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론
1. 문제제기와 연구목적
가정은 정치, 경제, 사회의 원천이며 기본이다. 가정은 또한 신앙의 모체이며 교회의 근본이다. 그런데 인간 삶의 근원이며 바탕인 이 가정이 파괴되는 위험에 직면해 있다. 수많은 가정이 파괴 되었을 뿐 아니라, 가정 자체의 형성이 위협을 받고 있다.
가정의 해체와 파괴는 곧 교회의 해체로 이어진다.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가정으로 부터 출발하였고 가정과 더불어 이어져 왔다. 가정은 근본적으로 교회이며 교회는 곧 하나님의 가정이다. 그러나 현대의 산업화로 인한 사회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가정은 위기에 직면하게 됨과 아울러 교회 역시 그 동질성의 변질이라는 위험앞에 처하게 되었다. 교회는 가족 공동체가 아니라 저마다 외로운 핵들의 집합체로 화해가고 있다. 종교개혁적인 기치,“ ecclesia reformata, semper reformanda" (개혁한 교회는 항상 개혁한다)를 따라 우리의 교회가 갱신되어야 할진데, 그 어느 분야에서 보다도 기독교 가정이 갱신되어야 할 것이며 그를 통해 교회 그리고 나아가 사회를 개혁하는 운동의 전개가 시급하다.
사회를 구성하는 가장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생활공동체인 가족은 중요한 여러 기능을 수행해 왔으나, 현대사회에서는 그 기능이 대단히 약화되었다. 그리고 기능의 내용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가정의 교육기능도 과거에 비하면 현저히 약화되고 변질되었다. 가정이 아닌 다른 곳에서는 대행할 수 없는 교육이 있다. 모든 인격과 지적 능력의 기초가 되는 기본적 생활훈련, 윤리의식의 기초, 인지 발달, 기초적 학습능력 형성 등은 대부분 유아기와 아동기에 가정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가정의 교육기능 강화는 매우 중요한 과제이다.
가정은 어느 사회에서나 (1) 성의 충족과 통제 기능, (2) 인구의 생산 기능, (3) 경제의 기능, (4) 자녀의 양육과 교육 기능, (5) 가족 성원의 보호 기능, (6) 휴식과 오락 기능, (7) 가족의 사회적 지위결정 기능, (8) 종교적 기능 등을 수행한다. 그러나 사회변화에 따라서 가족의 기능도 계속 변해가고 있다. 성에 대한 통제기능이 크게 약화되었으며, 경제적 기능은 생산위주의 기능으로부터 소비위주의 기능으로 바뀌었다. 종교적 기능도 전통사회에 비하여 눈에 띄게 약화되고 있다.
오늘날의 가정은 가족규모가 과거에 비하여 현저히 축소되고 구조도 달라졌다. 흔히 3대 또는 4대가 한 지붕 아래 함께살던 대가족이 축소되어 부모와 한두명의 미성년 자녀 2대로 구성되는 핵가족이 일반화되었다. 그에 따라 조부모 및 삼촌과 고모에 의하여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던 교육은 없어지고 오로지 부모만이 교육기능을 수행하는 성인으로 남게 되었다. 부모 가운데에도 아버지는 가정과 완전히 격리된 직장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야 하기 때문에 자녀교육을 담당할수가 없다. 어머니들도 취업하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고 가정밖의 사회활동도 급속히 늘고 있기 때문에, 가정에서 자녀교육에 사용할 수있는 절대시간이 큰 폭으로 줄어들고 있다. 결국, 대가족으로부터 핵가족으로의 변화, 가정내 생활시간과 가족 간 접촉시간의 감소가 가정의 교육기능을 약화시켰다.
더욱이 이혼률의 급속한 증가는 편부와 편모 또는 무부모의 아동 수를 늘려가고 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자녀의 출생에 있어 하나님의 창조역사에 동참한다. 하나님의 창조의 한 부분으로써의 출생은 그 자녀가 부모의 소유가 아니고 하나님의 피조물임을 말해 준다. 부모는 자녀를 성숙한 인간으로 양육하여 자립적 책임을 감당하도록 하다. 부모는 성숙한 자녀가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단하도록 자유를 주어야 하고, 자녀는 부모를 공경하고 늙게 될 때에는 그 생활을 책임져야 한다.
가정이란 결혼을 통해 형성된 부모와 자녀의 공동체를 말한다. 교회에서 이루어지는 유아세례는 새롭게 태어난 생명이 그 부모의 자녀로써 또한 하나님의 자녀임을 나타내며 이러한 점에 있어 자녀는 부모와 더불어 하나님 앞 (coram Deo)이라고 하는 동일 선상에 서있는 것이다. 가정은 자체 목적을 지니는 것이 아니며 그 목표도 자기 자신속에 두고있는 것이 아니다. 넓은 의미의 양육공동체로써 가정은 그 자녀들을 자립적 삶의 길로 인도하며줄 임무를 지닌다. 무엇보다도 자녀들로 하여금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임을 확신케하며, 그를 통해 그들이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써 자신의 삶의 길을 걷고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신과 자기의 주변에 대한 책임을 질 수있게 하는 것이다. 결혼과 비교해 볼 때 가정은 그 어떤 과도적인 것이라고 할 수있다. 가정은 부모들이 아직 성인으로써 부모의 집을 떠나기 전의 자녀들을 가진 시기에만 존속하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한 가정으로 부터 나왔다. 그의 생애와 그의 생활능력은 그의 가정이 그를 어떻게 삶속으로 동행해 주었는가 하는 것에 의해 결정적 영향을 받는다. 한 인간의 신앙도 가정으로 부터 절대적인 영향을 받는다. 부모의 축복이 천대까지 이른다 함이 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
교회가 가정없이 불가능하듯 목회는 피할 수없이 가정목회이어야 한다. 그러나 본 논문에서 “가정목회”라고 할 때에는 특별히 가정의 갱신을 통한 교회갱신의 시도라는 입장에서 가정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나아가 교회가 각 가정의 전가족을 교회생활에 적극 동참케 하고 전 교회가 하나님의 한 가정되게 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2. 연구 범위와 방법
인생에 있어서 두 기본적인 관계들이 있다. 그 하나는 하나님 아버지와 갖는 수직적인 관계이다. 다른 하나는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는 수평적인 관계이다. 어떤사람이 믿음으로 하나님과의 수직적 관계를 올바르게 갖고 있다면 그를 통하여 만나지는 많은 관계속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목회현장에서 한 사람이 회신하여 교회에 인도되어 나오는 경우를 보게 되면 거의가 깊은 인간관계속에서 연결되어져 나오는 것을 보게 되는데 이러한 인간관계중의 가장 기본적이고 또 가장 단단한 관계는 가정이라고 할 수 있다. 성경적인 관점에서 볼때 지역교회는 당연히 각 가정을 기초단위로 하여 서로 모여 있는 것이어야 한다. 이점이 선교단체(para church)와 다르다. 그러므로 지역교회는 당연히 생물학적 성장이 있게 된다. 즉 새로운 세대가 가정을 이루고 그리고 재생산 되는 일들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역교회의 목사는 당연히 가정사역에 관심을 가져야 하고 이에 대해 연구하여야 한다. 교회가 회심성장이 아니라 단순히 생물학적 성장에만 관심을 가진다해도 매년 한국의 출산율이라 할수 있는 년 2%의 성장은 있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기초를 이루는 교회와 교회의 기초를 이루는 가정을 성경적 신학적으로 고찰한 다음 상대적으로 소홀해지고 있는 가정의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성경적 대안을 찾을 것이다. 또한 그것을 본 연구자가 섬기고 있는 산남교회의 목회현장에 적용해 보려고 한다. 이를 위해서 먼저 산남교회와 이웃한 교회들 10개를 표집하여 그리스도인의 가정관에 대한 의식을 조사한 다음 무엇이 결여되어 있는지를 파악할 것이다. 파악된 자료를 통하여 새로운 가정사역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시도해 볼 것이며 그 결과를 나타내도록 할 것이다. 그러므로 본 연구는 대략 다음과 같은 순서로 진행될 것이다.
서론에서는 문제가 제기 되면 그 문제의 심각성과 중요성이 논해 진다.
제1부에서는 목회와 가정의 상관성을 논하게 되는데, 먼저 복음주의에 입각한 목회신학을 정립하고 목회에 있어서의 가정문제의 중요성을 말하게 될 것이며 성경적, 그리고 신학적으로 가정의 의미를 밝히게 되며, 가정목회의 내용을 살펴보기로 한다.
제2부에서는 목회지에 대한 분석으로 지역사회의 특성과 산남교회의 상황을 살펴보고자 한다.
제3부에서는 가정목회를 통한 교회 갱신 방안으로 실천방안과 갱신 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결론으로써 논문 전체의 내용이 종합되며 논문상의 문제점과 장차의 전망을 제시하게 된다.
제1부 가정목회신학
1장. 목회와 가정
제1절. 목회신학
기독교 목회란 성서에 근간을 두면서도 “목회”라는 말은 종교개혁이 일어난 다음부터 쓰여졌다.1)
성서에서 목회의 Motive가 될 수 있는 마태복음 9장 35절에
“예수께서 모든 성과 촌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
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
을 고치시느니라.”
고 하신 말씀에서 보면 예수 그리스도는 이 지상에서 사역을 하실때 세가지 주요 활동에 초점을 맞추고 일을 하신 것을 알 수 있다. 즉 가르치셨고 ( taught ), 설교를 하셨고 ( preached ), 병자를 고치셨고 ( healed ). 그러므로 가르치심과 설교와 치유 ( teaching, preaching, healing )를 예수 그리스도의 3대 사역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예수님의 목회는 치유이며, 관심이고, 사랑이었다.2)
A. 목회의 성서적 근거
목회의 의미를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목사”의 어원을 살펴보아야 한다. Latin어 ‘ Pastor'는 헬라어 ‘ ποιμην ’을 번역한 것인데 이는 “먹이다, 보호하다”는 의미의 어근에서 유래한 것이다.3) 이 말은 신약성서에서 18회나 사용되었는데 “양을 치는 목자”를 가리키는 뜻으로 8회 사용되었고,4) 예수를 상징한 말로 7회 사용되었다.5) 한번은 “양의 큰 목자되신 우리 주 예수”를 가리켜 사용되었고( 히13 : 20 ), 또 한번은 그리스도를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이라고 할 때 사용되었다( 벧전2 : 25 ). ‘ ποιμηυ ’이 신약성서에 한번 ‘목사로 번역된 곳은 에베소서 4장 11절인데 이는 Latin어 pastores에서 유래한다.6) 그런데 신약성서에서는 이 말의 동사형인 ‘ ποιμιυω ’ 가 7회 사용되었는데 4번은 “다스리다”는 뜻으로 쓰였고,7) 한번은 “가축을 치다”, 라고 번역되었으며( 눅17 : 7 ), 계시록 7장 11절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양을 치심을 말한다.
목회라는 말은 독일어 “Seelsorge” 라는 말에서 그 의미가 잘 나타나는데 “Seele”란 “생명, 정신”을 말하며 “Sorge”란 “돌보아 주다, 보호하다, 관심을 갖다, 보살피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8)
신약에서의 'Minister'란 세개의 다른 Greek어를 번역한 것이다. “인부”, “종” 또는 “집사”라는 뜻의 ‘ διάκονος ’와 ‘공복, 일꾼”이라는 뜻의 ‘ λειπουργος ’와 “조수, 일꾼”이라는 뜻의 ‘ υπηρετης ’가 그것이다.9)
학자들의 정의를 보면 류형기는 “Pastor는 근원적으로 이스라엘민족의 생활수단이었던 목양술에서 비롯되었다.”10) 고 보았으며, 에드워드 뜨루나이젠( Edward Thuneysen )은 “목사란 양을 돌보는 (Pastoral Care)사람이며, 목회란 슬픔이나 기쁨을 만나 특별한 격려를 필요로 하거나 기대하는 사람들 과의 대화를 나누는일”11) 이라고 하며 “인간의 영혼을 돌보는 일”이다.12)라고 정의한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목회모범인 치유와 사랑( 마9 : 35-36 )에 근거하여, 섬김의 즐거움에 의하여 섬겨야 하고 양들을 보호하고 인도하며( 요10 :1 ) 치유하는 것이 목회라고 본다.
B. 목회의 개념 이해
목회의 기능은 역사적으로 각 시대마다 문화적, 심리적, 지적, 종교적 상황에 따라 변화되면서 결정되어 왔으며, 전통적으로 치유( Healing ), 지탱( Sustaining ), 인도( Guiding ), 화해( Reconciling )의 네가지로 발전해 왔다.13)
그러나 전인적 치유사역( Wholistic Healing Ministey )을 목표로 하면서 기독교 역사적인 맥락에서 볼 때 다른 기능도 도외시하지 아니 하였다.14)
그래서 이러한 목회기능 들이 무엇인가를 문헌연구의 이론적 입장에서 밝혀 보면서 오늘의 목회상은 어떤 것 이어야 하는 가를 연구하여 본다.
1. 치유의 기능( Healing )
치유란 “온전하게 만든다”는 뜻에서 본래의 조건이 와해되었다가 다시 원상 회복 시켜 주는 것, 즉 육체의 방향이나 그 스케줄에 있어서 손상을 입었던 것의 기능적인 완전성을 다시 회복 시키는 것을 의미한다.15)
오성춘 교수는 목회에 있어서의 치유라 함은 회복 ( Restoraion )과 성장(Advance)의 두 말로 요약하며,16) 힐트너( Hiltner )는 치유는 결함. 왜곡. 침해. 결심이 생기기 이전보다 더 발전한 상태로 회복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기능으로 본다.17)
그러므로 이 치유의 가능성은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될때 지금까지 그 사람을 속박해 오던 습관이나 걱정에서 해방되며 온갖 노력을 경주하여도 없어지지 아니한 공포. 원한. 증오심을 깨끗이 털어버리게 된다.18) 결국은 인간이 온전히 치유를 받을 수 있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길 뿐이다.
2. 지탱의 기능( Sustaining )
힐트너( Seward Hiltner )는 지탱이란 “함께 서서 도와준다”는 것을 강조하는 뜻으로, 회복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유지하도록 지지해 주고 격려하여 주는 것이 지탱목회라고 정의하며,19) 클렙쉬와 제클( Clebsch & Jaekle ) 은 이것은 보조기능인데 온전한 것이 깨어지고 몰락과 훼손을 입어 완전한 회복이 불가능 할 때 또는 당장에 불가능 할때 행하는 용기와 격려의 목회기능으로 본다.20)
이 지탱목회 기능은 네가지 단계가 있다.21) 첫째는, 보존( Reservation )의 단계로 최소한의 상실만으로 위기를 면하게 하는 방법인데 절망중에 서있는 인간을 보존 지탱 할 수 있는 가능성의 단계다.
둘째는, 위로( Consultation )인데 이는 상실당한 자로 하여금 아직도 희망의 공동체 속에 소속되어 있음을 깨닫게 하여 그의 비참의 감정적 체험을 경감 시키려고 도와주는 차원을 말한다.
세째는, 결속( Consolidation ) 의 단계인데 이는 손실 자체를 쳐다보고 서서 그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 내게 도와주고 재정비하여 나아가도록 협조하는 것이 결속이다.
네째로는, 구속( Redemption )으로 이는 지탱목회의 마지막 단계로서 자신의 성취를 다시한번 이끌어 나가는 단계이다.
이처럼 지탱목회 기능은 하려고 하는 일을 고무하여 주고 어려운 문제를 대면 할 수 있는 용기를 심어주는 목회이며 위로의 목회요, 같이 서 있는 동함의 목회인 것이다.22)
3. 인도의 기능( Guiding )
인도목회 기능은 다양한 가능성 중에서 제일 적절한 행동과 결단을 가지도록 돕는 목회이다.
여러가지 다양한 행동과 생각들 사이에서 오직 한가지의 행동만을 선택해야 하는 어려움에 봉착하였을 때 그가 무엇을 하여야 하는지에 관한 지혜에 도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심령치유의 한 기능인 것이다.23)
이런 면에서 인도목회는 네 종류의 방법으로 효과적인 내용을 이끌어 나갈수 있게 되는데 충고( Advice-Giving ), 魔術( Devil-Craft ), 들음( Listening ), 결단( Decisions )이 그것이다.
첫째로, 충고( Advice-Giving )이다. 여기에서 주의할 것은 권면 혹은 충고는 강제성을 띄고 상담자나 목사의 의도대로만 이끌어 가는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 정보를 알려주고 분명하게 해주며 이해가 가능하고 기억이 가능하도록 하여 주는 것이다. 또한 이는 사람과의 깊은 관심이라는 동기에서 나온 것이며 피상담자를 선하게 하기 위할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하여 언어적수단을 통해 충고하고 안내하는 것이다.24)
둘째로,0魔術( Devil-Craft )인데 이는 14-17세기까지는 매우 중요한 목회기능이었으며, 25) 목회에서는 엑소시즘( Exorcism )으로, 지탱목회에서는 천로역정 가운데 악마의 덫과 올무에서 성도를 지탱시키는 사역으로 보았으며, 인도의 기능에서는 악마와 싸우는 중요한 요소로서 성경말씀을 따라 악마의 유혹을 물리치는 것으로 보았다.
세째로, 들음( Listening )인데 이는 고난당하는 자로 하여금 다시한번 자신이 말하고 있는 것이 무엇을 의미할 수 있는지 반영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 그가 그 자신의 혼란된 생각들을 정리하여 숨겨져 있는 의미를 발견케 하여서 정화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여 주고 압박감을 해소시키는 카타르시스( Catharsis )의 방법인 것이다.26)
네째로, 결단( Decisions )인데 결단은 하나님앞에서 자기 스스로 결단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지 미리 준비한 해답을 주어서는 안된다. 이 결단의 가장 큰 장애물은 교만인 것을 또한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즉 어려운 문제에 직면하여 있는 자를 인도하여 구원의 근원이신 하나님 앞에 서게 하므로서 결단할 수 있도록 인도하는 목회사역이다.
즉, 인도( Guiding )의 목회사역은 외적 문제의 해결을 넘어선 내적, 영적, 정신적인 투쟁을 인도하도록 조명하여 준다. 인도의 성공은 인도자가 인도를 받는자의 내적 요인과 접촉되거나 혹은 그 위에 세워졌을 때이다.27)
4. 화해의 기능( Reconciling )
화해의 목회는 소외된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과 더불어 적절하고 새로운 관계를 맞게 하는 기능이다.28)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 Incarnation )의 역사( 役事 )는 죄로 인해 하나님과 인간 사이가 소원해진 곳에서 교량을 놓기 위하여 화목제물이 되셨고( 롬3:25 ), 이 직책을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에(고후5:18 -19) 우리의 사역은 반드시 하나님과 인간사이에서 화목하게 하는자( peace-Maker )가 되어야 한다.
화해는 용서와 훈련이 두 양태가 그 내용으로 되어 있으며 이것은 상호의존식이다. 용서( Forgiveness )는 영혼을 치유하는 성직의 한 기능인데 초기에는 화해는 중점적인 촛점이 고백 자체이었다. 그러나 13세기 와서는 고해와 성만찬 자체가 화해의 능력을 행사한다고 보았다.29)
오리겐( Origen )과 터툴리안( Tertullian )은 목회적 화해의 요소를 세가지로 분류하였다. (1) 영적상담을 통한 준비, (2) 공개적인 고백, (3) 공중앞에서의 참회 및 하나님과 교회와의 화해이다.30) 고 하였다. 예수 그리스도의 화해의 사역을 책임진 오늘의 교회는 그들의 모든 관계속에서 그리스도의 사람을 성육화( Incarnation )시킴으로서 맡은 사명을 이룰 수 가 있다.
전인적 인간회복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은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사명을 촉구하고 있다. “모든 인간관계의 전 영역에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화해의 복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31)
이상에서 본 목회의 개념이해에서 치유를 임무로하는 인간실존의 이중적결함, 본성적결함, 후천적결함등을 치유하는 능력으로서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하는 것이다.
제 2 절. 가정의 정의
(1) 가족의 개념
가족이란 부부를 중핵으로하고 그 근친인 혈연자가 주거를 같이하여 생활하는 공동체32) 로서 영어의 표현은 “Family”이고 그 어원은 Latin어의 “Familia”또는 “Famulus”에서 왔는데 재산, 노예, 집에 속한 사람, 혈연 관계로 결합된 기초 집단이다.33) 한자의 뜻에 의하면 가족(家族)은 가옥의 족 [家屋의 族]으로서 족(族)은 원래 중[衆] 또는 취[聚]를 뜻한다. 그러나 족(族)의 뜻은 변하여 친족(親族)즉, 혈연 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모양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이와 같이 가족이란 같이 먹고, 자고, 쓰는 혈족 집단을 의미했다. 그러나 실제 친족, 또는 혈연 공동체라고 할때 그 의미하는 바는 시대와 사회에 따라 다르게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34) 보편적 정의로는 부모, 부부, 형제, 자녀 등의 혈연에 의하여 맺어지는 생활 공동체의 구성원35) 이라고 할 수 있고,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구성 단위이기도 하다36) 제도적인 의미에서 가족이란 인류의 발생시대와 함께 시작된 최초의 공동체이고 역사이래 어떤 사회에서 항상 존재해 온 “삶의 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가족의 연구성이나 보편성에도 불구하고 가족의 형태나 기능면에 있어서도 학자들에 따라 다양성을 보여준다.37)
가족 구성원은 결혼을 통한 비혈연적 관계 및 혈연관계로 맺어진 자녀로 구성한다. 구성원 각자의 다른 역할을 통하여 상호 질서있는 관계가 형성 유지 되어야 한다. 한 지붕밑에 동거해야 하고 공동문화(가풍)가 이뤄져야 한다고했다.
