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3.06.24 03:02 | 수정 : 2013.06.24 09:18
‘종북’은 논쟁적인 단어입니다. 정확한 정의(定義)가 없는 까닭입니다. 1964년 미국 대법관 포터 스튜어트는 “나는 포르노가 어떤 것인지 정의할 수는 없다. 그러나 보면 안다”고 했습니다. 종북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이와 비슷한 당혹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국가보안법 위반을 무조건 ‘종북’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저는 지난해 2월15일자에 북한 체제를 찬양하고 이적 표현물을 게시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신모(여·52)씨에 대한 기사를 보도했습니다.
그녀는 연평도 포격 다음날인 2010년 11월 24일 인터넷 카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바로 알기’ 게시판에 “연평도 사태를 둘러싸고 여론이 어떻게 돌아가나 관망하고, 우리가 여론을 우리 편(북한)으로 어떻게 돌릴지 연구해야 한다”는 글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기사가 나가자, 신씨는 “나는 종북이 아니라 ‘애북(愛北)’”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런 모호함을 노려 ‘종북’을 비판하는 행위에 대해 매카시즘(정치적 반대자나 집단을 공산주의자로 매도하려는 태도)적 작태라고 역비판하는 사례도 생기고 있지요. 남북한의 정치·경제·사회적 위상 격차가 확연해진 21세기에 종북은 어떤 의미일까요. 몇가지 사례를 소개하겠습니다. “걔들은 왜 그런대?”라고 생각하신 분들은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현실 불만 속에 김씨 一家에 대한 종교적 맹신
종북적인 ‘법정 만세’ 행각의 원조는 인터넷 카페 ‘사이버민족방위사령부(사방사)’의 운영자 황모(45)씨입니다. 북한 체제를 찬양한 혐의로 기소된 황씨는 2011년 6월 30일 항소심에서 6개월 감형이 확정되자 검사와 방청객을 향해 두 팔을 활짝 펴고 “위대한 김정일 장군님 만세!”라고 외쳤습니다.
그는 “수령님(김정일)이 반드시 남조선과 전쟁해서 승리한다고 굳게 믿는 마음을 재판정에서 표현하고 싶었다”며 “나의 신념이 청소년 및 미래의 후손들에게 전파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김정일 장군을 찬양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공안당국에 따르면 황씨는 말 수가 적은 평범한 회사원이었습니다. 건설회사 재직시 플랜트(plant·전력, 석유 등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설비를 공급하거나 공장을 지어주는 산업)’ 분야를 담당했던 중간 간부였습니다. 그는 회사의 신입사원 면접관으로 들어가 ‘한반도의 통일은 어떻게 돼야 한다고 보느냐’고 묻는 등 입사 지원자들의 대북관을 점검했다고 합니다.
황씨가 북한을 추종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공안 전문가들의 견해는 갈립니다. 그가 조사를 받을 때 보인 ‘눈물’과 ‘미소’ 때문입니다. 수사관계자가 북한군 열병식 동영상을 보여주자, 황씨는 ‘장군님이 보고 싶다’며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경찰 보안관계자는 “골수 종북주의자들은 특별한 목적보다는 북한의 김씨 3대(代)를 마치 신(神)처럼 떠받드는 모습을 보인다”며 “황씨도 이 같은 종교적 맹신(盲信)이 아니겠느냐”고 분석했습니다.
눈물은 잠시였고, 그는 시종 여유가 있었다고 합니다. “좋은 날이 오면 조사관님과 제자리가 바뀌어 있을 것”이라는 말도 서슴없이 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공안관계자는 “북한 추종세력들은 적화통일의 그날을 ‘좋은 날’이라고 부르고 있다”며 “적화통일을 기다리면서 ‘나는 서울시장, 너는 경기도지사’라는 식으로 각자 보직(補職)까지 정해 놓고, ‘좋은 날’을 기다리던 사람들도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가치관이나 영혼까지 망각하고 ‘굴종’과 ‘굴신’
황씨는 동생의 영향을 받아 사상무장을 하게 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북한에 심취했던 동생에게 호기심을 느껴 처음 ‘종북의 맛’을 봤다는 것입니다. 그런 동생이 수감 중인 황씨를 찾아와 “이젠 제발 정신 좀 차리라”고 말할 정도로 그는 종북에 깊이 빠졌습니다.
