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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을 초청하려던 북한이 깜짝 놀라 포기한 사연 - 태영호

by 설렘심목 2021. 4.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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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초청하려던 북한이 깜짝 놀라 포기한 사연

  • 박주연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21.02.10 13:30
    태영호의 무제한 토론 ③

지난 연말 대북전단금지법에 대한 무제한 토론에서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은 북한 실상을 알리는 다양한 에피소드를 들려줬다. 이번 호에서는 북한이 교황을 초청하려다 포기한 이유 등 흥미로운 이야기가 담겼다. 지난 호에 이어 북한의 종교정책에 관한 토론 내용을 정리해 연재한다.

 

북한의 반종교 정책을 통해 북한을 어떻게 볼 것인가 이 점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북한의 종교정책은 탄압과 말살의 차이가 무엇인지를 중점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세상에는 많은 공산국가들이 있습니다.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종교는 아편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 어떤 공산국가도 종교를 장려하지 않습니다. 과거 공산권 당시 중국, 소련, 동유럽 등 나라는 종교를 탄압했습니다. 유일하게 북한만 종교를 말살했습니다.

여러분, 탄압과 말살, 이게 뭐가 다를까요? 사전적으로 탄압하면 괴롭힌다는 겁니다. 괴롭히고 하지 못하게 한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소련이나 중국 동유럽이 공산권에 있을 때도 교회당은 그대로 다 있었습니다. 목사들도 있고요. 다만 당국이 세를 확장하지 못하도록 주일 예배에 모이지 못하게 탄압했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말살입니다. 말살이라는 건 사람의 눈에서 시각적으로 보이지 않게 다 없앴다는 겁니다.

 

첫째, 물리적으로 교회당을 깨부숩니다. 눈에 보이지 않게 다 없애버려요. 북한에서는 모든 교회당을 깨부쉈습니다. 둘째 사람입니다. 종교, 성직자들 다 처형하고 없앴습니다. 물론 많은 분이 6·25 때 북한의 이런 실상을 알고 한국으로 내려왔지만 북한에서는 샅샅이 깡그리 종교를 없애버렸습니다. 최근 북한의 종교정책과 관련해 말씀하시는 분이 있는데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북한이 종교를 탄압했다, 말살했다고 말이 많은데 북한에 실제로 가 보면 봉수교회당도 있더라, 그리고 내가 북한에 가서 교회당에 나가 주일 예배도 봤다, 그리고 북한 헌법을 보니까 종교의 자유를 보장한다고 돼 있더라, 그런데 왜 이북에서 오신 분들은 북한이 종교를 말살했다, 탄압했다 이렇게 말씀하시는가, 북한 이북에서 내려오신 분들이 하는 종교정책은 왜 이렇게 다를까.’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북한 헌법에는 신앙의 자유를 보장한다고 돼 있습니다. 북한에는 교회당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있습니다. 바로 북한의 개신교 교회당 봉수교회당이 하나 있고 칠골에 칠골교회당이 있고 또 가톨릭에서는 장충성당이 있습니다. 그런데 1988년까지 북한에는 교회당, 성당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1988년도 김일성이 큰일 났다며 “야, 빨리 교회당 지어라.” 이렇게 해서 김일성이 자기 고향인 만경대에 자기가 어릴 때 다니던 칠골교회하고 봉수교회당을 짓습니다. 교회당을 다 깨부쉈던 김일성이 왜 갑자기 봉수교회당을 지었을까요 여러분?

1984년 5월 3일 한국을 처음 방문한 요한 바오로2세 교황을 전두환 대통령이 직접 공항에서 영접했다. 김일성도 교황의 평양 방문을 추진하다 종교자유 문제로 포기했다./대통령기록관

 

김일성이 부순 교회당을 다시 지으려던 이유

 

여러 이유가 있지만 바로 이겁니다. 대한민국이 88올림픽을 개최하게 되자 김일성은 ‘야, 88올림픽을 무조건 막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왜? 올림픽을 한번 개최하면 그 나라는 20년 이상 도약하는데 그렇지 않아도 운동장이 기울고 있는데 88올림픽까지 허용하면 안 된다, 무조건 막아라 해서 한 일이 KAL기 폭파입니다. ‘KAL기 폭파하면 사람들이 무서워 대한민국에 오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전까지 동부권과 서부권의 대결장이 됐던 올림픽이 KAL기 폭파 이후 오히려 중국, 소련, 독일 등 이전 동유럽 나라들이 다 오겠다고 하는 겁니다. 결국 북한의 힘으로는 막을 수 없는 일이 생긴 겁니다.