(2) 가정의 성격
부부를 중심으로 하는 가족의 공동 생활체, 즉 부부, 자식, 부모등 가족이 공동 생활을 하는 조직체로써 사람들의 견해에 따라 그 정의에도 약간의 차이가 있다.38) webester사전은 “그 핵으로서 함께 생활하는 둘, 혹은 그 이상의 성인들이 있으며, 자신들의 자녀 혹은 입양된 자녀를 보살피고 양육함에 있어서 협동하는 사회의 기본적 단위”라고 정의했다.39) 영어의 ‘home’이나 독일어의 ‘heim’도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영어의 “family”는 “가족”이라고 번역할 수도 있고 “가정”이라고 번역할 수도 있으나 가족은 구성원이 [사람]중심이 되는 반면 가정은 구성원인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system을 의미한다. 엄밀하게 말하면 가족과 가정은 무엇에다가 중점을 두느냐에 따라서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있다.40)
인간이 만들어 내는 가족 관계 가족 공동체의 구성 운영방법등은 생활에 필요한 물자의 조달 방법이나 생산 방법의 차이에 따라서 그 역사적 의미를 달리 하게된다. 그러한 의미에서 부부와 가족 일원이 상부상조하면서 인간의 가능성( potentiality )을 최대한 발휘하는 사회 구성의 최소 단위로서의 가정을 확인하게 된다.41)
버게스( Burgess )는 “가족은 상호 작용하는 인격체들이 통합”으로 보고 가족 생활의 존속은 법적, 또는 어떤 형식적 계약에 의한 것이 아니라 성원들의 상호작용의 과정으로 보았고,42) 이태현씨는 “가정은 인간이 임하는 최초의 사회적 환경, 사회적의 영원한 학교라고 했다.43) 가정은 자아 중심적인 어린이들이 한 공동체 속으로 연결되어 자기 중심적인 관점에서는 가계를 함께 하고 살림을 함께 한다는 점에서 가정의 강조점이 있고, 법률학적으로는 여러 형식적으로 기초로 호적의 진실성을 부여함으로써 사회장서 유지로서의 근본 기능이 있는 것이다.44) 이처럼 가정은 온 가족이 안주 할 수 있는 애정의 사람이 있는 따뜻하고 장소이고 가장 아름다운 환경이다.
그러므로 가정은 인간들의 집단( group )과 인간 생활을 영위하는 장소( Place )일 뿐만 아니라 인간 상호 의존의 관계가 중요시되는 곳이어야 하고 공간적 장소를 넘어서 그 안에 온 가족들이 신념, 이념, 애정이 얽힌 심리적, 정서적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45) 가족의 유형으로는 구성의 범위에 따라 핵가족과 확대가족으로, 가장권의 소재에 따라 부권 가족과 모권 가족으로, 또 부부의 결합 형태에 따라 단혼가족과 복혼가족으로 또 거주에 따라 부거제(夫居制)가족과 모거제(母居制)가족으로 분류한다.46)
찰스 w.스티워트( Charles William Stewart )는 “가정은 생물학적으로 자녀들이 잉태되고 출생하거나 입양되며, 성장기에 신체적으로 보살핌을 받기에 가장 이상적인 장소다. 심리학적으로 가정은 자녀에게 모국어를 가르치며 자녀에게 사람이 된다는 것이 무엇이며, 한 사회적 단위에서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함께 살 것인가를 그 문화의 가치관이 무엇인가를 그리고 어떻게 그 가치관에 적응 할 것인가를 배우도록 가르치기 위한 가장 좋은 단위다.”47)고 했다. 그러므로 가정은 넓은 사회의 다양한 영역에 소요되고 필요로 하는 공동사회 속에 진출시키기 위해 출생 양육 훈련을 받는 배움의 한 장으로서 사회학적 측면에서 혈연을 중심으로한 공동 사회의 최소 단위이고 이러한 가정은 역사와 사회와 상황에 따라 계속 변해 왔고 또 오고 오는 역사 속에 지속적으로 변해 갈 것이다. 먼 훗날의 가정! 우리는 어떻게 추측을 해야 할까? 가정의 가정됨을 상실한 가족은 이미 가족으로서의 그 기능이 상실 된 것이다. 오늘에 우리의 아픔이 있는 것이다. 우리의 가정을 온 가정이 전인적 인간으로 성장하고 성숙하며 치유 받고 위로 받고 그 가정 안에서 가족 구성원 모두가 누릴 특권과 의무를 다하면서 보람을 먹는 아름다운 공동체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제 3 절 성경에 나타난 가정의 위치와 의미
(1) 구약에서의 가정
히브리인에게 있어서 가족의 의미는 넓은 범위의 공동체를 포함한다.48)결을 해서 결속된 친 가족 공동체로부터 시작해서 그들 집에 함께 거하는 노예, 첩, 고용인, 외국인까지 가족개념속에 포함시켰다.49)
은준관은 “하나님의 뜻”을 이 땅위에 실현하는 도구는 하나님의 뜻이 구체적으로 전달되는 생활화되고 종교교육의 살아있는 현장”이라고 말했다.50)
또한 히브리 민족 공동체의 가정들은 가정을 통해 민족의 역사와 그 역사 속에서 그들과 함께 하시며 도우신 여호와께 대한 신앙의 훈련을 시키는 현장으로 삼았다. 즉 “예배적 기구”로서의 가정이 교육이나 친교보다 우선했던 것이다. 하나님과의 교제는 예배를 통해서 이루어 나갔던 것이다.51)
구약에서의 결혼의 목적과 십계명의 제5계명은 사회질서와 윤리 개념의 기초라고 할 수 있다. 결국 가정은 넓은 가정인 사회와 문화를 책임지는 사명적 공동체가된 것이다. 이근삼은 “구약의 하나님은 최고의 생활자 또는 통치자만이 아니라, 도덕, 진리, 과학, 예술등 모든 생활권에 있어서 자존하시는 지배자”이기 때문에 인간의 전생활 영역이 하나님의 절대 주권 아래 있다52)고 했다. 그러므로 기독교 가정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 존재 목적이 있는 것이다. 이것을 다시 요약하면 예배적기능, 교육적기능, 안위적기능, 보존적기능등으로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기독교 가정”이라는 용어에는 자연적, 심리적, 사회적인 용어의 뜻을 초월해서 그 가정을 창조하시고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신 하나님의 목적과 뜻을 이루는 거룩한 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53)
가족의 참 능력은 인간들의 어떤 힘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영적 힘이었다. 이스라엘의 가장들은 하나님께서 자기백성을 사랑하신 이야기를 자녀들에게 가르치고 그들 또한 그 사랑 속에 살면서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받으며 살아가도록 지속적인 교육 훈련이 대대손손 지켜지도록 하나님이 명령하신 계명들을 재인식시키며 교육시켰던 것이다.
성경 전체의 흐름도 그러하거니와 특히 신명기서의 모든 내용들은 하나님의 사랑, 능력 약속을 자손들에게 이해시키는 반복적 명령이다.54) 히브리 가정의 가장은 특별히 자녀들의 교사로서 영적 복지의 수호자로서 그 사명이 주어진 것을 알 수 있다.55)
(2) 예수의 가정관
예수는 가정에 관해서 많은 말씀을 하시지는 않았으나 이혼에 대해서는 깊이 말씀하셨고, 성적 윤리에 대해서는 구약에서의 계명보다 더 깊이 말씀하셨다. 예수는 모세 율법에 의한 이혼 방법과 이혼 증서의 허용을 반대하는 입장을 신명기24장 1-4을 인용하셔서 말씀하셨다. 특히 바리새인들의 잘못된 성경 인용과 위선적인 삶의 태도에 대해서 심도 있게 책망을 하시고 무리들에게 당신의 깊은 진리를 전파했다. 예수 당시 바리새인들 중에는 남편의 판단과 그가 원하는 대로하게 하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 되어버렸다.56) 어떤 랍비는 종교적인 이유( 스10 :3,44 )나 아이가 없다는 이유( 말2 : 15 )로 이혼을 허용하였다. 또 어떤 랍비는 아내가 요리는 못한다는 이유로만도 이혼을 당할 정도로 율법은 타락한 인간들의 수단이 되어버리기도 했다.57) 지극히 사소한 일에도 이혼을 제기 하기도 하고 이혼 이유를 설명도 않고 일방적 이혼이 자행되자 이스라엘 랍비들중에서 이혼 문제가 크게 대두되어서 논쟁이 일어났던 것이다.58) 예수께서 이혼의 질문을 받으셨을 때( 막10 :2-12, 마19 : 3-9 ) “결혼은 일부일처제가 돼야하고 일생을 나눔이 없는 결합( Cleaving )속에 살아야 한다”고 했다.
예수는 여기서도 모세 율법을 인용 “모세가 이혼을 허락한 것은 너희의 완악함” 때문이라고 지적하시고 창조주의 의지와 행위에 따라 이뤄지고 제정된 결혼은 인간이 나눌 수 없다고 반박하시고 유대교적 실천의 모순성, 즉 모세율법을 악용하는 타락의 근성에 대해 무섭게 반박하셨다.59) 뿐만 아니라 당시 거룩한 결혼과 가정을 파괴하는 자들에 대해서 비판하셨다.60) 또 예수 당시 남성들은 간음죄에 대해서 별로 자책이 없었고 유별나게 여성들이 간음죄를 지은 것에는 민감했던 것이다. 이것을 예수께서 지적, 남녀 구별 없이 똑같은 죄를 지적하셨다.
결혼과 가정의 신성함에 대한 예수의 말씀은 하나님의 최초에 창조하신 가정창조에 연결시켜서 말씀하신 것이다. 이것이 성경적 가정, 성경적 결혼의 기초이고 기독교적 결혼의 기초라고 할수 있다.61) Georgia Harkness는 그의 저서 [Christian Ethics] 에서 “가정은 거룩한 관계이고 결혼은 신성한 인격적 결합이어서 가볍게 파기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결혼 생활에는 기쁨이 있는 동시에 의무와 책임이 있다.62)고했다.
다만 예수께서는 모든 종류의 불법적인 성행위로인한 더 큰 죄악이 있을때에는 이를 제하기 위하여 이혼이 불가피 하게 허락될 수 있으나 유대인들처럼 정욕과 허영을 채우기 위해 타락의 행위로 이혼을 악용할 수 없음을 밝히시면서 창세기 1:27, 2:24을 근거로 하여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셨다.63) 예수는 가정이 일종의 생활 방편이나 사회적 관계나 개인적인 향락을 위한 것이 아님을 특별히 강조하신 것이다. 결혼이 너무 쉽게 그리고 이기적으로 행해지고 너무 속히 깨어지는 오늘의 현실에 있어서 예수의 가정관은 영원히 인간 모두에게 깊이 뿌리 박혀야 할 진리이기도 하다.
(3) 바울의 가정관
바울은 그의 많은 서신서들 가운데 가정 윤리에 대하여 많이 언급했다. 즉 가정은 하나님이 축복하신 거룩한 공동체로서 가정을 가정되게 지키려면 하나님이 제정하신 가정의 질서 즉 결혼의 신성, 부모와 자녀 관계의 질서, 공동체 보존에 대해서 깊은 메시지를 보냈다. 그는 하나님을 떠난 하나님 없는 가정은 온전한 가정이 아니며, 비참한 가정이 되지 않기 위해서 결혼의 순결을 강조했다. 하나님 없는 가정속에는 언제나 사탄이 틈탈 수 있는 약점을 지니고 있음을 강조했다. 특히 부도덕한 애정 관계는 가정을 파괴하고 “간음하는 자들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64) 고 했다. 특히 고린도교회의 성적 타락에 대해서 강력히 지적했다.65) 데살로니가교회를 향해서도 하나님의 뜻은 가정의 순결임을 강조했다.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음란을 버리고 각각 거룩함 과존귀함으로 자기 아내를 취할 줄을 알고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과 같이 색욕을 쫓지 말고 이 일에 분수를 넘어서 형제를 해하지 말라 ·····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 심은 부정케 하심이 아니요 거룩케 하심이니 그의 성령을 주신 하나님을 저버림이니라”66)고 가정의 신성을 일깨워 주는 서신을 보냈다.
바울은 한 가정을 형성하는 부부 관계를 예수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로 밀접한 관계를 말했다. 이것은 사랑의 질서와 복종의 관계를 말한 것이다. 즉 “남편은 아내를 그리스도께서 희생하셔서 교회를 사랑하신 것 같이 희생적 사랑을 하고 아내는 남편을 순종하되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하라”67)고 했다. 이것은 남편에게 복종하는 아내만이 그리스도에게도 복종할 수 있음을 말했다.68) 아내의 순종은 남편의 우월이나 아내의 열등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되심 같이 남편이 가정의 머리됨을 인정하는 것이다. (고전8 : 11) 따라서 아내는 그리스도에게 어떻게 행할 것인가를 배움으로써 남편을 섬겨야 한다는 것이다.69) 바울은 남편의 권위가 가정의 폭군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예수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아내를 희생적으로 사랑하라”70) 고 했다.
칼빈은 바울에 이 사상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만약 남편들이 그리스도의 형상을 소유했다면 마땅히 그 의무에 있어서도 그리스도를 닮아야 한다71) 고 했다. 또한 바울은 자녀들에게 권면하는 메세지에서 주 안에서 부모공경을 강조했고,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처럼 주종관계 즉 노사관계의 질서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설명함으로써 그리스도인의 가정은 하나님의 사랑의 원리와 그리스도의 교회에 대한 관계에서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John Howell은 성경에 입각하여 “가정은 남자와 여자를 위한 하나님의 목적과 조화됨에 그 기원이 있음을 말했고72) Maston은 “기독교 가정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남자와 여자의 본성”에 근거를 두고 있다73)고 했고, 아담스 (Jay E. Adams)는 “가정은 사회보다 먼저 제정되었고 국가보다 먼저 존재하였기에 가장 근본적인 것이며 최초의 것이다.74)고 했다. 이처럼 가정은 하나님의 창조의 작품이고 타락한 후 예수그리스도를 보내셔서 가정을 회복시키시고 회복된 가정을 통하여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굳게 지키면서 하나님 나라를 확장해 나가는 생명의 장이고 사명의 현장이다.
제 4절, 가정에 대한 신학적 고찰
에디스 쉐퍼(Edith Shaeffer)는 그의 저서 “What is Family?”에서 “가정은 생명체요 올바른 행위를 필요로 하는 하나의 예술로서 지적으로 정서적으로 서로 영향을 미치는 개인들의 모임이다.”75)고 말했다. 겐 게츠는 그의 저서 ‘가정생활 세미나’에서 ‘신약시대에 있어서 기독교 가정은 거의 교회와 흡사 했다는 중요한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다. 개개인의 가정은 가정이 생성되는 그날부터 지상교회의 지체였다.76)”고 했다.
초대 교회와 그 당시 크리스챤 가정들의 형태는 교회가 가정 같았고 가정이 교회 같은 모습이었음을 성경에서 찾아 볼 수 있다. (고전 16 :15, 롬16 :3-5; 고전16 :19 골4 : 15)그래서 겐 게츠는 “교회는 가정을 감싸고 있는 우산과 같은 개념이 있고 가정은 교회의 축소형이다.77)고 힘있게 강조했다. 디트리히 본 회퍼는 “연애 중일 때에는 두사람의 자아만 보지만 결혼을 하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세대를 연결하는 사슬의 고리가 된다. 연애중일때는 자기의 행복의 천국만을 보지만 결혼 생활에서는 세상과 인류를 위한 책임을 맡는것, 결혼을 개인적 이상의 것으로서 신분이며 임무이다.78)”고 했다.
래리 크리스텐스(Larry Christenson) 은 그의 저서 [The Christian Family]에서 “가정이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촉진할 수 있는 방법으로써 가정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세우는 것과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로서 우리의 영적인 지각력을 개발시키며 가정을 위한 하나님의 길과 뜻에 대한 우리의 의식을 증강시키는 방법을 배우는 모험이 가정 사역”79) 이라고 했다.
이 모든 이론들을 종합해 볼 때, 가정은 하나님의 창조 섭리에서 시작된 하나님의 창조의 작품이다. 그러므로 가정은 창조론적 근원을 지닌다. 이 가정이 범죄, 타락했을 때 예수그리스도가 오셔서 하신 일도 가정의 빛을 죄로부터 회복하시는 구속과 치유, 회복의 역사이다. 이것은 인류 역사가 막을 내리는 순간까지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받아야 하는 구원론적 근원을 바탕에 두고 있다. 그리고 성령 안에서 지속적으로 성화 되어 성령의 인도를 따라 하나님의 거룩한 공동체로서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이루는 거룩한 사명을 마지막날까지 이뤄야 하기 때문에 가정은 종말론적 근거를 지니고 있다.80)
(1) 창조 질서 안에서의 가정
하나님의 인간 창조는 그 이전의 만물 창조와는 다르게 창조되었다. 다른 창조물들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이뤄졌으나 인간은 하나님이 당신의 형상대로 직접 만드신 걸작품이다. 즉 신적인 속성 (지, 정, 의, 양심, 독창성, 합리성, 관계성)으로 지음 받았고 하나님을 위로 모시고 모든 피조물들을 아래로 다스리는 존재로 창조되었다. 즉 만물의 영장인 것이다.81) Maston과 Millman은 “기독교 가정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남자와 여자의 본성에 근거를 두고 있다.82)고 했다. Helmut Thielicke는 “가정은 인간 생활의 첫 영역으로서 확고한 창조 질서에 속한다.83)고 했다.
이 가정 속에 남성과 여성이 한 몸을 이루고 함께 속해 있다.(창2:21) 이것은 “동료 인간 안에 존재”로서 하나님에 의해 결정되어 진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이 양성의 언급은 특별히 신학적 의미를 갖는다. 즉 전체로서 동료의 개념을 지닌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 그런 의미에서 성(Sex)은 “동료 인간” 규범 안의 원형이며 대표적이다. 이들 부부는 하나님으로부터 땅을 보존하고 다스리는 특권적 사명을 부여받은 것이다. 즉 개인 완성의 매개체로서의 가정이 하나님의 대행으로 하나님의 통치를 창조하시고 가정에 대한 특별한 목적을 가지셨는데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반영하는 자로서의 사명적 존재로 지으셨고 두 번째로 자녀의 생산, 세 번째 창조 세계를 다스리는 것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에게 생육, 번성, 충만하라고 하신 명령 속에는 남녀관계의 결과로 나타날 자녀들이 암시되어 있는 것이다.84)
이 명령 수행을 위한 결혼의 원리는 하나님이 다음과 같이 명령하심으로 시작됐다. “그러므로 남자가 그의 부모를 떠나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 찌로다 남자와 그의 아내가 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 하더라” (창2 : 24) 여기서 결혼 관계의 3요소로서 첫째는 부모로부터 환경적 정신적 해방을 (감정적 의존)받아 두 사람만의 가정을 만들기 위해 구조개발, 발전을 위한 새로운 환경을 만들기 위함이다.85) 두번째 남편과 아내의 관계에 있어서의 책임은 서로가 연합(Cleave) 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이것은 끝까지 떨어지지 않는 물체처럼 총체적 영원 결합(Total Ceaving)이다. 세 번째 관계 요소는 ‘둘이 한 몸이 될찌라’는 것으로 삶 속에 둘이 더욱 밀착되어 관심과 행동에서 계속 가까워지는 경험으로서 새로운 정체성이 개개의 존재로 부터 세워지게 되는 것이다.
한 몸 원리로 요약되는 결혼은 시간, 장소, 문화의 변화에 따라 변할 수 없는 영원히 함께 되는 하나님의 제정이다. 왜냐하면 결혼은 인간이 만든 제도가 아니라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시대, 모든 인간에게 규범으로 주어진 항속적인 제도이기 때문이다.86)
이 결합과 조화의 목적은 전술한바와 같이 하나님과의 조화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는 대행적 사명 수행이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두사람이 결합되어 조화를 이루기 위해 창조주와 조화를 늘 유지해야 했다.
그래서 니젤은 하나님의 형상을 “창조주와 가지는 관계”87)라고 말했다. 그는 강조하기를 “하나님의 형상이란 인간이 창조된 때에 가졌던 그 어떤 무엇보다도 그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자에 대해서 가지는 정당한 태도다.”88)고 했다. 칼빈(John Calvin)은 “하나님의 형상은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한 교통과 점진적인 변화를 통해서 창조된 하나님과의 특별한 관계를 가짐을 강조한다.”89)고 했다.
이 특별한 관계란 하나님과의 교제로서 이는 하나님과의 거룩하며 신성한 연합을 뜻하는 응답, 복종, 서로의 사귐, 적정한 조화라고 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 안에만 창조의 질서가 유지되고 인간의 인간됨의 현주소도 망각 않고 탈선도 안하고 가정의 거룩한 목적이 이뤄지는 것이다. 즉 가정의 가정됨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가장된 하나님이 그 가정의 중심이 되셔서 가정의 목적을 이루시는 것이다.
(2) 가정의 타락, 질서의 파괴
거룩하고 아름답던 질서와 조화의 아담의 가정! 거기에 사탄(Satan)이 공격을 해서 범죄 타락함으로 질서와 조화가 깨어져 버렸다.
하나님은 아담을 하와의 머리로 세우셨다. 그런데 사탄은 하나님이 정하신 아담의 해드쉽(Headship)을 무시한 채 아담을 상대 안하고 하와를 상대했다. 사탄의 가정 파괴는 아담의 해드쉽을 무시한 도전에서 봐야 한다. 가정에 죄가 들어오자마자 비극이 일어났다(창4 : 8) 사탄은 아담의 가정을 공격한 이래 가고 오는 역사 속에서 계속해서 가정을 공격해 왔다. 모든 전쟁, 살인, 파괴등 인류역사의 모든 비극들은 죄로 말미암았고 그 죄는 가정의 죄였으며 가정의 죄는 사탄의 도전이었다.
이처럼 인간의 죄로 인한 가정의 타락은 가정 내에서의 살인, 증오, 부부관계, 부모와 자녀 관계에도 무질서와 파괴를 가져왔다. 이와같은 가정의 부패 현상은 종말의 징조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90) 가족 공동체 내에서도 불신과 이기심, 시기, 질투등 불화의 요소들이 등장, 별거, 이혼, 가출, 폭력등으로 인간 타락의 극치를 가정이라는 삶의 마당에서 수없이 경험하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타락한 인간들이 불꽃 문명을 이뤄놓고 손뼉을 쳤으나 그 빛은 참빛이 아니고 탕자문명(하나님 멀리 떠난 인간의 금자탑?) 이며, 현대인은 이 탕자의 계절 속에서 주엄 열매를 먹는 동물적 인간화가 돼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원섭박사는 “문명의 발전은 신(Godship) 적인 것으로부터 인간적인 (Human)것을 지나 동물적인 것으로 전락시키고 말았다.”91)고 했다.
