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강철환씨 인터뷰 - 1]
부시 미국 대통령이 지난 13일 백악관 오벌 오피스에서 '평양의 수족관-북한 강제수용소에서 보낸 10년'의 저자인 탈북자 출신 조선일보 기자 강철환 씨를 만났다.
강철환 씨는 북한 강제수용소의 실상을 담은 수기의 저자이며, 탈북 후 조선일보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업코리아>는 지난 29일 강철환 씨와의 인터뷰를 통해 북한 핵문제와 인권문제 등에 대한 얘기를 들어봤다.../편집자 주-
부시 미국 대통령이 지난 13일 백악관 오벌 오피스에서 '평양의 수족관-북한 강제수용소에서 보낸 10년'의 저자인 탈북자 출신 조선일보 기자 강철환 씨를 만났다.
강철환 씨는 북한 강제수용소의 실상을 담은 수기의 저자이며, 탈북 후 조선일보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업코리아>는 지난 29일 강철환 씨와의 인터뷰를 통해 북한 핵문제와 인권문제 등에 대한 얘기를 들어봤다.../편집자 주-
-한국으로 들어오게 된 그동안의 경위를 설명해 달라.-
* 조총련 출신 재일교포 출신이다.할머님이 오래 전부터 일본에서 공산당 활동을 하셨고, 8 15 해방 이후 조총련 창립 활동을 하셨다. 할아버지께서는 조총련 상공회 회장이셨다. 당시 일본 교포들 사이에서 할아버지, 할머니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63년에 가족 전체가 북송을 했고, 할아버지가 간첩으로 몰려 9살 때 함남 요덕 정치범수용소에 들어가게 되었다.
수용소에는 우리와 같은 재일교포들이 많았다.
재판절차가 없었기 때문에 이유도 모른 채 수용소에 잡혀왔다.
77년부터 87년까지 10년간 수용소 생활을 했다.
85년에 조총련 측에서 사람들이 너무 많이 실종됐다고 항의하자 김정일이 내부 지시를 통해 95년부터 2년간 수용소 사람들을 내보냈는데, 그때 수용소에서 나오게 되었다. 5년간 북한 사회에서 생활했다.
그러나 적응하지 못하고 남한 노래를 부르고, 남한 방송을 청취하다가 북한 고위부의 추격을 받아 탈북하게 됐다.
수용소에서 함께 생활하던 많은 친구들이 같이 나오기로 했는데 안혁이란 친구와 나, 두 명만 성공해 92년 한국에 왔다.
그 때가 24살 때다.
-92년이면 굉장히 일찍 한국에 온 셈이다.-
* 한국에 들어올 때는 문제가 없었나? 6개월간 중국에 있다가 대련 쪽에서 밀항선을 타고 한국에 들어왔다.
공해에서 한국 해군에게 구조 요청을 해서 한국 배를 타게 됐다.
입국하자마자 국정원에서 수개월동안 조사를 받았다.
국정원은 수용소의 상세한 상황까지 다 파악하고 있었다.
심지어 우리집 사진까지 있었다.
70년대니까 주민들이 굶어 죽을 때는 아니었다.
63년에 가족 전체가 북송을 했고, 할아버지가 간첩으로 몰려 9살 때 함남 요덕 정치범수용소에 들어가게 되었다.
수용소에는 우리와 같은 재일교포들이 많았다.
재판절차가 없었기 때문에 이유도 모른 채 수용소에 잡혀왔다.
77년부터 87년까지 10년간 수용소 생활을 했다.
85년에 조총련 측에서 사람들이 너무 많이 실종됐다고 항의하자 김정일이 내부 지시를 통해 95년부터 2년간 수용소 사람들을 내보냈는데, 그때 수용소에서 나오게 되었다. 5년간 북한 사회에서 생활했다.
그러나 적응하지 못하고 남한 노래를 부르고, 남한 방송을 청취하다가 북한 고위부의 추격을 받아 탈북하게 됐다.
수용소에서 함께 생활하던 많은 친구들이 같이 나오기로 했는데 안혁이란 친구와 나, 두 명만 성공해 92년 한국에 왔다.
그 때가 24살 때다.
-92년이면 굉장히 일찍 한국에 온 셈이다.-
* 한국에 들어올 때는 문제가 없었나? 6개월간 중국에 있다가 대련 쪽에서 밀항선을 타고 한국에 들어왔다.
공해에서 한국 해군에게 구조 요청을 해서 한국 배를 타게 됐다.
입국하자마자 국정원에서 수개월동안 조사를 받았다.
국정원은 수용소의 상세한 상황까지 다 파악하고 있었다.
