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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93년 시사잡지에도 박근혜-최태민 커넥션이 심도있게 다뤄진 적이 있었는데
사이비종교 연구 전문가 탁명환 선생, 여러 사이비종교를 연구하고 이단철폐를 위해 일하면서 여러 종교의 이단 판정에 관여하자
구원파에게 살해협박을 당하기도 하였고 결국 다른 이단 종교 신도에게 칼부림으로 순교함.
어쨌든 73년 무렵 탁명환선생은 자신을 원자마마 라고 하는 최대민의 소문을 듣게 됨.
신통하다는 이 사이비교주에 대한 소문을 듣고 취재를 했는데 당시 최태민은 자기를 원자마마라 부르며
나무자비조화불 이라는 주문을 외치면 만병이 통치된다던 단칸방에 살던 찌질한 사이비교주였던 것,
마치 궁예가 옴마니반메홈 외는 것과도 같은 헛소리를 남발.
그렇게 사이비교주 최태민을 만난 뒤 몇년이 흐르고 어느 날 탁명환씨가 신문을 보다 깜짝 놀라는데
분명 2년 전 사이비교주로 만났던 최태민이 대한구국선교단을 창설해서 목사 행세를 하고 있는것을 기사로 보고 알았던 것
탁명환이 최태민과 연락이 닿아 어찌된거냐 2년 전엔 산속에서 교주행세 하더니 지금은 왜 목사냐고 묻자
최태민이 지금은 영애와 일을 하고 있다고 답변
탁명환이 그렇게 남들을 속이지 말라고 하자 최태민이 어깨들을 동원해서 협박, 모른 척하고 살라고 함.
탁명환이 목사 행세 하지 말라고 했으나 전혀 먹히지 않음.
육영수영부인이 암살당하고 실의에 빠져있던 박근혜에게 여러 종교 지도자들이 위로의 편지를 건넸는데 대부분 육영수의 명복을 빌어주는 정도
헌데 최태민만은 어머니가 꿈속에 나와 당신을 도와주라고 했다는 둥 어머니 대신 큰일을 해야 한다는둥 박근혜를 부추기는 말로 현혹
2천명의 신도를 모아서 열성적인 기도회를 연출하는데 이 자리에 박근혜를 불러서 감동시킴
그리고 박근혜에게 이 행사에 축하연설을 해달라고 하는데 이 행사가 바로 박근혜가 처음 공식석상에서 연설을 한것
최태민은 이를 기회로 즉석에서 박근혜를 명예총재로 모신다면서 자기 사업에 자연스럽게 끌어들여 서서히 권력을 이용해 자기 야심을 채우기 시작
영부인 역할을 대행하던 박근혜의 지위와 보호를 앞세워 당시 도지사 및 고위공무원들 에게도 전화해서 자기 사업관련 일을 지시.
그 딸인 최순실도 어릴 때부터 측근에서 친밀하게 지내며 자연스럽게 청와대 행정관정도는 자기 심부름꾼 취급.
여기에 그치지 않고 재벌들에게 접근해서 내가 영애를 모시고 일을 하고 있으니 돈내놓으라고함
재벌들도 당연히 박근혜가 뒤를 봐주고 있으니 달라는대로 상납.
역시 최순실이 이걸보고 배웠는지 미르 k스포츠 재단 만들어서 똑같은 방식으로 수백억을 갈취
최태민은 이에 그치지 않고 자기 심복들을 청와대 제2부속실에 심어놓고 사람들 눈을 피해 굳이 몰래 박근혜를 만나지 않아도 자기 심복들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연락책이 되도록 조정
최순실 역시 비슷하게 정부부처에 자기 사람들을 추천(이재만, 차은택등) 해서 특정 부서를 완전히 장악
서류심부름을 시키면서 직접 서류를 보고 수정 하는등 자기사람 들을 통해 청와대를 완벽하게 조정.
