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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사랑.시사.

북한 바로 알아야 한다. 우리사회 종북(從北)이 문제다.- 前무장공비 김신조목사

by 설렘심목 2013. 1. 24.

 

 

written by. 이영찬

 

 "기억하라 1·21"     수도방위사령부, 1·21사태 생존자 김신조 초청 안보 강연

 

                                           “나는 탈북자가 아닙니다. 남한의 공산화를 위해 남파된 공작원입니다.

                      대한민국이 ‘친북’·‘종북’·‘공산화’가 안 되려면 강한나라가 되어야 합니다.”

                      “‘강한 나라’를 만들려면 ‘강한국방’, ‘강한정신’, ‘강한군대’가 있어야 합니다.

               특히 ‘튼튼한 안보’는 ‘튼튼한 정신’이 관건입니다.”

▲ 수도방위사령부는 ‘Remember 1·21’ 행사의 일환으로 17일 오전 1·21사태의 생존자 김신조 목사를 부대로 초청해 안보 강영회를 가졌다. ⓒkonas.net

 북한이 저지른 최악의 대남테러로 일컫는 1·21사태의 생존자 김신조 목사가 수도방위사령부(사령관 신원식) 주관으로 실시한 장병 안보 강연에서 “강인한 정신이 있어야 안보를 지킬 수 있다”며 ‘군인정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날의 강연은 역사적 사실을 상기하고, 장병의 나라사랑 마음을 고취시키기 위해 수도방위사령부가 추진하고 있는 ‘Remember 1·21’ 행사의 일환으로 부대 장병들에게 국가안보의 중요성을 주지시키고 나라사랑 의지를 결집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김신조 목사는 강연에서 장병들을 향해 “(김신조)저사람은 대한민국을 전복 하려고,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하려고, 우리를 죽이려고 남파됐던 간첩이라는 사실을 전제하면 마음이 달라질 것”이라며 과거부터 지금까지 대한민국을 전복시키려고 자행하고 있는 북한의 반민족적 도발 만행에 결코 마음을 놓아서는 안 된다는 뜻을 내비추었다.

그는 또 국가안보와 관련해서도 적을 제압할 수 있는 훌륭한 장비가 있더라도 정신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라며 무형전력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튼튼한 안보’는 ‘튼튼한 정신’에서 비롯되는 것임을 피력했다.

▲ 김신조 목사는 이날 강연에서 “강인한 정신이 있어야 안보를 지킬 수 있다”며 ‘군인정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konas.net

김신조는 1968년 1월 21일 청와대를 습격하려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민족보위성 정찰국 소속 124군 부대 무장 게릴라 31명 중 유일하게 생포(나머지는 모두 사살)된 인물로 전향 후 신학공부를 통해 목사가 되었다.

 

당시 게릴라들은 청와대 인근 종로 자하문 입구까지 침투하는데 성공했으나 우리 군·경에게 발각되어 교전이 발생했다. 소탕 과정에서 게릴라 29명을 사살하고 1명(김신조)을 생포했지만 1명은 도주했다.

그러나 우리측은 군·경·민간인 38명이 전사, 사망하고 52명이 부상 피해를 입었다.

당시 김신조는 생포 당하면서 “청와대를 까러 왔다!. 박정희의 목을 따러왔다!”고 조금도 망설임 없이 당당하게 말해 세상을 경악케 했다.

정부는 1·21사태를 계기로 북한의 비정규전에 대비하기 위해 1968년 4월 1일 향토예비군을 창설했다.

수도방위사령부는 나라사랑 마음을 고취하기 위해 민·관·군 통합행사로 오는 19일과 20일에는 ‘1·21사태 침투로 걷기대회’(경복고등학교 출발 창의문, 성벽, 국민대 입구)를 실시한다.

또 14일부터 21일까지는 서울역과 걷기대회 행사장인 경복고등학교에서 사진전시회를 열고 기간중에는 전사자 유가족 및 부상자 위문, 전사자 묘역(국립현충원) 참배, ‘故 최규식 경무관 동상’ 헌화 행사 등을 갖는다.(Konas)

코나스 이영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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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조 "우리사회, 內部(종북좌파)가 문제다"

written by. 이현오

"(김대중·노무현) 10년 동안 남북관계는 물꼬가 트였지만 잘못된 것이었다.