 

김일성은 그래도 ‘우리도 맞불 놓자. 할 것 좀 없냐’ 해서 찾은 것이 89년 세계청년학생축전입니다. 전 세계 청년 단체들에게 북한이 이런 축제를 하니까 오라고 해서 7만여 명의 전 세계 청년 학생들이 오겠다고 답변이 왔습니다. 문제는 그중 70%가 바로 기독교 국가들이라는 겁니다. 이 청년들이 평양에 와 다닐 때 제일 먼저 뭘 찾을까요? 교회당을 찾을 겁니다. 왜 평양에는 교회당이 하나도 없냐 하는 것이죠.

 

여러분 아시겠지만 해방 전까지 평양은 동방의 예루살렘이었습니다. 대부흥의 중심이 평양이었습니다. 그런데 평양에 교회당이 하나도 없다? 큰일입니다. 그런데 김일성은 이걸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빨리 교회당을 하나 지으라고 해 88년에 급히 지은 게 바로 저 봉수교회당입니다.

 

그때 김일성이 뭐라고 했느냐, ‘지금까지 우리가 교회당 다 깨부순 거 진짜 잘못했다, 우리가 종교를 탄압하지 않는다는 것을 세계에 보여줘야 하니 평양에도 교회를 짓고 원산, 그 다음 신의주 이렇게 지난 시기 기독교 중심 지역이었던 10개 도시에 교회당 좀 지어라.’ 그래서 북한은 교회당 10개를 지을 계획을 갖고 있었어요. 북한은 지을 준비를 다 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30여 년이 지났지만 북한의 교회당 건설은 거기서 멈춰 섰습니다. 김일성이 10개를 지으라고 했는데 88년에 짓고 왜 멈춰섰을까요? 바로 여기에 여러분, 종교의 힘이 있는 겁니다.

 

화면에 띄운 사진을 보십시오. 저게 88년에 지은 북한 교회당이고 이쪽에 있는 새 교회당이 구교회당을 허물고 2008년에 다시 지은 봉수교회당입니다. 여러분 사진을 시각적으로 들여다보면 무슨 차이가 납니까? 교회당 건축에서 뭘 느낄 수 있을까요? 88년에 저 교회당을 지을 때 김일성은 자신이 교인이었기 때문에 교회당을 다 지은 다음 종교정책에 성공했다고 할 수 있겠지만 숨은 신자들이 있을 수 있다, 그러니 교회당 주변에 망원렌즈를 두고 그 주변에 어슬렁거리는 사람들이 있는가 감시하라고 말합니다.

 

북한은 이렇게 종교를 믿었다가는 감방에 가기 때문에 절대 안 갑니다. 안 들어갑니다. 못 들어갑니다. 그래서 (망원렌즈를) 먼데 세워놓고 지켜봤는데 매주 주일 예배 시간이 되면 그 주변을 빙빙 도는 사람이 있습니다. 없을 줄 알았는데 있는 거예요. 그래서 보위부가 잡아다 신원을 조사해 보니 교인들입니다.

 

김일성한테 보고했습니다. ‘수령님, 가 보니까 진짜 교인들이 모여 옵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저렇게 높이 걸었네요.’ 십자가를 걸면 교인들은 저걸 보면서 저도 모르게 모이게 돼 있는데 무슨 방법이 없을까 하다가 십자가가 보이지 않도록, 길거리에서 사방에서 보이지 않도록 하는 방법을 그때부터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2018년 10월 18일(현지시각) 교황청을 공식 방문해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난 문 대통령. 교황의 북한 방문을 성사시키려 했으나 북한의 종교 탄압 때문에 이뤄지지 않았다./연합

 

두 번째, 김일성은 교회당을 만들어 놓고 당 목사를 파견했습니다. 당 목사가 내려왔어요. 그런데 목사만 있으면 됩니까? 교인이 있어야지요. 그런데 북한 아시지 않습니까? 교통 사정이열악하기 때문에 여기저기서 모일 수 없습니다. 그래서 교회당 주변 마을에서 악질 빨갱이 출신들, 진짜 성경책 100번을 읽어도 한 구절도 머리에 안 들어갈 사람들로 그 주변의 직장 안 나가는 여성들과 남성들로 조직을 했습니다.

