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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만찬을 통해 디아코니아 공동체로 간다. - 목회와 신학2014년 4월호

by 설렘심목 2014. 4. 4.

성만찬을 통해 디아코니아 공동체로 간다

- 목회와 신학 2014 4월호

초대교회는 신약성경의 첫 책이 기록되기 이전, 30여 년 동안 주님의 만찬을 행해 왔다. 공관복음서에 나오는 성만찬 제정의 말씀이 책에 기록된 형태로 주어지기 훨씬 이전부터 떡을 떼는 일은 계속 됐다. 사도행전에 따르면 예루살렘에 있던 교회는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는”( 2:46) 것을 계속해 왔다.

당시 삶의 공동체는 식사에 큰 의미를 뒀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지만, 당시에도 어떤 사람들과 어떤 모임에서 식사를 하느냐에 따라 자신의 사회적 신분과 위치가 결정되기 때문이었다. 예수님은 사람들과 만나 식사하는 것을 중요한 사역의 하나로 여겼다. 예수님은 사회적으로 명망 있는 사람들보다 죄인들, 불쌍한 사람들, 그리고 소외된 자들과 함께 식사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했다.

식사의 자리를 통해 병든 자와 죄인들을 하나님 나라에 초대했고 가난한 자, 포로된 자, 눈 먼 자, 눌린 자 등 사회적인 약자와 함께 대화했다. 예수님이 식사의 자리에서 보여주신 모습이 디아코니아다. 한국 교회 목회 현장에서 나타나는 성찬의 자리는 어떤가? 한국 교회의 가장 핵심적인 신학 주제는 이신칭의(justification by faith). 그런데 믿음만을 강조하다 보니 섬김의 행동이 간과됐고 미성숙한 신앙의 모습이 나타나게 됐다.

성만찬은 우리가 믿는 신앙과 실천의 의미를 포함하는 중요한 사건이다. 그러나 그동안 한국 교회에서 행해진 성만찬에서는 예전의 주제와 방식이 단조로워 성만찬의 의미가 잘 드러나지 않았다. 교회가 믿음을 강조하다 보니 성찬식은 엄숙한 분위기 가운데 죄를 용서받는 것에 과도하게 초점이 맞춰졌고, 이는 성찬식의 본래 의미를 축소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디아코니아에서 회복해야 할 성만찬의 정신, 섬김

초대교회가 성만찬을 행하면서 경험했던 이미지는 7가지로 분류해 정의할 수 있다. 감사 예전으로서의 성만찬, 회상의 사건으로서의 성만찬, 하나 됨을 위한 성도의 교제로서의 성만찬, 그리스도의 희생으로서의 성만찬, 그리스도의 임재로서의 성만찬, 성령의 역사하심으로서의 성만찬, 최종적 성취로서의 성만찬이 그것이다.1

디아코니아적인 성만찬은 세 가지 모습을 띤다. 첫째, 만찬 후 섬김으로서의 성만찬이다. 요한복음에는 예수님께서 세족식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13:1-20). 이는 누가복음 22:27에도 연결돼 나온다.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13:13-14). 예수님은 자기의 섬김을 보이면서 공동체도 배우기를 원하셨다( 13:15). 예수님은 꼭식사를 다 한 후에’( 13:4)는 사람들의 발을 씻겨 주셨다.

둘째는 정기적인 만찬으로서의 성만찬이다. 예수님께서는 식사를 하시면서 죽음과 부활에 관한 이야기, 제자들과 우리들이 어떻게 남을 도울 수 있는지 등을 가르치셨다. 그러나 예수님이 주관하신 성만찬 자리는 귀빈들만 모이는 특별하고 거룩한 모임이 아니었기 때문에 누구나 참여할 수 있었고 자유롭게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성만찬에 참여한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희망을 얻었다. 사도행전에는 예수님 이후에도 성만찬이 지속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2:42).