제리 화이트(Jerry White)는 그의 저서 ‘Power of commitent’ 에서 “서구사회는 겉으로 보기에는 찬란한 문명이지만 그 속은 썩고 얼룩진 권태와 이기주의의열병을 앓고 있어서 교회와 사회 속에서 참된 헌신을 찾아보기 힘들다”92)고 말했다.
Virgmia Satir는 “현대 문명 국가들의 가정 문제 노출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93)”고 했다. 이것은 문명이 발달될수록 인간다움의 빛은 점점 어두워 가는 것을 의미하고 그것을 곧 가정의 죄라는 결론을 얻게 된다. 왜냐하면 사회는 작은 사회인 가정의 확대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권위 아래 하나님의 정하신 남성 헤드쉽(남녀동등 전제) 의 원리를 깨뜨린 사탄은 가정을 계속 파괴하고 있다. 그의 수단은 탕자 문명을 최대로 활용하고 발판 삼고 있다. 그런데 똑똑한 체하는 어리석은 현대인은 거기에 속고 취해서 심령의 경화증 환자들이 돼 가고 그 인생의 발걸음은 모두 휘청걸음을 하고 있다. 일부다처(창4:19,23), 성비행(창9:22), 간음(창16:1-3), 동성연애(창19:4-11), 강간(창34:1-2), 근친상간(창38:13-18), 유혹(창39:7-12)등 모두 사탄의 흉계화 작업의 결과인 것이다.94)
(3) 가정의 회복. 창조 질서의 회복
가정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타락된 가정 회복을 위해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경건된 가정의 품(마리아)을 통해서 이 땅에 오셨다.95) 그는 십자가의 대속의 죽음을 통해 인류의 죄를 청산하셨고 죄의 형벌로부터 해방받은 백성들의 공동체인 가정과 교회를 통해 지금도 끊임없이 가정을 치유하시고 회복시키시고 계신다.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셨을 당시 유대 나라는 지위가 짓밟혀 있는때 였다. 오로지 생식과 남성을 위한 존재 였다. 간음의 경우 남자가 처녀와 관계를 가지면 간음이 되지 않았다. (처녀를 범한 남자는 그녀의 아버지에게 적당한 예물을 주고 결혼하면 되었고 그가 받은 유일한 법은 그녀와 이혼할 수 없는 것이였다.)96) 결혼한 여자와 관계를 갖는 것은 간음죄로 여겼다. 간음한 여자는 남편의 ‘명예’를 훔치(?)는 것이고, 부정한 아내는 그 남편에게만 소유된 것을 남에게 제공함으로서 남편의 권한을 무시하고 반영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여기서 여성은 인격적인 존재가 아닌 오로지 남편의 소유였고 재산이었을 뿐이다.97)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는 당시의 유대 전통의 타락성과 전혀 다른 자세로 당시의 유대 전통과 멸시받던 아이들을 인격적으로 대하셨다.98) 수많은 여아들(병든여인들. 죄인들)을 만나 죄를 용서하시고 저들의 불구된 인격과 정서를 치유하셔서 새인생을 살아가게 하셨다. 또 어린아이들을 ‘천국인의 모형’으로 제시하면서 당시 교만한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셨다. 그리고 천국에서는 성차별도 없음을 말씀하셨다.99) Leon Smith 와 Edwad D.Steples, Oscar E.Feuht의 기독교 가정의 본질적 요소는 다음과 같다.100)
첫째 기독교 가정은 예수 그리스도께 헌신하는 두 사람 이상으로 이루어져야한다. 그리스도인은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경험하고 그 사랑안에서 신앙으로 복종하여 예수 그리스도께 헌신하는 사람이다.101)
기독교의 가정의 근본적인 징표는 주인이신 예수 안에서 신앙이다.102) 기독교 가정은 완성된 모임이 아니라 완성을 향해 만들어져 가기 때문이다. 어린 아기나 아직 신앙에 대해서 부정적인 식구가 있다해도 기독교 가정이라 할 수 있다고 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부부 관계 어버이됨, 가족 관계가 충실해야 한다.103)
기독교 가정은 자연법이 아닌 하나님의 언약아래 충성 해야 한다. 하나님의 언약으로서 결혼은 개인적인 만족이나 사회의 외부 압력이 아닌 기독교적 사랑과 신실에 기초한 거룩한 관계다.104) 기독교 가정은 각 개인들의 요구와 가정 전체의 요구가 잘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기독교 가정의 특징은 자신 존중과 함께 타인 존중이다.105)
셋째 기독교 가정은 그리스도 안에서 공동 신앙과 “기독교인”이라는 같은 이름을 가진다.106) 이것은 삶의 질을 의미한다.
넷째 기독교 가정은 가족들의 관계의 질에 의해 드러난다. 기독교 가정의 관계는 성령안에서 삶을 추구해야 한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각사람들을 존중해야 한다. 하나님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 드리는 것이다. 기독교 가정은 하나님의 사랑을 위한 통로이다. 이 사랑은 감상적인 것이 아니라 자신을 희생하며 돌보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랑의 원천이다. 하나님의 사랑만이 가족 공동체를 강하게 한다.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하나님의 활동을 믿는 그리스도인은 어떤 상황적 위기를 만나도 성숙한 반응을 할 수 있으므로 최선의 노력으로 좋은 결과를 얻는다. 그것은 스스로의 노력이 아니라 성령의 감화와 인도를 받는 삶이기 때문이다.
다섯째 기독교 가정은 세상에서 “제자의 직분”을 수행하려는 사명감이 있다. 기독교 가정은 “하나님의 나라”로서 작은 단위이다.107) 제자의 직분을 수행하기 위하여 기독교 가정은 이 세상에서 작은 교회가 되도록 힘써야 한다. 하나님께 책임적으로 응답하는 청지기직 수행의 공동체다.108)
여섯째 기독교 가정은 일반 가정의 문화와는 달리 그 문화가 기독교 전통과 가치에 의하여 개발되고 정신을 전달해 줘야한다.
기독교 문화의 원천은 성경이고 문화를 전달하는 주요 기관은 교회와 가정이다.109)예배가 살아있고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움직이는 가정이어야 한다 성령을 통해 전통적이고 평상적인 교회구조110) 를 넘어가서 복음을 들을 수 있으며 또한 복음을 전파할 수 있다.
1. 교회와 가정
에드먼드 클라우니(Edmund P. Clowney)는 성경적인 교회론에 관해 비판적으로 검토하면서 그 배경으로 현대교회론의 세가지 중심사상을 살펴본다.
그가 첫번째로 고찰하는 것은 교회의 사회화를 겨냥한 흐름이다. 그것은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에로의 참여가 오로지 그의 몸 안에서만 발생할 수 있다는 근거에서 독자적인 구원개념을 주장한다. 구원은 집단적이며 그리스도가 머리이신 인류의 결속에서 발견된다. 집단구속은 그것이 모두의 소유가 될 때까지 어느 누구의 소유도 될 수 없다. 교회의 결속은 첫 열매들의 결속이며 인류결속의 담보이다. 이 원리는 때때로 개인들보다는 오히려 사회구조들의 구속을 호소하는 데 적용한다. 새 인류의 첫 열매들을 현시한 사회적 결속의 견지에서 교회가 재착상될때, 그 현시의 핵심측면들은 교회일치 및 사회운동이다. 이 문제의 요점은 구원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세상구원에 대한 교회의 의식에 의해서 교회가 세상과 구별될 수 있다는 것이다.111)
두번째로 클라우니는 현대교회론의 경향은 교회의 세속화를 지향하고 있다는점을 지적하고 있다. 또 다시 그리스도의 머리되심이 신학적 출발점이 된다. 만약 그리스도가 교회뿐 아니라 세상의 머리이시라면 그리고 그의 나라가 하나라면, 그의 나라로서 그의 통치권으로서 교회와 세상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는 교회의 표지들이, 세상으로 부터 교회를 구획하는 표들이 아니라 오히려 다가올 결속된 공동체 내에서 모든 분열과 구별을 끝내는 것이라고 한다. 그뿐 아니라 이 세속화하는 경향은 더 깊은 함의 (含意)를 가지고 있다. 만약 교회가 세상과 결속되어 있다면, 그것은 세상적인 도구들을 사용할 것이다. 세속교회는 세속권력을 휘두른다. 웨버(George Webber)는 “간략하게 말하자면 복음전파는 그 변화된 차원에서는 정책이다”라고 한다.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와 같은 이미지들에 의해 신약성경에서 묘사되고 있는 메시아적 목표는 인간화에 의해 성취되며, 그리고 혁명은 인간화에로의 길이다. 공산주의자와 다른 점은 공산주의자가 상대적인 결말들에 절대적인 가치를 할당하고 있는 반면 교회는 고정된 목표를 기대하고 있지 않다. 교회의 소망은 끝이 없다.112)
세번째 현대교회론의 경향으로 들 수 있는 것은 교회의 성례전화를 지향하는 흐름이다. 이 경향은 교회와 세상을 혼동하지는 않으나 교회와 그리스도를 혼동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머리 되심이 또한 이 성례전적 접근의 기초가 된다. 그리스도가 그의 말씀과 성례를 통해 실제의 방식으로 함께 계셔서 말씀과 성례의 행위가 일어나는 곳에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교회가 존재한다. 교회를 성례전으로 보는 관점은 성찬 내에 그리스도의 몸의 물질적인 실체의 임재를 요구할 필요가 없다.
만약 그리스도의 희생제사가 성례에서 재현된다면, 그 실체보다는 계속적인 행위가 그리스도의 계속적인 임재의 수단이 된다. 그러한 견해들에 따른 교회의 성례전적 역할은 성례전이다. 그것은 한편으로 그리스도의 임재의 표이고 동시에 실현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모든 인류를 그리스도께로 합병한 표이며 인이다.113)
이 현대교회론의 중심사상들응 각기 그리스도의 머리되심에 호소하고 있는데, 그것들이 우리 시대에 적절한 교회론이며 옛 장애물들은 걷어내 버렸다고 주장한다.114) 그러나 이 사상들은 중대한 결점을 갖고 있다. 이 사상들의 토대를 이루는 공통된 신학적 흐름들은 새로운 교회론을 과정의 범주에서 전개하고 있다. 그리하여 교회를 “있는것”이 아니라 “되어가는 것”의 견지에서 이해한다. 결국 이 새로운 접근은 교회의 존재 또는 본질을 정의하기보다는 오히려 교회의 기능과 직무를 묘사하고자 애쓴다.115) 이것은 현대경향에 대한 도를 넘은 적응이다. 교회론은 현대의 신학에서 고립될 수는 없다. 그러나 교회론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완전한 성경 신학에 대한 다시 새로워진 이해로부터 성장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채용한 교회론의 관점들이 하나님의 계시된 진리의 다른 중심된 영역들에서 배운 것과 일치하지 않을 때 신학도 교회도 결코 진전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116)
1)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
칼빈117) 은 “교회”라는 이름은 한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경배한다고 고백하는 세계 각지에 산재한 모든 사람을 가리키는 때가 많다고 지적한다.118) 우리는 이 사람들과 관련한 “교회”라고 하는 것을 중히 여기며 그 교회와의 교통을 계속해야 한다.119) 그러나 칼빈에게 있어서 교회는 그리스도인의 공동체로서의 유형적인 면만이 아니라 성도들의 단체, 곧 피택자 전체를 뜻하기도 한다.120) 칼빈은 이 후자의 교회와 관련해 교회의 기초는 하나님의 은밀한 선택임을 밝힌다.
“... 우리는 하나님의 은밀한 선택과 그의 내적 부르심을 생각해야 한다. 이는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아시며”(딤후2:19), 바울의 말과 같이 그들에게 모두 인을 치셨기 때문이다.(엡1:13), 그들은 하나님의 휘장을 달고 있서서 버림받은 자들과 구별된다. 그러나 거대한 군중 속데 보잘것 없는 작은 무리가 숨어 있고 몇 개의 밀알이 쭉정이 더미속에 묻혀 있으므로 우리는 교회에 대한 지식을 하나님께 일임해야 한다. 교회의 기초는 하나님의 은밀한 선택이다.”121)
이 교회는 우리의 눈에는 보이지 않고 하나님의 눈에만 보인다.122) 또한 교회의 존립근거가 신실하신 하나님123) 의 은밀한 선택에 있기 때문에 교회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섭리와 같이 동요하거나 파멸될 수 없다.124)
칼빈은 전문적인 의미로 보면 계약신학자는 아니었지만 (그의 사상의 근본은 하나님의 은총에 의해서 수립된 질서의 개념이다), 그는 계약 및 조약의 용어들로 교회를 생각했다.125)
“창세이후로 하나님이 택하사 자기 백성 중에 가입시키신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과 언약을 맺게 되었으며... ”126) “주께서 자기의 종들과 언약하신 말씀은 항상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는 것이었다. 예언자들도 인용 설명하기를 생명과 구원과 모든 축복이 이 말씀에 포함되었다고 했다.127)
클라우니는 베드로전서 2장 7절, 10절을 중심으로 이 언약관계에 기초해 자세한 내용을 발전시키고 있다.128) 하나님의 백성은 귀중한 백성, 곧 하나님 자신의 소유된 백성이다 정말로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성경적 개념에는 적극적인 성격이 분명히 있다. 교회는 하나님의 모임이며 그들은 하나님께로 부름받았다.129)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쓰시기 위해서 택하신 것이 아니라 그분의 소유로 삼으시기 위해 택하셨다.130)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보좌, 곧 하나님의 마음에 기뻐하시는 자로 부름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는 자기백성을 당신의 자녀로 혹은 다른 표현으로 하자면 당신의 신부로 부르셨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첫번째로 바라시는 봉사는 예배의 “봉사”로, 이것은 구원 받은 백성이 그분의 은혜와 사랑에 대해 보이는 반응이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증거하도록 하기 위하여 당신의 백성을 부르셨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심에는 모든 족속이 그로 인하여 복을 받을 것이라는 약속이 들어 있다. 그러나 이것이 하나님의 첫째의 또는 유일한 목적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또한 아브라함에게도 축복하실 것을 약속하셨는데, 열방에 대한 아브라함의 증거는 그가 하나님의 친구로서 받은 축복으로써 비롯된다.
하나님은 시내산에서의 그 언약 모임의 왕이시기 때문에131) 그의 백성은 나라가 되었다.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매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출 19:6). 특별히 시편의 하나님 찬양에는 그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왕적 통치가 축하되고 있으며, 이 통치는 우주적인 영역을 갖는 것으로 본다. 하지만, 만방까지의 하나님의 권능의 확장은 그 민족들이 이스라엘의 복의 수령인들이 되었다는 의미를 내포하지는 않는다. 열방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셈 되어지도록 끌어들여질 때에만 오로지 그들은 복받는 관계에 참여 할 수 있다.132)
하나님의 백성과 열방의 관계는 하나님의 백성을 택하심과 관련해서 특별히 표현된다. 선택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다루시는 데 있어서 그의 주권을 표현된다.133) 선택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다루시는 데 있어서 그의 주권을 표현한다. 그들이 그를 선택 한 것이 아니라 그가 그들을 택하셨다.134)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택하셔서 그를 부르셨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아니라 이삭을 택하셨다. 또한 하나님은 에서 보다는 오히려 야곱을 택하셨다. 선택의 근거는 오로지 하나님의 과분한 사랑이다. 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은 택하시는 깊은 사랑을 나타내신다.135) 하나님의 백성의 이름들은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다(계 21:27)
그들은 만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함을 받았다(엡 1:4). 하나님의 목적은 좌절되지 않았다. 하나님은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으셨고 지금도 버리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아들에게 주셨다. 아무도 ‘선한 목자’의 손에서 그들을 빼앗지 못한다. 이스라엘을 부르심으로써 맺어진 택하신 족속에의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실현되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고, 그분 안에서 선택되고 구속받고 영화롭게 되었다.(롬 8:29,30).
성경에서의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묘사는 ‘신 신학’(New Theology)의 현대의 묘사들과 현저하게 다르다. 이 현대의 묘사에서는 하나님의 행위, 곧 존귀한 백성에 대한 그의 선택의 중심개념들이 사라졌다. 하나님이 그 자신에게로 그의 백성을 부르심은 세상에 대한 사명에 종속될 수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궁극적인 계획은 그리스도 안에서 택함받은 새 인류를 통해 세상을 새롭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남은 자를 택하시고 구속하신 하나님의 주권의 두려운 신비를 피할 수 없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남은 자를 택하시고 사명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그것에 대한 그의 계시를 알아야 한다.136)
2) 그리스도의 나라와 몸
교회의 기초로서 하나님의 선택만 생각하고 교회의 연합은 생각하지 않는것은 불충분하다. 칼빈은 기독교강요에서 ‘보편적’이라는 용어를 설명하면서 교회의 연합이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짐을 설명한다.
“교회를 보편적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리스도가 나누어지지 않는 한 (고전 1:3 참조) - 이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지만 - 교회도 둘이나 셋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모든 선택된 사람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되었으므로 (엡 1:22-23) 한 머리를 의존하며 서로가 한 몸이 되고 한몸에 달린 지체들같이(롬 12:5; 고전 10:17, 12:12,27) 서로 단단히 결합된다(엡 4:16 참조). 그들이 참으로 하나가 되는 것은 한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또 같은 하나님의 영 안에서 함께 살기 때문이다. 그들을 부르심은 영생을 다같이 받게 하실 뿐만 아니라 한 하나님과 한 그리스도께 참여시키기 위함이다(엡 5:30).”137)
우리가 교회의 연합을 생각할 때 선택받는 무리를 생각하고 이해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못하다. 우리 자신이 연합된 교회에 확실히 접붙임 받은 자임을 확신해야 한다. 이는 우리가 머리이신 그리스도 아래에서 모든 다른 지체들과 연합되지 않으면 우리에게는 장차 기업을 받으리라는 소망이 없기 때문이다.138)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모든 신자의 아버지시며 그리스도께서는 그들 모든 신자들의 머리시라는 것을 참으로 확신한다면 그들은 형제애로 연합되지 않을 수 없고 또 그들이 받은 은혜를 서로 나누지 않을 수도 없다. 여기서, 우리가 이 일에서 어떤 유익을 받게 되는가를 아는 것을 대단히 중요하다. 우리가 교회를 믿는 근거는 자기가 교회의 지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이와같이 우리의 구원은 확실하고 견고한 기초위에 서 있으며, 따라서 온 세계의 조직이 무너지더라도 교회는 흔들리거나 넘어질 수가 없다.”139) 칼빈에게 있어서 교회는 또한 그리스도의 몸이기도 하다(엡 1:23).140) 그리고 그리스도가 우리 생활에 오시는 영역이 바로 이 교회이다. 그리스도가 이 교회 안에서 자신을 우리에서 주시는 사실 때문에 성도의 연합이 완성되며, 그리스도의 몸이 이루어진다(엡 4:12).141) 에베소서 4장에서 바울은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 공급해주시는 은사를 통하여 교회가 한 몸으로 완전히 성숙하게 자라가는 것을 풍요롭고도 깊이있게 묘사하고 있다. 이 성숙의 표준과 목표는 그리스도이시다. 교회는 그리스도로부터(from)자라서 그리스도 같이(like)된다. 실로 교회는 그리스도에까지(into)자라간다.142)
“바울이 그리스도를 몸의 머리로서 말할 때 몸의 가장 뛰어난 지체로서 머리를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바울은 몸에 대한 그리스도의 주권(lordship)을 묘사 하기 위해 독립된 표상(figure)으로서의 “머리”를 다루고 있는 것이다. 바울은 머리에 속한 부분들 - 눈, 귀, 코 - 을 몸의 지체들로 말하는 방식에서 이런 것을 암시한다.143)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유기적으로 하나이다. 성령의 은사들은 한 분에게서 나왔을 뿐만 아니라 그것은 기능에 있어서 상호 의존적이다.144) 바울은 교회가 은사의 차이에 의해 연합되었다는 사실을 고린도교회 교인들에게 보여준다. 이 사실이 바로 유기체의 통일성에 대한 열쇠이다. 몸의 이러한 교제로 교회는 하나의 유기체로서 통일을 이루어 자란다. 몸 전체는 각 지체의 적절한 역할을 통해 더욱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간다(엡 4:11,16). 만일 한 지체가 그 기능을 멈추면 몸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145)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신실한 사역자들의 가르침을 통해 진리에 터를 둘 때에 상호 협조할 준비가 되어 믿음과 사랑의 통일성을 이루게 된다.146)
3) 성령의 교통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하나님의 백성은 모여들고 새롭게 되었다. 하나님은 교회의 기초를 이루셨고 그리스도는 교회의 연합을 이루셨다. 그리고 이제 성령은 교회의 보존과 유지를 담당하신다. 칼빈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도 바울은 교회가 스스로 완전성을 유지할 수는 없으며 여호와께서 교회를 보존하기 위하여 만드신 수단에 의하여 완전성을 유지할 수 있음을 밝히고 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만물을 완성하고 충만케 하기 위하여 승천하셨다고 바울은 말한다. 그 수단이란 하나님께서 임명하신 자신의 종들을 통하여 자신의 교회에 여러 은사를 분여(分與)하심을 의미한다. 심지어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종들에게 그들의 노고가 헛되지 않도록 성령의 힘으로써 효능을 부여하여 주심으로써 교회에 자신을 현현하신다. 성도를 구제하는 방법이나,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방법이나, 우리가 장성하여 우리의 머리이신 그분과 모두 하나가 되는 방법, 혹은 우리가 서로 결속하는 방법이나, 우리가 그리스도와 하나가 될 수 있는 방법등은 모두 그와 같이 하나님께서 자신의 종들에게 성령의 힘으로 효능을 주심에 의해서이다. 즉 우리들 중에 선지자가 나타날때, 우리가 사도들을 맞이할 때, 우리가 주어진 교리를 경시하지 않을 때,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종을 통하여 자신을 현현하고 계시는 것이다.”147)
그리스도의 보좌로부터 나오신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은 그 새 언약을 실현하며 인치신다. 하나님의 영으로서 그는 하나님의 백성을 소유하시며 그들에 의해 소유된다.148) 세상의 기초가 놓여지기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함받은 자들은 성령에 의해 하나님의 기업으로서 인침을 받았다.149) 바로 똑같은 그 성령이 하나님을 그들에게 기업으로서 인치신다.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며 이는 우리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엡 1:13-14)
그러므로 이제 먼저 교회를 소유하시는 성령에 대하요 그리고 나서 교회에 의해 소유되신 성령에 대해 숙고하기로 한다.
