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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성댓글로 죽어가는 청소년과 피해자를 살려낸다는 사명감, 디지털 장의사 김호진씨

by 설렘심목 2014. 11. 14.

악성댓글로 죽어가는 청소년과 피해자를 살려낸다는 사명감, 인터넷 장의사 김호진씨

국내 1호 디지털 장의사인 김호진 산타크루즈 캐스팅 컴퍼니 대표가 사무실에서 포즈를 취했다.

김 대표는 “망각이 없는 인터넷 세상에서 괴로워하는 이들을 위해 매일 사람들의 흔적을 지워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사람들은 나를 ‘장의사’라고 부른다. 정확히 말하면 그냥 장의사가 아니라 ‘디지털 장의사’가 내 호칭이다.

내가 하는 일은 디지털, 그러니까 인터넷 세상에 떠돌아다니는 누군가의 정보를 찾아 장례를 지내는, 즉 없애는 것이다. 인터넷상 자기 정보를 없애길 원하는 이는 너무나 많다. 옛 연인과의 섹스 동영상이나 자신의 누드사진처럼 성적(性的)인 정보에서부터 과거 블로그 기록, 카페 활동 기록, 정치성향을 담은 댓글 등에 이르기까지….

2011년 이 일을 시작하며 난 ‘국내 1호 디지털 장의사’라는 수식어를 갖게 됐다. 그 전까지는 뭘 했냐고? 의외겠지만 난 잘나가는 광고 모델 에이전시 대표였다. 20년 동안 광고 모델 사업을 한 내가 디지털 장례를 본업으로 삼게 되다니.


○ 잘나가던 모델회사 사장이 왜?

 

소개가 늦었다. 내 이름은 김호진. ‘산타크루즈 캐스팅 컴퍼니’라는 다소 긴 이름의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디지털 장례업체 이름치고는 다소 생뚱맞다. 1999년 창업한 모델 에이전시 이름을 계속 쓰다 보니 그렇게 됐다.

서울예전(현 서울예대) 연극영화과 88학번인 나는 대학 시절 아르바이트로 모델회사에서 모델 캐스팅 일을 하다 모델사업에 뛰어들었다. 난 사람을 찾고, 연결하고, 파는 직업인 광고 모델 사업에 제법 소질이 있었다. 송혜교, 전지현, 차승원 등 요즘 내로라하는 톱스타들이 모두 우리 에이전시를 통해 광고 모델로 데뷔했다.

돈도 많이 벌었다. 모델업계에서 일한 20년 동안 27억 원 정도 벌었으니 그만하면 수입도 짭짤한 편이었다.


○ 12세 소녀 모델의 눈물

하지만 인생의 변화는 늘 예상치 못한 곳에서 시작된다. 내 삶을 바꾼 건 2008년 만난 한 초등학교 5학년 여학생 모델이었다.

당시 우리 회사는 유명 시리얼 회사의 광고 모델 섭외 의뢰를 받고 모델을 물색 중이었다. 시리얼 회사가 원한 모델은 ‘건강하고 익살스러운 이미지의 여학생’이었다. 마침 통통하고 생기발랄한 이미지의 여학생이 있어 모델로 낙점했다.

그런데 광고가 나가자마자 문제가 터졌다. 여학생 모델에 대한 ‘악플’이 쇄도했던 것이다. ‘뚱돼지야, 꺼져라’ ‘너 같은 애가 연예인이면 이 세상에 연예인 아닐 사람이 없다’…. 하루에 300개가 넘는 악플이 붙는가 하면 안티카페와 블로그까지 생성됐다.

여학생의 엄마는 “우리 애가 악플을 다 봤는데 ‘나는 죽어야 될 사람 같다’는 말을 반복한다”며 “학교도 못 가고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는데 어떻게 하면 좋냐”고 울먹였다.

난 뭐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마침 회사에 인터넷을 잘하는 직원이 있어 ‘개인정보 침해, 초상권 침해 등을 들어 포털에 악플 삭제 요청을 하라’는 특명을 내렸다. 천만다행으로 문제는 1주일 만에 대부분 해결됐다.