호랑이 새끼를 키워 놓으니 주인을 무는 격"

 

지금 우리 한국사회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이에 대해 가장 먼저 '국민수준이 낮은 것'이 문제라는 지적이 돌아왔다. 지난 1960년대에 비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잘 먹고 잘 사는 국가로 변해 국민 각자는 빛이 번쩍이는 자동차를 보유하고 있지만 운전자의 수준은 자동차에 훨씬 못 미치는 지적 능력을 갖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는 또 "잘못된 사실을 잘못으로 인정하지 않고, 진실을 진실로 받아들이지 않는 우리사회 종북 세력들이 문제고, 이들 세력들 때문에 더 큰 화(禍)를 당할 것"이라고 지난 1968년 1월21일 당시 박정희 대통령 암살 밀명을 띠고 남파된 1.21사태의 주역인 김신조(당시 북한군 소위) 씨가 주장했다.

자신을 "북한 무장공비 1기생"이라고 소개한 김신조 씨는 우리사회를 나무에 비유해 "뿌리가 튼튼하고 건강한 나무는 잎사귀도 크고 열매도 잘 맺어 많은 사람에게 즐거움을 주지만 그렇지 못하면 해악만을 끼친다"며 나무의 뿌리를 국가안보에 견주어 설명했다.

따라서 안보가 튼튼하면 사회기강도 건강하게 영위되어 갈 수 있다며 "지금 한국사회는 겉으로는 잎사귀가 무성하고 열매를 잘 맺는 나무처럼 튼튼하게 보이지만 일부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뿌리가 썩고 있어 이를 도려내야만 한다"고 했다.

이어 "비록 겉으로는 멀쩡하게 살아 있는 나무처럼 보이지만 땅을 파 헤쳐보면 썩어가고 있어, 이 부분을 잘라내지 않으면 다른 부분으로까지 전염시키게 되므로 반드시 잘라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시 30명의 무장공비를 이끌고 남파돼 청와대 습격 일보 직전까지 갔다가 우리 군·경에 의해 전원이 사살되고 혼자만 생포됐다가 이후 전향해 목회자로 변신, 현재는 은퇴해 평범한 보통 할아버지로 생활하고 있다는 김신조 목사는 7일 아침 서울 가락동 가락관광호텔에서 열린 국제외교안보포럼(이사장 김현욱, 전 국회의원) 제485차 정례 포럼에 강사로 참석해 우리사회의 종북좌파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 7일 아침 국제외교안보포럼에서 우리 내부의 적이 더 문제라고 비판하면서 강연하고 있는 김신조 목사. 그는 지난 42년 전에 이미 죽은 사람이었다면서 "남한에서 행복하다"고 말한 그는 북한에서 처형당한 가족사를 얘기할 때는 눈물을 글썽이며 울먹여 분위기를 숙연케 했다. ⓒkonas.net

김 목사는 이 날 '북한을 보는 우리의 자세와 안보의식'을 주제로 한 강연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게 우리 내부의 문제"라며 "이제 북한에 대한 얘기보다는 우리 내부, 현실을 어떻게 조합하고 조립할 것인가가 중요하다"면서 "저는 이미 42년 전에 죽은 사람이다. 그 때 대통령을 죽이고 한국사회를 이북사회(공산주의)로 만들기 위해 온 것이다. 그런데 한 나라의 대통령을 죽이려고 한 사람이 지금 이렇게 살아 있다. 그래서 국가와 국민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있으며, 늘 여기에 보답 해야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심정을 피력했다.

 

그러면서 그 보답은 말로서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에게 북한의 실상을 제대로 알려주는 것도 하나의 방법으로 본다고 말했다.

전향해 목회활동과 함께 군부대 등 많은 강연활동에도 적극 나섰다고 말한 김 목사는 특히 우리 군의 '주적' 개념 약화에 대해서 강한 어조로 질타의 목소리를 쏟아냈다.