제 5 절 교회와 가정
흔히들 “가정은 사랑의 공동체요, 교회는 신앙의공동체”라고 말한다.150) 실로 가정이 부부간의 사랑과 부모자녀간의 사랑에 기초되어 있다면 이 세상에 해결되지 않을 문제는 하나도 없을 것이다. 교회역시 주님을 한 구주로 고백하고 함께 더불어 그리스도의 몸을 완성한다는 생각을 가진다면 별로 문제될 것이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가정과 교회가 “사랑과 신앙”, “용납과 믿음”으로 구성된다면 이상적인 공동체가 됨과 동시에 이 세상에 대한 가장 이상적인 대안이 될 것이다. 그러면에 있어서 교회와 가정은 이 세상을 이루는 가정 중요한 단위가 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는 복합적인 문제의 원인은 한마디로 말해 교회와 가정이 제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타락함으로부터 기인한 것이며, 교회와 가정이 치료되고 갱신되지 않는한은 세상의 치료와 회복도 불가능한 것임을 우리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1. 가정과 교회의 상관관게
성경은 교회의 조직보다 우선한 것이 가정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가정은 천지창조의 한 중요한 부분이었다(창1:27-28) 때문에 교회는 각 가정들이 모여 성립이 된다.151) 교회는 가정이 타락하고 파괴된 결과로 이를 회복시키기 위해서 나온 하나의 대안이었다고 우리는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사단의 유혹으로 말미암아 타락한 세상은 가장 먼저 부부관계의 파괴로 그 결과로 나타났다. “이는 내 뼈중의 뼈요. 살중의 살이라”고 고백했던 그 배필을 하나님의 준엄한 진노앞에서는 자신의 책임을 회피한채 책임을 전가시켜 멸망으로 내어모는 배반으로 내어 모든 인간의 나약함을 보게 되는 것이다.
그뿐아니라 아담의 가정은 자식들의 반목과 질시, 그리고 존속 살인이라는 엄청난 파국으로 그 비극의 길을 가게 되는 것이다. 가장 순결하고 실뢰되어야 할 가정의 관계가 인간의 죄성앞에 여지 없이 무너지고 마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죄는 거기에서 머물지 않는다. 홍수뒤에 노아의 실수로 말미암아 자식들이 저주받게된 사건이나 야곱의 형과 부모를 속이며 결국 밧단 아람으로 쫓겨 가게 된일 요셉의 형제들의 미움을 사서 애굽으로 팔려가게 된 일등은 인간세상의 가정 파괴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파괴되어 있는 가정을 그리스도의 복음의 말씀으로 회복시키며, 나아가 지역사회와 국가까지도 회복시키려는 원대한 꿈을 가져야 하며, 또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의 가정들은 이웃에 대한 사랑을 실천함으로 다른 가정도 회복시키는 일에 적극 동참하여야 한다.
2. 가정이 교회를 향한기대
한 개인이 영적으로 거듭나서 신앙의 성장를 할 때 그것은 곧 교회생활을 의미한다. 60년대 한국교계에 간혹 일어났던 무교회주의나 탈교회주의는 개인의 철학적 인생관이나 신앙관은 될지 몰라도 그 가정이 건전하게 신앙 성장을 시키는 데는 허약하다 하겠다. 그러므로 가정은 교회에서 공급하는 많은 영향을 받아야 한다. 따라서 교회는 각 가정이 요구하는 신앙성장의 프로그램을 공급해 주어야 한다.
거듭나는 얘기지만 챨스 M셀의 이혼에 의하면 오늘의 교회는 각 가정에 유익한 프로그램은 주지않고 모든 프로그램을 교회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각 가정은 많은 피해를 입고 있으며, 또 어떤이는 교회일에 너무 집착하다 보니 가정일을 등한시하는 경우까지 생겨 가정에 문제가 생기고 파타지경까지 이르게 되는 수가 허다한 것이다.152)
이러한 예는 한국교회에 얼마든지 있으며, 교회중심의 프로그램이 너무 많다보니(매일 새벽기도, 삼일기도, 철야기도, 또 주일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가정을 위한 프로그램이야 기껏 구역(속회)예배밖에는 없다고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이제 교회는 적어도 매주 1회이상은 가정을 위한 프로그램을 개발해서 시행해야 한다.
한국교회는 교회가 성도들의 일생생활속에서 기독교적인 가정 문화정착이 일어나도록 연구 개발해야 할 책임이 있다. 아직까지 한국사회는 불교와 유교의 혼합적인 가정문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3. 교회부흥의 전초기지로서의 가정
가정목회의 목표는 전 가족의 구원에 있다. 한 가정 안에서 서로 신앙이나 가치관의 다르면 결국 보이지 않는 불화가 깊어진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신앙을 가진 식구들을 배척해서는 안된다. 왜냐면 그리스도인에게는 십자가를 지고 짐을 대신 져야 한다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100% 복음화의 목표를 가지고 도전하고 기도해야 할 책임은 그리스도인에게는 있는 것이다. 때문에 전 가정이 다 같이 믿고 한교회에 등록하게 되면 가정의 평화와 교회봉사에 도움이 되고 아울러 교회도 따라서 부흥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본 연구자는 가정목회가 곧 교회부흥의 지름길이라고 확신하는 것이다. 가정목회란 결코 가정교회(House Church)가 아니다. 가정을 올바른 믿음으로 육성하고, 전가정이 한 마음으로 그리스도를 따르도록 돕는 사역이며 따라서 교회의 지체가 된 그 가정을 통하여 또 다른 가정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그러한 순화가정이 일어나도록 유도하는 사역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볼대 가정목회는 교회부흥의 절대적인 요소이다고 할 수 있다. 성도들의 가정이 정상화될대 교회도 정상화될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가정을 도전하고 가정을 교회를 견고케 하는 상호작용의 관계에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제2장. 가정목회의 내용
제1절. 목회에 있어서 가정의 위치
Charles M. Sell박사는 미국 목회자들의 경우를 예를 들어 교회가 가정 사역을 못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많은 목회자들이 문제에 빠져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즉 자신들의 병든 가정을 거론해야 하는 고통 때문에... 문제에 개입하기를 싫어한다.”153)는 것이다. 성경에서 가정의 역할을 약화시키는 것처럼 보이는 성구(마6:33, 마22:30, 눅14:26, 막3:33,-35, 고전7:31,32)들이 있어서 오해의 소지도 있으나 결혼과 가정의 역할을 강화시키는 성구(요2:12, 마25:2, 엡5:,딤전 4:1-5)들이 있음을 주시해야한다. 현대 교회가 가정 사역에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인 사역을 해야 하는 이유는 우선 가정 사역이 영적이고 도덕적인 사역이기 때문이며, (Family Ministry is Spiritual and moral Ministry)가정 사역 자체가 전도(Evavgelism)요 제자 훈련(Discipling)이요. 영적진리(Spiritual truth)란 가르침에 있어서 성경을 적용(Biblical Application)하기 때문이다. 가정 사역은 곧 교회 성장 사역이며 모든 사람들에게 고통 분담의 사역이기 때문에 그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다.154)
우리가 태어난 가정들, 그리고 우리가 성인으로 살고 있고 가정들이 출생부터 사망까지 우리를 만들어 간다. 그것들은 우리의 최선의 시대와 최악의 시대를 이루는 직접적인 원인이 되기 때문에 어떤 단체도 가정만큼 우리를 서로에게 연결시켜주지 못하며 어떤 것도 그만한 영향을 주지 못하기 때문에 교회는 가정 사역에 절대적 사명을 부여받은 것이다.155)
왜 가정 사역을 해야 할까? 가정들이 병들어 가기 때문에 가정 사역을 해야한다. 일평생을 가정에서 일어나는 감정적은 문제들을 연구한 가정 요법 분야의 선구자인 정신과 의사 나단 엑커맨(NATHAN ACKERMAN)은 한마디로 “현대 가정과 결혼의 모습은 너무나 암담해 보인다”156)고 했고, 레지나와이맨(Regina Wieman)은 현대 가정과 교회(The Modern Family and the church)라는 책에서 “가정은 지금 길고도 위험한 위기를 겪고 있다. 그것이 언제 시작되었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고, 그것이 얼마나 오래 갈지 아무도 예측 할 수 없으며, 그 결과가 어떠할지 아무도 알지 못하고 있다.”157)고 말했다. 이것은 몇 십년전 미국의 가정 문제로만 국한시킬 수 없는 오늘 한국의 사회와 가정의 심각성을 예고했던 탄식이기도 하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의 가정은 갈등 지수가 표면으로 올라오지 않았으나 70년대 중반을 접어들면서 경제 성장과 함께 심각한 위기 상황을 맞게 된 것이다. 감리교의 헤이슨 워너(Hajen Werner)감독은 “지금도 수많은 가정들이 붕괴하고 있으며 벽과 벽 사이를 이루고 있는 재료는 잃고 있다.”158)고 했고 베티 요르버고(Betty Yorbug)는 “미국은 컴퓨터화 되고 있는 사회인 도시 속에서 하나의 사회적인 형태로서의 가정이 사라지고 있는 추세에 길잡이가 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159)고 했다. 그러면 도대체 어디에 근원적인 문제가 있단 말인가? 우리의 현실은 원인의 실 가닥을 찾는 일에 서부터 지쳐 버릴 만큼 현대 한국의 가정 문제는 총체적 위기상황이라고 생각된다. 그래서 Charles M. Sell박사는 “가족들이 문제를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가정 자체에 문제가 심각하다”160)고 했고 사회학자 David Copper는 위기 정돈의 위험 수의를 표현하기를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형태로서의 가정은 더 이상 존속되지 않을지도 모른다.”161)고 말했으며 미래 학자 미카엘고든(Michael Gordon)은 “몰락 돼가는 가정을 무엇이 할 것인가”162)의 탄식을 했다. 특히 1990년대 이후에 두드러지게 나타난 사건들 중에는 신혼 가정들의 파괴가 급증가 했고 50대 여성들의 이혼율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음이 밝혀졌다.163) 특히 사역하는 부부세미나 때마다 부부 갈등, 부모와 자녀갈등에 관해서 통계를 낼 때마다 겉은 멀정한것 같으나 그 속은 가라앉은 빙산 같은 느낌을 갖는다.164)
특히 한국의 근대화 과정에는 역사를 역행하는 군사 독재 문화의 어둡고 기나긴 터널을 지나는 동안 비윤리적, 비도덕적, 비인간적인 탈법적으로 타락하는 국민성 타락의 오류를 저질러 왔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에 이르기까지 기성세대들이 사명에 산다기 보다는 욕망 충족의 노예화(?)가 되어 대부분의 인물들이 요직에 앉으면 사명은 망각하고 우선 자기 욕망을 채우기에 급급했고 그것이 가정으로 연결되어 전반기 세대까지 오염이 되어 어린이들 청소년들까지 가치관이 병들어 버린 만성질환자가 된 것이 오늘의 한국 가정이라고 생각된다. 현재 우리의 가정들은 집과 가구들은 잘 정돈해 놓고 전자 문명의 편리한 혜택을 풍성히 누리면서 살아가지만 하나님이 창조하신 본래의 가정 모습은 점점 퇴색되고 부식돼 가는 가정 부재의 위기 상황이 우리의 현상이다. 그래서 어떤 성급한 학자는 “가정은 과연 존재하는가?”165)라고 충격적인 말을 했고 사회학자들(Edward Shorter)은 ‘흔들리는 가정’, ‘사라져가는 가정’166) 무엇이 가정을 대신할 것인가?167) 라고 가정 붕괴의 위험을 탄식하기도 했다. 그 원인은 사탄(Satan)이 인류 최초의 가정이었던 아담의 가정을 공격하여 파괴시킨 이래 오늘에 이르기까지 오고 오는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그들의 제 1 공격 목표를 가정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가정을 통해서 생명의 탄생과 양육. 구원. 창조의 역사를 이루시기 때문에 사탄(Satan)은 하나님의 일을 지속적으로 도전하면서 방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국가 사회의 혼란이나 모든 공동체의 갈등은 가정이 병들어 가는 데서 그 원인을 찾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교회 공동체의 갈등들도 가정갈등의 확대라고 할 수 있다. 사탄(Satan)은 병들어 버린 탕자 문명을 교묘하게 발판 삼아서 우리의 가정 깊숙이 침투해서 가족들의 영성과 정서를 오염시키고 병들게 해서 가족의 관계를 분열시키고 파괴시켜서 하나님 나라의 확장(Mission)을 방해하는 것이다.168) 그러므로 21세기를 눈 앞에 둔 한국 교회는 더 이상 재래식 목회에 안주해서는 안되고 과감한 목회 개혁을 해야 한다. 아직 실천신학의 영세성을 면치 못하고 미래지향적인 목회 철학을 정립 못한 한국 교회는 서구 교회가 치른 교회의 열병균이 이미 잠복했고 발병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본인이 교회에 등록하는 사람들 중에는 이미 가정을 잃어버린 피해자들이 방황하다가 교회를 찾아오는 수가 점점 많아지고 있고 전국적으로 가정 사역을 나가보면 목회자들의 탄식이 가정의 갈등이 너무 심하다는 심각성을 늘 접한다. 그러므로 오늘의 교회는 가정 목회의 초점을 모으므로 사역을 해서 병들어 가는 가정을 치유하고 또 예방하고 이미 깨어진 가정의 상처받고 버림받아 고독한 자들이 된 영혼들을 어루만지는 가정 치유 사역(Famiy Healing Ministry)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가정 사역의 구체적인 목적은 자녀와 부모와의 연구가 처음으로 시되 된 것은 1910년대 정신분석학에 의해 체계화되기 시작했고 사이몬드(D. Symodds. 1930)에 의해 기초 이론이 형성되었고 우리 나라는 1960년대부터 가족 관계, 부모와 자녀 문제를 다루는 연구가 시작된 것으로 전해 온다.169)
그 동안 각계 각층의 전문가들의 연구를 분석해 보면 사회학자들은 인간의 갈등을 가정 환경과 생활 양상에서 생기는 문제점들을 중심으로 다루고 사회 복지가들은 사회 복지적 측면에서, 심리학에서는 가정 구성의 인격, 욕구의 부조화를, 문화인류학에서는 전통적 가정과의 마찰에서 오는 갈등을 연구해 왔으나170) 오늘의 가정 문제는 더욱 심각해 가고 있다.
교회의 모든 문제는 가정에서 문제의 확대라고 생각한다. 또 가정의 모든 문제는 교회가 마땅히 품고 치유해야 할 곧 교회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가정 사역은 가정에서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를 회복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선교의 창(Mission Home)이 되도록 예방 관리 치유의 사역이다. 그 사역의 중심은 교회의 본질과 깊은 관계가 있다. 왜냐하면 가정이 복음으로 회복 될때만 가정이 가정다울 수 있고 이런 가정을 통해서 교회의 교회다움의 갱신이 있기 때문이다. 현대의 가정들을 둘러보면 모든 문화와 양상들은 무섭게 가정 공동체를 오염시키고 부식시켜 안정을 잃고 위기 상황 속에 고통의 정서를 느끼며 무기력해 가고 있다. 그러나 본래의 가정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신적 기관으로서 교회의 품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만 치유되고 회복되고 보존될 수 있는 것이다.
Charles M. Sell은 많은 교인들이 교회 생활을 하기 위해 자기의 가정 생활을 희생시키는 것을 마음 아파했고 또 많은 교회들이 교인들이 교인들의 가정을 풍성하게 사역해 주지 못하는 것을 지적했다.171) 찰스 셀은 말한다. “가정 사역은 교회가 가정을 뒷받침해 줘야 한다는 입장에서 가정사역에 관한 책을 쓰게 됐다”고, 하나님께서는 가정사역을 활용하셔서 교회를 돕고, 나아가서는 가정들이 원래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바 대로의 삶을 누리도록 하나님께 기대하고 기도하면서 “가정 사역” 책을 쓴 찰스 M. 셀 처럼 본인도 앞으로의 한국 목회 양상이 가정 사역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며 사역하는 좋은 징후를 기대한다. 그러므로 교회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가정의 참모습을 찾는 가정 사역의 각종 프로그램을 개발해서 (구체적, 장기적, 영적, 정서적, 성경 중심의 사역)가정마다 작은 교회를 만들어야 한다. 그리스도가 통치하시는 천국 이전의 작은 천국의 만들어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복음의 현장(Mission Home)을 만드는 것이 본 논문의 목적이다. 교회 같은 가정, 가정 같은 교회, 여기에 교회 성장과 성숙의 열매가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나 자신이 이 논문을 통하여 가정 사역의 전문적 지식과 실력을 쌓아서 한국 교회의 가정 사역에 활성화에 기여코자 함에 그 목적이 있다.
제 2 절. 가정과 신앙생활
1) 인간 : 하나님의 형상
위대한 스승이 지니는 특징들 가운데 하나는 복잡해 보이는 것을 단순화 시키는 것이다. 예수님은 바로 이런 스승이셨다. 그 분은 구약성경에 나타난 율법과 개인의 의무에 대하여 질문을 받으셨을 때 구약의 그 많은 가르침을 간단히 그리고 정확하게 요약하여 답변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 마 22 : 37 - 40)
우리는 여기서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있다. 인간은 창조될 때부터 위로는 하나님과 인격적 관계를 맺고, 또 한편 수평적으로는 나 아닌 타인, 즉 모든 이웃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두번째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진리의 세계는 이원화 되어 있지 않고 하나의 체계적 원리로 설명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면 사람들 특히 한국인이 속해 있는 동양에서는 오래전 부터 성과 속을 구분하는 이원론적(dualism) 사고가 팽배했기 때문에 신앙을 가졌다는 것이 곧 세상을 등지고 산다는 것과 동일시 되고 있는 것이다. 마치 불교에서 속세를 떠나 중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신앙을 가짐으로써 우리의 인간관계는 더 새롭고 깊고 넓어 진다는 것을 이해해야한다.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the image of God)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 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 하도다”172) 하신 것처럼 우리는 사람과의 관계속에서 사랑으로 관계를 맺어 가는 것이다.
인간의 바른 정체성은 창조성과 사랑과 하나됨에서 발견된다.173)
이 피조세계의 어떤 다른 피조물에게서도 발견되지 않는 독특한 면이 바로 이런 창조성과 사랑과 하나됨 이라는 것이다.
음악이나 미술, 그리고 문학이나 무용 등의 예술에서 뿐만 아니라 인간관계에서도 창조성은 요구 되는 것이며, 창조적인 예술행위도 하나님과의 관계나 인간과의 관계를 전제로 하는 것임을 감안할 때 이러한 인간의 정체성을 규정해 주는 인간적인 이런 욕구를 비웃는다면 그것은 곧 인간의 진정한 존엄성을 간과해 버리는 셈이 된다.174)
우리는 하나님 같이 만들어졌기에 하나님을 경배하고 사랑하며 즐기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생활의 작은 부분, 곧 영적인 부분에서만 자신과 관계를 갖도록 우리를 창조하시는 않으셨다. 그분은 삶의 모든 부분, 즉 육체나 정신이나 감정이나 의지와 같은 모든 영역에서 자신과 과계를 가지고 자신의 형상을 표현 하도록 우리를 만드셨다. 물론 인간과의 관계를 포함해서 말이다.
이러한 관계이론을 설명하려면 우리는 무엇보다도 어떻게 해서 인간만이 이러한 속성들을 갖게 되어는 가를 이해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해답이 세상에는 없다. 그것은 오직 성경안에서 주어지는 방대한 암시를 통하여 추측할 뿐인 것이다.
그 첫번째 함축된 암시는 삼위일체의 비밀이다. 관계와 커뮤니케이션의 근본원리는 분명히 자연적 세계를 넘어서 있다. 그러므로 커뮤니케이션의 능력은 인간이 고안한 어떤 것이 아니다. 따라서 우리는 겸손히 커뮤니케이션의 능력이 하나님께로 부터 온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175)
이러한 진술들은 커뮤니케이션이 인격적이고 관계적인 것이라면, 모든 의미있는 커뮤니케이션은 마찬가지로 인격적이고 관계적인 것이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게 된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서로 다른 것으로부터 소외되었거나 “외부에” 존재하는 것처럼 소통하지 않는다. 삼위 일체의 위격들은 서로를 멀리하지 않으며, 인격적이고 관계적은 방법으로 친밀한 사이를 유지함으로써, 공통적인 신적 성격을 충분히 공유하고 계신 것이다.176) 우리는 성경에서 성자 예수님이 성부께 기도한다는 사실에서 발견한다. 예수는 동산에서 “아버지여 창세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소서”177) 라고 기도했으며, 제자들에게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라”178) 고 말씀하셨다. 이와 같이 성경적 증거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은 관계의 하나님이시며, 따라서 그 본질상 커뮤니케이션에 의해서 특정지워지는 분이라는 사실을 결론 짓게 된다.179) 또한 삼위 일체의(triume) 커뮤니케이션의 증거는 그것이 항상 사랑을 통해서 표현된다는 사실이다. 사랑은 좋은 관계의 기초이며, 따라서 모든 커뮤니케이션이 일어나야 하는 배경이 된다.
두번째 생각해야할 성경적 암시는 창조 교리이다.
