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의 추억
항일투사흑백자료. 유관순 외..
by 설렘심목
2010. 1. 20.
. 광복군 총사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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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학수>> 본관 창원(昌原). 호 몽호(夢呼). 충북 제천(堤川) 출생. 1898년 대한제국 무관학교를 졸업하고 1903년 육군참위(參尉)로 복무하였다. 3 ·1운동 후 중국 상하이[上海]로 건너가 임시정부 의정원(議政院) 의원을 지냈으며, 그 후 둥베이[東北]지방에서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 참모장으로 활약하였고 1921년 한국독립단의 중앙집행위원 ·군사령(軍司令)을 역임하고 1927년 둥베이의 교포자치단체를 통합하여 군민회의(軍民會議)를 결성할 때 군무위원에 선출되었다. 1938년 임시정부 군사위원, 조선 혁명당 중앙집행위원을 지내고 임시정부 특파원으로 시안[西安]에서 의용군을 모집하였다. 1941년 그 의용군을 토대로 광복군을 조직, 사령관 대리로서 항일전을 진두지휘하였다. 그 후 임시정부 생계부장(生計部長을 역임하다가 광복 후 귀국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 이범석>> 서울 출생. 1915년 경성고등보통학교 재학 중 중국으로 망명,1919년 윈난[雲南]에 있는 중국육군강무학교(中國陸軍講武學校) 기병과(騎兵科)를 졸업하고 둥베이[東北:만주]로 진출하였다. 1920년 청산리(靑山里)전투에서 중대장으로 참가,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 데 큰 공을 세웠다. 1922년 소련합동민족군 연해주지구 지휘관으로 소련 혁명전(革命戰)에 참가하였고, 1933년 중국 뤄양[洛陽]군관학교 한인장교대장, 1936년 중국 제3로군 사령관, 1940년 중국 중앙훈련단 중대장을 지냈다.
1941년 한국광복군 참모장에 취임하고, 1945년 광복군 중장으로 8월 귀국하였다. 1946년 조선민족청년단(朝鮮民族靑年團)을 창설하였으며, 1948년 정부수립 후 초대 국무총리에 기용되고 국방장관을 겸임하였다. 1950년 주중(駐中)대사, 1952년 자유당 부(副)당수 및 내무장관 등을 지냈으며, 그 해 8월과 1956년 2차례 부통령(副統領)에 입후보하였으나 모두 낙선하였다. 1960년 충남에서 자유연맹(自由聯盟) 소속 참의원(參議員)에 당선되었고, 1963년 ‘국민의 당’ 최고위원에 추대되었다. 저서로 회고록 《우등불》이 있다. 1969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받았다. | |
2. 독립투혼
이렇게 돌아 가신 민족의 영혼이 조금이나마 한을 달래고자 하는 마음에서 공개 합니다.
이들사진들은 독립을 주장하며 투쟁하다 일본 경찰관에 체포되어 각자 신분과 신체 특징을 적고 기록카드를 만들기 위해 촬영된 것이다
대다수 학생들로 구성 되어 있고 아래 사진은 당시 수난의 고통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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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로 경찰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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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대문 형무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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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성 형무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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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천 소년 형무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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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대문 형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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