惡을 관용하는 기독교인들
6·15와 10·4선언 실천의 전면에 선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하나님께서 6·15와 10·4선언을 주셨다"
金成昱
북한은 신앙의 자유를 부정하고 특히 기독교인에 대한 극단적 탄압을 계속해왔다. 안타깝게도 남한의 상당수 교회는 북한의 對南공작부서인 통일전선부 산하 조선그리스도연맹(조그련)과 협력하며 소위 對北 인도적 지원에 앞장서왔다. 이 과정에서 『북한에 신앙의 자유가 있다』는 등 조그련의 거짓 주장을 한국에 퍼뜨리는 확성기 역할도 담당해왔다.
기독교계는 북한선교라는 명목으로 민간차원에서 가장 많은 對北지원을 하고 있다. 예컨대 북한의 기독교 단체인 조선그리스도연맹(이하 조그련)을 통해 1998년부터 2002년까지 683억 원을 북한에 전했다. 2003년 이후 더 많은 對北지원이 이뤄진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공식통계는 나오지 않는다. 민간 차원 對北지원의 70% 이상을 차지하며 액수는 수조 원에 이를 것이라는 추정치만 있을 뿐이다.
對北지원 중 현금지원은 당연히 달러로 지원된다. 북한의 일반주민이 1달러로 한 달을 살아간다는 것을 고려하면, 현금지원은 북한의 가치로 환산할 때 곱하기 100 정도를 해야 옳다. 예컨대 683억 원은 최소한 6조8300억 원, 수조 원은 수천 조원에 이른다는 계산이 가능하다. 결국 북한정권을 유지시켜주는 것은 한국의 교회라는 평가도 가능할 것이다.
북한정권을 지지·지원·강화하는데 앞장서는 기독교인들은 흔히『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님 말씀을 인용한다. 그러나 성경의 일관된 교리가 공평(justice)과 정의(righteousness)이며 하나님이 지적한 가장 큰 罪惡(죄악)은 과부와 고아, 가장 억눌리고 폭압당한 자, 우리식으로 말하면 북한의 2300만 동포에 대한 외면이란 사실에 대해선 눈을 감는다.『원수를 사랑하라』며 하나님을 僭稱(참칭)한 악마적 정권을 돕고, 그 결과 북한의 동족은 맞아죽고, 굶어죽고, 계속 얼어 죽는다.
하나님께서 6·15와 10·4선언을 주셨다!
상당수 기독교인들은 6·15와 10·4선언 실천에 앞장서왔다. 6·15선언은 사실상 북한식 연방제 통일안을 수용한 것이고 10·4선언은 이 반역적 합의를 더욱 악화시킨 내용이다. 6·15선언과 10·4선언대로 실천하면 한국은 赤化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무엇보다도 두 선언은 대한민국 헌법을 명백히 위반한 것이다.
6·15와 10·4선언 실천의 전면에 서 온 대표적 기독교 조직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이하 NCCK, 舊KNCC)이다. NCCK는 1924년 9월24일 「조선예수교연합공의회」로 시작됐으며, 前身(전신)은 「KNCC」다. 단체는 홈페이지에서 『성서를 기반으로 선교와 친교, 봉사, 연구, 훈련을 통해 공동의 사명을 수행하기 위한 교회들의 협의체』라고 스스로를 소개하고 있다.
NCCK는 소위 進步的(진보적) 기독교조직으로 알려져 있지만, 會費(회비)를 내는 회원교단에는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예장통합), 기독교대한감리회(기감),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기하성), 한국기독교장로회총회(기장), 구세군대한본영(구세군), 기독교대한복음교회(복음교회) 등 국내 대다수 교단이 망라돼있다.
NCCK와 북한정권의 6·15실천 共助(공조)의 역사를 정리하면 이러하다.
▲ NCCK(회장 김삼환 목사)와 북한 조그련은 2009년 12월 「평화통일 공동기도문」을 작성해 예배에 사용하고, 전국교회와 해외교회에 발송했다. 기도문은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평화와 통일의 세상을 주시고자 6.15와 10.4선언이라는 소중한 결실을 주셨다』며 『남과 북의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평화와 통일을 향해 약속한 역사적 결단들이 하나하나씩 성취되어 통일과 평화의 밑거름이 되게 하소서』라고 기도했다.