심지어 우리집 사진까지 있었다.
70년대니까 주민들이 굶어 죽을 때는 아니었다.
-당시 수용소의 상황은 어떠했나?-
* 수용소 사람들은 대부분 평양에서 상위층에서 속하던 사람들이라 세끼 배불리 먹던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수용소에서는 옥수수만 줬고, 나의 경우 한 달 내내 설사를 했다.
많은 어린이들이 영양실조로 고통 받다가, 적응하지 못하고 죽었다.
살아남은 아이들은 사람이 아닌 짐승처럼 된다.
수용소에 이미 정착해서 살아남은 아이들은 땅을 파서 쥐를 잡아먹기도 했다.
나도 두 달 만에 그것을 먹게 됐다.
그것이 나의 수용소 생활 첫 적응과정이었다.
* 공개처형 장면 가장 기억에 남아수용소 상황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공개처형 장면이다.
특수부대 요원 두 사람이 도망쳐서 수용소 밖을 나갔는데, 둘 다 잡아와 교수형 시켰다.
목 매달아 죽인 뒤, 수용소 사람들에게 돌을 던지게 했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돌을 던지니까 시체가 터져 뼈가 보이더라.
그러나 수용소에서는 옥수수만 줬고, 나의 경우 한 달 내내 설사를 했다.
많은 어린이들이 영양실조로 고통 받다가, 적응하지 못하고 죽었다.
살아남은 아이들은 사람이 아닌 짐승처럼 된다.
수용소에 이미 정착해서 살아남은 아이들은 땅을 파서 쥐를 잡아먹기도 했다.
나도 두 달 만에 그것을 먹게 됐다.
그것이 나의 수용소 생활 첫 적응과정이었다.
* 공개처형 장면 가장 기억에 남아수용소 상황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공개처형 장면이다.
특수부대 요원 두 사람이 도망쳐서 수용소 밖을 나갔는데, 둘 다 잡아와 교수형 시켰다.
목 매달아 죽인 뒤, 수용소 사람들에게 돌을 던지게 했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돌을 던지니까 시체가 터져 뼈가 보이더라.
그 시체는 24시간 동안 방치 돼서 밤새 까마귀가 뜯어 먹게 했다.
이런 상태에서는 인간의 본능이 마비된다.
내가 저런데 끌려가서 죽는다는 생각에 도망은 생각하지도 못하고, 무조건 복종하게 되는 것이다.
-정치범 수용소에서 기독교 신앙으로 처벌받은 사람은 없나?-
이런 상태에서는 인간의 본능이 마비된다.
내가 저런데 끌려가서 죽는다는 생각에 도망은 생각하지도 못하고, 무조건 복종하게 되는 것이다.
-정치범 수용소에서 기독교 신앙으로 처벌받은 사람은 없나?-
* 1급 정치범으로 수용소 내 완전 통제구역으로 끌려간다.
대부분 골수 신자들, 목사들, 한국전쟁 시 국군보다 미군을 도운 사람들이 주로 끌려가는 곳이다.
내가 있었던 혁명화 구역과는 달리 완전 통제구역은 반동의 씨를 말리기 위한 곳으로,
대부분 골수 신자들, 목사들, 한국전쟁 시 국군보다 미군을 도운 사람들이 주로 끌려가는 곳이다.
내가 있었던 혁명화 구역과는 달리 완전 통제구역은 반동의 씨를 말리기 위한 곳으로,
특히 남자의 경우 18세가 되면 핵기지, 군사시설 건설 등의 중노동을 하다가 죽게 된다.
-평양 봉수교회에서 설교하는 목사, 찬양하는 사람들도 1급 정치범 아닌가?-
-평양 봉수교회에서 설교하는 목사, 찬양하는 사람들도 1급 정치범 아닌가?-
* 봉수교회는 외부에 보여주기 위한 행사북한 내에서도 교육받은 사람들이 하는 것으로, 외부에 보여주기 위한 행사다.
교회도 평소에는 문을 닫아두고 외국에서 손님이 오면 문을 연다.
일반 주민이 교회에 얼쩡거리게 되면 큰일난다.
-최근 김정일 위원장이 '한반도 비핵화는 아직 유효하다' '미국이 북의 요구만 들어주면 핵을 보유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이 점 때문에 한국은 미국을 향해 북 인권 문제를 제기해서 북한을 자극하지 말고 북이 핵포기 할 때까지 협조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미국은 강철환 씨를 만나는 등 북 인권 문제를 계속해서 제기하지 않으면 북이 핵을 포기 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교회도 평소에는 문을 닫아두고 외국에서 손님이 오면 문을 연다.