그리스도교의 창조교리는, 하나님께서 무에서 세상을 창조하셨고, 하나님은 세상이 아니고 세상 또한 하나님이 아니라고 단언한다. 언뜻보면, 이 말은 애매한 말처럼 보이고, 또 커뮤니케이션과 관계의 주제와는 상관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그 반대임을 알 수 있다.180)
창조교리는 창조주 하나님과 그 피조물 사이의 관계성을 입증하고 있다.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와는 분명히 다르다. 아들은 대(代)로써 아버지에게 연결되어 있다. 그는 하나님께로서 나온 하나님. 빛에서 나온 빛. 불에서 나온 불처럼 아버지로 부터 나온다. 이런 의미에서 성자는 성부와 똑같은 본성을 가지는 것이다. 그러나 피조물은 하나님의 의지에 의한 행동의 결과로 생겨난 것이다. 하나님께서 창조의 질서가 존재하도록 만드셨기 때문에 하나님 자신의 확장으로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로부터 멀리 떨어져 존재하는 어떤 것으로 존재하게 되었다. 그러나 피조물은 자신의 존재를 지속시키기 위해서 창조주에 의존하고 있다.
이것은 하나님은 그 피조물과도 관계성을 가지고 그것을 보존하고 계시는 것이다.181)
초대교부들은 신성안에 있는 이 관계와 커뮤니케이션이 하나님의 창조역사의 원형(archetype) 이었음을 인정했다. 하나님의 “내적활동” 이 성부, 성자, 성령 사이에서 유지되는 관계성이란 말로 표현되는데 비해서 하나님의 “외적활동”은 그 이 삼중적인 내적활동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예로, 베드로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삼중적인 외적활동을 하나님의 구속역사로 설명하고 있는데, 그는 “ 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들......”182) 이라고 크리스챤들을 표현했다.
하나님과 피조물 사이의 이 관계성은 결코 범신론이나 이상주의적 용어로 묘사되어서는 안된다.
바울 사도는 모든 만물이 다 하나님께 연결되어 관계하고 있다고 증거했다.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에게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183). 하나님은 창조주로서 만물의 근원이시며, 그의 섭리를 통하여 만물의 중심에 존재하실 뿐만 아니라, 완성자로서 만물을 완성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물이 창조주의 “형상” 들이라는 사실도 놀라운 일은 아닌 것이다.184)
아울러 인간은 하나님의 대리자요, 청지기로서 하나님과의 관계속에서 인간과 관계를 가지며 또 만물과 관계를 가지는 것이다.
2)사탄 - 관계의 파괴자
그런데 우리가 고려해야 할 하나의 그리스도교적 가르침이 있다. 경은 타락에 관해서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고 하나님으로부터 독립하려는 선택을 했고, 그것은 곧 인간과 인간사이의 관계를 파괴시켜 부부였던 아담과 하와가 서로 반목하게 되고 땅과의 관계도 파괴되어 버린 것이다.
그것은 곧 바로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짐과 동시에 사탄과 악마와의 관계가 생긴 것을 말하며 모든 인간관계와 피조물과의 관계속에서도 이 “악마(Prince of the World)”가 개입하며 사망 권세를 수립해 버렸다.
따라서 자연은 사탄이 그 자신과 그의 파괴욕을 드러내는 주요한 수단이 되었으며, 그 결과를 세상에 나타난 하나님의 형상은 많은 왜곡과 의미의 전도를 겪고 인간의 시야로부터 감추어지게 되었다.
인간의 하나님과의 교제는 강요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하나님과 관계를 맺느냐, 맺지 않느냐 하는 인간의 선택은 커뮤니케이션의 문제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즉 죄가 이 세상에서의 커뮤니케이션의 붕괴를 가져왔고 그리스도를 통한 죄의 극복을 거부하는 인간의 행위가 커뮤니케이션의 장애를 형성했다는 것이다.
창세기 3장은 인간이 자기 삶을 지배하는 하나님의 주권을 거부한 사실의 종교적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인간은 하나님보다 사탄을 따르고 복종하는 편을 선택했다. 이 선택의 결과 인간은 - 자신에의 커뮤니케이션과 동료와의 커뮤니케이션, 그리고 자연과의 커뮤니케이션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 하나님과의 커뮤니케이션을 상실하게된 것이다.185)
이것을 다시 정리해 보면 첫째,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따먹은 후에 “주의 낯을 피하여 숨었다....” 186). 그들의 죄는 그들이 하나님과 나누었던 영적인 교제를 파괴했다. 그들은 하나님의 자리에 다른 것을 놓았고, 그결과 우상숭배와 함께, 인간의 육체적, 물질적 삶의 영역까지 영향을 미치는 틈이 생긴 것이다.
둘째, 그 죄는 자신과의 관계도 파괴 시켰다. 인간은 더 이상 자신과 참된 관계를 가지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가인에 대한 성경적 기사가 그것을 증명한다. “... 너는 땅에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187)하신 선고가 그것이다. 쾌락, 친력, 부, 성, 자기추구등을 통해서 인간은 자기 삶의 방향을 자기에게 맞추었기 때문에 그는 참된 자기이해와, 자기 문명으로부터 자신을 차단 시키며 살게 되었다.
셋째, 사람들 사이에서의 관계가 파괴된 것이다.
이제 영적인 파괴는 사회전체에서 사람들과의 관계, 커뮤니케이션의 붕괴를 초래했다. 결과 노아시대에 이르러서는 모든 사회적 관계가 파괴되고 부패되어 버렸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악한 뿐임을 보시고”188) 이와 같이 죄는 파괴적 움직임, 즉 사람만이 아니라 전체사회, 심지어 인간성 전체를 삶의 원 의미와 목표 -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한 세상에서의 인간의 과제와 역할 수행을 통한 하나님과의 교제 - 로 부터 분리시키는 동력을 만들어 내었다.
인간은 스스로 서로 교제하고 있는 사람들의 존재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역사적, 문화적, 정치적인 장벽까지도 허물어 내어 버린 것이다.
넷째, 죄는 인간과 자연사이의 관계까지도 파괴 해 버렸다.
인간은 자연에 대한 통치권을 부여 받은 소우주임에도 불구하고 사탄을 섬길 것을 택했기 때문에 환경을 파괴 시키고 피조물까지 악한 세력에 봉사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어 버렸다. 인간은 그 선한 물질을 가지고도 이웃을 사랑하는 일에 사용하지 않고 정복하고 지배하는 일에 사용하게 되어 버린 것이다.189)
이 모든 일들은 인간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떠나 영적인 혼돈속에서 다른 대용품들을 통하여 창조성, 관계성, 연합성의 즐거움을 향유하려는 데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3) 예수그리스도 - 관계의 회복자.
아담이 그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전체 창조질서를 죄에 몰아 넣은 것처럼, 제 2아담은 그와 같은 방법으로 인간의 상황을 역전 시켰다.
예수그리스도는 새로운 인류요, 인간이셨다. 예수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시지만190)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 ....” 191) 분이시므로 우리와 동질의 인간이 되셨다.192)
그래서 바울사도는 로마인들에게 보내는 인사에서 “....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고 했다.193)
인간이 자신의 죄로 인하여 그 사회적 관계를 전도시킨 것 때문에 인간의 구속은 역사 안에서 하나님이 명하신 인간의 과제와 인간관계의 맥락안에서 일어나야만했다. 즉 다시 말해서 인간의 파괴된 관계와 커뮤니케이션이 나타나는 곳이 삶 자체안이기 때문에 인간의 회복된 커뮤니케이션이 표현되는 곳도 삶 자체 안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구약의 주제대로 하나님과의 화해를 시작으로 인간 자신과의 화해, 인간과 인간사이의 화해와 인간과, 자연사이의 화해를 위해 희생양으로, 속죄양으로 오신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에게 제시하는 것은 화해된 천국인 것이다. 천국, 하나님의 나라는 창조주와 교류하고 전체 창조질서가 회복되어 새롭게 되며 의와 사랑과 희락과 화평으로 인간간의 관계도 회복되어진 곳으로 묘사되는 것이다. 아직 온것은 아니지만(계20장), 이미 그리스도와 교회안에서 시작된 194) 하나님 나라에서만이 완전한 관계가 회복되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로는 파괴된 관계와 커뮤니케이션이 잠재적으로 회복되는 곳, 그 원천도 교회안에서 이다.195)
파괴된 관계와 커뮤니케이션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은 속죄 교리이다. 그리스도께서 사망 권세를 이기신 결과는 이중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삶을 지배하심으로써 삶의 모든 영역에서 관계와 커뮤니케이션의 파괴를 영속화 시키고 있는 악의 권세를 쳐부셨다는 것과 또한 사람이 더 이상 죄의 멍에 아래 살지않고, 하나님과 교회의 동료 신도들과의 진정한 공동체 안에서 살 수 있는 자유를 얻게 하셨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역사는 그것이 새로운 시작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우주적인 의미를 가진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 .... 이전 것은 지나 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196) 라고 쓰고 있다. 속죄 안에서 세상이 하나님의 주권을 인식할 수 있는 기회가 다시 수립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회복과 커뮤니케이션이 일어나는 곳은 지상을 넘어선 영역이 아니라 바로 교회 안이다.197) 교회는 지상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그리스도와 관계하며 그속에 있는 사람들의 무리이다. 그들은 새로운 방법으로 하나님과 사람과 세상에 연결되어 있는 사람들이다.198) 그러므로 회복된 관계와 커뮤니케이션이 출발해야 하는 곳은 하나님에 속한 사람들의 장, 즉 교회라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관계와 커뮤니케이션의 방법들에 대해서 많은 암시를 가지고 있다.
제3절. 가정과 교회생활
아담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고 세상에서의 과제와 역할을 부여 받은 것과 같이, 그리스도안에서 예수와 관계 맺고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새로이 지음을 받았다. 그래서 새로운 피조물이요 새로운 하나님 나라의 시민인 것이다. 아울러 시민으로서의 과제와 역할도 부여 받았다.
신약성서에 나타나는 교회 이미지의 이해는 새로운 인간이 자신의 회복된 커뮤니케이션을 표현하도록 부르심을 입게되는 구체적인 장에 대해 더 분명한 상을 제시해 준다. 신약의 교회 이미지는 네가지인데 하나님의 백성, 새로운 피조물, 믿음안의 교제(관계), 그리고 그리스도의 몸이 그것이다.199)
하나님의 백성(고전1:2)으로서의 교회 이미지는 그중의 강조점을 가지고 있는데, 첫째로 가장 중요한 것은 교회를 만들고 존재하고 계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신 하나님의 역사라는 것이다. 교회는 자의에 의해서 모인 백성들의 집합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교회인 사람들을 그에게도 부르시거나 소환하신 것이다. 또 하나는, 교회는 정적인 기관이 아니라, 새로운 방법으로 서로 관계 맺은 사람들의 역동적인 공동체라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백성들이 서로 관계하는 새로운 방법은 제2의 교회 이미지, 즉 새로운 피조물에 포착된다. 앞에서 우리는 그리스도가 새로운 무엇을 시작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런데 그 무엇이란 새로운 가르침이나, 새로운 도덕 질서, 또는 새로운 이상사회적 소망이 아니다. 새하늘과 새땅에서 절정에 이르게될 사건의 시작이요 연쇄에 불과한 것이다. 물론 그 절정의 관계의 완성이다.
“우리가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나희의 종된 것을 전파함이라.”200) 이러한 신앙 고백의 맥락안에서 인간은 더 이상 자신의 이웃을 지배하는 폭군이 될 수 없으며, 그들의 변화된 관계는 수평적인 단계에서 봉사로 향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관계를 가장 적합하게 묘사하는 이미지는 그리스도의 몸의 이미지다.201)
이 이미지는 다른 모든 교회 이미지들을 한데 결합 시키고 있으며, 또한 교회의 육신적 차원을 표현하고 있다. 교회는 성령과 그리스도와 분리시킬 수 없는 연합안에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사역은 그의 몸된 교회안에서 성령의 활동에 의해서 계속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교회는 그 곳으로 부터, 그곳을 통해서 하나님의 화해의 작업이 그로 인하여 관계와 커뮤니케이션의 회복이 퍼져 나가게 되는 세상의 중심이 된다.
그러므로 교회의 책임은 이 회복된 관계를 실현하고 선포해서 개인과 가정의 실 생활에 까지 퍼져 나가게 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될때 교회는 세상의 중심으로서 제위치에 서게 되는 것이다.
1) 인간관계의 중심지, 가정
가정은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중심지이다.202)가정은 어릴 때부터, 인간은 의미심장하며 귀중하고 가치 있으며 생의 목적을 가진 존재임을 깊이 이해하는 것을 배워야 할 장소다. 가정은 어린이들이나 청소년들이 부모의 행동을 통하여 세상을 배우기도 하고 또 반대로 자녀들이 성장 하면서 변화되어 가는 세상을 자녀들을 통해 부모들이 배우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인간을 어떻게 다루며 다른 사람과 어떻게 사는 가를 이해하면서 일생동안 모든 인간관계의 중심지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가정안에서의 흥분된 인간관계는 자연히 작은 규모의 가족을 넘어 다른 사람에게로 퍼져 나가는 것이다.
만약 가정이 부분적으로 나마 제 구실을 한다면 전세계 곳곳에 좋은 인간관계를 형성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중심지가 생길 것이다.
왜냐면 가정은 몇 세대가 연합되어 있는 관계이기 때문 지속성이 있고 이는 곧 인간관계의 전체적인 문제의 근본을 치유하는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파괴된 세상의 중심이 교회이고, 파괴된 관계회복의 중심지도 교회이다. 왜냐면 그리스도가 그곳에 계시기 때문이다. 교회는 회복된 공동체이기 때문에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의 화해케 하시는 작업이 시작되는데 그 전파되는 기본 단위는 교회이다.
그 다음 교회안에서 관계회복이 시작되는 곳은 가정이다. 가정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로서 모든 인간관계의 중심이랄 수 있는 부부관계에 대하여서 성경은 자주 경고와 위로의 말씀을 주신다.
가정에서 중심되는 관계는 무엇인가? 그것은 부부관계이다. 예를 들면 바울은 남편과 아내의 관계를 교회의 관계에 비교함으로써, 결혼관계에 대해서 말하고 (엡5:22-23)뒤이어서 자녀와 부모들 사이의 (엡6:1-4)관계와 커뮤니케이션에 대해서 훈계하고 있다.
그리고 계속해서 에베소6:5-9에서는 직장에서의 관계에 대해서 논의하고 있다. 이렇게 하여 사회를 구성하는 세가지의 영역이(결혼, 가정, 직장)교회의 맥락 안에서 재 구성되는 것203)이다.
바울이 교회를 특별한 사회로 보지 않고, 모든 사회의 역할안에 작용하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본 것은 재미 있는 일이다. 그리스도인의 소명은 큰 문화주변에 흐르는 별개의 성격을 가지는 반문화의 소명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오히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있는 인간사회 속에서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안에서 시작되어진 새로운 관계를 전세계와 전 피조물의 관계로 까지 확대 시켜야 한다.
결론적으로 볼때 지상에는 하나님과의 관계와 커뮤니케이션이 회복된 교회가 있고, 이 관점은 현재 있는 것과(죄의 지속적인 현존)미래에 있을것(종말에 있어서 구원의 성취)사이의 긴장안에 있다고 보는 성경적 현실주의에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둘째, 교회의 책임은 회복된 관계와 커뮤니케이션을 실현하고 선포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교회는 그의 실제 생활에서 성령에 따라 회복을 실현하려고 애써야 한다.
셋째, 이 회복된 모든 관계를 메시지로 전달하려면 자신이 삶속에서 그것을 경험한 입장으로 부터 전달해야 한다. 그것이 첫번째로 실현되어야 할 장은 결혼이며 두번째는 가정, 그리고 직장이다.
결론적으로 말해보자.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인간이 사회를 형성하고, 그 사회속에서 인간 생활을 영위하는 인간행동이 이뤄진다. 인간행동은 인간개체안에서 이루어지는 행동과 대인관계에서 이루어지는 행동으로 크게 나눌 수 있는데 이것이 상호관계속에서 나타난다.
인간은 사회, 특히 가정을 떠나서 잠시도 생존할 수 없고, 삶을 유지할 수 없으므로 사회환경으로 부터 자극을 받아 반응하고 적응하며 살아간다.204) 모든 정보와 감정이 이 인간관계들 통하여 흘러가므로 우리는 이러한 인간관계, 특히 가정내에서의 인간관계회복을 통하여 복음의 전달이 가능하도록 하는 일이 필요한 것이다. 이에 대한 보다 자세한 이론과 실제는 제 6장에서 다루기로 하겠다. 폐해와 문제를 가져오고 있다. 우리는 주님께서 제자삼으로 하신 명령을 이제 가정속에서 부터 실천해야 할 때가 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앞서 언급했지만 1960년대 이후 한국교회가 경험한 사회변동 중에서 가장 주목되는 것은 도시화현상이다. 화버 콕스(H.cox)는 그의 저서인 [세속도시]에서 “미래의 역사가는 20세기에는 세계가 거대한 도시가 되어버린 세기라고 기록할 것이다”고 했다.205) 18세기 이후에 급격한 도시화 현상을 겪고 있는 것은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황용주는 ‘과거 20년간 우리나라의 도시화율은 인구성장면에서 그 유래를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빠른 것이다.’206)라고 지적하고 있다.
특히 조선일보에서는 ‘서기 2000년경에는 남한의 인구가 5,000만을 넘어설 것이며 그 인구의 80%가 도시에서 살것이다. 그중에서 1,600만명이 서울을 중심한 수도권에서 살 것이다. 또한 부산 대구를 중심한 동남해안 지역에는 2,000년대에 가서 1,500만명이 밀집되어 살 것이다.’고 기록하고 있다.207)
이러한 사회변화 과정속에서 생겨나는 현상은 숱한 문제를 불러 일으켰다. 도시교회는 그 같은 도시문제 앞에서 선교대상을 직면하게 된 것이다. 이때문에 도시교회는 도시현상속에서 어떻게 선교하고, 복음을 선포해야 할 것인지 능률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그 기초로서 제반도시 문제들을 분석해애 하는 것이다.208)
그 기초로서 알아야 할 것들을 몇가지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도시화의 요인
도시화란 어떤 결과를 뜻하는 것이 아니고 진행중의 과정과 이에 수반되는 현상을 의미하기 때문에 여러가지 요인과 양상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도시화의 과정속에는 직접요인과 간접요인이 있다.209)
첫째, 직접요인이란 도시자체가 삶을 불러들이는 흡인력이 있다는 얘기이다. 즉 도시 산업의 발달경제 활동 및 정시경제 사회 문화활동의 도시집중현상이 그 중심요인이 된다. 여기에 교통통신의 발달은 지역간의 거리를 단축하여 도시의 인근 농경지역가지 흡수하는 시장의 형성이 발달한다. 기타 도시의 산업시설 경제발전등은 인구의 도시집중을 가속화 시키는 주요원인이 된다.
둘째, 간접요인인데, 그것은 농촌이 사람을 내보내는 요인이 있다는 것이다. 즉 기계화에 따른 노동력의 잉여, 또 도시를 동경하는 심리들은 결국 사람들을 하여금 도시로 밀려 나가도록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210)
(2) 도시화의 문제점.
이미 앞에서 도시의 인구밀집현상이 사회적으로 심각한 것을 살펴보았지만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본다면 도시를 갱신하고 치료하여 도시 목회에서의 효과적인 복음 선포와 교회성장에 도움이 될 것이다.
첫째, 도시의 기형적 성장을 이야기 할 수 있겠다. 현대 도시들의 도시화 과정에 있어서 선. 후진국을 막론하고 기형적 제 도시문제가 발생한 것은 도시계획이나 환경정책들이 도시화 현상의 속도를 추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하에서는 필연적으로 빈부의 격차와 주거환경의 격차가 나타나게 되고, 노후 불량 지역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둘째, 물리적 사회적 제 문제인데 도시화, 집중화현상은 인구및 노동력의 이상분포, 주택과 용수의 문제, 교통 통신교육 시설 보건등의 도시 시설 부족현상 또는 실업과 도시빈민의 증가, 도시의 과밀화로 야기되는 지역간의 불균형 문제들이 있다. 대기및 수질요염, 개발자원의 고갈등은 도시가 안고 있느 전형적인 문제들이다.
셋째,이기주의 문제이다. 오늘날 한국의 도시에는 심각한 소외현상이 자리 잡고 있다. 이는 고독과 권태와 정신적인 공허감과 알력에서 나오는 소외의식이다. 그리하여 나와 너의 인간관계는 없고 경쟁만이 있게된다. 그 경쟁은 이미 학교에서 부터 시작되어 한국사회에서는 해마다 삼십만명의 재수생, 탈락자들이 생기게 된다. 이러한 상태에서 청소년문제는 단순한 가정 차원의 문제를 떠나 사회문제화 되는 것이다. 더우기 한국사회에서는 매년 13만명의 고등학교 탈락자가 생겨 거리를 방황하는 낙오자로 살아간다.
넷째, 가치상실의 문제이다. 뚜렷한 가치관보다 상황적인 윤리만 강조되기 때문에 적자생존의 법칙에 의해 동물적투쟁이 정당시 된다. 살아남는자만이 진리가 되는 아노미현상이 전사회적으로 펴지게 되고 도시생활의 부적응성, 전 근대적인 의식구조속에서 문화적 도덕적 기만을 이해하지 못하고 사회물결에 휩쓸려서 타락과 생의 멸시를 당하고 있는 도시인들이 많다.211)
다섯째, 가족의 문제이다. 가족적 문제는 개인문제와 더불어 지역병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여기에 속한 병리적현상으로 가정파괴 가정 결손, 사별, 이혼, 가출, 그리고 생활기능의 장애라는 문제를 중심으로 파악할 수 있다.212) 이러한 문제외에도 가족형태 생활양식의 변화에 따른 노인문제나 청소년문제가 심각하게 나타나고, 복지의 부족은 수만의 정신적 생활에 압박감을 더하여 긴장감을 고조 시킨다.
여섯째, 지역의 문제이다. 높은 교육배경과 전문지식, 자본을 가진 사람이 도시에 정착하는 것은 별 문제가 없다. 그러나 이농하여 도시로 이주해 오는 대부분의 농민들은 모든 면에서 도시에 대하여 즉각 적응할 만한 수준의 능력을 갖추지 못한채로 이주해 온다. 그렇다고 이들이 촌락생활을 닮은 이웃관계를 형성하는데 그들이 자리 잡는곳이 도시 변두리이다. 혹은 야산의 꼭대기에서 열악한 환경을 형성하게 되고 슬럼화된다. 결국 많은 제도와 복지로 부터 소외된채 가난을 대물림하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이때 가장 손상을 입게 되는 것은 바로 청소년들인 것이다.
