에 눈이 열리고 ‘내가 하나님을 위해서 무엇을 하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내가 하나님 앞에서 무엇이 됐느냐’의 문제가 더 중대함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율법만 행사하시는 공의의 하나님만이 아니시고,
자신이 보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는 자를 용서해 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임으로 믿게 되었습니다.
루터가 심적 대 변화를 가져오던 당시 독일 비텐베르크 대학에는 매 금요일마다 신학자들이 모여 신학적 문제에 대하여 토의하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1517 년 10월 31일 정오 경, 젊은 두 수도사는 비텐베르크시의 성교회 정문 앞 게시판에 인쇄소에서 가지고 온 라틴어로 쓰인 한 문서를 게시하였습니다.
그 글 서문에 ‘진리를 밝히고 싶은 열망에서 문학사요 신학사이며 신부인 루터의 사회로 다음의 논제들이 비텐베르크에서 토의되겠습니다.
이 구술 토의에 참석할 수 없는 분은 서신으로라도 의견을 전해 주기를 간청하는 바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아멘’이라고 하였습니다. 바로 그 공개 토론 내용의 문서가 저 유명한 95개 조항이었습니다.
이 문서는 공개된 지 2주 만에 전 독일을 불 질렀고, 4주 만에 전 구라파를 불 지르고 말았습니다.
면죄부(속죄권) 판매로 비텐베르크시가 떠들썩하던 그 때에 하나님은 루터의 가슴에 진리의 불을 질러, 구
원의 길은 면죄부가 아닌 믿음이라고 하는 소리를 지르게 한 것입니다.
계속해서 발표한 논문은 로마 카톨릭의 심중을 불편하게 하였고 마침내 1521년 4월 17일 보름스국회에서 추방명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프레드릭공을 통하여 루터를 발트부르크성에 은닉시켜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하도록 하였습니다.
종교 개혁가 파렐은 말하길 “종교 개혁자들이 로마 카톨릭을 비난한 것은,
잘못 살아가는 것에 대한 것이 아니라 잘못 믿고 있는 것에 대해서였다.”고 하였습니다.
즉 종교개혁은 천여년 로마 카톨릭의 총체적 부패와 타락을 심판하고자 하신 하나님의 구속사적 경륜에서 온 사건이었던 것입니다.
이는 오늘날 세속화와 종교다원주의, 복음주의로 좌경화로 흐르고 있는 한국교회에 중요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습니다.
이제 종교개혁 493주년 맞아 오직 믿음으로 개혁의 기를 올렸던 선진들의 신앙을 따라
혼탁한 오늘의 세계 교계를 바로 잡고자 하는 믿음의 행진을 힘있게 펼쳐가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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