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지식.정보.시사.역사.과학.건강 等

[朝鮮칼럼 The Column] 가짜 진보의 황혼

by 설렘심목 2021. 5. 4.

오피니언

[朝鮮칼럼 The Column] 가짜 진보의 황혼

김영수 영남대 교수·정치학

입력 2021.05.03 03:20 | 수정 2021.05.03 03:20

 

1989.6.30. 전대협주체로 한양대에서 열린 ‘모의평양축전’ 행사장/ 참가한 학생들이 화염병을 던지며 진압경찰에 맞서고 있다.

공산 체코의 청과물 가게 관리인은 양파와 당근을 진열해 놓고, 창문에는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슬로건을 걸어놓았다. 그는 세계 혁명에 그토록 열정적이었는가? 사실 그 포스터는 양파, 당근과 함께 중앙사업부에서 배달되었고, 남들처럼 그것을 게시했을 뿐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심오한 뜻이 담겨 있다. “나는 여기 살고 있고, 내가 뭘 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 기대하는 바를 하고 있고, 그러므로 내게는 평화롭게 살 권리가 있다”는 일종의 신호이기 때문이다. 1978년 체코의 극작가 하벨(Vaclav Havel)의 ‘힘없는 자들의 힘’(The Power of the Powerless)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공산주의는 한때 인간 해방의 복음이었다. 하지만 하벨이 목격한 공산주의는 진실을 은폐하고 인간의 굴종을 요구하는 체제 이데올로기였을 따름이다. 청과물 가게 관리인은 해방은커녕 일상화된 감시 속에서 살고 있었다. 그처럼 고결한 이상이 어떻게 가장 조악한 거짓말, 사나운 폭력으로 전락했을까? 지금 한국 진보의 모습에도 똑같은 의문이 생긴다.

 

보수가 산업화를 성취했다면, 진보는 민주화를 이끌었다. 두 날개를 가지고, 대한민국은 지난 70년간 기적의 역사를 써왔다. 지금까지는 그렇게 믿어왔다. 하지만 그들의 민주주의가 갑자기 낯설어졌다. 문재인 정부 이래 헌법과 법치주의, 삼권분립, 언론의 자유 등이 너덜너덜해졌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좀 심한 일탈로 생각했다. 그러나 윤석열 사태에서 ‘민주적 통제’란 명분하에 ‘민주적 절차’를 사정없이 유린하는 것을 보고 근본적인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정당성만 있으면 절차는 아무래도 괜찮은가. 레닌도 그렇게 생각했다. 1917년 러시아혁명 직후 볼셰비키가 소수로 떨어지자 제헌의회를 해산했다. 멘셰비키와 사회혁명당도 제거하고,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더 높은 수준의 민주주의라는 신념에 의해 정당화했다. 그리하여 솔제니친이 ‘수용수군도’로 부른 적색 전체주의가 탄생했다.

 

알고 보면, 586 운동권 세력은 태생이 민주주의자가 아니다. 그들은 레닌주의, 김일성주의에 푹 젖어 젊은 시절을 보냈다. 1980년대부터 마르크스주의가 학생운동을 장악했다. 이른바 PD계다. 1986년부터는 북한의 주체사상을 추종하는 NL계가 운동권을 석권했다. 정의당은 PD계, 더불어민주당에는 NL계 출신이 많다. 젊을 때 그들은 모두 자유민주주의를 부르주아민주주의로 경멸했다. 껍데기, 즉 ‘절차’만 민주주의라는 것이다.

그나마 PD는 지적으로 치열했고 논쟁적이었다. NL은 처음부터 김정일의 ‘주체사상에 대하여’를 바이블처럼 외웠고, 북한 해주에서 발신되는 한국민족민주전선(한민전)의 지시에 따랐다. 이견은 불경이었으며 수령님과 의장님에 대한 절대 복종을 강조했다. 상명하복은 군대보다 엄격했다. 전체주의이자 일종의 사이비 종교다.

 

1980년대 학생운동을 깊숙이 경험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일반 국민은 잘 몰랐다. 그러나 이제는 누구나 안다. 조국 사태가 결정적이었다. 그의 진정한 위업은 가짜 진보의 신화를 깨고 진실을 알렸다는 것이다. 윤미향·박원순·남인순·김상조 등의 행태가 드러나면서, 그들의 속살이 드러났다. 아름다운 외피의 한 꺼풀 밑에는 탐욕의 거미줄이 무성했고, 위선의 악취가 코를 찔렀다. 이게 ‘사람 사는 세상’인가?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영화 ‘태백산맥’에서 “당은 절대 틀리지 않는다”고 굳게 믿었던 골수 공산주의자 염상진은 고뇌에 차 이렇게 독백했다. 1945년에 이미 칼 포퍼는 공산주의를 ‘열린 사회의 적’으로 비판했다. 그 유령이 1980년대 한국 운동권을 장악했다. 세계사의 흐름에서 한 세대는 뒤졌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을 때, 공산주의는 인류의 참극임이 명백해졌다. 일부는 회개했고 전향했다. 하지만 1990년대 한국 대학가는 반미 자주를 외치며 10만명이 모여 축제를 벌였다. 그렇게 스스로를 성찰할 귀중한 기회가 지나갔다. 다른 대한민국에서는 서울올림픽이 열리고, 서태지의 ‘난 알아요’가 공전의 히트를 쳤다.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이 김정일을 만난 뒤, NL계 운동권이 대거 제도권에 진입했다. 과거는 민주화운동으로 포장되었다. 그렇게 20년 더 생존했다.

 

1980년대 학생운동과 지금의 가짜 진보, 그리고 팬덤 현상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생각하지 않음’(thoughtlessness)이다. 해나 아렌트는 그것을 20세기 전체주의의 기원이라고 보았다. 에리히 프롬이 말한 ‘자유에서의 도피’(escape from freedom)이기도 하다. 스스로 생각하는 대신 우상을 따르고, 떼 지어 약자를 괴롭힌다. 그걸 고상하게 민주적 통제라고 한다. 한국의 진보는 지금 황혼이다. 40년 가짜 진보의 시대가 끝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