그는 우리군의 주적 개념 약화로 인해 장병들의 정신이 이완되고 군대를 기피하고자 하는 의식이 많다며 "일부 선심성으로 군복무를 줄이려 하는 정치인들이 있다"고 비판하고는 "육체적 건강도 중요하지만 보이지 않은 정신적 건강은 더욱 중요하다. 아무리 좋은 장비를 만들어도 그 장비를 다루는 개개인 장병의 정신이 건강하지 못하고 굳건하지 못하면 고철에 불과하고, 60만 군대가 무너지고 만다"며 "주적 개념이 있어야 '내가 왜 군 생활을 해야하고 훈련을 받아야 하는가'를 안다. 바로 나 김신조 같은 놈이 나오기 때문에 주적개념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그 상대가 없다. 상대를 모르니 군대 가기가 싫은 것이다. 목적의식이 없다"고 비판과 더불어 정신무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김 목사는 또 우리사회와 북한을 대비시키면서 "자본주의사회는 자기의 노력여하에 따라 달라진다. 그래서 주는 대로, 시키는 대로하는 북한에 비해 더 어렵다. 법치국가이니 그렇다. 나 또한 전향해서 나 자신을 위해 많이 노력했다"며 "자본주의사회는 자기 자신을 위해 사는 것이지만 북한 사회는 그렇지 않다. 모든 것이 김정일을 위해 살고, 김정일 체제를 위해 사는 것이다. 그래서 북한사회가 독재사회인 것이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우리 국민이 북한에 대해 지나치게 감성적인 것도 문제가 된다고 지적했다. 남북관계에서 '민족'을 말하면 먼저 감정부터 드러내게 된다며, 그러나 북한이나 우리사회 일부세력들이 내세우는 '민족'은 북한의 '전술'이기 때문에 여기에 현혹되거나 넘어가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지난 6·2지방선거에서 야권이 여당을 겨냥해 '전쟁운운'하며 선거전술로 이용해 젊은이들의 표를 노린 것을 꼬집으며 "나라가 공산화가 되든 말든 관심 없고, 군대를 선거전략으로 이용한다"며 "안을 들여다보면 한국사회 문제가 크다. 국민의 생활수준은 높아지는데 비해 안보에 대해서는 약화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수준이 낮다"고 안보상황에 무뎌지고 불감증에 젖어드는 국민안보의식에 문제를 제기했다.

 

김 목사는 강한 톤으로 우리사회 친북 좌파세력을 비판하다가 자신의 가족사를 얘기할 때는 눈물을 글썽이며 목소리가 잠겨 들었다.

7형제에 청진시가 고향이라는 그는 생포되고 난 이후 수사과정에서 묵비권을 행사하다 결국은 "박정희 모가지 떼려 왔다"고 설파한 후 북한은 청진시 광장에서 1만 여명의 주민을 모아놓고 부모님을 공개사형에 처했다고 말했다.

 

"저는 7형제인데 북에는 우리 가족이 아무도 없습니다. 모두가 다 총살 당했습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이렇게 행복한데 우리 가족을 생각하면 모든 게 다 무너졌습니다. 김만철씨가 우리 집 길 건너에서 살았는데 사형 당시 사형장을 보고 왔다고 말해요"하면서 울먹였다.

지난 1987년 1월 50톤급 배를 타고 가족들과 함께 북한을 떠나 일본과 대만을 경유 "따뜻한 남쪽나라에 가고싶어 왔다"며 귀순한 김만철씨를 떠올리게 한 것이다.

▲ 485차 국제외교안보포럼. 이 날도 김유혁 박사의 제왕학 강의에 이어 김신조 목사를 초청해 안보의식을 다지는 자리가 이어졌다. ⓒkonas.net
그는 또 "지난 (김대중·노무현 정권) 10년 동안 남북관계에는 물꼬가 트였지만 잘못된 것이었다"며 "호랑이 새끼를 키워 놓았더니 주인을 무는 격이다. 북한문제를 다룰 때는 조준을 잘해서 해야한다. 국가문제에 개인의 철학을 심어서는 안되고 어떤 문제가 다가올 것인가를 생각해야하며, 국민의 안보의식이 어느 정도인가를 봐야한다. 기초가 잘 되지 않은데다 집을 지으면 어떻게 되나? 지금 북한이 그런 것이다"고 꼬집었다.