 

말하자면 보여주기식 교인들을 조직한 거죠. 그래서 시작합니다. 일요일마다 외국인들도 한국인들도 교회에 오면 목사가 나와 이렇게 합니다. 그러나 북한은 강제력이 발동되지 않으면 사람들이 모이기 매우 힘들어요. 모이라고 해도 사람들이 잘 모이지 않습니다. 여러분, 일요일에 집에서 쉬어야 할 여성들에게 교회당에 나오라고 하면 누가 나오겠습니까? 힘들어 죽겠는데, 아침에 빨래해야지 집도 치워야 하지 할 일도 많은데 교회에 나오라?

 

안 나오니까 목사가 출석부를 만들어 놓고 설교를 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일요일마다 여기에 나와 성가도 부르고 12시까지 앉아 있는 것은 단순히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혁명을 위한 겁니다. 성경을 믿지 않아도 여기 나와 앉아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외국인들도 보고 한국 사람들도 와서 믿지 않겠습니까?” 출석을 부르고 만일 홍길동이 안 나왔다고 하면 자리를 채워야 하니 빨리 가서 데려오라고 하고는 했습니다.

 

그렇게 앉혀놓고 성경책을 읽어주고 성가를 불러주고 이렇게 합니다. 딱 넉 달 그렇게 했답니다. 넉 달이 지나니 출석을 부를 필요가 없게 됐습니다. 10시에 목사가 성경책을 들고 그 자리에 딱 서면 이미 자리에 쫙 다 앉아 있습니다. 목사가 대단히 궁금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자발적으로 잘 나올까?

 

쇼를 위해 동원됐다 진짜 믿기 시작한 북 주민들

 

눈도 또렷또렷하고 반짝반짝하고 목사님이 언제 저 성경책 읽어주나 기다리고. 목사는 ‘내가 성경책 읽어주면 그 사람들 마음에 진짜 닿는 것 아닌가?’ 목사가 이상하다고 의심하기 시작했어요. 여성들 한 명 한 명 불러다 묻습니다. “솔직히 내가 남들이 오기 때문에 성경책을 읽는 건데 실제로 너희는 믿으면 안 되는데 진짜 믿는 것 아니지?”

여성들 하는 말이 “우리는 수령님만 믿는데 성경책을 믿는 게 뭡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런데 목사가 이상한 건 이런 책을 읽으면 사람들이 졸아야 합니다. 북한은 회의 모이면 다 졸아요. 그런데 성경책을 읽을 때 조는 사람이 없는 게 이상한 겁니다. 이걸 분명히 듣나? 그래서 김일성한테 문건으로 보고합니다.

 

“가만 보니까 이상합니다. 이거 믿는 것 같습니다. 이거 이대로 둬도 될까요? 이거 위험해지지 않을까요?” 그러니까 김일성이 뭐라고 하느냐. 김일성은 자신이 교인이니까 다 압니다. ‘아, 몇 달 들었다고? 한 넉 달 들었으면 이제는 교인이 되는 거야. 그러니까 사람 수 더 늘리지 말고 그 사람들에 한해서 차단해.’ 그다음, 여성들이 교회에 와서 제일 좋은 게 뭐라고 답변했을까요?

 

노래하는 게 제일 좋다고 했습니다. 모여서 아름다운 찬송가를 계속 부르니까요. 북한 여성도 노래 좋아하거든요. 그런데 북한은 노래 부르라고 하면 맨날 4분의 4박자 혁명적인 노래만 불러야 합니다. 그런 노래만 부르다가 교회 와서 편안히 앉아 오르간 소리에 맞춰 노래 한 시간씩을 불러도 힘들지 않은 거예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노래 부르러 나온다는 겁니다. 그래서 목사가 ‘큰일났다.’ 이렇게 됐습니다. 결국은 김일성한테 “이거 가짜 교인이 진짜 교인 됩니다.”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다른 하나는 더 중요한 겁니다. 교회당 주변에 보위원들이 망원경을 설치하고 들여다보는데 젊은 애들이 교회당 담장 주변에서 무엇인가 수첩에다 열심히 쓰는 것을 봤습니다. 뭘 썼을까요? 북한에서는 악보를 그린다고 하는데 한국말로 채보죠. 예술하는 친구들이 성가 나오는 것을 듣고 오선지에다가 악보를 그리는 겁니다.