청소년들은 모방성이 강하고 충동성이 있기 때문에 쉽게 비행에 빠지게 되고 심지어 범죄집단까지 만들게 되어 사회를 더욱 파괴시키는 원인이 된다.
결론적으로 다시한번 정리 해본다면, 도시화현상의 가장 큰 폐해는 가정이 파괴된다는 것이다. 가정이 파괴될때 그 도시의 문제는 한번으로 끝나지 않고 연쇄적으로 그리고 대를 이어 계속 나타나는 현상이 생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정파괴, 가정결손, 사별, 이혼, 가출, 그리고 생활기능 장애라는 이 문제213)를 해결하지 않을때 우리는 가인의 쌓았던 에녹성과 같이 “온 세상이 파괴하고 온 땅에 강포가 넘치는” 결국은 파괴되고 사라져야 할 도시를 만들게 될지도 모르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외에도 가족형태, 생활양식의 변화에 따른 노인문제나 청소년 문제가 심각하게 나타나고, 녹지의 부족은 주민의 정신적 생활에 압박감을 더하여 긴장감을 고조 시킨다. 더욱이 한국사회와 같이 교육과 대학 졸업이 신분상승의 유일한 통로인 사회에는 하층민 자녀들, 혹은 결손 가정의 자녀들의 교육기회와 대학입학 기회는 원천적으로 봉쇄당하기 때문에 자포자기의 청소년들의 대규모적인 반사회 범죄행위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교회에 하나의 도전이 되지만 또한 복음전도의 기회가 되기도 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도 사회가 안정 되었을 때 보다는 불안정하고 위기 가운데에 있을 때에 선교와 복음전도가 잘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사회문제와 가정문제를 제대로 파악하여 복음전도의 중요한 징검다리로 삼는 지혜가 필요한데 이를 우한 가장 성경적인 대안이 무엇이냐고 물어볼 때 본 연구자는 그것이 가정회복이라고 믿는 것이다. 가정의 회복은 각가정이 그 가정을 창조하신 하나님 앞에 바르게 서게 될 때에만이 가능한 일이라고믿는다.
오늘날 사회에 만연한 성폭력문제, 학원폭력문제, 인성의 파괴등은 절대적으로 그 책임이 가정에 있으며 가정의 문제는 오로지 창조의 원리로 되돌아 갈 때에만이 치유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교회가 힘써 운동을 벌여 나가야 할 일은 각 가정들이 올바른 예배를 하나님께 드리는 일일 것이다. 그러할 때에만이 올바른 권위가 가정에서 세워지며 자녀들은 부모의 권위를 가정에서 인정하면서부터 세상의 여러 가지 권위들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아울러 하나님의 권위를 이정하는 것을 자녀들이 보게 될 것이다. 아울러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는 것을 자녀들이 보게 될 때 그들의 인성도 영적인 성장안에서 성장하게 될 것이다.
(3) 가정에서의 예배회복 과제
웹스터 사전의 정의에 따르면 예배란 존경, 환호, 인정, 굴복, 봉사 등의 의미가 있다. 성경적 관점에서 본다면 예배란 하나님께 대한 절대적인 복종이다. 하나님의 영광과 그 능력앞에 인간이 피조물로서 순종하며 따르게 될대 이 세상은 올바른 질서가 잡히는 것이다.
에덴동산에서 우리의 첫조상이 타락했다는 것은 결국 하나님께 대하여 불순종했다는 것을 의미하며 예배자의 위치를 버렸다는 말이된다. 그들이 예배자의 위치에서 이탈했을 때 그들의 부부관계는 파괴되었고 아울러 자식들과의 관계도 파괴되고 말았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도시화의 많은 문제점들과 타락의 양상들은 이세상이 예배자의 자리를 벗어났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몇 년전에 있었던 유학생의 자기 부모 살해는 유산상속을 노린 패륜아의 욕심때문인걸로 결말이 났는데, 그때 당한 피살을 당한 부부가 아버지는 안수집사였고 어머니도 교회의 중직을 맡고 있는 분이었다는 사실은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무엇을 시사하여 주는가? 잠언은 어릴때부터 징계와 훈계로 자녀를 가르치고 하나님 경외하는 법을 가르쳐라고 했다. 그리하면 그것이 늙어도 떠나지 않는다고 했는데 그것을 게을리 하였기 때문에 가정이 완전히 풍지박산이 난 것이다.
성경은 경건한 가정이 받은 축복과 번성에 대하여 증거를 제시한다. 아브라함은 본디 우상을 섬기는 자였으나,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후 가는 곳마다 단을 쌓으며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다. 그뿐 아니라 그의 자손들 이삭과 야곱과 요셉도 하나님게 예배하며, 어릴적에 심어주었던 바로 그 신앙이 자라서 요셉같은 이는 감옥에 있으면서도 하나님께 예배하며 그분과 동행했다. 그결과 그들은 약속대로 바다의 모래와 같이 많은 자손을 거느리며 축복가운데 살았던 것이다.
(4) 가정에서의 예배의 방법
예수님이 오셔서 갈보리산의 고난을 당하신 이후로 이제 성전의 제사는 무의미해졌다. 장소와 시간과 방법에 철저하게 제한 받았던 그 그림자는 사라지고 참형상이신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신령과 진정의 예배를 드리게 된 것이다.
이제는 이세상 어디에도 거룩한 곳은 없으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는 사람만이 거룩하며, 또한 거룩한 날짜도 있지 아니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신앙하는 사람의 매일의 삶이 거룩한 것이다. 물론 우리의 예배의 중심은 하나님이시다(출20:3) 그러나 순서, 장소나 시간은 제한 받지 않는 것이다.
사람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의 예배라면 학교건 차안이건 집안이건 관계없이 하나님은 신령과 진정한 예배를 받으시는 것이다.
그런데 주님은 주기도문을 통하여 대략 네가지의 순서를 주셨으므로 우리의 가정예배에도 네가지가 포함되어야 한다.
A. (Adoration=찬양)
C. (Confession=회개)
T. (Thanks giving=감사)
S. (Supplication=간구)
이것을 ACTS라고 하는데 이 순서에 의거해 가정예배의 프로그램을 짜본다면 대략 다음과 같다.
예(1)
인도자
묵도 다같이
찬송 다같이
기도 담당자(가족중 한사람)
성경읽기 인도자(혹은 다같이)
말씀 설교자
찬송 다같이
주기도문 다같이
*소요시간 대략 15-20분
제 5 절 가정방문
가정방문을 한국교회는 심방이라고 하는데 외국의 어느 선교학자의 말처럼 한국교회의 성장에 영향을 미친 아주 중요한 사역 방법중의 하나라고 극찬했다. 굳이 가정방문은 사역의 한 방법으로 분류한다면 가정상담의 한 방법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상담이라고 본다면 그것은 권면적 상담, 혹은 지시적 상담에 속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가정을 방문하는 자는 목사이거나 아니면 가정사역의 훈련을 받은 전문가 일 것이다. 이때 상담자는 교과서라고 할 수 있는 성경책을 제일의 지침으로 삼는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사람들의 문제를 삼당하실 때 성경이외의 것은 사용하지 않으셨다.
성경은 인생의 문제에 대한 완벽한 해결서이다. 상담의 의미와 내용, 상담자의 자격, 그리고 그 방법론까지도 제시되어 있다. 물론 명시적이지는 않지만 추론하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정사역을 위해서 가정방문을 계획하는 목회자는 보다 더 성경속으로 들어가서 깊이 연구하고 이해하며 적용점을 찾아야 한다.
1. 가정 방문 상담자의 자세
가정방문을 통한 상담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전도서의 말대로 라면 크게 나누어 잔치집에 갈일과 초상집과 같은 고통스러운집에 방문할 일 것이다. 전자는 목회자나 상담자의 축하가 필요한 경우일 것이고, 후자는 위로와 소망을 주는 일이 필요할 것이다. 이모든 경조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가정방문 상담자의 자세일 것이다.
(1) 상담은 성령의 사역이다.
상담은 성령의 사역이다 그런데 그 성령은 상담자를 도구로 사용한다. 따라서 상담자가 어떠한 자세를 가지고 상담을 하느냐에 따라 목회 상담의 성패가 결정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일반적으로 목회상담자는 어떤자세를 가져야 하는가?
찻째, 상담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어야 한다.
상담자는 상담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 제대로 상담을 할 수 없다. 그러므로 목회상담자들은 종래에 행하여 오던 재래식 상담이 아닌 상담학적인 지식을 소유함은 물론, 상담에 신중을 기하여 상담이 효과적으로 되도록 해야할 것이다.
둘째, 내담자의 말을 경청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한국의 목회상담자들은 대부분 듣는 자세보다는 말을 많이 하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내담자에 따라 다르겠으나 상담자는 내담자가 말을 조리있게 하지 못하고 표현이 부족할지라도 그의 깊은 서정에 관심을 갖고 들어주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목회상담자는 들어주는데 익순한 자세를 가져야 한다.
셋째, 진지한 상담자세를 가져야 한다.
상담자가 내담자의 말을 듣는중에 지루하다 혹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라고 가볍게 여기고 책을 뒤적이거나 다른 곳을 쳐댜보거나 아니면 신문을 펼쳐본다면 그 상담자는 내담자의 말에 진지하게 경청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넷째, 내담자의 인격을 존중해야 한다.
만일 내담자가 배우지 못하고 누추한 옷을 입은 사람이라고 해서 내담자가 귀찮다는 듯 아무렇게나 대하고 반대로 학식이 있고 화려한 옷을 입은자가 오면 대환영하여 공손히 대한다면 그 상담자는 상담의 기본자질과 인격이 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다섯째, 깊은 통찰력이 있어야 한다.
여섯째, 온유 겸손한 자세를 견지하여야 한다. 겸손은 예수님의 마음이다. 목회상담자는 예수님과 같은 이 마음을 가지고 상담에 임해야 한다.
2. 가정 방문의 종류
(1)새가정 심방
한가정이 결혼을하여 가정을 이루어 새로운 신혼살림을 차렸다면 교회에서 목사는 분명히 초대받게 될 것이다. 이때 목사는 그 새로운 가정을 심방하여 예배드리고 상담하면서 새로운 가정의 주인들을 위하여 특별한 말씀을 준비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성경적 가정의 원리들을 가르치고 예상되는 문제들을 상담하고 권면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이와함께 목사는 성경적인 가정의 가르침들이 요약된 책이나 지침들을 소개해 줄 수 도 있을 것이다.
(2) 환자 심방.
목회사역에 있어 가장 많은 빈도를 차지하는 심방이 환자가정 방문일 것이다. 목회에 있어 권면과 위로는 중요한 사역이다. 그러므로 곤고한 가운데 빠져있는 가정을 방문하는 일은 그들 가정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는 기회로 만들어 줄 수 있다. 즉 가족구성원들의 서로에 대한 사랑과 가족전체가 아픈가족을 위해 기도하게 함으로써 가족에 대한 소중함을 일깨우는 계기로 삼는 것이다. 또한 장례예배도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훌륭한 가정사역의 도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3) 기타 가정의 방문
그 외에도 목회자는 교우들의 가정을 방문할 기회가 많이 있다. 자녀의 출생이나 백일, 혹은 돌잔치등에 초대받아 방문하게 되는 경우에는 성경적인 자녀 양육과 교육 등에 대하여 설교, 권면, 혹은 상담을 할 수 있을 것이고, 회갑, 고희연 등을 당한 가정을 방문케 될 때에는 이에 대한 적절한 말씀, 즉 성경적인 부모 공경과 효에 대해서도 상담, 권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가정 사역의 방법을 너무 어렵게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지금 사역하고 있는 그 방법의 테두리안에서 유의 적절하게 활용하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제 6 절 가정과 봉사
성경을 보면 교회가 있기 전부터 가정이 있었다. 가정은 천지창조때 만들어졌고 구약의 광야교회나 신약의교회는 인간의 타락의 결과로 하나님께서 세상과 구별해 놓기 위해 구속하신 결과로 생긴 것이다.
교회라는 말의 헬라어 ‘에클레시아(Εκκλεσὶα)’는 ‘세상으로부터 구별되어진 모임’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성경적인 교회는 세상에 있으나 세상으로부터 구원되어진 하나님의 백성들인 것이다. 그런데 이 교회의 구성단위가 가정이다. 그러므로 성도의 가정은 그 자체로서 이미 교회가 되는 것이다.
그러며 왜 하나님께서 세상속에 교회를 두시는가? 성경은 그 이유를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게 하기 위해서라고 하신다(마5-7장) 그러므로 교회는 당연히 그런점에 있어서는 그리스도인의 가정도 마찬가지이다. 이를 위해 그리스도인의 각가정은 두가지의 봉사를 해야하는데 구원받은 생명의 공동체인 교회를 세우기 위한 봉사, 교회울타리 넘어에 있는 세상 사람들에 대한 봉사가 그것이다.
1. 교회에 대한 봉사
구약의 성막시대에는 이스라엘 열두지파 중 레위족이 제사장직을 맡아 성전예식에 봉사를 해왔다. 그러나 신약시대에서는 주님의 피로 사신교회는 어느 특정지파가 아닌 누구든지, 아니 어느 가정이든지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해 헌신 봉사하게 되었다. 우선 각 가정은 이 지상에서 가장 보람된 일인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해 봉사하는 것을 최우선 순위로 정하고 참여해야 한다.
교회봉사는 어느 특정인의지파나 가정만이 아니고 이웃들에게 같은 성도들간에 봉사해야 한다. 초대교회(행2:42이하)는 “믿는 성도들 가정이 자기들의 소유를 팔거나 가져와서 서로 유무상통하며 교회에 봉사했다”고 기록되어있다. 사실 지금도 은혜입고 부흥되는 교회는 성도들이자기 가정은 물론 이웃 가정들이 협력하여 봉사할대 하나님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게 한다.214)
교회봉사에서는 개인중의적 활동보다는 다른 성도의 가정들과 함께 한다는 동역의식이 더 중요하다.
아무튼 성도들의 가정은 교회봉사를 통하여 더욱 건강하게 되고 윤택하게 된다. 또한 교회를 세우는 일은 결국 다른 가정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지름길이 되므로 복음전도와 교회성장에 기여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가정이 건강해지려면 첫째는 비젼을 가져야 하고, 가정 전체가 저 나름대로의 공통과업이 있어야 한다. 즉 주님이 말씀하신대로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며 예수님을 배울 때 신앙이 성장하고 더불어 축복도 받는 것이다. 그러므로 각 가정은 그리스도의 몸을 완성하기 위하여 공동의 과업으로서 교회봉사를 즐거이 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가정들이 행복의 보금자리가 되기를 원하신다. 우리의 행복이란 결국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그분을 영원토록 섬기는데부터 나오는 것읻. 즉 영적인 행복이 모든 인생의 행복의 기초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육신적으로 혹은 물질적으로는 교회봉사가 힘이 들겠지만 궁극적으로는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케 되는 지름길인 것이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각 가정의 형편이나 은사에 맞추어서 교회봉사를 맡도록 권면하고 과제를 제시해야 한다. 가정사역은 결코 가정 그 자체의 문제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의 전분야와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도 중요한 일이라 할 것이다.
2. 세상에 대한 봉사
가정은 교회의 기본단위이지만 주지하듯이 가정은 사회의 기본단위이며 가장작은 사회공동체이다. 따라서 가정은 사회를 외면하고는 존재할 수 없다. 사회의 모든 가정은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다. 가정에 대한 가치관, 결혼과 이혼에 대한 의식, 청소년들의 문제는 빠른 시간에 서로에게 영향을 주게 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가정은 자신들 가정의 문제에만 관심을 가질 것이 아니라 사회와 다른 가정에 대한 문제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신자들의 경우는 이러한 사회에 대한 책임을 더 깊이 자각해야 한다. 기독교 신앙안에서 큰 은혜와 깨우침을 얻었다고 할지라도 사회, 세상 속의 다른 이웃들과 잘 어울려 친교하지 않는다면 그 가정은 결국 사회의 여러 어두운 문제들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정목회는 진정한 이웃을 사귀게 하고 친교케하는데 까지 나아가야 한다.215) 왜냐면 주님은 이웃을 사랑하시고 그들 가운데에 계셨기 때문이다. 그분은 가나안 혼인잔치 집에서는 손님으로 그리고 부조(물로 포도주를 만들어 그들의 즐거움을 배가 시켜 주셨다) 하셨으며, 외아들이 죽은 나인성 과부집에 가셔서 그들을 위로하셨다. 그러므로 믿음의 가정은 참 이웃이 되어 그들과 함께 교제하는 것이다.216)
아울러 이웃사랑은 복음전도의 징검다리가 된다. 기독교 신앙은 사귐의 사역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수님의 성육신 사건은 그분의 사랑의 깊이를 보여주는 예인 것이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도 죄인들과 사귀시는데 우리 성도가 “나는거룩학 의로우니 불신자들가 사귈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는 주님의 음성을 알마듣는 양(羊)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이웃을 사랑을 위해 희생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씀으로 가르치고 권면해야 한다.
주님의 발자취, 즉 사업에 실패한자, 슬픔 당한자, 병든자, 마음에 번민하는자(삭개오)들을 찾아 오셨다. 그리고 그들의 인간적인 문제를 풀어주고 영적인 구원에까지 인도하셨다. 이뜻은 곧 인간을 사귀고 그들의 인생의 근본문제를 해결해 주려는 예수님의 사랑을 보여줌으로 우리 성도들이 그러한 이웃 사랑의 삶을 살기를 바라시는 것일 것이다.
제 7 절, 가정과 선교
도시화 현상 가운데 날로 심화되어 가고 있는 문제는 문화의 충격217)과 함께 도시의 세속화이다. 이는 도시의 바벨론화 라고 말할 수 있다.218) 분명 모든 도시화가 세속화의 길로 가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도성 에덴이 가인의 도성으로 전락된 이후 이제 도시는 니느웨의 구원과 같이 하나님의 구원의 복음이 절실히 요구되는 곳이며 종내 하나님의 도시를 사모해야 할 선교의 적지이다.219)
세속화되는 도시화현상은 주로 실용주의, 공리주의, 인간 정체성의 상실, 물질만능주의, 무관심, 무모한 경쟁, 신경적 긴장의 고조, 도시의 고독등이며, 하비 콕스가[세속도시]에서 주장한대로 스위치보드, 클로버 잎속에서 배어 나는 불결성, 익명성, 이동성 등220) 의 도시성(Urbanism) 이다.
따라서 교회는 새로운 형태의 교역을 개발하지 않으면 안된다.
왜냐하면 토플러가 말한 제2의 물결인 핵가족의 등장, 남녀 역할의 변화, 도시화, 관료적인 사회구조, 대량교육형태, 집중화, 분업화, 평균화, 동시성등의 특성이 이 사회에 새로운 구조를 등장 시켰기 때문이다. 이는 급속한 산업화로 나타난 고도의 ‘첨단산업혁명’ (Hi - Tech 혁명) 관이 서서히 붕괴되는 윤리도 무너지고 가족구조도 변화되면서 실존적 붕괴현상이 일어나고 있고 기존체계가 무너지고 있으므로 Caring Community부채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221)
A. 세속화의 도전
영어의 세속(secular)이란 말은 이 세대 (this present aga)란 뜻을 가진 세쿨룸(sacculm)에서 온 것이다. 세쿨룸이란 세상(world)을 뜻하는 두 라틴어 중의 하나이다. (Mundus, 현세) 222) 처음 ‘세속화’라는 말은 “종교적 교역자(religious priest)가 교구를 책임지게 되는 과정”으로 쓰이다가 차츰 광의로 쓰이게 된 용어이다. 그러나 지금은 인본주의화 바벨론화 되어가는 불경건의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223)
또한 기복주의 곧 물질주의와 물질만능 주의 현상(마6:19-34), 찰나주의와 종말신앙에 대한 태만 (고후4:16-15:17; 히10:10,16 10:34-38), 교회의 세속화등이 우리가 우려하는 세속화 현상인 것이다.
따라서 도시의 세속화는 이 시대의 크나큰 선교적 과제요 복음선교의 도전장이다. 그러므로 이상과 같이 세속화현상에 나타난 도시목회의 해결은 도시의 회개 뿐이다. 그리고 도시 안에 사는 개개인과 그들이 살고 있는 도시 구조앞에 회개를 촉구하는 것은 분명 하나님의 종들의 일이다.224)
한 개인의 죄의 고발정도가 아니가 그리스도의 화해의 복음이 전 세속도시에 선포되어질 때 교회는 그 도시의 희망으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1) 교회의 자기 성찰.
교회가 어느 지역에 있든 문제점은 다 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속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은 발견한다. 하나님은 도시를 사랑하신다는 것이다. 성경시대에 나타난 모든 도시에도 도시의 문제는 있었다. 그 이유는 그것이 도시 자체의 문제인 동시에 도시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문제성임을 보여주는 증거인 것이다. 이로 인해서 도시의 세속화는 교회 세속화를 부추키고 말았다. 즉 도시의 인구 밀집현상은 교회의 비대화(일부이긴 하지만)를 낳았고, 기독교 유물주의를 초래했으며 작은 것의 아름다움을 망각한채 물량주의에 빠지고 말아 버린 것이다. 도시의 개인적이고 가족적이고 지역적인 도시 병리현상을 치료하기는 커녕 돈과 자기만을 사랑하는 기복신앙, 성공주의로 이 문제를 더욱 심화 시키는데 일조를 가했다.
그러므로 도시교회 목회는 복음으로서 도시의 회개를 촉구할 뿐 아니라 자기 부정의 덕으로서 끊임없이 새로워져야 할 것이다.
종교개혁자들의 외침처럼 “개혁된 교회는 또 개혁되어야 한다.”는 자명한 진리를 잊지 말아야 한다.
1) 전인적 구원의 강조.