일반 주민이 교회에 얼쩡거리게 되면 큰일난다.
-최근 김정일 위원장이 '한반도 비핵화는 아직 유효하다' '미국이 북의 요구만 들어주면 핵을 보유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이 점 때문에 한국은 미국을 향해 북 인권 문제를 제기해서 북한을 자극하지 말고 북이 핵포기 할 때까지 협조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미국은 강철환 씨를 만나는 등 북 인권 문제를 계속해서 제기하지 않으면 북이 핵을 포기 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 기본적으로 한국 정부의 입장을 평가하자면, 6자 회담을 너무 부각시키고 있다.
북핵 분제는 6자 회담 자체보다는 김정일 위원장 본인의 의지 문제다.
회담에 나왔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해결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북한을 너무 모르고 있는 것이다.
김정일, 핵포기 하지 않을 것북핵은 북 내부에서는 체제안전 수호의 측면을, 외부적으로는 핵 공갈로 막대한 지원을 받는다.
김정일이 겉으로는 핵을 포기한다고 해도 실제로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모든 탈북자들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북핵은 외부로는 공갈용이지만 내부적으로는 제제유지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에서 핵을 포기하면 대대적으로 지원을 하겠다고 하는 것은,
북핵 분제는 6자 회담 자체보다는 김정일 위원장 본인의 의지 문제다.
회담에 나왔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해결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북한을 너무 모르고 있는 것이다.
김정일, 핵포기 하지 않을 것북핵은 북 내부에서는 체제안전 수호의 측면을, 외부적으로는 핵 공갈로 막대한 지원을 받는다.
김정일이 겉으로는 핵을 포기한다고 해도 실제로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모든 탈북자들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북핵은 외부로는 공갈용이지만 내부적으로는 제제유지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에서 핵을 포기하면 대대적으로 지원을 하겠다고 하는 것은,
체질적 개선 없는 김정일 정권의 연장을 지원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북한 주민은 계속해서 암흑 속을 지내야 한다.
정부는 북핵문제 뿐만 아니라 북인권 문제 해결에도 힘써야 한다.
<계속>인터뷰 = 서경석 본지 대표사진 = 정지연 기자정리 = 곽은경 기자
북한 주민은 계속해서 암흑 속을 지내야 한다.
정부는 북핵문제 뿐만 아니라 북인권 문제 해결에도 힘써야 한다.
<계속>인터뷰 = 서경석 본지 대표사진 = 정지연 기자정리 = 곽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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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민주화운동본부 공동대표이자 ‘수용소의 노래’의 저자인 강철환씨. ⓒ 뉴라이트닷컴 |
"독재자가 던져주는 곰발바닥을 핥으며 웃다니"
한국의 빠삐용 강철환이 옛 민주투사에게 보내는 호소<하>
[데일리안 나기환 논설위원][웹진 '뉴라이트 닷컴'은 '한국의 빠삐용 강철환이 옛 민주투사에게 보내는 호소'란 제목으로 북한민주화운동본부 공동대표이자 '수용소의 노래'저자인 탈북자 강철환씨와 자유주의연대 최홍재 조직국장과의 인터뷰를 게재했습니다. 최근 부시 미 대통령과 만나기도 한 강씨를 통해 북한인권의 실태와 민주화 방안을 함께 조명하고 고민하기 위해 27일(상)에 이어 (하)편을 소개합니다.]
-지금 전세계적으로는 좌파와 우파, 이념을 가리지 않고 북한 인권의 심각성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유독 한국에서만큼은 북한 인권문제에 대해 싸늘한 반응을 보이고 있거든요. 왜 이런 일이 벌어진다고 생각하십니까.
▲전두환 정권 들어서면서 북한 대남부서들의 활약이 컸다고 봅니다. 그때는 자금력도 막강했었거든요. 김일성의 전략이 상당한 역할을 했을 겁니다. 당시 북한에는 “머리좋은 사람을 공부시켜 정계로 진출시켜라”라는 내부 지시도 있었다고 해요. 그 영향이 지금 나타나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 민주화 운동 중 일정부분은 북한에 의해 조정되거나 농락당한 측면이 있다고 봐요. 지금 한국 사회를 가장 어지럽히는 것이 김정일에 의해 농간당한 일부 세력들이지요. 이들이 회개하지 않는다면 과거 일제시대때 친일파로 청산된 사람들과 똑같은 운명을 겪게 될 겁니다.
