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대학생에게,“ 금년을 2005년이라 하는데, 그 숫자 는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하고 물어보니까
“잘 모르겠습니다”하고 솔직하게 대답했습니다.
2005년이란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신 지 2005년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B.C.는 그리스도 오시기 전(Before Christ)의 뜻이고,
A.D.는 그리스도가 오신 후(Anno Domini는 라틴어로서‘주님 오신 후’) 라는 뜻입니다. 예수, 그가 도대체 누구이기에 그의 탄생으로 말미암아 인류 역사에 신기원이 만들어졌습니까?
매년 12월 25일이 되면 예수님의 성탄을 경축하는 행사
를 합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은 예수님 탄생연도를 기점으로 해서 인류 역사의 기원 전후를 나누었습니다.
약 2,000년 전에 예수 그리스도는 구약의 예언대로 이스라엘의 베들레헴이라는 조그만 마을에서 태어나셨습니다.
모든 인간의 죄 값을 치르고 인간과 대화하며 감정을 교류하기 위하여 그는 인간이어야만 했습니다. 그는‘사람이신 하나님’인 동시에‘하나님이신 사람’인 것입니다.
30세 되시던 때부터 공적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그로부터 3년 간 인
격과 행위 면에서 우리가 평생 목표하고 따를 완전한 형상과
모범을 보이셨으며, 우리의 모든 죄짐을 지고 우리 대신 십자가 위에서 물과 피를 다 쏟으셨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
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롬 5:8).
그리고 돌아가신 후 3일 만에 다시 무덤에서 부활하셔서
40일 간 증거하신 후 제자들이 보는 가운데 승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창세 이래로 어떤 사람도 살지 않은 유일한 일곱 가지 신비한 삶을 사시며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나타내셨습니다.
첫째, 성육신의 신비입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마 1:23).
예수님이 성육신하실 것을 약 700년 전 선지자 이사야가 미리 말했는데(처녀의 몸에서-사 7:14, 9:6), 구약의 예언대로(탄생장소 유대 땅 베들레헴-미 5:2) 성취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 없이 처녀의 몸을 빌려 성령으로 잉태하셨습니다.
둘째, 성결의 신비입니다.
모든 사람은 첫 사람 아담의 죄로 말미암아 태어날 때부터 죄성을 가지고 태어나나 예수님만은 성령으로 잉태되어 죄가 없었고, 모든 사람들은 죄를 범했으나 예수님은 완전성결하게 사셨습니다.
“저는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 그 입에 궤사도 없으시며”(벧전2:22).
셋째, 죽음의 신비입니다.
그의 죽음은 인간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우리 죄값을 다 갚았기에“다 이루었다”하시며
죽으셨습니다. 모든 인간은 자신의 죄 때문에 죽었지만 예수님은 우리의 죄 때문에 죽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도 한 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벧전 3:18).
넷째, 부활의 신비입니다.
그는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래서 그의 무덤은 빈 무덤입니다. 오늘날도 4월이 오면 세계 기독인들은 예수님을 믿으면 예수님의 약속대로 예수님처럼 영생부활한다는 믿음으로 부활절을 지냅니다.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 그 후에는 나중이니 저가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고전 15:23~24).
다섯째, 승천의 신비입니다.
초림의 예수님은 비천하게 마구간에서 태어나셨으나 부활하시고 세상을 떠나실 때는 높이 들려진 승리자, 죽음과 사단을 파괴하신 정복자의 영광스런 모습이셨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을 마치시고 저희 보는 데서 올리워 가시니 구름이 저를 가리
워 보이지 않게 하더라”(행 1:8~9).
여섯째, 현재 중보사역의 신비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의 사역을 완수하시고, 우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시고 영원한 대제사장으로서 중재 역할을 하시기 위해 하늘의 사역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는 하늘에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며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고 계십니다.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
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위엄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3).
일곱째, 재림의 신비입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살전 4:16).
예수님은 약속대로 반드시 다시 하나님의 백성을 데리러 오시며 이 세상을 심판하십니다.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
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 14:3).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딤후 4:1).
한 법정에서 생긴 일입니다. 법관이 법정에 들어왔습니다. 모든 방청객과 죄수, 변호사가 일어서서 경의를 표했습니다. 자리에 앉자 방청객들은 웅성웅성거렸습니다.