아래사진은 종북주의자 이석기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은 작년 TV프로그램에 나와 “(나에 대해) 종북 운운하는데 종미(從美)가 훨씬 더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북한 추종보다 미국 추종이 더 문제라는 것입니다. 이 의원의 진단과 상관없이 이른바 애북·친북·종북주의자들의 북한 추종 수위는 소위 ‘종미’주의자들과는 차원이 다를 만큼 지나쳐 보입니다.
예를 들어 정상인이라면 선호하는 정당이나 정치인에 대해 “TV토론을 보니 OOO은 생각이 그런대로 나와 맞군” “노동정책만 제대로 마련한다면, 한 표 던지겠는데”라는 반응을 보이는 게 보통입니다. 이석기 의원이 종미주의자라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기껏 “우리는 무조건 미국이 하자는 대로 가야 해”하는 정도입니다.
그런데 앞서 언급한 황씨는 북한에 대해 완전 복종을 넘어 자기 영혼까지 내팽긴채 굴종(屈從)을 택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님은) 60년 전, 피바다를 이루는 아비규환(6·25 전쟁)에서 쉬이 승리를 취할 수도 있었을 것인데(중략) 이 죄 많은 백성(우리 국민을 지칭)을 무엇 때문에 품에 안으려 하셨단 말입니까. 님의 온정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우리 사이버민족방위사령부 6000전사는 장군의 깃발이 펄럭이는 폭풍호의 질주(북의 침공)를 목전에 두고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중략) 영광의 축포, 행복의 만세 소리가 온누리에 울려 퍼지는 그날을 맞이하고자 합니다. 김정일 장군님 만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만세, 조선노동당 만세.”
황씨가 운영한 인터넷 카페는 한때 회원 수가 7000여명에 달했는데, 카페 회원들은 그를 ‘사령관’이라고 부르며 따랐습니다. 이 카페에 영관급 장교를 포함한 군 현역 장교와 사병 70명 정도가 가입한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일었었죠.
공군 중위 강모(31)씨는 김정일·김정은 부자(父子)에게 바치는 충성맹세문인 ‘님에게 바치는 시(詩)’까지 쓴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현재 해당 카페는 수사기관에 의해 폐쇄됐고, 황씨는 형기(刑期)를 마치고 출소했습니다.
‘그렇게 좋다’며 찬양하는 북한으로 가지 않는 이유
황씨만의 문제가 아닐 것입니다. 경찰청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친북(親北) 이적(利敵)활동을 한 혐의로 정부당국이 폐쇄조치한 인터넷 카페는 2006년 1건에서 2009년 18건, 2010년 85건으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경찰이 삭제조치한 친북 게시물은 2007년 1434건에서 2010년 8만449건으로 56배나 급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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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가 없이 북한에 들어가 104일간 머물고 온 노수희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 부의장.
"북한에 가서 살게 하라.” 공안사건 기사에서 흔히 보이는 댓글입니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작년 3월 정부의 허가 없이 북한에 들어가 104일 동안 귀빈 대접을 받은 노수희(68)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 부의장이 대표적입니다.
판문점을 통해 귀환한 그는 “체포하러 온 국정원 요원들이 영장을 보여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우리 정부에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내기도 했습니다. 그가 ‘그렇게 좋다’는 북한에 남지 않은 것은 우리 사회에 미련이 남아있다는 방증일 것입니다.
‘종북이 뭔가’라는 물음에 대한 ‘정답’은 공안관계자가 전한 한때 잘 나가던 증권맨 A씨의 얘기에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투자실패로 회생불능에 빠진 A씨는 인터넷 공간에서 북한의 김씨 3대(代)를 찬양하기 시작했습니다. 공안당국이 A씨의 IP(인터넷 주소)를 추적한 결과, 공공기관·PC방 여러 곳에서 흔적이 잡혀 ‘지능범’으로 추정했는데, 알고보니 “인터넷 비용이 없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사용했다”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조사과정에서 A씨는 “나는 어차피 우리 사회에서는 글렀다. 세상이 한번 뒤집혀야지 내가 살 수 있다”고 진술했다고 합니다.
어쩌면 그가 꿈꾸는 허황된 유토피아가 바로 ‘종북’ 언행으로 표출되고 있는 게 아닐까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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