또『어떤 이유로도 모든 나라와 민족에 대한 강대국들이 힘으로 강압하지 않게 하소서...강대국의 경제제재로 어려움을 겪는 형제·자매들에게 하나님께서 함께해 주셔서 고난을 극복하게 하시고...강대국들부터 핵무기 독점 야욕을 버리고 핵무기 철폐에 앞장서 하나님 지어주신 모든 세계가 실질적으로 핵무기가 없고 핵위협이 없는 세상이 되게 하여 주소서』라고 기도했다.
미국의 경제제재로 북한이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북한의 핵무기 대신 강대국의 핵무기 독점 야욕이 문제라는 식의 논리였다.
▲ NCCK와 조그련은 2009년 4월2일 부활절을 앞두고 공동기도문을 작성해 발표했다. 기도문은 『하느님의 정의와 평화를 위해 일하게 하시고 어두움과 죽임의 권세들을 두려워하며, 불의에 굴복하지 않게 하소서. 거짓 평화를 말하는 자들과 분열의 세력에 맞서 결연히 일어서게 하소서. 신실한 마음으로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굳게 지키며 남과 북이 마음과 힘을 모아 실천하게 하소서』라고 기도했다.
▲ NCCK와 조그련은 2008년 11월3일부터 6일까지 평양 봉수교회에서 「6·15공동선언 이행과 평화통일을 위한 기도회」를 개최했다. 기도문은 『우리 교회는 「우리 민족끼리」 서로 협력하여 6·15 공동선언이 실질적으로 이행될 수 있도록 상호간의 지혜와 역량들을 모아 더욱 노력할 것이다』라며 『이에 우리는 민족의 숙원인 평화통일을 위한 민족 공조에 적극 협력해 상생을 이루어 낼 것이다』라고 기도했다.
전광표 구세군 사령관, 『6·15선언은 우리민족의 희망』
▲ NCCK와 조그련은 2007년 6월5일 「6·15공동선언 이행과 평화통일을 위한 남북교회 금강산 기도회」라는 이름의 4번째 금강산기도회를 개최했다. 기도회에는 NCCK관계자 外 기독교대한감리회 신경하 감독회장 등 예장통합·기감·기장·기하성·구세군·복음교회 등에 소속된 남한 교회 대표 400여 명이 참석했다.
전광표 구세군 사령관은 설교를 통해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우리는 62년간을 분단의 아픔 속에 남남으로 살아왔다』며 『6·15선언은 우리 민족의 희망이며 이를 현실화하는데 남북교회가 크게 쓰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소위 남북교회가 함께 발표한 공동선언문은 『우리민족끼리의 기치 밑에 서로의 힘과 지혜를 모아 6·15공동선언이 실질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며 『통일을 방해하는 勢力(세력)들을 철저히 排擊(배격)하고 우리 민족의 숙원인 평화통일을 위한 민족공조에 적극 협력할 것』이라고 결의했다.
2007년 6월4~6일까지 진행된 일정은 각종 對北지원 합의가 이뤄졌다. 기하성 교단은 6월6일 조그련 측에 북한의 500여 소위「가정교회(?)」중 50여 교회를 2~3년간 지원하기로 했으며, 구세군은 북한에 식료품을 지원하기로 했다. 기장 교단은 6월5일 조그련과 만나 對北지원방안을 논의, 기장 여신도회가 추진 중인 평양 탁아소 건립 문제를 협의했으며, 조그련은 기장 측에 심장병원 의료기기를 마련해줄 것을 요청해 수락됐다.
▲ NCCK는 2006년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한 직후에도 對北지원 지속을 주장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 직후였던 2006년 7월28일에도 『인도적 남북교류와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등 남북 민간교류는 계속되어야 한다』며 對北(대북)지원 지속을 주장했다.
▲ 2001년 12월 성탄절에는 NCCK 김동완 총무와 북측 조선그리스도교연맹 중앙위원회 강영섭 위원장 명의로 『北과 南의 그리스도교인들은 어떠한 이유에서든 外勢(외세)가 조선반도의 평화를 위협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며 조선반도에 대한 무력행위를 하려고 하는 데 대해서는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 그리스도교인들과 함께 단호히 반대할 것』이라며 사실상 미국을 지목해 비난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 NCCK는 2001년 4월 부활절 예배 시 북한정권과 공동기도문을 사용했고, 북한의 가짜 기독교단체인 조선그리스도교 중앙위원회(위원장 강영섭) 측이 작성한 공동기도문을 발표했다.
『경직된 남북관계 풀겠다』며 아리랑 공연 간 NCCK
한국 기독교계의 가장 큰 비극은 惡에 대한 관용이다. 김정일 정권이라는 사상 유래 없는 폭압체제에 대한 침묵하고 동조하는 교회의 행태는 놀라운 일이다.
