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동네 헬스클럽에서 우연히 한국전 참전용사를 만났다. 그는 한국에 관심이 많았다.
청춘을 바쳤던 곳에 대한 애착이라 했다.
그가 대뜸 물었다. “한국에서 여중생 두 명이 미군 장갑차에 치여 숨졌을 땐 서울 한복판이 시위대로 미어졌다고 들었다.
그런데 이번 한국 군함이 침몰한 뒤엔 왜 북한을 규탄하는 시위가 일어나지 않나?”
그는 2년 전 광우병 소동도 떠올렸다.
미국산 쇠고기를 먹고 한국인이 광우병에 걸려 죽을 확률은 1억분의 1이라고 했다. 천문학적 확률에도 광화문 광장은 한 달 넘게 촛불시위로 ‘해방구’가 됐다.
그런데 요즘 광화문엔 촛불이 없다. 그렇다면 천안함을 침몰시킨 범인이 북한일 확률은 1억분의 1도 안 된다는 말인가?
6·25 참전용사만이 아니다. 보통 미국인으로선 한국인의 ‘4차원’ 사고 구조를 도무지 이해할 재간이 없다.
두 명의 여중생 죽음엔 광분했던 이들이 46명 장병의 희생 앞에선 어찌 그리 냉철해질 수 있을까?
함께 피 흘린 미군에겐 혹독했던 사람들이 정작 총부리를 겨눈 북한군엔 왜 이렇게 관대할까?
1억분의 1 확률에 젖먹이까지 시위에 앞세웠던 주부들은 서해바다 북한 잠수함엔 어떻게 그렇게 담대할 수 있을까?
미국이 싫다며 중국에 애정공세를 폈던 사람들도 싱겁긴 마찬가지다. 간이라도 빼줄 듯하던 중국은 막상 친구가 곤경에 빠지자 주판알부터 튕기고 있다.
이번 기회에 아주 한몫 단단히 챙길 기세다. 어려울 때 도와주는 친구가 진짜 친구라는 옛말, 하나도 틀린 게 없다.
우리의 셈법이 언제부터 이렇게 꼬였을까.
모르긴 해도 군사정권, 더 멀리는 일제 시절부터 지배계급에 속고 살았던 때문은 아닐까. 북한 위협이 군사독재가 휘두른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였던 시절도 있었다.
실미도 사건이 영화로 만들어진 게 불과 7년 전이다.
그러나 이젠 세상이 달라졌다. 한국이 어떤 곳인가.
온 국민이 황우석 뺨치는 줄기세포 전문가가 되고 국제수역사무국(OIE)이 울고 가는 광우병 박사 나라다.
‘개똥녀’ ‘패륜녀’가 아무리 꼭꼭 숨어도 단 며칠이면 사돈의 팔촌 신상명세까지 캐낼 수 있는 ‘십만 007 네티즌’을 보유한 국가다. 하물며 수백 명이 연루된 천안함 사건을 조작해? 그것도 지방선거 몇 곳에서 이기자고?
4차원 뇌가 아니고선 상상하기 어려운 도박 아닐까.
이쯤 되면 기울어진 저울추를 바로잡을 때도 됐다.
오른쪽·왼쪽 다 겪어봤으니 어디가 가운데인지 가늠할 요량도 생겼다. 여중생 두 명의 죽음이 억울한 만큼 46명 장병의 희생도 가볍게 봐선 안 된다.
1억분의 1 확률에 “차라리 청산가리를 털어넣고 싶었다”면 바다에서 나온 어뢰 잔해도 못 본 척할 수 없는 거다.
삼성전자가 최근 선보인 3차원(3D) TV는 특수 안경을 쓰고 봐야 한다. 양쪽 렌즈를 번갈아 가며 깜빡거리는 안경 덕에 입체영상을 볼 수 있는 거다. 한쪽 눈을 감으면 영상이 찌그러진다.
외눈으로 보는 세상도 마찬가지 아닐까.
2010. 06. 11. 정경민 뉴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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