왜냐하면 죄수와 법관이 고등학교 친구 사이였기 때문입니다. 이
죄수는 빚을 갚지 못해 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법관은 법대로
고등학교 친구에게 최후 판결을 내렸습니다. 징역 2년 6개월. 방청석은 다시 술렁거렸습니다.
왜냐하면 법관은 전혀 친구를 봐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재판이 끝나자 법관은
법복을 벗고 친구에게 가까이 와서 말하였습니다.“ 너, 고생이 많았구나. 내가 네 빚을 갚아 주마.”
이것이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실천하신 예수님의 십자가상의 죽음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짊어져 주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죄를 반드시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공의를 이루셨고, 우리 대신 죽으심으로 우리에 대한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주후 31년, 유대 땅 예루살렘 성밖의 골고다라는 언덕에
역사적인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태어나시기 전 구약의 많은 예언들, 무려 250번 이상이나 선포되었던 예언들을 이루시고 예언대로 태어나셨으며, 갖가지 이적과 기적으로 말미암아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소개하셨으며 또한 하나님의 아들로 증명되었던
예수님께서 가장 참혹한 십자가의 형틀에서 비참하게 희생
되신 것입니다.
당시 세상 권력자들과 군병들이 예수님을 희롱하며 욕하
고 매로 쳤습니다. 짐승을 다루듯 하였는가 하면, 벌레만도
못한 취급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끝까지 묵묵히 참고 계셨습니다. 두 손과 두 발에 못이 박혀도, 피가 쏟아
지고 탈진 상태가 되었지만 자신의 생명을 온전히 포기하시
기를 주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죽은 자들을 살리신 분입니다. 바람과 바다도 그
분의 명령에 순종했습니다. 귀신과 질병이 그분의 말씀하시
는 대로 떠났습니다. 살아 있는 생명체나 들을 수도 볼 수도
없는 무생물도 예수님의 말씀대로 움직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능력이 없으셔서 죽으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면 어떤 죄를 범하셨기에 이러한 혹독한 형벌로 죽으셨을까요?
그 당시에 예수님을 재판한 빌라도는“죽일 죄를 찾지 못했다”고 예수님을 심문한 결과를 법정에서 세 번씩이
나 밝혔으며, 그 당시 유대의 왕인 헤롯 역시 죄를 찾지 못했습니다(눅 23:13~22). 또한 예수님의 사형을 집행했던
백부장도“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눅23:47).
그런데 예수님은 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까?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히 9:22)고 했습니다. 죄의 값은 사망이므로 오직 죽음으로만 죄값을 치를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옷을 사면 옷값을 치러야 하고, 차를 타면 차비를 내야 하는 것처럼 예수님의 보혈은 우리의 죄값을 치른 대
가입니다. 예수님은 율법의 저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키려고 죽으셨습니다. 율법의 마지막 저주는 사망입니다.
예수님은 어디에도 비할 데 없는 사랑으로 우리를 위해 저주를 받으
신 것입니다.“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갈 3:13)라
고 한 말씀대로,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사 그 몸으로 우리
가 받을 저주를 대신 받으신 것입니다. 예수의 피는 하나님의 진노를 영원히 가라앉히는 유일한 피였습니다.
죄인이 죄인을 건질 수 없는 것은 물에 빠져 죽어가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물에서 건질 수 없음과 같습니다.
저도 당신도, 심지어 성인이라고 하는 석가모니, 공자, 마호메트도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는 우리와 똑같은 죄인이기에 우리 죄값을 대신 치를 수 없습니다.
오직 죄 없는, 무흠하신 예수님만이 우리 죄값을 치를 수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짐승
과 달리 영원하신 하나님이시기에 그의 피의 가치도 영원합
니다. 예수님의 보혈은 우리의 죄를 영원히 씻었습니다. 우리의 모든 죄를 영원히 지옥으로 던져 버렸습니다.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예수님을 보내 주셨고
(요 3:16), 예수님은 우리 같은 죄인을 살리시려고 죽으러 오셔서(마 20:28) 대신 죽어 주심으로 우리에게 살길을 주셨습니다. 이로써 인간은 더 이상 죄의 값을 치를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요 19:30).
