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기쉬운 기독교리의 정리요약
Ⅰ. 살아계신 창조주 하나님의 실존.
Ⅱ. 선악과로 인한 인간의 범죄.
Ⅲ. 우리의 죄값을 대신 치러 주신 예수그리스도.
Ⅳ.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받을 수 있는 구원.
Ⅰ. 창조주 하나님의 실존
만유만사에 비롯됨이 없는 것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누군가 계획하고 이루어 낸 것입니다. 만유(萬有), 곧 눈에 뵈는 모든 것(森羅萬象)은 창조되었으며 그 창조자는 하나님이십니다. 세상의 다른 어떤 종교도 창조주를 인정하지 못합니다. 이는 기독교의 진리가 하나님의 도우심없이는 깨닫지 못하는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우연(偶然)이란 결코 없습니다. 눈에 보이는 만유(萬有)가 스스로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은 쉽게 납득할 수 있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우리가 알 수는 없어도 누군가 놀라운 능력과 계획으로 설계하고 만든 것입니다. 우리는 인류사에서 최고최대의 베스트셀러인 성경에서 그가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또한 이 책은 사람의 의식구조(意識構造)안에서만 이해하려하면 전혀 알 수가 없는 책이라는 점이 일반도서와 크게 다르다는데 주지하여야 하겠습니다.
시작도 끝도 없이 그냥 본래 스스로 존재하신 한 분, 그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은 끝내 사랑이시며 무한한 능력이시며 지금도 살아계신 영원하신 분이십니다. 여기서, 하나님께서는 사랑의 본령(本令)임을 강조하게 되는데 사랑에는 아시다시피 그 사랑을 주고받을 대상이 필요한 것이니 이에 인간의 창조가 이뤄진 것이고 그에 앞서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세상을 지으신 것입니다.
Ⅱ. 선악과로 인한 인간의 범죄
여호와 하나님께선 세상을 지으신 후 사람을 지으시고 세상관리를 맡기셨으며 예배라는 의식을 통하여 끝없는 교제를 원하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모든 것은 다 가하되, 단 한가지만은 금지시키신 것이 있었으며 이것이 에덴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는 것이었고 이 때 죽은 우리의 영(靈)으로 인하여 인간은 하나님을 떠나 육신(肉身)의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육신의 삶이란 인본적, 자아집착적, 이기적인 삶으로서 어떻게 되던 잘 살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삶을 말합니다.
따라서 그 선악과가 있으므로 인류가 죄속에 빠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우리들은 한번 쯤 하나님께서 애초에 선악과를 만들지 않았으면 좋지 않았을까하는 궁금증을 갖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지상낙원인 에덴동산을 창설하시고 거기 아담과 하와를 짝지어 놓시고 행복하게 살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만물을 거느리고 관리하며 누리도록 하셨습니다. 그들에겐 모든 것이 허락되어 있었으나 한가지만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만일 한가지의 금지사항도 없이 모두 다 허락받았다면 아담은 자신의 삶중에서 하나님을 기억하고 그 엄위앞에 경외함으로 관계를 유지하는 일에 얼마나 충실했을까요? 에덴동산의 중앙 선악과는 그래서 항상 자기마음대로 노닐다가 유일하게 여호와하나님을 기억해내며 자신의 근원과 이유를 밝히 찾는 생명의 샘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적어도 그것을 범하기 전까지 그것은 그렇게 자신의 통제력을 시험받는 인격의 저울추로서의 모습이었던 것입니다.
할 수도 있는 것을 자제함으로 얻게되는 자존감은 모두 다 해도 된다는 만사허락아래의 꼭두각시인생과는 그 격이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마치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말밖에 할 수 없도록 제작된 로봇으로부터 고백받는 사랑이 아무 의미가 없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우리의 자유의지속에는 하나님을 배반할 수도, 또 따를 수도 있는 양 끝의 마음이 함께 있습니다. 혹자는 묻습니다. 전지전능의 하나님께서 인간이 선악과로 타락할 것도 아셨을 것 아닌가? 하나님의 전지성은 그렇게 운명론적으로 이미 정해진 길을 알고 계신다는 것과는 개념이 달라 존중된 인격이 선택한 길을 갈 때의 여러가지 결과를 한눈에 보고 계시다는 것을 의미하며 인간을 사랑하시고 존중해주시는 그 분께선 우리가 선택하고 책임지는 우리의 몫을 침범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죄성은 하나님의 선하신 기대와 달리 불순종하여 엉뚱한 길로 갈 수도 있습니다. 이때 당신품에서 복된 삶을 살기 기대하시는 하나님의 전지성이 우리의 죄로 무너진다고는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아담이 지은 원죄의 근본은 인간이 하나님과 같이 되고 싶어하는 욕구에서 출발합니다. 지금까지 유전되어 오고 있는 오늘날 우리들의 죄도 여기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소망이 분깃을 지나치면 언제나 죄의 문에 엎드려 집니다. 열정이 지나치면 혈기요, 침착이 지나치면 게으름이 되듯이 넘침은 또다른 부족인 것입니다.
Ⅲ. 우리의 죄값을 대신 치러 주신 예수그리스도에 대하여
죄악으로 더렵혀진 상태로는 결코 만유의 주재이신 완전한 하나님을 만날 수가 없습니다.
죄인은 반드시 죽어야한다는 것과 주안에서 완전한 삶과 또한 교제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요구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므로 서로 충돌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랑이시기 때문에 사랑을 줄 수 있는 대상, 곧 자신을 가장 많이 닮은 사람을 어떤 방법으로든 용서하실 길을 열어 놓으셔야만 하셨습니다.