예컨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는 서해교전 직후였던 2002년 7월 북한의 체제찬양극인 「아리랑 축전」을 공식 참관했다. 단체는 『한반도를 둘러싼 전쟁의 암운을 걷어내고 경직된 남북관계를 풀겠다』며 참관 의의를 설명한 바 있다. 당시 아리랑 축전은 북한이 金日成 탄생 90주년과 金正日의 회갑을 기념하기 위해 4월 29일부터 6월29일까지 평양 능라도 노동절 경기장에서 개최됐다. NCCK 측은 방문 후『이번 북한 방문으로 아리랑 축전뿐만 아니라 분단 57년 동안 만나지 못했던 북한교회도 방문할 수 있다』며『이번 방문이 남북교회들의 연대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주장했었다.
NCCK가 경직된 남북관계를 풀겠다며 참관한「아리랑」공연은 북한정권의 체제宣傳劇(선전극)이자 兒童까지 외화벌이 수단으로 삼는「아동搾取劇(착취극)」 내지 「아동虐待劇(학대극)」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아리랑 공연 연습 중 쉴 틈은 거의 없다. 男女老少(남녀노소)할 것 없이 용변은 그 자리에서 해결해야한다. 여성들은 간이 칸막이를 만들고, 남성들은 비닐 주머니를 사용한다. 문제는 이 같은 학대와 고역으로 돈을 버는 주체는 노동당이라는 데 있다. 탈북자들은『거의 1년 내내 계속되는 훈련의 강도가 너무 심한데다, 한 사람이라도 기계적인 동작을 익히지 못하면 그가 속한 단위(팀) 전체가 휴식 없이 훈련을 받아야하므로 온갖 욕설과 구타가 난무 한다』,『많은 사람들이 한 사람처럼 움직이는 가운데 날아가거나 밑에서 (사람을) 받는 등의 위험한 동작들이 많아 事故死(사고사)가 빈번하다』고 말한다.
아리랑은 이른바 미국의「점령」으로 비극적 분단이 됐고, 남한 국민들이 자본주의 억압으로부터 해방될 날에 대한 희망, 북한의 군사력 증강과 침략자들의 공격에 기꺼이 맞서 싸울 기개 등을 묘사한다. 북한은 아리랑을 통해 체제선전과 함께 막대한 양의 외화를 벌어들인다. 2009년까지 6만여 명의 관광객을 유치해 벌어들인 돈은 약 1천만 달러(한화 약 120억). 남한 관광객들이 공연 관람을 위해 1박2일 동안 소비한 돈은 한화로 평균 100만원이다. 올해 미국의 한 여행사가 제시한 아리랑 관광상품은 항공료를 포함하여 1인당 약 4천 달러(약 500만원)에 달한다.
利敵團體(이적단체) 및 親北人事(친북인사) 옹호
NCCK가 힘을 써온 또 다른 분야는 북한의 對南(대남)적화노선에 동조하는 利敵團體(이적단체) 및 親北人事(친북인사) 옹호 및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한 여론몰이이다.
▲2009년 5월 실시된 당국의 利敵團體 범민련 남측본부 수사에 대해선『남북 화해와 평화를 지향하고 민족 공영을 추구해야 하는 이 시대에 現정부는 민간 통일운동을 오히려 적극 지원하라』고 주장, 공안당국을 비난했다.
▲2007년 12월19일 나온 NCCK 인권선언문은『한총련은 아직도 이적단체로 규정되어 지도부가 수배자로 내몰리고 있다』며『反인권·反통일 악법인 국가보안법은 폐지하고, 모든 양심수는 석방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04년 3월11일 이적단체인 범민련 남측본부 등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그동안 수사와 재판과정을 주의 깊게 지켜본 우리는 송두율 교수가 無罪(무죄) 석방되어야 한다고 확신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NCCK 산하 인권위원회는 △2008년 광우병 亂動(난동) 중에는 광우병국민대책회의 소속단체로서 시청 앞 촛불집회에 동참했고, △국가보안법폐지국민연대에 참여하여 2004년 국보법폐지 운동을 주도했으며, 2004년에는 △이라크파병 반대행동에도 참여했다.
▲NCCK 권오성 총무는 2002년 「한총련 합법적 활동 보장을 위한 종교인 1000인 선언」, 2003년 「송두율 교수 석방을 요구하는 시민사회 1000인」에 이름을 올린 바 있다.