이것이 심판주, 하나님이신 예수께서
인간과 무조건적인 그분의 무궁한 사랑으로 세우신 새 언약입니다(눅 22:20).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우리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벽이 생긴 것을 부수고, 하나님께로 가는 길을 여셨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
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예수님의 부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고전15:3~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
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
것을 네가 믿느냐”(요 11:25~26).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① 하나님이 살아 계신 것 ② 내
세가 있는 것 ③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 ④ 예수님의
죽음은 공효(功效)가 있다는 것 ⑤ 예수님을 영접한 자들도
예수님과 똑같이 부활한다는 것을 증명하였습니다.
그러면 어떤 사실이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할까요?
첫째,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부활 후 나타나심으로 그
부활을 증거하여 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생전에 종종 자신이 죽으신 후에 부활하
실 것이라고 예언하셨습니다. 그런데 만약에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사시지 않으셨다면 예수 그리스도는 거짓말쟁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생애를 살펴보면 예수 그리스도는 실언하시거나 식언하시는 분이 아니시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사실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주님
이 실제로 사람들에게 나타나 보이신 일입니다(요 20:14~18; 행 1:3~11; 고전 15:6). 부활하셔서 한 장소에서
500여 명에게 보여 주시기도 하였습니다.
둘째,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증거는 그의 빈 무덤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만든 종교 창시자들인 공자, 석가모니, 마호메트, 노자, 마르크스의 무덤은 오늘날까지 다 있으나 예수님은 빈 무덤입니다.
왜냐하면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시신을 매장한 무덤이 비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렇게 빈 무덤은 하나님의 손이 작용하셔서이거나 아니
면 사람의 손이 작용하여서일 것입니다. 만약에 사람의 손이 작용하였다면 원수들의 손이냐, 제자들의 손이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원수들의 손도, 제자들의 손도 아닙니다. 원수
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시신을 제자들이 훔쳐갈까 하여 수직하는 자들이 그 무덤을 엄중히 지키도록 하였으니(마 28:4)
삼엄한 경계망을 뚫고 예수님의 시신을 훔쳐냈으리라고 생각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사람의 손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의 손이 작용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다
시 사시게 하심으로 그 무덤이 비게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셋째, 당시 로마 정부의 태도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의 변화된 태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강하게 증거합니다.
만약 예수님이 부활하지 않았다면 주님이 부활하신 지
약 7주 후 주님의 제자들이 예루살렘 곳곳에서 예수님의 부
활의 소식을 담대히 전할 때(행 2:32) 로마 군인이 무덤을 지키고 있었는데도 로마 당국과 제사장들은 그 시체를 왜 공개적으로 내어 놓지 못했겠습니까?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실 때 제자들은 연약하여 다 도망갔으나, 부활하신 주님을 뵙고는(고전 15:5; 눅 24:34)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생전에 당신이 영광을 얻으셔야,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 승천하셔야 성령께서 오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과연 오
순절 날에 성령께서 강림하셨으며,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제
자들은 변화되어서 두려워 떠는 자리를 벗어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힘있게 증거하는 증인들이 된 것입니다.
이 제자들은 핍박도, 죽는 것도 개의치 아니하고 담대히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하였으니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도, 성령의 강림도 사실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당시 로마 당국이나 반대자들이 유포한 거짓말대로 제자
들이 시체를 훔쳐갔다면(마 27:64), 제자들은 대부분 순교당하였는데, 세상에 어느 누가 거짓말을 위해서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바칠 사람이 있겠습니까?
넷째, 기독교의 발전과 세계적인 복음화는 예수 그리스도 부활에 대한 또 하나의 유력한 증거입니다.
신약성경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성령의 감동을 받고 쓴 글
로, 당시 예수 그리스도를 본 자들이나 반대자들이 생존했을 때인데, 부활하신 것이 거짓이라면 100년이 못 되어 예루살렘과 온 이스라엘과 주위 소아시아 지역들이 복음화될 수 있었겠습니까?