지금 북한 주민 수백만이 굶어 죽어가고 있습니다. 북한 주민 누구에게 물어봐도 더 이상 김정일은 아니거든요. 하늘도 버리고 북한 주민도 버린 김정일 정권에 대해 연민을 갖는다는 것 자체가 북한 주민들을 배신하는 행위인 겁니다. 오히려 고통을 연장시키고 있는 셈이죠. 그래서 북한 주민들, 특히 엘리트 계층에서는 남한 정권에 대해 분노하고 있는 겁니다.
-예전에 제가 학생운동을 했을 때도 미국이 전두환 정권을 도와주는 것 때문에 반미 운동을 했었는데, 그것과 마찬가지라고 보면 되겠군요.
한번은 제가 “남한에서 식량을 지원해주면 그래도 북한 주민에게 좀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 그러다 죽으면 어떡할거냐”고 말을 했어요. 그랬더니 그분이 벌컥 화를 내며 ‘남한의 민주화는 거저 이뤄졌느냐’고 하더군요. 북한에서 300만명이 굶어죽는 것도 민주화 운동이고, 지금 죽어가는 사람들 모두가 김정일 체제에 대한 저항이라는 겁니다. 이런 북한 주민들의 희생의 댓가로 결국 북한 체제는 바뀔 수 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150만 군대가 굶어야 북한이 변한다’는 것이 북한 주민들의 생각입니다. 현재 군대 때문에 식량문제가 가중되고 있고, 남한에서 지원되는 식량이 군대를 유지시키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한국 정부의 대북 지원은 겉으로 인도주의자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북한주민을 죽이는 살인행위와 마찬가지입니다.
-강대표께서는 풍선(기구)에 식량을 담아 북한에 날려 보내자는 제안도 하기도 했는데 현실성은 있다고 보십니까.
▲제가 직접 경험을 해봤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한 겁니다. 실제로 85년부터 87년 경까지 요덕 수용소에 엄청난 양의 풍선이 날라 왔거든요. 이것이 북한 주민들에게 실제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입니다. 한국정부가 의지만 있다면 일본 정부가 함께 할 수도 있는 문제라고 봅니다.
-어떤 사람들은 북한의 인권문제를 인질극 협상과 비교하기도 합니다. 인질범으로부터 인질을 구출하기 위해서는 인질범을 자극하면 안된다는 것이지요. 김정일을 자극해봤자 오히려 피해자는 북한 주민에게 돌아간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90년대 중반까지는 김정일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았지만, 지금은 북한 주민의 80~90%가 김정일에 반대하고 있어요. 150만의 군대로 북한을 내리누르고 있는 것이죠. 하지만 생각해 보세요. 내가 군인인데 고향에 가봤더니 내 부모가 굶어죽었더라, 그럼 김정일을 지키고 싶은 마음이 들겠어요?
또, 김정일을 자극하지 않겠다고 해서 계속 비위맞추며 정권 연장시켜주면 그 사이에 인질들은 결국 고사되어 죽는 것 아닙니까? 오히려 인질범과 인질범을 둘러싼 세력을 약화시키는 것이 인질을 구하는 지름길인 것이죠. 그런데 남한 정부는 오히려 인질범의 힘을 키우고 있는 상황인 겁니다.
남한에서는 ‘북한을 자극하지 말라’ ‘북한을 인정해야 한다’ 라고 하지만, 그 말은 북한 주민들이 해야 하는 말이에요. 도대체 무슨 자격으로 그런 말을 하는 건가요? 과거 전두환 정권때 미국사람들이 ‘전두환 정권을 인정하라’고 했다고 생각해보세요. 북한 주민들은 김정일은 인정하지 않는데, 남한에서 인정해 주자고 하다니요, 말도 안되는 소리죠. 대북정책을 주도했던 민주화의 탈을 쓴 사람들의 죄행은 역사가 심판할 것입니다. 아주 처절하게 말이죠
-강 대표가 부시대통령을 만난 날이 6월 15일이었는데요, 일부에서는 6.15 5주년 기념행사에 물타기를 하기 위해서 일부러 날짜를 맞춘 것이라고 비판하기도 합니다.
▲부시대통령은 세계를 관장하는 대통령이에요. 북한에서 뭘하든 그게 뭐가 중요하겠어요? 어처구니 없는 생각이죠. 실제 물타기도 되지 않구요.
북한에 간 정동영장관은 북한이 내온 곰발바닥 요리를 먹었다면서요? 정동영장관은 북한 주민들이 굶어 죽어간다는거 모르나요? 국민들 먹일 식량이 없어 구걸하는 나라서 곰발바닥 요리라니...제정신이 아닙니다. TV를 보니까 정동영장관이 김정일에게 90도 각도로 머리숙여 인사하더군요. 제가 부시대통령을 만날 때도 그렇게는 안했습니다.