한국교회가 사회환경적 요인으로 급속히 성장하게 된 이면에는 지나친 종교적 열심을 부추긴 것도 한 몫한다. 그래서 소위 신앙이 좋다는 평신도 일수록 개인의 삶이나 가정에 소홀하게 되고 열심있는 신앙 청소년 일수록 학업성적이 떨어지거나 가정생활에 문제가 생기는 예가 많이 있었다. 이러한 영적 중심의 신앙생활에서 탈피해 이제는 하나님의 형상으로의 회복과, 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성장을 강조하는 전인적 구원을 실천할 때가 된 것이다.
주일하루만, 예배드릴때만이 신자가 아니라 세상에서 일하고 공부하는 6일이 전부 예배의 연장이요, 신앙의 연장이 될때 우리의 교회는 새로운 성장의 길을 가게 될 것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 도시화 현상 속에서 이웃과 단절된 채 오로지 우리가족 중심의 생활패턴에서 좋은 이웃으로 섬기는 하나님의 백성이 될때, 또 상처난 가정, 문제 있는 청소년들을 믿음과 사랑으로 섬기게 될때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칭송하게 될 것이고, 이로인해 하나님은 구원받는 자들을 날마자 더하게 하실 것이다.
2) 오이코스의 원리이해
가정목회를 하는 자는 항상 머리에 오이코스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오이코스(OiKos)란 희랍어를 직역한 말로 이는 창세기 7:1에서 하나님이 노아에게 “너와 네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하는 데서 부터 시작하여 신약에도 계속 “집”이라는 의미를 갖게 된 것이다. 건물 뿐 아니라 집안 모든 식구까지 “가정”이라는 의미이다.
톰 울프(Tom Wolf)는 “오이코스(OiKos)란 말을 설명하기를 가족제도나 사회제도 안에 어떤 공통적인 관계를 맺는데 의미가 있다고 하였다. 꼭 지적해서 가정이란 말을 안하지만, 그 오이코스란 의미와 원리가 사용된 곳은 많다. (막 2:14-15, 눅5:18, 7:31, 8:3, 15:1-32, 요1:40, 41, 4:8등) 사도행전 10장에 나오는 고넬료의 가정, 빌립보 감옥의 간수집안등이 좋은 예가 된다. 출애굽기 20장 10절에 나오는 제 4계명 속에 그 집에 거하는 종들이나 객들이라도 항상 그집에 함께 거주하는 사람들도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도시화 산업화된 극도의 물질문명 사회에서는 OiKos의 의미와 원리를 통한 복음전도에 힘을 쏟아야 하는데, 오히려 반대로 목회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2. 한국 가정의 현실과 선교
통계청이 [세계인구의 날] (7월 11일)에 맞춰 7월 10일 발표한 [한국및 세계 인구현황]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인구순위로 세계에서 25번째, 남북한 인구를 합치면 6천 9백만명으로 세계15위가 된다. 한국은 지난 1년간 39만 7천 6백 22명이 증가. 하루평균 1천 89명, 1시간당 45명, 1분당 0.8명이 늘어났다. 우리나라는 세계면적의 0.07%, 세계인구의 0.78%로 면적에 비해 약 11배의 인구가 과밀되어 있는 현실이다.225)
특히 수도권 인구가 지난 65년 총 인구가 23.2%에서 올해 45.9%로 증가, 전체 인구의 과반수가 수도권에 몰려있다. 우리도 선진국처럼 저 연령층이 줄고 노령 인구가 늘어나면서 노동가능 인구 (15-64세) 1백명이 부양하는 노령 부양인구가 지난 90년 7.2명에서 올해 8명으로 늘어난 반면, 유년부양 인구는 90년 37.6명에서 올해 32.6명으로 줄었다.
이러한 인구 통계치는 우리에게 많은 점을 시사한다. 우선 우리나라가 이미 선진국형 인구구조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통계청의 수반인 통계청장 전재룡은 이에 대해 흥미있는 분석을 하고 있다. 현재 우리 사회의 인구 학적 문제는 세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첫째는 출생성비의 불균형과, 인구의 노령화, 가족구조의 탈 가족화라는 것이다.226)
이 가운데서도 탈가족화 현상의 경우, 아직까지 부부와 자녀가 함께 사는 전형적 형태의 가족가구가 전체 가구중 많은 비중(95년 기준 70.3%)을 차지하고 있지만 독신자 가구(12.7%), 자식과 동거하지 않고 부부만 사는 가구(11.3%), 또는 직장관계등의 이유로 떨어져 사는 비동거 가족등 비전형적 형태의 가족가구 증가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탈가족화 현상은 산업화 이외에도 출산율의 급격한 감소, 여성의 사회적 지위및 경제적 자립능력의 향상, 이혼율의 증가등에 기인하는 것으로 분석했다. 동시에 이러한 가족형태의 변화는 가족의 기능에도 변화를 가져와 가족의 기능이 사회적으로 분산되었다는 점이다. 즉 사회 각 부문에서 자녀교육, 보건 및 문화생활을 담당하게 되었고 개인들은 매일의 삶을 대부분 가정 밖에서 영위하게 되었으며, 가정은 단지 먹고 자고 단위로 전락 되었다고 볼수 있다.227) 한국사회의 변화를 읽어낼 수 있는 다른 지표가 한국인 취업과 1인당 주간 생활 시간의 변화 추세이다. 홍사중의 말에 의하면 문명이 발달하면 노동시간은 단축되기 마련이라면서 프랑스 경제학자 장 푸라스티에의 저서 [4만시간]을 인용하여 이르길 20세기 말에는 주당 노동시간이 30시간이 줄어든다고 했다. 연간 52주 중에서 40주만 일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한 평생 35년간 일한다면 모두 4만 2천 시간을 일하는 셈이 된다는 것이다. 또 미래학자 허만의 주장을 인용하여 이르길 21세기에 들어서면 미국에서는 매주 3일 동안만 일하면 되고 하루 노동시간도 75시간으로 단축 된다고 진단했다. 그러니까 지금보다 3분의 1로 줄어든다는 얘기가 된다.228) 실제로 1980년도에는 생활 필수시간이 69.3(41.3%) 노동시간이 54.0(32%), 자유시간이 44.7(26.6%), 이던 것이 90년대에는 73.8(43.9%), 45.0(26.8%), 49.2(29.3%)로 바뀌었다. 즉 노동시간은 줄고 자유시간이 늘어난 것이다. 이러현상은 서기 2000년에는 더욱 심화될 것이로 추정되는데, 이를 테면 노동시간 41.0%인 반면, 자유시간은 52.0(31.0%)으로 늘어 나는 것이다.229) 늘어나는 시간과 함께 주목해야 할 것이 소득의 문제다. 구미정보화 조사단의 보고서230)에 의하면 이미 사회가 목표로 하는 것이 국민 총생산(Gross national product) 이 아닌 국민 총복지(Gross national weffare)인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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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단계 |
제 2단계 |
제 3단계 |
제 4단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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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1970년 |
1995-1980년 |
1970-1990년 |
1980-2000년 |
베 이 스 |
거대과학베이스 |
경영 베이스 |
사회 베이스 |
개인 베이스 |
목 표 |
국방, 우주체험 |
국민 총생산 (G N P) |
국민 총복지 (G N W) |
국민 총충족 (G N S) |
가 치 관 |
국 가 위 신 |
경 제 성 장 |
사 회 복 지 |
자기 실현 |
주 체 |
국 가 |
경 영 체 |
대 중 |
개 인 |
대 상 |
자 연 |
조 직 |
사 회 |
인 간 |
기초 과학 |
자 연 과 학 |
경 영 과 학 |
사 회 과 학 |
행 동 과 학 |
정보화패턴 |
목 표 달 성 형 |
효율 추구형 |
문제 해결형 |
지적 창조형 |
소득수준의 향상은 여러가지 변화를 불러 일으키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경제지수”보다는 “행복지수”를 찾는다는 점이다. 정부도 어떻게 하면 국민을 행복하게 만들어 줄 것인가를 놓고 고민하게 된다. 즉 복지정책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여유시간의 증가와 소득수준의 향상은 필연적으로 가정생활과 결론 형태의 변화를 불러 일으킨다. 즉 결혼생활도 소비의 대상으로 간주되는 것이다. 점점 남아도는 시간을 주체못해 부부들은 소유보다 쾌락에 탐닉하게 된다. 그래서 쾌락을 채워주는 소위 섹스산업이 번창하게 되고 섹스산업은 고부가 가치 산업으로 자리매김 되는 것이다. 문화보다는 섹스조건이 행복조건으로 여겨지는 것이231) 사실이다.
그뿐이 아니다 결혼은 필수가 아니라 선택이 된다. 독신주의가 늘고 계약결혼이 성행한다. 가족화가 아니라 아예 개족화가 일어난다. 생소한 가족용어들이 판을 친다. 평일에는 각기 생활하고 주말에만 모이는 둑수족(DEWKS : Double Enployed with Kids)도 출현하는가 하면, 결혼생활의 즐거움을 유지하기 위해 출산자체를 미루거나 포기해 버리는 딩크족(DINKS : Doule Income No Kids)도 있다. 벌어 놓은 재산으로 독립된 경제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우피족 ( Woopies : We-off older People)도 생겨났다.232) 심지어 상담학 사진에서나 볼 수 있었던 게이의 문제가 보편화 된다. 실제 이런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연세대학보인 [연세춘추]에는 한 학생이 남.녀 동성연애자들의 모임을 만들고 싶다는 광고를 내 사회를 충격으로 몰아넣은 바 있다. 광고를 낸 사람은 현재 연세대 사회학과 박사과정에 있는 서동진 씨(30)로 그는 자신이 진보적인 젊은 사회학자들의 연구단체인 [서울 사회과학 연구소(서사연)]와 전노협에서 활동한 경험도 있다고 주장했다. 또 최근 케이블 TV의 性문제 토크쇼에 토론자로도 참여했고, 각종 문화관련 잡지에도 원고를 기고하고 있다고 했다.233)
시사저널에 실린 그의 대답 내용은 이렇다.
▶게이란 어떤 사람들을 일컫는 것인가?
●“말 그대로 이성이 아닌 동성을 연애의 대상으로 삼는 사람들이다.
게이는 20세기 초 性과학이 등장하면서 만들어진 말이지만 정신적인 질병이 아니라는 결론이 났다. 게이, 레즈비언은 왼손잡이를 왼손잡이라고 말하는 것만 몸 당당한 표현이다. 그리고 [호모]는 흑인을 [검둥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모욕적인 말이므로 사용하지 않았으면 한다.”
▶자신이 게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은 언제 부터인가?
●“게이는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타고나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에 만연한 기존의 성관념 때문에 억누르며 지내오고 있을 뿐이었다. 자신이 당당한게 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 자신의 性的 아이덴너티를 확인하게 되는 것을 우리는 "Comlny out" 이라 말한다. 그시기는 사람마다 다르다. 나는 대략 고등학교 무렵이었다. 내 활동공간에서 나를 확실하게 게이라고 밝히고 동료들이 알게 된 것은 대학 시절 후반기쯤 부터일 것이다”
▶한국사회에도 사회적으로 성공한 게이들이 존재하는가?
●“물론 있다. 유명대학의 교수들 중 몇명은 게이다. [친구사이]의 회원들 중 출판디자인 쪽에서 상당히 성공을 거둔 사람들도 많다. [친구사이] 회원들이 20대초반에서 30대 초반의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는 것은 그 이전 세대의 게이들은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숨기고 사회에 적응하려 노력하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들은 억지로 여성과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살아온 것이다.”
가정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부모존속살해에서부터 “그룹결혼” (group marriages) “임시동거” “시험결혼” “낙태” “청소년 문제” “청소년의 AIDS감염”등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가정 파괴가 일어나고 있다. 결국 이 모든 문제에 대응하는 교회의 역할이 어느때보다도 필요한데 오히려 침묵만 하고 있는 것은 그 만큼 세속적 물결이 교회를 침범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라 하겠다.
(1) 시대적, 사상적 현실
앞서도 말했지만, 이 시대를 특징 짓는 가장 적절한 표현은 포스트모더니즘이다. “탈” “반대”의 의미를 지닌 포스트모더니즘은 공동체성을 무시한 극단적 개인주의. 무관심, 냉소주의가 특징이다. 따라서 중세의 기독교는 ‘하나님은 살아계신다’고 외쳤다. 근세의 합리주의는 ‘하나님은 안계신다고 외친다.’ 그러나 오늘날은 ‘하나님은 계시든지 말든지 상관없다’는 입장이다.234)
이러한 흐름은 이미 삶의 현장에 깊숙히 뿌리를 내리고 있으며 문화로 포장된 가운데 감각주의로, 음란성과 무규범성으로, 그리고 상품주의로 우리 가운데 넓게 퍼져 있는 것이 현실이다. 특히 지식인들 가운데는 성개방과 심지어는 동성애까지 포스트모던 사상을 동원하여 이론적으로 정당화하고 공개적으로 권리를 쟁취하려는 운동을 벌이는 형편이다. 처음에는 미국이나 캐나다 등 구미에서 부터 시작되어235) 오늘날 우리의 대학가에 까지 들어와 동성애가 이성애와 같이 정상적인 삶으로 공인 받는 다원적 성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운동을 벌이고 있다.236)
최근의 신문이나 TV는 이러한 사회적 조류를 극명하게 보여주는데 조선일보 최근 신문은 96년 한국사회 지표에서 이렇게 발표하고 있다.
“국민 생활수준과 교육수준의 향상으로 출산이 점점 줄어들고, 가족단위의 유흥 - 오락비가 증가하고 있다. 또 이혼률의 증가로 편부모 가구가 늘어나면서 전통적인 가족개념이 급속하게 변하고 있으며, 65세 이상 할머니 5명중 한명이 혼자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작년 7월 1일 기준 총인구는 4천 5백 54만 5천명으로 1%수준의 인구증가율을 유지하고 있다. 2030년 부터 인구가 감소할 전망...... 이는 남아 선호때문이다...... 또 90년 전체가구의 9.0%를 차지한 1인 가구가 95년 12.7%로 급증했다. 2인가구를 합하면 30.0%를 차지한다. 핵가족화가 심화되고 있다...... 초혼 연령이 계속높아져 95년 남자는 29.5세, 여자는 26.1세, 여성의 상승폭이 남자보다 크다...... 작년 초등학교와 중학교의 여교사 비율이 각각 57.2%, 50.9%로 절반을 넘었다....... 절도, 강도사범중 소년범의 비중이95년 50%를 넘는다. 총범죄자중 여성범죄자 비율이 14.2%로 85년 이후 매년 증가하고 있으며, 살인 절도강도등 형사범 가운데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237)
또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활발해 지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술을 마시는 여성들이 크게 늘고 있다. 95년 20세 성인 인구중 음주인구 비율은 63.1%로 92년 57.7%보다 5.4%포인트 증가했다. 특히 남성 음주자비율이 1.7%포인트 감소한 반면, 여성은 44.6%가 술을 마시는 것으로 나와있다.
“변화! 이것이 바로 현대 가정을 성격화하는 특징이 되었다. 아무리 보수적이라 하더라도 변화에 영향을 받지 않는 교인은 없다. 그러나 변화가 있는 곳에 실험이 있고 실험이 있는곳에 실패가 있기 마련이다. 설교자들은 현기증이 날 만큼 급속한 변화의 한 가운데에 살고 있는 교인들을 섬겨야 하며 그들이 어떠한 새로운 환경이나 변화하는 환경이라도 잘 견뎌낼수 있도록 복음의 빛을 전해야 한다.”238)
결국 ‘복음의 빛’만이 유일한 해답이 될 수 있다는 것에 동의해야 한다. 복음의 빛이란 곧 말씀의 회복이다. 모든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이세대를 본 받지 않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239) 하도록 도와야 할 책임이 교회와 목회자에게 있기 때문에 본인은 이 연구를 통하여 각오를 새롭게 하고, 또 다른 연구가들에게 자료를 제시하는 것이다.
(2.) 현대에 나타난 가정의 문제들
1) 가정폭력의 문제
a. 아동학대의 문제
아동학대란 Kemp의 ‘의학적 정의’에 따르면 부모나 보호자의 행위 또는 태만으로 인하여 초래되는 비우발적인 신체적 상처라고 했고, ‘법적인 용어정의’는 (미국연방 정부의 학대 방지 및 치료법에 따르면)18세 이하의 어린이가 그 어린이의 복지에 책임이 있는 사람으로 부터 건강과 복지에 해를 입거나 이를 위협하는 환경하에서 신체적, 정신적 손상, 성적학대, 방치또는 냉대 받는것 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사회심리학자나 사회 사업가에 의해 내려지는 정의는, 어린이의 잠재되어 있는 발달가능성이 지적, 정서적, 신체적 고통으로 인하여 지체되거나 억압당하게 되는 모든 대우로서 그것이 소극적이건, 적극적이건 간에 이것을 냉대라고 볼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Gelles의 경험적 연구에 의하면, 1975년 전국 표본조사에서 가정의 학대를 폭력이라고 규정하고, 가볍게 때리는 것에서 부터 죽음에 이르는 것까지, 또 아동의 적절한 발달을 저해 하는 적극적인 행위 모두를 “아동학대”라고 했다.240)
이것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은 공통적인 개념을 발견할 수 있다.
① 어린이에게 가한 성인의 다소 명백한 어떤 행위가 존재.
② 어린이에게 분명한 손상이 생김
③ 성인의 행위와 어린이의 손상 사이에 인과 관계가 있다.
그러면 왜 이런 아동학대 현상이 생기는가? 임영옥에 의하면 네가지 정도로 추측된다고 한다241)
① 학대받은 과거력을 가진 부모
② 어린시절에 도출되거나 경험한 폭력
③ 부모로 부터 심한 거절과 좌절을 경험한 부모
④ 아이를 돌보는 경험의 부재
이러한 문제 부모들로 부터 받게되는 아동학대는 또 네가지 종류로 분류되는데
① 신체적학대이다. - 이는 몸이나 도구등에 의해 손상을 입은 상태와 노동력을 착취당한것을 말하는데,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 친척, 형제의 순으로 나타난다.
<표 -2> 신체적 학대의 실태 242) [명(%)]
문항 |
한번도 없었다 |
드물게 있었다 |
가끔 있었다 |
자주 있었다 |
평 균 |
표 준 편 찬 |
꼬집히거나, 할큄을 당했다. |
745(77.5) |
133(13.8) |
48(5.0) |
35(3.6) |
1.34 |
0.73 |
발에차이거나, 깨물리거나 주먹에 맞았다. |
743(77.4) |
128(13.3)
|
63(6.6) |
26(2.7) |
1.34 |
0.72 |
밀쳐서 벽에 머리를 부딪혔다. |
781(81.1) |
117(121) |
44(4.6) |
21(2.2) |
1.27 |
0.65 |
혁대로 맞았다. |
841(87.3)
|
81(8.4) |
25(2.6) |
16(1.7) |
1.19 |
0.55 |
던진물건(재떨이,책, 그릇, 의자등)에 맞았다. |
851(88.4) |
74(7.7) |
28(2.9) |
10(1.0) |
1.16 |
0.50 |
② 성적학대 - 성적학대란 신체및 도구에 의해 아동의 성적인 신체 부위가 강제적으로 손상당했거나. 또는 아동으로 하여금 성적인 신체부위를 접촉하도록 강제적으로 요구 받아 이를 행한 아동을 말하는데, 이는 아동으로 하여금 정서적, 또는 성에 대한 정체감에 심각한 파괴를 가져온다.
③ 정서적인 학대 - 아동의 부모나 보호자가 아동에게 위협이나 무시, 증오, 차별, 고립, 욕설을 함으로써 공포감을 느끼고 생활에 대한 의욕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④ 방임 - 방임은 다시 신체적 방임, 의료적방임, 정서적 방임, 교육적 방임과 성적 방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아동으로써 마땅히 받아야 할 보호나, 교육을 받지 못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아동학대의 결과는 자라나면서 공격적이 되거나 반사회적인 행동을 하면서 사회적 적응을 하지 못한채 위축되거나 아니면 이탈현상으로 사회를 파괴하게 되나.
그러므로 이러한 가정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① 위험성 높은 집단의 색출과 교육
② 젊은 부모의 결혼전 교육
③ 사회, 문화적 요인을 제거 해야 하는데,243) 특히 가정에서의 부모의 역할과 위상에 대한 교육을 확대시켜 나가야 할것이다.