화염병 100개 던진 『集團民願(집단민원)?』
NCCK와 한국기독교장로회(以下 基長)는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기독교계 내의 反정부 운동을 이끌어왔다.
NCCK는 2008년 6월10일 성명을 내고 이명박 정부가 국민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쇠고기 재협상에 임할 것을 촉구했다. NCCK는 이 성명에서 『현 상황에서 재협상은 검역 주권을 통해 국민 건강권을 회복하고, 국가 발전의 원동력인 국민 통합을 이루는 유일한 길』이라고 강조했다.
이후에도 NCCK 권오성 총무는 2008년 7월8일 오후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당, 청와대, 촛불집회 대책위원회간의 소통을 장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하는 등 NCCK는 촛불집회의 한 축을 이루어갔다. 基長 측은 2008년 7월3일 서울 향린교회에서 「검역주권 회복과 평화집회 보장을 위한 기장인 비상시국기도회」를 시작으로 광우병국민대책회의와 NCCK가 공동 주관하는 소위 「시민과 함께하는 촛불대행진」에 합류해갔다.
2008년 11월 김삼환 목사의 회장 취임 이후에도, NCCK는 용산放火(방화)사건(2009년 1월19일), 쌍용점거농성(2009년 6~9월, 77일간 점거농성), 미디어法 문제 등 각종 이슈에서 좌경세력의 不法·폭력행태를 옹호해왔다. 예컨대 1월19일 새벽 용산 4구역 재개발 지역에서 발생한 용산放火사건 당시 NCCK는 이 사건을 『집단민원의 하나』라며 이렇게 옹호했다.
NCCK 산하 정의평화위원회(위원장 정상복 목사)는 2009년 1월20일 「경찰의 과잉진압과 용산철거민 사망사건에 대한 본회의 입장」을 발표하고 이번 사건에 대해 『이번 철거민 농성은 도심 재개발 과정에서 생존의 위협을 받게 된 사람들의 集團民願(집단민원)의 하나이다. 그런데 이에 대하여 일체의 대화와 타협의 시도를 하지 않고 단 하루 만에 對테러 작전을 수행하듯 경찰특공대가 강제 진압하여 이러한 참혹한 결과를 가져왔다』고 주장했다.
또 『국민들은 그 생명과 재산, 안전을 보호할 책무를 권력과 함께 정부에 위임하였는데, 이명박 정부가 貧困(빈곤)계층과 사회 弱者(약자)들을 포함한 우리 국민들을 보호할 책임을 인지하고 있고, 그 의지가 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며 대통령의 직접 사과, 경찰 진압 과정에서의 책임 인정, 무리한 도심 재개발 정책 재검토, 사망자와 부상자들에 대한 적절한 보상을 요구했다.
NCCK 등 소위 진보교계 단체들은 이번 사건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기도회를 1월22일 오전 11시 용산 희생현장 임시분향소에서 개최했다.
弱者 대 强者 아닌 不法 대 法治
NCCK는 용산放火사건을 弱子(약자) 對 强者(강자), 正義(정의) 對 不義(불의)의 구도로 몰아가며 정권과 경찰을 비난했지만, 사태의 본질은 不法(불법) 對 法治(법치)의 구도였다.
당시 철거민 단체로 알려진 전철련은 용산 4구역 재개발 지역 내 남일당 건물을 不法점거한 뒤, 옥상에 망루와 새총을 세웠다. 전철련은 일부 세입자를 시위에 끌어들였지만, 망루와 세총을 비롯해 화염병 제조, 투척, 염산 및 시너 공급 등을 주도했다. 이들은 1박2일 동안 경찰은 물론 버스·승용차가 지나는 거리에 화염병을 100개 이상 투척했고, 골프공 300여 개, 유리구슬 400여 개, 벽돌 1000여 개를 대형새총으로 발사했다. 염산병도 40개 이상 던졌고, 시너를 통째로 부었다. 마구잡이로 던진 화염병으로 인근 건물 4곳에서 불이 났다.
도심테러에 가까운 放火(방화)사건을『集團民願(집단민원)』이라고 표현한 NCCK의 성명에선 法治(법치)나 秩序(질서)에 대한 존중 대신 민중주권의 혁명적 격정이 번득인다.
NCCK는 정부가『일체의 대화와 타협의 시도를 하지 않고』라고 비난했지만 경찰은 실제 18차례나 해산을 경고하며 대화와 타협을 시도했다. 경찰특공대 투입 역시 전철련의 화염병 투척으로 연쇄적 화재가 나오는 상황에서 불가피한 공권력 집행이었다. 경찰의 진압은 강경진압도, 과잉진압도, 살인진압도 아닌 정당한 법집행이었고 이것은 검찰의 수사결과 再(재)확인됐다.