 

김 목사는 또 "참으로 답답한 게 천안함 사건을 조작이라고 말하는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김현희 사건도, 울진·삼척사건도, 김신조 사건도 신빙성이 없다는 말을 하고 있다. 그럼 나는 무엇인가?"고 반문한 뒤 "어떻게 그런 사람들이 대한민국 주소를 갖고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양심이 있어야지, 그런 사람들 입에는 밥이 들어가서는 안되고 쓰레기가 들어가야 한다"고 톤을 높였다.

북한지원과 관련해서는 "주민을 돕는 것은 좋지만 김정일에게 들어가 결과적으로 그 체제를 강하게 하고 남한 내 친북세력을 확산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반대한다"며 "이산가족 만남도 정례화가 필요하지 지금 상태로는 북한 김정일 정권체제를 위한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고 비판했다.(konas)

코나스 이현오 기자(holeekv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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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특수부대 출신 김신조 목사

written by. konas

1.21 청와대 습격 40주년.."대북정책 달라져야"

 

"10년간의 햇볕정책으로 오히려 남한 사회에서 북한에 대한 경계 의식만 사라졌습니다"
1968년 1월21일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하기 위해 북한 특수부대원 31명과 함께 남파됐다가 유일하게 살아남은 김신조(67) 목사는 17일 "이제는 대북정책이 달라져야 한다"며 이 같이 말했다.

이날은 40년 전 김 목사가 청와대 습격을 위해 휴전선을 넘은 날이다.

김 목사는 현재 경기도 남양주시 성락삼봉교회 담임목사로 신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으며 성경 교육관인 베뢰아 아카데미하우스 관장도 맡고 있다.

김 목사는 "정확히 40년 전인 1월17일 오후 8시30분 파주 삼봉산으로 침투했는데 공교롭게 새 인생을 삼봉리에서 살고 있다"고 말문은 연 그는 "대북사업에 있어 남한은 감성을 자제하고 좀 더 냉정해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목사는 현재 남북 화해무드가 조성되고 있는 것 처럼 보이지만 남한은 순수한 마음에서 북한 주민을 지원하고 있는 반면 북한의 대남전략은 변한 것이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 동안 북한은 보이지 않게 남한 사회를 선동해 왔지만 햇볕정책 이후 북한 응원단 등을 통해 체제를 홍보하는 전술을 펼치고 있으며 금강산, 개성, 백두산을 그들의 공산주의 홍보관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어 "남한 사회가 같은 민족.동포, 평화 통일이라는 감성에 빠져 북한에 대한 최소한의 경계심 마저 허무는 동안 북한은 남한 사회에서 꾸준히 지지세력을 넓히고 있다"며 "북한 주민들의 깊게 박힌 김일성 주체사상을 바꾸려면 조금 늦더라도 긴 시간을 갖고 대북 사업을 펼쳐야 한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남한사회에 북한 체제를 흠모하는 세력이 생기고 해외의 친북세력들이 자유롭게 드나드는 것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앞선다고 말했다.

그는 "햇볕정책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자유민주주의만은 목숨을 걸고 지키겠다는 변치않는 신념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한에서 40년간 살면서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 지 실감하고 있다는 김 목사는 1970년 10월 자신을 편지로 위로해 주던 부인과 결혼해 1남1녀를 두고 있으며 1991년 2월 서울 침례신학대교를 졸업한 뒤 남한에 건너온 날을 기념해 1997년 1월21일 목사 안수를 받았다.

김 목사는 "북한의 체제가 싫어 탈북한 것이 아니라 전술을 위해 남파됐기 때문에 북한의 전략.전술을 잘 알고있어 우려하는 마음에 그 동안 아껴두었던 말을 꺼냈다"며 "지금껏 건강하게 살게 해 준 하나님과 국민께 감사하고 국가의 안녕을 위해 매일 기도하고 있다"고 말했다.(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