-미국 행정부나 의회에서 북한에 관심을 갖는 것은 북한 인권 자체에 대한 관심이라기 보다 북한을 군사적으로 공격하기 위한 사전포석이라는 주장도 있는데요. 북한 인권법 반대운동 등을 바라보는 소회는 어떠신지요.
▲핵문제를 거론하는건 북한에 대한 압박이 아닌가요? 핵문제야 말로 북한을 공격하기 좋은 소재이죠. 핵문제는 유엔 안보리로 넘어가 제재를 가하면 금방 해결될 수도 있는 문제에요. 수용소 해체 문제는 핵문제와 차원이 다른 문제입니다. 생명과 관련된 철학적 의미가 담긴 문제를 한반도 긴장과 연계시킨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되죠.
-부시 대통령과의 면담에서 강 대표는 핵문제보다 인권문제가 더 심각하다고 말했는데요, 미국 국민 입장에서 보면 북한의 핵이 테러세력에게 넘어갈 경우를 의식해 핵문제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강 대표는 북한을 민주적으로 변화시키는데 핵보다 인권문제를 거론하는 것이 더 유용하다고 생각하신 건가요?
▲일제시대에도 조선 사람들은 폭정과 굶주림을 피해 수십만명이 만주에 건너갔었죠. 그렇다고 일본이 이 사람들을 다시 잡아가진 않았어요. 그런데 북한은 이런 사람들까지 다 잡아다가 죽이고 있습니다. 일제보다 더 못한 상황인거죠.
북한을 압박하는 수단중 하나가 탈북자들을 구출하는 일입니다. 저는 이 일을 미국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핵 문제도 위협이지만 핵 자체가 북한 인민들을 죽이는건 아니거든요. 북한 주민 입장에서 가장 시급한 문제는 탈북했다가 송환돼 죽는 사람들, 수용소에서 죽어가는 사람들 문제죠.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핵문제도 해결될 수 없다고 봅니다. 탈북자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북한 민주화의 첫걸음이자 인민을 구출하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국경부근 중국에 북한 사람들의 임시 거처라도 마련된다면 북한을 변화시키는데 큰 역할을 할 수 있을텐데요.
▲그렇습니다. 중국 정부도 북한과 동맹국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탈북자들을 잡아서 북한에 넘길 이유는 아무것도 없어요. 이미 세계속의 중국으로 나아가고 있고 경제적으로도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는데, 중세 봉건시대에 사는 북한같은 나라와 호흡을 맞춘다는 것은 중국으로서도 망신인 셈입니다. 10억 인구를 가진 대국에서 고작 수백명의 탈북자를 인정하지 못하다니요.
-부시 미 대통령에게 큰 영향을 미친 나탄샤란스키라는 사람과 강대표가 비교되는데요, 강대표와의 만남이 미 의회와 행정부의 정책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북한을 어떻게 해야 한다는 이론적인 논리를 제시한 것이 아니라 단지 북한의 실상을 언급했을 뿐입니다. 방법은 부시 정부가 판단할 일이지요. 저의 책 하나 때문에 정책이 좌지우지 된다는 것은 원치도 않는 일이고 그럴 일도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의 활동 계획은.
▲저의 목적은 북한 수용소를 해체하는 일입니다. 당장 죽어가는 북한 정치범들의 생명을 구하는 것이 1차 목표에요. 그게 안되면 북한체제는 변화되지 않고 민주화도 어렵습니다. 지금 당장 북한을 타도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인권문제 해결을 어렵게 만드는 일이에요. 인권이라는 정공법을 사용해서 압력을 가해야 합니다.
-인권운동을 했다는 분들에게 이 자리를 빌어 꼭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요.
▲저는 한국에서 와서 과거 박정희 정권때 고문당해 죽은 사람들, 전두환 정권때 학살당한 광주 시민들, 이후의 많은 민주화 투사들에게 감동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왜 이런 분들이 그런 정권보다 더 악독한 김정일에 대해서는 외면하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북한에 대한 본질을 전혀 파악하지 못할 뿐 아니라 자신들의 행위가 북한 주민들에게 얼마나 고통이 되는지에 대한 반성이 없거든요. 문제는 이대로 가면 북한 인민들은 물론 남한국민들까지도 불행해질 수 있다는 겁니다.
지금 민주화운동 세력들이 권력을 잡고 부정부패를 일삼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 흐린 눈으로 북한을 바라보니까 독재자가 던져주는 곰발바닥을 핥으면서도 웃음이 나오는 겁니다. 이제 지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북한 인권문제를 강력히 거론하는 것이 이 시대를 사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장시간 감사합니다./ 나기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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