경찰특공대 투입 후 전철련이 격렬한 저항에 나서는 가운데 바닥에 뿌려진 시너에 화염병 불이 붙었다. 결국 5명의 농성자가 사망했고 경찰관 21명이 죽거나 다쳤다. 경찰을 포함한 6명의 사망자 발생은 비극이지만, 원인은 전철련의 불법행위였다.
도심放火사건을 「사회 약자들의 외침」으로
NCCK의 용산放火사건 선동은 2010년 1월9일 정부가 서울역 凡(범)국민장을 허용하고 35억 원에 달하는 보상을 해주며 항복하는 순간까지 계속됐다.
NCCK는 2009년 7월23일 소위 시국대책위원회를 구성, 8월11일 기독교회관 2층 강당에서 「현 시국에 대한 기독교 입장발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용산참사는 임대를 통하여 생활을 하던 어려운 이웃들이 도심 재개발 과정에서 생존의 위협을 느끼고 생존권을 주장하는 과정에서 생명을 잃고, 부상을 당한 참사』라며 不法폭력이 난무한 도심放火사건을 「어려운 이웃의 생존권 주장 과정」으로 몰아갔다.
2009년 10월29일 용산放火사건 관련자들에게 有罪(유죄)가 선고됐을 때는『사회 약자들의 외침에 성급한 강제 진압으로 최악의 사태를 유발한 경찰에 「정당한 결정」이라고 판단하는 법적용과 해석은 정의와 인권의 가치를 상실한 단지 정치적인 판단』,『국민의 생명과 재산, 인권을 보호할 책임을 방기한 공권력에 대해 면죄부를 준 판결』,『경악을 금할 수 없다』고 했다. 역시 不法폭력, 도심放火를「사회 약자들의 외침」이라고 합리화하고, 이에 대한 합법적 진압은 무책임한 공권력 행사라고 맹비난했다.
NCCK는 2009년 12월29일 사건 발생 345일 만에 정부와 유가족 사이에 타결이 이뤄지자, 『이번 합의는 유가족과 조합 사이의 상호 양보, 문제 해결을 위해 애써온 여러 종교인들과 시민단체, 국민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며 『재개발 사업을 추진하면서 경제적 이익 이전에 약자들의 생존권을 우선으로 보장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밝힌 뒤 『사건 관련 구속자들과 수배자들에게도 법적 선처가 있기를 기대한다』고 주장했다.
2009년 NCCK 대표회장을 맡았던 김삼환 목사는 서울시와 철거민 측인「용산참사대책위원회」사이 중재에 앞장선 것으로 알려졌다. 金목사는 2009년 12월19일 남일당을 방문해 문상하고, 방한복 등의 겨울용품을 전달하면서 유가족을 위로했다. 12월25일에는 경찰가족에게 치료비 500만 원을 전달하고, 용산放火사건 유가족과 구속자 자녀들 22명에게 2000만 원의 학비를 지원했다.
그들이 과연 약자인가?
NCCK는 경찰을 때리고 심지어 죽게 한 不法폭력시위자들에게『弱者(약자)』의 명찰을 붙여 맹목적 비호에 나섰다. 그러나『弱者』라고 불법과 폭력을 쓰는 것이 정당화될 수 없다. 용산放火사건을 주도한 전철연과 같은 철거민 단체가 과연『弱者』인지도 의문이다. 오히려『弱者』를 僭稱(참칭)한 세력에 대한 超法的(초법적) 옹호는 집단화되지 않은 절대적 다수, 대다수 약자의 피해를 부른다.
용산放火사건이 터지자 좌파정당, 좌파언론, 좌파노조 등은 일제히『弱者』논리를 동원해 공권력 무력화에 나섰다. 그러나 전철연을 포함한 한국의 좌파는 가장 강력한 파워를 가진 文化權力(문화권력)이다. 공권력이 강력한「힘」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용산放火사건에서처럼 합법적 힘의 사용도 강경-과잉-살인진압으로 매도당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 결과 2010년 1월9일 서울역 광장에서는『민중해방』을 주장하는「용산참사 철거민 민중열사 범국민장」이 치러졌다. 공권력은「종이호랑이」, 한국의 좌파는 가장 강력한「文化權力」임을 보여준 사례다. 더 이상『弱者』의 선동이 정당치 않은 것이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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