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소련·중국 남침협의 진상과 의미
황병무 국방대 명예교수 / | 기사입력 2010-06-28 04:36
[서울신문]1949년 3월 김일성이 소련을 방문한 주목적은 스탈린으로부터 남침승인을 얻기 위한 것이었다. 스탈린은 김일성의 제안을 거부한다. 북한군대가 남한군대를 압도할 정도로 우세하지 않다.
남한엔 미군이 주둔하고 있으며 미국과 합의한 38도선 파기를 소련이 주도할 수 없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그해 6월 주한미군이 완전히 물러가고, 10월 중화인민공화국이 선포된다. 김일성은 소련의 군사지원으로 전력을 강화하면서 중국 공산군에 편입된 이른바 한인 3개사단을 1950년 1월까지 중국으로부터 돌려받는다고 보장받는다. 김일성은 무력에 의한 한반도 통일 가능성을 북한 주재 소련대사에게 제기한다.
“남한에서 미군 철수는 38선을 지킬 명분과 능력을 미국 스스로 없애고 있다.”
“왜 우리가 38선에 얽매여야 하는가.”
1950년 1월12일 미 국무장관 딘 애치슨의 한반도와 타이완을 제외한 극동방위선 발언은 김일성과 스탈린에게는 미국 불개입에 대한 믿음을 굳히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1950년 1월 말 스탈린은 북한대사 슈티코프에게 비밀전문을 보내 “김일성 동지의 불쾌감을 이해하고 있으며”, 대남행동에 대해 “언제고 만나 대화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알렸다.
이 전문이 스탈린이 북한의 남침을 간접적으로 승인한 최초의 문건이다. 김일성은 1950년 3월30일부터 4월25일까지 모스크바에 체류하면서 남침조건, 전쟁지원을 논의했다. 스탈린은 네 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미군개입의 철저한 평가, 중국의 남침승인, 소련의 직접 참전에 대한 기대 포기 및 철저한 전쟁준비이다.
5월 중순 김일성은 마오쩌둥을 만나 스탈린의 남침승인을 알리면서 마오의 승인을 얻는다.
미군 개입시 중국은 군대를 보내고 소련은 무기를 보내 북한을 돕는다는 데 합의한다.
놀랍게도 마오쩌둥은 북한과 유대를 강화하기 위해 동맹조약을 체결하고
북한이 한반도 통일을 완수할 시 조약을 발효시킬 것에 대해 스탈린의 동의를 얻는다.
스탈린은 미국과 중국이 한반도에서 싸우게 되면 중국은 소련에 더욱 의존할 것이며
미국은 국력의 손실로 세계적 세력균형이 소련에 유리하게 이동할 것이라는 계산을 했다.
1950년 1월과 7월사이 유엔 안보리에 소련의 불참은 계획된 것이었다.
미국이 “행동의 자유”를 가지고 “보다 많은 잘못”을 저지르게 하기 위한 스탈린의 의도는 1950년 8월
체코 대통령 고트아트에 보낸 비밀전문에 보인다.
스탈린은 한국전쟁에 참여하는 부대 명칭을 중국인민 “지원군”으로 제시하고
중국인민지원군에 대한 항공지원도 한·만 국경지역에 한정하는 등 중·소동맹조약의 의무가 발동돼
미군과 군사분쟁에 들 수있는 상황을 최대한 회피했다.
김일성은 소련 군사고문단이 만든 “선제타격작전계획”에 따르지만 개전시기를 소련 군사고문단이 주장한
7월서 6월로 앞당긴다.
개전계획도 옹진반도의 진격에 의한 단계적 확전에서 비밀누설 위험 때문에 전 전선 공세계획으로 바꾼다. 중국은 10월2일 한국군이 38선을 돌파한 직후 스탈린과 김일성의 간곡한 파병요청을 받으면서 참전결정을 내린다. 그러나 대다수 정치국원의 반대와 소련 공군력 지원이 불분명해지자 그 결정을 스탈린에 알리지 않고 저우언라이를 협상사절로 모스크바에 파견한다.
