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낮은 연료소비효율(연비)이나 환경오염을 안타까워하지 않으면 21세기 운전자가 아니다. 이러한 운전자들에겐 환경을 살리고 기름값도 아낄 수 있는 ‘에코드라이브’가 필수다. 급출발, 급제동, 급가속을 지양하고 공회전을 하지 않으며 정속 주행을 실천하는 것만으로도 연료를 크게 아낄 수 있다. 나쁜 습관이 몸에 밴 운전자도 조금만 노력하면 착한 운전자가 될 수 있다. 본보 기자는 17일 지난해 자동차 연비왕 선발대회 우승자를 찾아가 대결해봤다. 둘의 대결만 살펴봐도 에코드라이브를 어떻게 실천할 수 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
“다들 운전 잘한다고 자만하는데 ‘에코드라이브’를 잘하는 게 진짜 운전 실력이죠.”
자타공인 연비(연료소비효율)왕 김태현 씨(35·경북 상주시)는 17일 비법을 전수받기 위해 찾아간 본보 기자에게 ‘에코드라이브 운전 대결’을 제안했다. 환경문제가 국제적인 이슈로 불거진 1990년, 핀란드에서 처음 등장한 ‘에코드라이브’는 친환경성·경제성·안전성을 지향하는 운전자의 ‘경제운전 습관’을 말한다. 운전자가 급발진·급정지·급가속 등을 지양해 이산화탄소 배출량과 연료 소비를 줄이는 동시에 안전운행을 한다는 뜻이다.
승부욕 강한 기자는 김 씨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상대는 지난해 교통안전공단이 주최한 ‘자동차 연비왕 선발대회’ 승용차 부문 1위를 차지한 실력자. 하지만 기자 또한 운전경력 10년, 특히 군에서 운전병으로 2년간 근무하며 ‘운전만큼은 뒤지지 않는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이번 대결에는 실시간으로 연비가 측정되는 에코게이지가 설치된 김 씨의 소형차(공인연비 L당 14.8km·오토기어)가 동원됐다. 심판은 이번 인터뷰에 동행한 교통안전공단 황경승 차장(38), 코스는 김 씨의 자택에서 출발해 약 16km(왕복 32km) 떨어져 있는 김 씨의 근무지인 상주교도소를 찍고 출발지점으로 되돌아오는 것으로 정했다.
○ 허울뿐인 10년 차, 에코드라이브엔 초보
오후 2시 28분. 먼저 운전대를 잡은 운전경력 10년 차의 기자는 가볍게 가속페달을 밟았다. 그런데 “부우웅” 엔진소리가 나자마자 보조석에 앉은 김 씨가 껄껄 웃으며 “출발부터 계기판 엔진회전수(rpm)가 3000이 넘었다”고 지적했다. 식은땀이 났다. 평소 깨닫지 못했던 나쁜 운전습관을 경쟁자가 대번에 알아차린 탓이다. 뒷좌석에 앉은 황 차장은 “출발할 때 rpm은 2000초반대를 유지하는 것이 좋은데 이미 급출발했다”며 김 씨를 거들었다.
출발은 나빴지만 시내 주행에서 실력을 발휘하면 된다고 생각하며 화를 가라앉혔다. 신호등은 반환점인 상주교도소까지 모두 10개, 운이 나쁘면 왕복까지 최대 스무 번 정지신호를 받을 수도 있었다. 다행히 세 차례만 신호에 걸렸다. 대기 중에도 기어를 중립에 놓고 공회전을 최소화했다. 지적질을 멈추지 않던 황 차장도 “에코드라이브 할 때 공회전을 줄이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없는데 기어를 중립으로 둔 건 정말 좋은 습관”이라고 말했다.
상주 시내를 주행할 땐 속도를 낮춰 브레이크 밟는 횟수를 최대한 줄이려 했다. 가속페달과 브레이크를 더 많이 밟을수록 연비에 좋지 않다는 걸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통행량이 많은 도심에서 갑자기 평소 하지 않던 이런 주행 방식을 실천하긴 어려웠다. 특히 내리막길과 과속방지턱을 만날 때는 습관대로 브레이크를 밟기 일쑤였고 결국 코스를 왕복하는 데 총 25번 브레이크를 밟았다.
오후 2시 58분, 기자가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연비는 L당 16.6km가 찍혔고, 시간은 30분이 지나 있었다. 공인 연비(L당 14.8km)를 고려하면 나쁘지 않은 결과였다. 김 씨가 더 빨리 도착하기 어려울 거라는 확신도 들었다.