 

89년까지만 해도 북한 평양음악대학에서 외국 노래를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젊은 애들이 가서 듣고 악보를 그려 멀리 집에서 한번 해보는 거예요. 성가대가 얼마나 멋있습니까? 다시는 오지 말라고 쫓아 보내도 또 오고요. 이렇게 교회당을 건설하니 사람들이 모이고 젊은 애들이 모입니다.

김일성한테 이걸 다 보고했어요. 그래서 김일성이 ‘이거 큰일났다, 일단 그 이상 더 짓지 말라.’ 그래서 결국 10개의 교회당을 지으려던 김일성의 계획은 중지됐습니다. 그다음이 문제입니다. 북한의 그 사진 다시 보여주세요. 북한에 돈이 있습니까? 교회당 한 번 건설할 때 한국 교인들이 돈을 다 모아 줬습니다. 2008년에도 북한에 가서 물론 돈 줬죠.

 

봉수교회당 다시 지을 때도 굉장했습니다. 십자가 기둥 올리지 말라, 어떻게 해라 그러다 끝내 올랐습니다. 단 십자가는 보이되, 저렇게 앞을 차단, 북한으로 말하면 저거 차단하죠. 담 다 치고요. 이런 식으로 했습니다. 제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바로 이런 북한의 실상을 우리가 있는 실제적으로 들여다봐야 앞으로 북한과의 정확한 정책을 수립할 수 있다는 겁니다.

 

평양 봉수교회. 김일성 지시로 1988년에 급히 만든 교회로 종교 탄압을 숨기기 위한 위장술책이다.

가톨릭 신자 한 여인의 믿음에 깜짝 놀란 북한

문재인 정부 들어와서 로마 바티칸 교황을 북한에 보내기 위해 이모저모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북한에서는 이미 1980년대 말부터 대대적으로 그런 운동이 시작됐습니다. 북한 사람들이 바티칸을 찾아가고 또 바티칸에서도 북한에 대표단을 보내고요. 그러나 결국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보고 있는 사진이 북한 장충성당입니다. 장충성당을 마지막으로 찾아갔다는 우리 한국인들입니다. 로마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데려오려던 사람들인데, 마지막에 교황청에서 요구조건 내놓은 것도 있지만 북한이 포기했습니다. 이런저런 모든 정황을 고려할 때 바티칸에서는 요구조건을 제시했습니다. 우리 성직자가 북한에 가서 미사하게 둬야 한다. 물론 서울의 한국인이 가겠죠.

 

그다음 교황이 행사할 때 다른 나라처럼 차를 타고 시내를 도는 것도 허용해 달라고 했습니다. 무의미하게 북한 가는 건 필요 없다고요. 그래서 이런 의전을 할 것이냐 말 것이냐를 두고 외무성에서 계속 밤새 토론했습니다. 결론은 당에서 하지 말자고 했습니다. 왜일까요?

 

북한 사람들을 동원한다면 그 자리에서 과연 진짜 북한 가톨릭을 믿는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 것이며 믿지 않는 사람들은 또 어떻게 생각할까 그게 구분이 안 되고 또 통제가 안 되기 때문에 결국 중지했습니다. 바티칸 교황을 초청하자고 하니까 바티칸에서 북한에 이런 걸 요구합니다. ‘당신네가 종교를 탄압하고 교인들을 다 죽이고 이렇게 했다고 하는데 이런 나라에 우리가 어떻게 가겠는가. 실제 교인이 있는가. 진짜 교인이 있다면 한 사람이라도 데려와 봐라.’

 

그랬더니 북한은 갑자기 교인을 데리고 가자니까 없는 겁니다. 교인을 찾지 못해요. 탄압해서 다 숨어버렸는데 어디 가서 찾겠습니까? 샅샅이 뒤지다가 신원 자료 문건을 보고 결국 한 여인을 찾아냈습니다. 이 여인이 가톨릭 신자고 지금도 지하교회에서 한다, 그러니 믿을 수 있다고 찾아갔습니다. “국가를 위해 혁명을 위해 좀 중요한 일을 해야 하는데 당장 성경도 잘 알고 있는 사람이 필요한데 국가적으로 이런 분이 없습니다. 그래서 나이 드신 어머님께서 한번 나서주셔야겠습니다.”