당시 나는 새도 떨어트린다던 차지철 조차 최태민의 악행을 보면서도 그저 아부떨기 바쁘자 최태민을 견제할 사람이 없어짐
김재규가 실상을 보고했지만 박근혜의 눈물의호소 때문에 최태민을 처벌하는걸 관두고 박정희는 눈감고 넘어가기로 결정
당시 단체의 총재직을 최태민에서 박근혜로 바꾸는게 처벌의 전부(거세설도 있음) 이후에도 최태민은 막후에서 계속 박근혜를 조정
박근혜의 비호에다 청와대 역시 눈감으면서 최태민은 별다른 견제 없이 온갖 부정부패를 통해서 빠르게 부를 쌓아가고
최순실은 튜터를 잘받아서 지금 시대에도 아빠랑 같은 방식으로 해쳐먹는중 고려 무신정변 이후 장기집권했던 최씨정권이 부활한셈
나라가 이 지경이 된 것은 일부 기독교계에 책임도 없지 않냐는 시각도 있고 그렇지 않다는 견해도 있으나
당시 장신대학우들의 편견도 일부 있었으리란 짐작도 무리는 아니다. 다만, 돌이켜 살펴보면 더 살뜰히 당시 박근혜 영애를 품고 적극적으로 인도했다면 최태민과의 유착을 막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아래는 인터넷신문기사 펌글.
박근혜 대통령과 최태민씨의 유착을 막지 못한 데에는 장로회신학대(총장 임성빈 교수)의 책임도 있다는 의견이 제기돼 논란이 일고 있다.
다소 생소한 이 주장은 장신대 김철홍(신약학) 교수가 지난 6일 이 학교 홈페이지에 남긴 글에 담겼다. 김 교수는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통합 소속 황모 선교사가 최근 온라인에 ‘박 대통령이 1980년대 초 장신대에 재학했을 당시 정치적 이념을 이유로 배척당했고, 그로 인해 학교를 떠났다’고 남긴 글을 근거로 댔다. 장신대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1981년 9월부터 11월까지 대학원에서 기독교교육학을 공부했다.
김 교수는 “당시 박 대통령은 자신의 인생에서 발생한 불행한 일들에 대해 종교적 해답을 찾기 위해 장신대를 찾아온 것 같다”며 “도와주지는 않더라도 그냥 내버려뒀더라면 최태민 최순실 같은 사람과 엮이지 않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박 대통령이 학생으로서 갖고 있는 수업권은 아무도 침해할 수 없는 권리였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이런 주장은 장신대 동문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미국 뉴욕에 거주 중인 배정웅(전 아가페크리스찬치유센터 대표) 목사는 박 대통령과 함께했던 수업 분위기를 전하며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반박의 글을 올렸다.
배 목사는 “구약학개론 수업을 들었는데 박 대통령이 신학과 성경에 대한 기본 상식이 너무 부족했던 까닭에 수업에 기가 질려 3번 참석하고는 더 이상 못하겠다고 포기 의사를 밝혔다”고 소개했다.
또 “어려워도 참고 시간이 지나면 점점 익숙해지고 나아질 것이라 격려했지만 박 대통령은 성경공부 수준을 기대하고 성경책 한 권 들고 신학교를 찾아 온 터라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학교를 나간 것은 본인의 선택”이라고 강조했다.
81년 당시 학장이었던 이종성 박사(2011년 별세)가 생전 국민일보와 한 인터뷰(2007년 4월 27일자)에 따르면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후 2년 뒤 당시 청와대비서관이던 예장통합의 유모 장로가 (박 대통령의) 입학 의사를 밝혀왔다.
이 박사는 “박 대통령이 목회자 양성 과정인 신학대학원(MDiv) 과정을 지원했지만 헬라어와 히브리어 등 어려운 과목이 많아 비교적 접근하기 쉬운 일반대학원 과정을 추천했다”며 “입학 몇 개월 후 심적 정리가 덜 되고 공부할 자세가 안됐다는 이유로 학업을 그만뒀다”고 설명했다.
서울장신대 정병준(교회사) 교수는 9일 “박 대통령과 최태민씨는 70년대 중반부터 매우 막역한 사이로 발전했기 때문에 장신대가 둘 사이를 막지 못했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주장”이라며 “사이비 영성에 영향을 받고 신앙과 명확한 목표가 없는 이에게 제대로 된 신학교육을 하는 것 역시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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