○ 추월 안 하고도 더 빨리 도착한 ‘연비왕’
하늘이 김 씨를 도운 것일까. 김 씨는 단 한 번도 정지신호를 받지 않았다. 더욱 놀라웠던 것은 비슷한 통행량이었는데도 약 32km를 주행하는 내내 브레이크를 한 번도 밟지 않았다는 것이다. 김 씨의 최종 성적표는 L당 20.2km 연비에 주행 시간 28분(출발 시간 오후 3시 38분). 잠시 우쭐하며 차기 ‘연비왕’마저 노렸던 기자의 꿈은 산산조각이 났다. 사실 승패를 가른 건 하늘의 뜻이 아니라 운전습관의 차이였다.
김 씨가 신호를 한 번도 받지 않고 주행할 수 있었던 것은 이미 3년 가까이 같은 길을 오가며 도심 신호체계를 꿰뚫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 씨는 출발 이후 두 번째 신호등을 지날 때쯤 시속 약 80km로 추월하는 옆 차로의 흰색 차를 보며 “여기서 저렇게 빨리 가 봐야 다음 신호에서 걸리게 된다”고 장담했다. 이후 김 씨는 기존에 달려오던 속도의 탄력을 이용해 시속 50∼60km로 서행하며 여유 있게 주행을 이어갔다. ‘관성주행’ 기법이다. 김 씨의 말대로 약 3분 뒤 전방에는 빨간 신호에 멈춰 서 있는 흰색 차량을 발견할 수 있었다.
김 씨는 지난해 ‘연비왕 대회’에 나갈 때도 미리 주행코스를 알아보고 신호체계를 익혔다. 김 씨는 “조금만 관심 있게 살피면 언제 빨간불이 켜질지 신호체계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구간별로 속도를 높여야 할 때와 낮춰야 할 때를 구분해 페이스를 조절해가며 정지신호를 피해갔다.
김 씨는 브레이크 대신 엔진브레이크를 최대한 활용했다. 도심이나 내리막길로 접어들 땐 일단 가속페달에서 발을 떼 관성주행을 하며 서행하다 기어 단수를 낮춰 엔진브레이크를 걸었다. 이를 본 황 차장은 “엔진브레이크를 걸면 소음이 생겨 연료가 더 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사실이 아니다”라며 “자동변속기어도 주행 중 기어단수를 낮춰 엔진브레이크를 걸 수 있는데 이를 모르는 운전자가 많다”고 덧붙였다.
결국 브레이크를 한 번도 밟지 않았던 것은 △신호체계 파악 △관성주행 △엔진브레이크 활용 등 세 가지 요소가 결합돼 나온 결과물. 김 씨의 몸에 밴 이런 에코드라이브 운행습관이 100km 이상으로 과속하고 추월을 주저하지 않았던 기자보다 2분이나 더 빨리 도착하게 만든 비결이었다.
▼ 가속페달은 살짝, 주유는 리터 단위로 ▼
연비왕의 4가지 ‘에코 드라이브’ 비법
1. 가속페달은 4분의 1만 살짝.
그 이상 밟으면 엔진회전수(rpm)가 급격히 올라 연비가 나빠진다. 이 정도만 밟아도 시속 120km는 충분히 나온다.
2. 10%의 법칙을 이용하자.
오르막길에서는 기존 속도보다 10% 가속해 탄력을 받아 넘어가고, 내리막길에선 가속페달에서 발을 떼 기존 속도보다 10% 감속할 때까지 기다린다. 이는 ‘관성주행’과 ‘엔진브레이크를 활용하는 방법’에 익숙해지면 훨씬 더 자연스러워진다.
3. 주유할 땐 ‘리터(L)’ 단위로 하자.
주유가 끝나면 속도계에 적힌 주행거리를 확인해 이를 주유한 L 단위로 나누면 실제 연비를 계산할 수 있다. 그 결과를 영수증에 기록해 자동차 안에 보관해 두면 주유할 때마다 실제 연비가 어떻게 변했는지 확인하고 자신의 주행 습관을 반성할 수 있다. 실제 연비 계산이 끝나면 속도계의 주행거리를 다시 ‘0’으로 지정해 다음번 주유 때까지 주행한 거리를 확인한다.
4. 주유소에서는 꼭 자동차 타이어 공기 주입기를 사용하자.
자동차 매뉴얼이나 타이어, 운전석의 문을 보면 적정 수준의 공기압을 확인할 수 있다. 주유가 끝나면 그 수준에 맞게 타이어에 공기를 주입한 뒤 연비를 향상시키자. 네 바퀴 모두 공기를 주입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채 5분도 안 걸린다. 연비 향상뿐만 아니라 안전운행을 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되는 숨은 비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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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김재형 monami@donga.com / 권오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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