셋째, 성만찬은 가난한 자를 위한 만찬의 의미가 있었다. 매주 공동체 식사는 모든 사람을 공평하게, 기쁨과 나눔으로 초대하곤 했다. 그러나 가난한 계층의 사람들이 바쁜 일 때문에 교회에 늦게 참석할 수밖에 없게 되면서 성만찬 음식을 배분받지 못하는 일이 발생했다.

반면에 경제적으로 넉넉한 사람들은 즐기면서 음식을 먹었다. 또한 당시에는 자신의 신분에 맞게 만찬을 즐기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바울은 만찬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지 못하면 식탁 나눔의 의미가 없어질 것을 우려해 부자들에게 가난한 자들을 기다렸다가 먹으라고 권고했다(고전 11:33).

디아코니아란 단어 자체가식탁에서 시중들다를 뜻한다. 식탁에서 시중들기 위해 준비하는 일련의 모든 접대의 과정이 섬김의 의미를 갖는다. 신분이 높은 사람이 식탁의 주인이 돼 섬김을 받는다. 그러나 식탁의 주인인 예수님은 역설적으로 낮은 사람을 섬겼다. “앉아서 먹는 자가 크냐 섬기는 자가 크냐 앉아서 먹는 자가 아니냐 그러나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 22:27).

이렇듯 식사 공동체는 봉사 공동체이기도 하다. 성찬식에서 사람들은 하나님의 치유와 사랑을 경험한다. 당시 만찬에 초대받기 어려웠던 사람들이 예수의 식사 공동체에서 참된 만찬의 은혜를 누렸다. 만찬에서 먹었던 빵과 잔은 주님의 마지막 식사를 의미했다.

이런 이유로 공동체 식사가 끝날 때 만찬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생각하고 기쁨을 나눴다. 목회자들은 성찬식의 참된 의미는 예수님의 섬김의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고전 10:16).

한국 교회의 목회 현장에서섬김성찬은 같이 행해져야 한다. 성찬식에는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공동체의 의미도 있지만 서로 섬기는 의미도 담겨 있기 때문이다( 2:42). 한국 교회는 지금껏 디아코니아의 봉사적 측면만을 강조했으나 성례전의 자리에서도 이뤄져야 한다. 반쪽 복음, 반쪽 성찬식이 아니라 성숙한 복음과 성찬이 디아코니아의 회복을 통해 이뤄져야 할 것이다.

춘천동부교회의 성만찬, 준비 과정에서부터 섬김을

춘천동부교회의 성찬식은이신칭의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그 본래의 제정 취지에 맞게 식탁에서 섬기는 자로서 사회적인 약자와 함께하고 이들을 섬긴 그리스도를 따르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으며 성찬식마다 주제를 정한다. 예를 들면, 추수감사절 때는 북한이탈주민을 위한 성찬식을 준비한다. 설교뿐 아니라 강단 장식, 예배 영상까지도 이에 맞게 준비한다.

교회의 디아코니아 부서에서는 북한이탈주민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을 파악해 준비한다. 또한 그들에게 나눠줄 물품을 강단에 두고 성찬식 진행을 통해 봉사와 성만찬의 의미를 상징적으로 연결하려고 시도한다. 또한 예수님의 섬김 정신을 보여주기 위해 성찬 위원들은 앞치마를 두르고 성찬에 임한다. 앞치마를 두름으로써 성찬의 본래 제정 정신을 더 잘 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성찬을 받는 순서에도 디아코니아의 정신을 적용했다. 약자들에게 먼저 다가가신 예수님의 모습을 따라 장애인이나 몸이 불편하신 분들이 먼저 성찬을 받고 이후에 성도들이, 그 다음에 성찬위원들이, 마지막으로는 교역자들이 성찬을 받는다. 성찬에 참여한 모든 성도들은 본래 성찬의 제정 목적에 부합하게 죄의 용서에 대한 확신뿐만 아니라 세상을 섬기는 소명을 받고 세상으로 파송된다.