그랬더니 여자가 “나는 성경 내용도 모른다”고 펄펄 뜁니다. 그래서 다시 요구합니다. “우리가 진짜 다 알고 있는데요, 아무런 해가 안 갑니다. 정말로 한번 나서주세요.” 그러니까 어머니가 그다음에 그럽니다. “그래요? 진정성이 보이니까 그럼 제가 나서죠.” 이렇게 됐습니다. “그다음 성경책, 이거 한번 이야기해보세요” 성경을 줄줄 다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문건을 보니까 아이 때 교회당에 다닌 기록밖에 없는데 교회당, 성당을 다 없애버렸는데 어떻게 그렇게 잘 아세요?” 그러니까 이 분이 그때부터(교회당, 성당을 없앤 후) 매일 기도를 드렸다는 겁니다. 집에 가보니까 성경책이 다 있어요. 중요한 건 그 여인의 아들도 자기 엄마가 그렇게 성경을 읽고 밤마다 뒷마당에서 기도드리고 그랬던 걸 몰랐다는 겁니다. 북한 대표단은 그래서 그 여성을 바티칸에 데리고 갔습니다.

북한의 장충성당. 대외선전용 성당이다.

 

감동한 바티칸 교황, 당황한 보위부

 

우리 한국 성직자들하고 같이 갔는데 그 여성이 교황을 만나는 순간 하는 그 모든 행위가 교황이 보니까 진짜인 거예요. 교황이 보니까 여인이 자기 구두를 만지고 하는 행위를 보곤 딱 맞다, 진짜 우리 어린 양이다, 그래서 손을 꼭 잡고 자기 옆에 앉히고 교황청에서 행사도 크게 했습니다. 이 사실이 다 보고된 겁니다. 그렇다면 지하에서 몰래 하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교황이 와서 시내 한 바퀴를 돌린다면 어떻게 될까?

 

이 여성한테 물어봤습니다. “그렇게 종교는 아편이고 믿으면 안 된다고 이야기했는데 어머니는 어떻게 이런 분이 됐어요?” 그러니까 이 나이든 노파 할머니가 하는 말이 “하나님은 마음에 한 번 들어오면 나가지 않습니다.” 이겁니다. 수 십 년 동안 김일성 우상화 교육을 받은 이 여인 하는 말이 하나님은 한번 마음에 들어오면 절대 나가지 않는다는 거예요. 이걸 듣고 김일성도 “맞다, 그 여자 말이.”

 

그래서 이 여인이 바티칸에 다녀와서 주변 사람들한테 뭐라고 말하느냐 하면요. 원래대로면 북한에서는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이번에 위대한 수령님의 배려를 받아 난생 처음 비행기라는 걸 타고 먼 이탈리아라는 데까지 갔다 왔습니다. 정말 수령님의 크나큰 신임과 배려, 평생 잊지 못하겠습니다”라고 말해야 정답입니다. 그런데 이 여인은 뭐라고 말하느냐. “그래도 내가 평생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고 성경을 읽었더니 드디어 하나님께서 나를 불러주시는구나.”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이걸 듣고 북한 당에서는 이런 사람들이 북한에 몇이나 될까, 만약 교황이 평양시를 한번 돈다면 나온 사람들 중에서 진짜 이렇게 말할 사람은 얼마나 될 것이냐, ‘내가 평생 그런 탄압 속에서도 매일 기도 올리고 했더니 드디어 교황님께서 이 험지까지 오셨구나.’ 이렇게 생각할 것 아니냐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보위부에서 “이거 외무성에서 추진했는데 로마 강당 갔다 오면 뒷감당은 보위부가 해야 하는데 보위부가 뒷감당 안 됩니다.” 외무성은 한 번 잘했다고 칭찬받고 끝나겠지만 그 뒷감당 조사하고 믿느냐 안 믿느냐, 엄청난 뒷감당은 우리가 해야 하기 때문에 절대 하면 안 됩니다. 그래서 교황의 평양 방문 이건 끝내 실현하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