그 뒤로 우리는 광고 업무를 맡을 때마다 광고가 나간 뒤 광고와 광고 모델에 대한 악플을 모니터링하는 작업을 함께했다.


○ 부업이 본업으로


그런데 2010년 들어 상황에 변화가 생겼다. 인터넷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이런 식의 ‘수작업 관리’가 불가능해진 것이다.

한 예로 당시 광고 모델이었던 A 씨는 광고를 찍고 얼마 뒤 여자 문제가 터져 하루에 약 6만 개의 악플이 생겼다. 사행성 논란에 휩싸였던 B 기업은 어림잡아 700만 건의 악성 글에 노출돼 있었다. 직원 몇 명이 달라붙어 손으로 대응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2011년 3월 나는 인터넷 악플에 대응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기로 마음먹었다. 연기를 전공하고 20년간 엔터테인먼트 사업만 해온 나 같은 놈이 프로그램 따위를 알 리가 없었다. 무작정 개발 업체들을 두드렸다.

그중 가장 괜찮아 보였던 건 정부의 인터넷 모니터링 프로그램을 개발했던 회사였다. 이 회사가 만든 모니터링 프로그램은 70억 원짜리였다. 이 가운데 일부를 9억 원에 샀다. 그리고 자체 개발자들을 고용해 개조에 들어갔다.

개발은 쉽지 않았다. 제일 큰 문제는 ‘아 다르고 어 다른’ 한국어였다. 광활한 인터넷상 정보 중 내가 원하는 대상과 관련된 ‘비난’만 분류해 내길 원했다. 그런데 프로그램이 ‘비난’에 해당된다고 분류한 수백만 건의 데이터 중 일부는 비난이 아닌 ‘비판’이었다. 그리고 이건 사람이 읽어봐야만 판단할 수 있었다. 이런 부분에서 프로그램의 정확성을 높이는 데 가장 많은 비용과 시간이 소모됐다.


○ 연예인 디지털 장례비는 3억 원 호가

그 사이 벌어놓은 돈은 술술 빠져나갔다. 이전까지 모은 27억 원은 언제 내 돈이었냐는 듯 한 달에 1억 원꼴로 사라져갔다. 나의 재산목록 1호였던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한양아파트는 불과 십수 개월 만에 빚 담보로 전락했다. 후회가 밀려왔다.

그래도 아내는 내게 힘을 줬다. 당신 주변의 많은 연예인이 인터넷 악플로 고통받고 있지 않느냐고. 인터넷이 사람도 죽이는 세상 아니냐고.

마침내 2013년 3월 원하던 프로그램이 완성됐다. 개발을 시작한 지 꼬박 1년 4개월 만이었다. 특허를 신청해 올 초 특허도 따냈다. 그즈음 언론도 나를 주목했다. 기업, 연예인부터 일반인에 이르기까지 ‘고객’들 문의도 쏟아졌다. 결국 디지털 장의사라는 기괴한 수식어는 내 직업이 됐다.

현재 38명이 일하는 우리 회사 매출은 대략 50%가 기업, 30%가 연예인, 20%가 일반인에게서 나온다. 기업은 연 단위로 평판 관리 계약을 한다. 1년에 1억 원에서 1억5000만 원 정도를 받는다. 소위 A급이라 불리는 유명 연예인은 2억 원 수준이다. 사회적으로 문제가 됐던 연예인의 관리비용은 3억 원을 호가하기도 한다. 일반인은 삭제 대상의 수준이나 범위에 따라 다르지만 3개월 관리에 보통 1500만 원 정도가 든다.


○ 청소년 문의 급증…인터넷 테러에 자살도

수익구조에서 일반인 의뢰가 차지하는 비중은 많지 않지만 건수로 보면 일반인 의뢰 건수는 압도적으로 많고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매일 20∼30건씩 삭제 요청이 밀려든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일반인 의뢰의 60%가량이 청소년이라는 점이다.