동부교회는 디아코니아 정신에 따라 주제가 있는 네 가지 성만찬을 실시한다. 첫 번째로 그리스도의 죽음과 구속의 의미를 되새기고 경험하는 전통적 성만찬이다. 두 번째로 성찬에 참여한 모든 이들이 한 식탁에 모인 공동체성을 가지는 것에 중심을 둔 그리스도의 공동체 성만찬이다. 세 번째로 그리스도의 낮아지고 섬기는 생애에 초점을 맞춰 이를 기억하고 우리의 삶에 적용시키는 그리스도 삶의 성만찬이다. 마지막으로 교회 공동체를 넘어 세상을 향한 섬김의 걸음으로 파송하는 섬김의 성만찬이다.

춘천동부교회는 이 가운데 첫 번째의 전통적 성만찬을 제외한 나머지 세 가지 성만찬을 디아코니아 성만찬으로 분류한다. 디아코니아는 식탁에서 시중드는 자라는 의미로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행하신 섬김의 삶을 포괄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이들이 성만찬에 참여해 한 몸 됨을 이루고, 디아코니아를 실천하신 그리스도의 삶을 성만찬을 통해 기억하며, 삶의 현장에 실천으로 연결하는 것이 바로 동부교회가 추구하며 실시하고 있는 성만찬이다.

이런 성찬식을 구현하기 위해 성찬 위원들은 한 달 전부터 디아코니아 성찬 교육을 받는다. 디아코니아 성만찬의 의미를 성서에 근거해 살펴봄으로써 외면적인 봉사와 변화에 머무르지 않고 예수그리스도의 정신을 성찬을 통해 온전히 구현하기 위함이다.

성만찬에 참여하는 것 못지않게 성찬을 준비하는 태도를 훈련하는 것도 중요하다. 춘천동부교회에서는 성찬 준비 기도회를 갖고 디아코니아의 핵심적인 요소 중 하나인 고백성을 훈련한다. 또한 모든 당회원들은 매주 한 차례씩 신구약 디아코니아 성경 공부를 하고 있다. 또 성도들이 의무적으로 디아코니아학교(디아코니아 훈련 시스템)에서 교육을 받도록 하고 있다. 이를 통해 교인들은 디아코노스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성서신학자인 쇼베(Louis­Marie Chauvet)는 성만찬을 통해 주님과 우리가 한 몸이 된다고 말한다. 그는 성례의 효력은 오직 윤리적 실천 안에서만 증명될 수 있다고 말하며, 성찬이 성육신의 반복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 구원의 유효성이 성례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삶 가운데 드러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회는섬김성찬을 통합해서 다뤄야 한다.

성찬식의 견해는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공동체의 의미도 있지만 서로 섬기는 의미도 있다. 사도행전 2:42에는 성찬식과 섬김이 구성 요소로 돼있다. 주님께 받은 은사를 서로 나누는 것이 섬김이다. 파울 필리피(P. Philippi)는 이것을 디아코니아의 기본이라고 말했다. 또한 바울은 이 공동체의 나눔을 예수의 몸으로 표현했으며, 성령의 은사로 연결시켰다(고전 12; 12). 예수님의 몸은 성령을 통해 다양한 은사를 나눠줘 서로 섬기게 했다.

예수님 당시, 가난과 배고픔이 삶의 가장 큰 문제였다. 예수님은 사회적 약자들을 초대해 식사뿐 아니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했다. 예수님은 모든 대상의 사람들을 식사 자리에 초대했다( 6:30-44; 8:1-10; 6:1-13).

예수님이 처음 주관하신 식사 자리는 결국 봉사의 자리가 됐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섬기면서 동시에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셨다. 이와 같은 식탁 섬김과 봉사가 교회 안에서 통합적으로 이뤄진 가운데 성찬이 행해진 것을 기억하고, 본래적인 의미인 디아코니아 정신을 살려 온전한 성만찬을 행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