하나님과 사람사이에 불순종이라는 죄로 인해 벌어진 담을 헐어버리는 희생제물로 인간인 동시에 신의 정체성(Identity)을 지니신 예수그리스도의 몸을 사용하셨다는 것은 실로 완벽한 복음입니다. 우리는 이 예수그리스도를 두번 째 아담, 곧 ‘회복의 아담’이라고 부르기에 주저치 않습니다.
따라서 예수그리스도의 잉태는 죄에 물든 육신의 방법이 아니라 순결하고 거룩한 성령의 역사로 임했고 그 잉태는 온 인류가 갖는 소망의 잉태요, 죄속의 인간으로는 결코 불가능한 영생으로의 태동이었던 것입니다. 인류역사상 이 같은 복된 소식은 일찌기 없었으며 앞으로도 영원히 없을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는 새로 시작될 밝은 인류의 길이시며 구원의 시작이시며 마지막이십니다. 예수그리스도가 태중에서 요셉과 마리아와 함께 숙소를 찾아 헤메이듯 인류는 구세주를 찾아 긴 세월 방황하였고 낮은 마굿간 구유에서 낳셨을 때 교회가 낳음을 받았으며 인류에게 있어서 구원의 역사가 첫 발을 내디딘 것입니다.
피는 생명을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죽음과 사흘 후 다시 살아나실 것을 미리 말씀하신 뒤 어김없이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구원을 이루셨는데 여기서 쏟아낸 피는 죄용서를 위하여 꼭 필요한 것으로서 죄값으로 생명인 피를 드린다는 뜻깊은 예배의식이었습니다. 이 구원의 사역에 쓰일 대속제물에 정결치 못한 죄인을 사용할 수는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온전치 못하여 폐기처분할 양을 제사에 사용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완전한 하나님과의 화목을 위한 거룩한 제사에는 한 점 흠도 없고 티도 없는 순결한 제물이 필요했던 것이었습니다. 인류의 죄를 위하여 죄없는 예수께서는 십자가에서 참혹한 고통중에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예고대로 사흘 후 다시 살아나심으로 우리안에서 죄가 죽기만 하면 하나님안에서 다시 살아나는 소망의 진리를 몸으로 확인시켜 주셨습니다.
Ⅳ.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받을 수 있는 구원
애굽땅에서 혹독한 노예생활을 하던 이스라엘민족을 모세를 통하여 구원하신 하나님께서는 아직도 노예근성과 불신앙으로 오염된 그들을 40년에 거쳐 광야에서 하나님만 의지하는 법을 가르치게 됩니다. 광야훈련중에 뱀에 물려 죽어가는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하나님께선 모세로 하여금 지팡이에 놋뱀을 만들어 들어올리도록 하시고 그것을 바라보는 자마다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이 얼마나 비논리적이고 비과학적인 처사입니까? 그러나 여호와의 구원계획은 논리나 과학속에 갇혀 있지를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그 어느 것도 방해를 할 수 없었습니다. 놋뱀이 달리듯 예수께서 달리셨고 이제 그를 바라보고 개인의 구원주로 시인(是認)하는 자마다 죄에서 해방받고 죽었던 영이 되살아나는 이 하나님만의 방법속에는 하나님의 다 알 수 없는 경륜속의 긍휼과 자비가 넘쳐나고 있는 것입니다.
믿기만하면 구원받는 이 복음, 곧 성부는 세상만유를 창조하시고 성자예수는 구원자로 오셔서 십자가를 지시고 그 피조물인 우리는 다만 이 사실을 믿기만 하면 되는 이 놀라운 복음앞에 더 이상 무엇을 주저한단 말입니까? 허기야 너무나도 값진 것을 믿기만하면 거저받게 된다니 쉽게 이해되지 않는 부분입니다. 여기서 이해, 헤아림은 언제나 믿음 반대편에 도사리고 우리를 힘들게 함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 때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마11:25)
불신의 세상사람은 헤아려 본 뒤 믿으려함으로 불신의 늪에서 헤매이매 끝내 선악과의 본질인 악의 수렁속에 묻혀 있는 것이고 택함받은 믿음의 백성들은 자신의 사고나 판단을 뒤로하고 먼저 예수그리스도의 구세주되심과 하나님의 아들로 개인의 구원주이심을 고백하고 믿어들인 뒤 차츰 깨달아 알게 됨으로 "이해는 믿음의 댓가였노라"는 성 어거스틴의 고백을 자신의 것으로 하여 생명나무인 그리스도 예수께 속한 사람들인 것입니다. 할렐루야. 아멘.
<<충분히 읽고 묵상하셨다면 다음에 질문에 확신의 답변을 할 수 있도록 훈련되어져야 할 것입니다.>>
* 당신은 다음 질문에 명쾌하게 답변하실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질문 1) 에덴동산에 생명과만 있었다면 인간의 타락이 없었을텐데 하나님은 왜 굳이 생명과를 만들어 놓으셔서 인간이 타락할 여지를 만들어 놓으셨습니까? <인격의 저울추, 자유의지부여>
질문 2) 전지전능의 하나님은 선악과를 만드시면서 이미 인간이 사탄의 유혹으로 따먹을 줄 아셨을텐데 왜 병을 주시고 약을 주실 계획을 세우셨습니까? <운명론적 전지전능과 하나님의 전지전능>
질문 3) 예수님의 피흘리심이 왜 나 개인의 구원과 관계가 있습니까? <제사법의 설명>
-g.sulleim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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