13∼15세 학생들이 ‘인터넷에 떠도는 내 누드사진을 지워 달라’ ‘내가 나오는 야동(섹스동영상)을 지우고 싶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라온 글과 사진을 지워 달라’며 간절함을 호소해 온다.

아이들의 사연은 이런 식이다. ‘같은 반 친구랑 사귀기로 했는데 남자 친구가 벗은 몸을 보고 싶대서 사진을 보내줬어요. 근데 얘가 제 사진을 단체 카톡방에 공유하고 SNS에도 올렸어요. 죽고 싶어요.’

나는 매일 본다. 사춘기 시절, 이성에 대한 폭발적 호기심과 철없는 남자 아이들의 자랑심리가 인터넷과 SNS를 만나 사람을 잡는 현장을.

잊을 수 없는 기억도 많다. 지난해 10월 밤늦게 걸려왔던 전화도 그중 하나다. 아무 말 없이 툭 끊어졌던 전화, 다시 걸어도 받지 않던 전화. 다음 날 울면서 다시 전화한 사람은 14세 소녀였다. 자신의 알몸 사진과 동영상이 퍼졌다고, 지우고 싶다고.

그런데 최선을 다해 지워보기로 한 뒤 연락이 없어 전화해 보니 아이의 엄마가 전화를 받아 이렇게 말했다. 우리 애는 왜 찾느냐고, 우리 애는 세상을 떠났는데…. 그 부모는 아마도 왜 자신의 아이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지 끝내 알지 못했을 것이다.


○ 망각이 없는 잔혹한 세계…법 제정 시급

이 일을 하며 나는 일반 사용자였을 때에는 몰랐던 인터넷 속 악마의 얼굴을 너무나 많이 본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하지만 인터넷 세상에는 망각이 없다. 아무리 지우고 또 지워도 계속해서 확대 재생산된다. 평생을 따라다니는, 끝이 없는 싸움이다.

나는 이런 일들을 지켜보며 적어도 아이들에게만큼은 돈을 받지 않고 이 일을 하겠다고 결심했다. 그래서 우리에게 들어오는 미성년자들의 모든 삭제 요청은 무료다.

최근 국내외에서 ‘잊혀질 권리’에 대한 논쟁이 뜨겁다. 디지털 장의사로서 나는 하루빨리 관련 법이 제정되고 가동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삭제 대상을 명확히 판단해 신속히 대응할 수 있게 해주는 법이 필요하다. 한국인들은 커뮤니티를 너무나 좋아하고, SNS 등 인터넷을 통한 감정 해소가 다른 어떤 나라보다 많기 때문이다.

오늘도 망각이 없는 인터넷 세상에서 괴로워하는 이들이 너무나 많다. 죽어도 끝나지 않을 싸움에 지쳐가는 이들을 위해 나는 오늘도 디지털 장례를 지낸다.


▼ 디지털 장의사 김호진 씨가 말하는 인터넷 사용 주의점 ▼


본인의 야한 동영상이나 사진을 이성친구와 절대 공유하지 마라. 특히 아이들은=나는 올해 15세인 딸에게 늘 말한다. 인터넷을 조심하라고, 남친을 만나도 문제 될 내용은 절대 보내지 말라고.


문제가 될 영상이나 사진이 인터넷에 떴다면 즉시 대응하라=초기에 대응하면 파일명과 파일정보, 동영상 내 영상패턴 등을 분석해 필터링 처리를 할 수 있다. 이렇게 하면 인터넷은 물론이고 개인 간 공유(P2P) 사이트 검색도 막을 수 있다.

콘텐츠를 없애겠다고 계정을 삭제해버리면 절대 안 된다=ID를 없애면 삭제 권한도 없어져 더 문제가 된다. 계정을 없애기 전에 반드시 콘텐츠부터 삭제하고 탈퇴해야 한다.


인터넷에 사진이나 글을 올릴 땐 항상 30% 법칙을 생각하라=사람들이 인터넷에 올린 콘텐츠 중 30%는 반드시 나중에 지우고 싶은 기록이 되거나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