스탈린은 김일성에게 중국이 파병을 재차 거부함을 알리면서 동북지역으로 조속히 퇴각할 것을 지시한다. 10월8일 미군이 북진하고 유엔이 한국통일부흥위원단 설립을 결정하자 마오쩌둥은 서둘러 파병명령을 내리지만 10월19일 평양이 유엔군에 장악될 때 중국인민지원군은 한·만 국경을 넘는다. 그리고 중국군은 사실상 한국과 유엔의 한반도 통일노력을 저지시켰다.
6·25전쟁은 필연적인 것은 아니었다. 공산블록의 세력확장 기도에 적절한 억제책을 적용했다면 예방할 수 있었다. 6·25는 억제의 실패가 아니라 억제의 부재 때문에 발발했다.
휴전이후 한·미동맹과 주한 미군의 역할, 남북한 군사력 균형 및 중국, 소련과의 관계를 계속 점검해야 하는 이유가 억제의 취약점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또 억제를 넘어 한반도에 안정된 평화체제를 만드는 일, 평화통일은 한국전쟁이 남긴 중요한 교훈임을 잊어서는 아니된다.
==============================================================이상 펌글..이하 관리자 註
작금의 북편향 김정일추종세력들은 남한에서 암약하는 고첩의 열매와 크게 다를 것이 없다.
본의아니게 그렇게 되어간다하더라도 결국 김정일폭압집단에게 용기와 오판을 제공함에 다른 핑계없다.
정부여당과 국방책임자들에게 많은 오류과 허물이 없을 리 없다. 그것이 인간세상이고 역사의 증언이다.
아무리 답답해도 적에게 힘을 실어주거나 분열하는 모습에 오판하여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르게 해선 안된다.
지금이 중요한 것은 오늘의 내 생각, 내 발언하나하나가 내 자녀, 우리 후손의 미래를 결정해 가기 때문이다.
함부로 한 불평이 지나쳐서 참여연대의 유엔서한처럼 뚜렷한 利敵행위가 된다면 철저한 대가를 가족들과 함께 치른 뒤 깨달아도 이미 때는 늦은 것이다. 건강한 비판이 협력가운데 꽃피워져야 한다.
흔히 전쟁억제의 수단이 온건과 포용인줄 알지만 진정한 의미의 전쟁억제력은 힘, 곧 국력이며..
국력은 경제력을 바탕으로 한 한가지 사상, 즉 국론통일에 의한 일치감있는 반공사상뿐이다.
지금처럼 대통령과 청와대, 국회가 방향성없이 중도실용 운운하면서 회색빛을 띄울 때 개도 소도 함부로
날뛰고 그래도 다 포용한다는 중도실용주의는 결국 자기색갈을 선포하지 못해 양쪽에서 얻어 맞게 되어있다.
성공한 쿠테다는 역적이 아니라 충신이요, 실패한 충신은 막바로 역적이란 말을 하는 것이 중도아닌가?
MB의 실용주의 중도노선이 그런 것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미 모두들 그렇게 받아들여 날뛰기 시작했다.
국국통수권자로, 계엄은 선포하지 않더라도 반공을 國是의 제일로 삼아 國體를 바로세워야 할 때이다.
경제는 튼튼한 안보위에 세워져야 함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 경제대통령의 성공은 반공으로만 가능하다.
교회들은 허리를 동이고 기도해야 할 때 아닌가? 정직해야 하며 순결해야 한다.
감동적인 설교, 훌륭한 인격, 고상한 취미와 큰 교회와 그 풍성...그것이 다 무언가?
나라흔들리면 아무 소용없는 것이며 오히려 숙청대상 제 1호가 기독교지도자들인 것을 우린 안다.
생명을 드려 주를 향함은 공산주의 막는 일이라. 목회자는 설교만 하고 정치는 정치인이 해야 한다. 맞다.
그러므로 우린 반공이 주님사랑인 것을 만민앞에 양떼앞에 선포하고 인정하지 않으면 안된다.
비겁한 목자는 선한 목자가 아니란 말 기억난다. 목회자의 반공은 결코 정치가 아니라 주권선포이다.
양떼와 백성을 지켜내려 한다면 언제 어디서도 반공을 말해야 하고 그 말에 목숨으로 책임져야 한다.
<이 글 보신 후 댓글 누가다나? 치부책에 적어 정일이 성님에게 바칠껴..살생부될테니끼니..-고첩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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