기독교는 적은 무리로 시작하였습니다. 그것도
비교적 무식하며 비천한 계급의 사람들에 의하여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로마 제국의 무서운 탄압과 박해속에서도 없어지지 아니하고 오히려 로마 제국을 정복하였으며,
오늘날에는 세계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써 정복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는 기독교의 발전이 아니라, 부활하시어 살아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는 기독교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지금도 살아 계신 부활의 주님을 믿어 변화된 구름같이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전세계 각처에서 산 체험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나와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예수 그리스도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것은 단순히
한 사람이 죽었다가 다시 살았다는 것 이상의 의의가 있는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이전에도 죽었다가 다시 산 사람이 여럿 있었지만,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일컬어서“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고전 15:20), 또는“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골 1:18; 계 1:5)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속죄를 완성하시고 죄 없는 인성으로 다시 사신 최초의 경우이며,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에 적응하도록 신령하고도 영화로운 몸으로 다시 사신 최초의 경우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가 율법의 모든 요구를 온전히 이루셨음을 선언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선언입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가 속죄를 완성하시고 부활하셨으니 그 공로에 의지하여서 죄인들이 넉넉히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있으며, 새사람이 될 수 있고, 부활의 영광에도 참예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첫 열매로 부활하여 주셨다는 말은 포
도나 토마토 같은 것이 처음 열매가 맺으면 또 계속해서 같은
열매로 맺는 것과 같이, 예수님께서 처음 열매로 부활하셨으니 예수님을 영접한 우리가 계속해서 다음 열매로 예수님과 같이 부활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의 부활을 모형으로 보여 주시고, 또 우리의 장차 부활을 확증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공중에 나는 나비를 보십시오. 기어다니는 애벌레 단계에서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고치를 틀고 고치 속에, 어둠에 가만히 있다가 또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고치에서 나와 마음껏공중을 나는 나비의 단계로 변화합니다. 이렇게 조그만 벌레
도 변화하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이
주님처럼 부활하지 못하겠습니까?
육체의 부활은 인간의 이성으로 납득하기 어렵지만 예수
님은“무릇 사람의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느니라”(눅
18:27)고 말씀하십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40일 동안 제자들에게 부활의 몸을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고 그들이 보는 데서 승천하셨고, 다시 오셔서 세상을 심판하시고 믿는 성도들을 영생의 부활체로 변화시켜 천국으로 데려가실 것을 약속하셨
습니다.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
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 14:3).
구속의 은총을 입을 사람의 대표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죽으셨다가 부활하심으로써 그 생명을 주는 은혜가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게 된다는 것입니다. 아담의 범죄의 영향이 우리에게 미치는 것이 사실인 것처럼, 두 번째 아담인 예수님이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공효가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의 시조 아담은 범죄하여 우리
에게 사망, 곧 멸망을 주었지만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생명, 곧 영생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죽으셨다가
다시 부활하시어 살아 계시는 주님밖에는 생명의 길이 전혀 없는 것입니다.
사랑의 예수님은 죄인을 심판하러 오신 것이 아니고 죄인
을 구원하러 오셨습니다.
범죄한 아담을 찾아“아담아, 아담아”부르시던 예수님은 우리 죄인들을 부르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마 11:28).
사형을 언도받은 사형수에게 가장 기쁜 소리는 무엇입니까? 돈, 명예, 건강, 집도 아닙니다. 그것은 오직 특사로 얻은
사면입니다. 한 사형수를 특사하러 왕이 직접 사형수를 부르
러 왔다면 이보다 더 기쁜 소식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 세상 어떤 친구가 당신의 목숨을 위해 대신 죽어 주었다면 그 친구가 얼마나 고맙겠습니까? 그런데 잠시 사는 인생을 위해서가 아니라 영원한 천국에서 사는 영생을 위해 죽어 주신 분이 있다면 그분을 얼마나 고마워하겠습니까?
하나님은 당신을 지극히 사랑하셔서 하나밖에 없는 아들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셔서 당신의 모든 죄, 당신이 받아야
할 죄의 벌을 대신 당하게 하시기까지 당신을 사랑하셨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을 사랑한 적이 없을지라도 하나님은 이미 당신을 사랑하셨습니다. 당신은 그에게 전혀 관심이 없었으나 하나님은 당신을 알고 계셔서 당신의 죄를 이미 용서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
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
것을 네가 믿느냐”(요 11:25~26).
질문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알게 되면 예수님을 생명의 구주로 믿을 수 밖에
없는 것이 세 번째 영적 원리입니다.
다음 성경 구절에 '우리' 대신 당신의 이름을 넣어 예수님을 믿겠습니까?
(예),(아니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였느니라"(롬5:8)
[출처] 왜 예수만이 유일무이한 구세주이신가? |작성자 비전설레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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