“문제아는 문제가정으로 부터 나온다는”말이 있다. 또 “문제가정은 있어도 문제아는 없다”는 말도 있다. 이 모든 말은 가정과 사회에서의 부모의 역할, 특히 아버지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증명하는 것이라 할 것이다.
b. 배우자 학대문제
우리나라에서의 배우자 학대문제는 1980년대 후반부터 피해여성들이 자기 보호를 호소함으로써 비로소 사회적 관심을 쏟게 되었다. 그전까지는 아내학대의 문제는 사회문제라기 보다는 사적인 가정문제 혹은 부부간의 문제로간주되었고, 또한 전통적인 남존여비의 의식구조 때문에 피해자가 용기를 내어 상담기관이나, 병원, 나아가 법과 사회에 호소한다 하여도, 그 심각성이 인정되고 보호치료를 받기 보다는 오히려 피해자가 문책당하는 경우가 대부분 이었다.244)
한국의 아내학대 상황은 심각성을 지나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구성 단위라 할 수 있는 가정의 존립마저 위협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아내학대 문제에 대한 한국사회는 피해자의 책임으로 강조하고 순종과 인내를 강요하고 있다. 그러나 아내학대가 장기화 될 때. 한 사람에게 성격적 질환과 신체적 질병으로 인해 개인적인 파멸의 원인이 될 뿐만 아니라 가족 구성원 전체의 문제도 파급된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지속적 습관화된 구타는 그 행위에 고착됨으로 당사자가 구타관계를 빠져나오기 힘들기 때문에 본인이 방어기제를 상실하게 된다.245)
<표 -3> 아내 학대의 실정246)
결혼기간 동안 폭력을 경험한 여성 |
45.80% |
심한 폭력을 경험한 여성 |
9.10% |
일년 동안의 총폭력 |
28.40% |
위의 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배우자학대는 여성의 절반 가까이가 경험하고 있는 것으로 아내 구타는 그 발생빈도가 증가함에 따라 폭력의 성격이 흉포화 되어가며 강도가 세어지는 경향이 있고, 교묘한 방법이 동원된다고 한다. 주먹으로 몸을 때리는 것은 물론이고, 무차별적인 두들겨 패기, 발로 걷어차기, 목조르기, 벨트나 쇠파이프등의 도구로 때리기, 칼로위협하거나 찌르기 등의 심한 폭력이 행사되며 발가벗겨 내 쫒기, 구타후의 성폭행등, 이러한 폭력이 임신상태이건 병들어 있는 상태이건 관계없이 발생한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247)
이와 같이 남편의 아내 구타는 여성으로 하여금 정신적으로 무기력에 빠지게 하며, 사회적인 호외속에 살게 한다. 신체적으로는 항상 타박상, 뼈골절이나 탈골, 호흡곤란, 자연유산등 심각한 신체적 손상으로 급기야는 사망케 한다든지, 여성 스스로 자살을 하게도 한다, 또한 구타후의 강제적 성관계는 여성에게 죽음보다 심한 모멸감과 수치심을 자극하여 비인간화 시킴으로 인격의 황폐화를 만들기도 한다.248)
이러한 가정 폭력문제는 대개가 남자들,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의 정체감을 갖지 못해 생기는 현상으로 시간이 지날 수록 더 심각해질 가능성이 있는 가정문제이다. 이런 가정 문제의 해결은 무엇보다도 사회적으로 남녀의 역할, 특히 아버지와 남편으로서의 위상을 분명히 할때 치유될 수 있고, 사회가 이를위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시행할 책임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교회가 이를 위해 적극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성경적, 복음적, 가치관, 사회통념을 만들책임이 있다. 직접적인 해결책으로는 긴급전화나, 일시보호소등을 설치해야 할 것이고, 남성들을 위해서는 계속적인 교육을 시행하는 것도 교회의 과제라 할 수 있다.
c. 미혼모 문제
현대가정의 위기 문제는 ‘성의 문제’와 연관이 깊다. 특히 젊은이들의 성에 관한 이해는 급변하는 근대화 과정에서 기성세대가 경험했던 것보다 개방적이다. 그리고 고도화된 물질문명의 발달로 인하여 사람들의 의식구조나 가치관의 변화를 초래하고 있고, 성 행동 면에서도 보다 적극적인 양상을 띠게 되었으며, 그 결과 혼전의 성문제가 사회문제로 크게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249)
미혼모의 발생 요인으로 문화적, 개인적, 환경적, 우발적 요인외에도 산업화, 도시화등 시대에 따른 성규범의 변화인 사회적 요인을 들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1970년대 말부터 성개방 풍조가 급격히 만연하여 성적자극물의 범람이 미혼부모의 발생에 중요한 원인이 되었다. 이렇게 발생한 미혼모는 노출이 잘 안되는 신분이라 그 수호를 명확히 알 수 없으나 보건 사회부 통계 자료에 따르면 1968년의 경우 7,500명 이었으나, 1987년에는 12,504명에 이르러 거의 두배가 증가 하였다. 또한 미혼모의 연령이 점차 낮아지고 있어 10대의 원하지 않은 임신으로 사회, 경제및 보건에 미치는 심각한 영향은 우리 사회전체가 시급히 해결하여야 할 문제가 되고 있다.
미혼모가 된다는 것은 본인 자신 뿐 아니라 어린이에게도 현재는 물론이고, 그 앞날에도 여러가지 면에서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다 준다. 미혼모가 임신으로 인하여 받는 사회적, 경제적 불 이익이나 심리적 갈등은 대단하다.
발생요인에 관한 이론을 보면, 1920-1930년대 구미에서는 주로 결손가정이나 교육기회의 부족으로 인한 무지등의 사회적 측면과 유전이나 저능, 정신적인 허약등의 개인적인 측면이 강조되고 있다. 그리고 1941년에는 해결되지 않은 유아기의 오디프스 컴플렉스(Oidipus Complax) 를 해소하기 위해 미혼모가 된다는 인간 관계적 가설이 등장하였다. 20년 동안에 다수의 사회사업가와 정신분석가는 부모와의 관계에서 미해결된 무의식적 정서 관계에서 유래된다는 논문을 많이 발표하였다. 이 과정은 미혼임신이 금지된 성적인 환상에 대한 자학과 한쪽 부모나 양부모에 대한처벌, 여자로서의 자기과시, 全人으로서의 자기 주장및 부모에 대한 性的환상의 행동화나 성적인 면에 있어서 부모와의 경쟁등 다양한 무의식적 욕구를 충족 시키는 방편인 것으로 간주한다.250)
아뭏든, 급격한 사회변동과 가족상황의 변화로 말미암아 가정의 균형이 깨어지고, 안전성이 감소되므로써 사회제도나 개인행동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며 성에 대한 태도와 아버지의 역할등이 자녀들의 인격형성에 대단히 큰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할 것이다. 아버지의 정체성 확보가 가정의 균형과 또 자녀의 정상적인 인격성장에 큰 영향을 준다는 것을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d. 여권 신장론 문제
Katherine Dalton 에 의하면 “여권론자 지도자들 가운데 전통적인 가정환경을 발견하기는 매우 힘들다. 그들의 자서전을 보면 대부분이 커다란 가족기능 장애가 있었다. Gloria Steinem 의 아버지는 한번도 직업을 가진 적이 없어 그녀와 가족들을 깊은 우울증에 빠뜨려 왔다. 또 그녀의 어머니는 이혼으로 가족과 친구들과 헤어지고, 아이들 돌보기 위해 기자직을 그만두는 일을 겪으면서 정서적으로 불안정해졌다. 결코 회복되지 못했다. 또 Germaine Greer의 아버지는 2차대전으로 심각한 정신적인 충격을 받았고, 그녀의 어머니는 자신의 딸에 대해 매우 심술궂고 공격적이었다. 또 [성의 정치학]을 쓴 Kate Millet의 아버지는 알콜중독자였고, 이혼한 후 생계를 유지할 수 없었던 그녀의 어머니는 자살했다. 그밖에 다른 저명한 여권 신장론자들의 경우에도 아동기에 이와 비슷한 정신적 충격을 받았고, 많은 경우 성적 학대를 경험했다.”251)고 밝히고 있다.
또 그는 이러한 여성의 권리신장을 대변하는 운동의 역할 모델들이 광범위하게 사회를 조명하고 있지 못하다고 했다. 또 그는 지적하길, 여권신장운동의 지도자와 저술가들 중에서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고 여성들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전국여성기구(Now)는 40%가 레즈비언일 것이라고 추정된다고 했다.252) Now의 의장인 Patricia Ireland 역시 공공연한 양성애자고 했다. 미국여성의 3분의 2는 자기 자신을 여권신장론자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회전체는 여권신장을 위한 개혁안을 쉽사리 채택해왔다. 오늘날 미국가정은 너무나 많은 고통을 당하고 있다. 우리는 여권신장 운동이 이러한 고통들에 실질적으로 어떤 기여를 하고 있는지 검토해 보아야 한다.253) 고 말한다.
무분별한 여권신장 운동, 페미니즘은 오히려 가정이나 사회의 문제를 해소시켰다기 보다 더 많이 야기시켰으며 앞으로도 야기시킬수 있는 것으로 우려된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여권의 신장 문제는 가정이나 사회에서 남성들, 특히 남편과 아버지로서의 정체감에 영향을 미쳐, 남성들이 위축되는 현상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이러한 여권 신장은 여성들의 사회진출 현상과 맞벌이 부부의 형태로 나타나는데, 제일 기획이 남녀 100명의 맞벌이 부부를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맞벌이 부부의 수입의 관리는 공동관리(46%)하거나, 부부별산제(14%)이거나, 하고 있어, 아내가 관리(39%), 남편이 관리(1%)하는 시대는 지났음을 보여주고 있다. 맞벌이 부부의 최대과제인 육아문제에 대해서는 일단 미루는 방법(여성45%, 남성38%)을 택하고 있다. 아이로 인해 부부만의 시간을 방해 받고 싶지 않다는 대답도 여성이 38%, 남성이 30%에 이르렀다. 아내를 대신해서 남편이 육아휴직을 할 수 있다는 대답도 여성52%, 남성42%에 이르렀다. 그리고 남성의 70%는 아내가 직업상 장기간 집을 비울때 아내대신 집안살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것254)으로 나타났다.
또 이들 맞벌이 자녀들의 자녀교육은 심각한데, 가난한 맞벌이 부부의 경우는 한달에 60-70만원씩 하는 동네놀이방을 이용할 수 없어 어린 아이들을 방에서 놀게하고 밖에서 문을 잠그게 되고 결국 불이나자 피할수가 없어 참변을 당하는 일이 드물지 않게 일어나고 있는 실정이다.255) 이러한 잇단 참변은 맞벌이가 보편화되면서 이미 예정된 것이었는데,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말 도시근로자들 가운데 세집당 한집꼴로 맞벌이를 하고 맞벌이 부모를 둔 5세이하 아동만도 1백 80여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256)
이러한 맞벌이 부부의 경우, 남편의 위상은 아내와 같아지며, 남편이 경제적으로 무능하다는 이유만으로도 이혼이 청구되고 법원은 이혼하라는 판결을 내리는257) 풍토속에서 남편들은 위축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 사실이다.
제2부 목회지에 대한 분석
제3장 일산 파주지역의 특성
제 1 절 위 지역이 사회적 특성
A . 인문사회학적 고찰
본연구자는 먼저 일산 파주지역의 특성을 파악하기 위하여 먼저 대한민국 경기도에서 발행하는 통계연감을 통하여 일반적인 사회 지리적 상황을 살펴보고, 보다 구체적인 상황파악을 위해서는 산남교회 주변 반경 2km를 중심으로 일반주민들에 대한 설문조사를 통하여 알아보기로 하겠다.
1. 경기도 일산 파주지역의 토지 및 기후
한반도의 대략 중앙부를 차지하고 있는 경기도 그중에서도 일산과 파주지역은 경기도의 북서쪽에 위치하고 있다. 수도 서울을 가까이 하고 있기 때문에 고대로부터 오랫동안 우리나라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역을 이루어 왔다.
즉, 고려는 서북쪽에 자리잡고 있는 개성에서 도읍지를 정하여 약500년동안 한반도를 통치해 왔고 또 고려의 뒤를 계승한 조선은 경기도의 중앙에 위치한 서울에 수도를 두어 또 약500년동안 한반도 전역을 통치하여 왔다. 그후에도 서울은 계속하여 한반도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로써 오늘에 이르렀기 때문에 더불어 일산 파주지역은 수도권 문화에 영향을 받아왔다.258)
특히 본교회가 속해있는 교하면을 살펴보면, 370년 고구려 고국원왕 40년 처음으로 천정구현(泉井口縣)이라 칭해진 이후 475년, 고구려 장수왕 63년에 교하군으로 개칭하였다가 봉성현에 편입되었다. AD551년 신라가 침공하여 이곳을 점령하게 되자 소래군(현양주군)에 이속 되었다가 1018년 고려 현종 9년에 양주에 속하게 된다. 1414년 조선태종 14년에 교하군이 현으로 격하되고 원평군(현파주)에 편입되다. 1690년 조선숙종16년 다시 교하현으로 복귀된다. 조선 영조 15년 장능에 인조대왕의 묘를 모신후 교하현에서 다시 교하군으로 승격되었다.
1899년 조선광무3년 행정구역 일제 변경으로 와동면과 지석면을 통합 와석면으로 석곳면과 청암면을 통합 청석면으로 개칭된다. 1914년 근대적인 행정개명으로 개명하는데 교하군이 파주군에 병합되고 1934년 행정구역 변경으로 와석면, 청석면을 통합 교하면으로 개칭되었다.
지역특성
동북편의 임진강과 서편에서 흐르는 한강이 합류한다. 하여 交河라고 칭해졌는데 임진강과 한강변에 위치한 전형적인 농촌평야지대이다. 북한으로 연결되기 위해 닦아 놓은 자유로의 개발로 수도 서울과는 30분 거리밖에 떨어지지 않았으며 1994년 개발된 30만 인구의 일산 신도시 지역과도 2.5km밖에 떨어지지 않아 농촌이라 하지만 도시문화가 공존하고 있는 지역이다.
그리고 근처에 문발농공단지가 조성되어서 지역의 경제적 발전도 농업중심에서 농업, 공업중심으로 변화되고 있다.259)
파주지역의 면적은 677.77㎢로서 경기도 전체 면적중 6.29%로 차지하고 있으며 파주군안에 45개의 읍과 11개의 면(미수복지구 3개면 제외)과 274개의 리(里), 126개의 법정동(洞) 1359개반, 440개의 부락으로 이루어져 있다.
파주군 지역의 인구는 46,151 세대로서 남자 82,335명 여자 79,797명, 도합 162,132명 이며 인구밀도는 ㎢당 239명으로, 최고의 부천(13,072명)보다는 6배정도 적고, 최저인 가평(63명)보다는 약 4배정도 모자란다. 또 한세대당 인원수는 3.5명으로 평균보다 조금 높았다. 파주군이 파주시로 개청됨은 지방자치시대로 1996년 3월 11일 부로 되었다.
파주지역의 주산업이 농업이었던 것은 경지면적에서도 드러나는데 논 3,430ha, 밭 3.194ha로 도합 6.624ha를 차지한다.
파주지역의 종교단체는 기독교회 104개 천주교 16개, 불교사찰 50개 유교 1개 기타 6개이다.260) 그 이후 신도시 개발로 증가중에 있다.
제 2 절 위 지역이 경제적 특성
1. 파주의 산업
파주시는 산간지역이 많고 수리시설이 미비한 관계로 전통적으로 농업생산 낙후지역이었다. 또한 휴전선에 접해 있어 한국전쟁후 일부지역에서의 경작이 제한되어 있었다. 그러다가 1970년대부터 제한적으로 민간인 통제선 이북에서의 경작이 가능해 졌으며 현재에는 서울의 팽창과 함께 점차로 근교농업지역으로서 자리잡아 가고 있다.261)
군전체 면적의 51.8%가 임야이고 농경지는 33.9%이다. 군의 전체적인 산업은 이렇게 볼 때 농업과 임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농산물 중 가장 많은 생산비율을 가진 것은 미국이다. 경작면적도 1965년 전체농지의 56.2%가 미곡농사였으나 1990년에는 94.1%나 되는 농ㅈ가 미곡생산농지인 논으로 바뀐 것이다.262) 1990년이 식량작물 재배면적은 총 12.241ha이며 생산량은 45.937m/t이다. 10ha당 생산량은 366.6kg이다.263)
파주시의 축산업은 주로 가축이 그 대종을 이루고 있으며, 가금과 양봉은 그 비율이 낮다. 축산 농가수는 1990년 현재 12.564가국이며, 가축사육농까 12.104가구로 전체의 96.3%를 찾하고 있다.
또 지역 특성상 어업도 발달했는데, 해안에 인접하지는 않았지만 임진강과 강을 끼고 있어서 민물어업이 일부 행해지고 있다. 어업가구는 1990년 현재 총 174가구이다. 본 교회가 위치한 교하면에도 3가구의 어업농가가 있다고 보고 되어 있다.264)
파주군의 임야면적은 1990년 현재 20.070ha이다. 국유림이 3.325ha로 87.7%를 차지하고 있다.265)
1960년대 이후 경제개발 계획에 이해 공업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부터 이지역에도 공업공장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는데 주공업은 식료품 제지, 연탄등이었다. 공장수는 1981년 99개가 있었는데, 1991년에는 470개로 늘어났다. 종업원 수도 같은 기간 4.644명에서 13.127명으로 늘어났다.266)
최근 파주지역엔느 정부의 관심하에 대규모이 지방공단 설립이 추진되어 1991년 12월 문발리에 15,000평 규모의 공업단지를 조성해서 일산신도시 개발등으로 인해 이전해야 하는 공장들이 모이게 되었다.267)
파주시는 개성 서울과 가까웠기 때문에 한강, 임진강을 통한 중개 상업이 활발했다. 일제시대때의 조사를 보면 장단 파주, 연천등지에서 개성상인이 활발하게 활동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전통을 따라 지금도 7개의 정기시장이 열리고 있다.268)
2. 일산지역의 산업
475만평의 넓은 공간에 자리잡은 일산은 고양시에 속해있지만 파주시 교하면과 인접해 있다. 일산 신도시에는 7만 6천여호의 주택이 있는데 대개가 아파트단지 세대들이다.
고양시의 주산업은 파주시와 비슷했다. 그런데 근교농업과 화훼가 발달하였다. 최근에는 제1회 “97년 고양 세계 꽃 박람회”가 일산호수공원에서 치뤄지기도 했다.
화훼산업은 농산물 수입개방이후 대체 작목으로 집중육성되고 있으며 미래이 무공해 산업, 그린 산업으로 각광 받고 있다.
공업은 섬유 가구부문을 중심으로 특색있게 발전하고 있으면 공예품 생산도 이 지역 경제에 한 몱을 한다.
그러나 일산지역만을 놓고 볼 때에는 일산지역 자체가 대도시의 배드타운으로 조성되었기 때문에 특별한 산업의 기반시설은 없다는 것이 그 특징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대단위 주거 단지를 중심으로 한 백화점 쇼핑센터등이 몰려 있어 새로운 유통의 메카로 떠오르고 있다.269)
제 3 절 위지역의 가정적 특성
A. 설문에 의한 지역조사
본 연구자는 지역에 대한 정밀한 파악을 위해서 지역주민들의 의식을 종합적으로 조사하기 위하여 설문지를 통한 지역 조사를 하기로 하였다.
1. 사전준비
일산, 파주지역의 지역조사와 지역의 특성을 파악하기 위해 설문지의 내용과 설문지역, 그리고 설문방법의 문제를 결정하기 위해 먼저 이러한 지역조사를 도와줄 수 있는 M.S.G(Mission Support Group=목회보조그룹)들을 선정하는 일부터 했다.
· 1997년 1월 10일 교회에 광고하여 M.S.G에 자원 봉사조로 도와줄 수 있는 사람들을 모집했다.
· 1997년 1월 17일 광고에 의해 자원봉사를 신청한 사람은 모두 15명이었다. 이들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MSG 위원장 - 장로(공무원) 1명
MSG 총무 - 안수집사(상업) 1명
위원 - 남자집사 4명
여자집사 7명
기록 및 정리 - 청년회원 2명
교회내의 다양한 사람들이 지원을 해주었고 이들에게 지역조사와 설문의 필요성을 설명한 다음 각자 지역주민들에게 질문한 설문 항목들을 만들어 오도록 부탁하였다.
· 1997년 1월 22일 2차 MSG모임을 가지면서 각자 만들어온 설문내용을 카테고리 별로 정리하였다. 토론의 과정을 거치면서 총 50문항의 설문을 항목별로 정리하였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ONE-지역주민들의 일반적인 상황(1-10번질문)
TWO-지역에 대한 주민들의 의식(11-20번 질문)
THREE-가정에 대한 상황과 의식파악(21-30번 질문)
FOUR-자녀교육에 대한 상황과 의식 파악(31-40번 질문)
FIVE-종교와 기독교에 대한 의식(41-50번 질문)
· 1997년 1월 24일 만들어진 설문을 인쇄소에 넘겨 1200매를 준비했다.
· 1997년 1월 27일 - 30일 까지 4일간 산남교회 반경 2km 지역에 있는 주민 1000여명을 대상으로 설문지를 배부 조사에 들어갔다. 교회내의 여전도회원들이 M.S.G.들의 인솔하에 각지역에 흩어져 조사했다.
· 총 1200매의 설문지가 뿌려져 그중에 약 1000매의 설문지들이 정리되고 항목별로 분류 평가되어 분석되어졌는데 그 내용은 다음장에서 정리했다.
2. 설문을 통한 지역파악
1) 설문지 분석
총1200여매의 설문지가 뿌려졌다. 그리고 1000매를 포집하여 정리하여 분류하고 그것을 백분율(%)로 정리하였다.
Part one 대장의 일반적인 상황분석
설문지 분석결과 응답자중 남녀의 비율은 27%, 여자 63%였다. 주로 낮시간을 이용하여 조사하였기 때문에 집안에는 주부들이 많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지역의 주민들은 주로 40대가 3/1(37%)이 넘었다. 주거환경은 아파트 세대가 26%, 단독주택 세대가 45%였고, 전세 세입자는 22%, 월세입자는 5%였다. 월수입은 100만원대가 가장 많았고(42%), 그다음 150만원대가 29%였다. 학력은 고졸이 45%, 전문대와 대학졸업이 13%와 11%였다.
가족수를 묻는 질문에 3명이라고 답한 가정이 37%, 4명이 34%였다. 핵가족이 주류를 이루고 있음을 보여준다. 기혼자가 76% 미혼자는 14%였는데 이혼과 별거도 5%나 되어 가정의 붕괴가 서서히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Part Two 지역에 대한 인식 분석.
문11 우리지역의 주거환경은?
좋다 62%
별로다 21%
보통 17%
문12 우리지역에 이사 오신지는?
1-2년 11%
3-4년 24%
5-6년 41%
7년이상 24%
문13 우리지역은 발전했습니까?
예 40%
아니오 36%
점차로 24%
문14 앞으로 이지역이 발전한다고 보십니까?
예 40%
아니오 36%
점차로 24%
문15 우리지역의 주산업은 무엇입니까?
농 업 49%
수산업 2%
공 업 30%
상 업 15%
기 타 4%
문16 행정관청의 서비스는?
좋다 41%
부족하다 34%
미흡하다 11%
불편하다 14%
문17 이 지역에 계속 사실 겁니까?
예 52%
아니오 10%
1-2년후 이사 26%
4년이상 12%
문18 지역사회활동에 참여하십니까?
예 16%
아니오 18%
문19 이지역의 전통을 아십니까?
주거 32%
교통 22%
산업 36%
교육,문화 9%
기타 1%
아직은 전원지역인 이곳에 대해 많은 불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3분의 2에 가까운 62%의 사람들이 주거환경이 좋다고 대답했다. 이 지역에서 5년이상, 7년이상 된사람이 65%로 역시 전체의 3분의 2에 가까웠다.
우리지역이 발전했느냐는 질문에 39%만이 그렇다고 대답했고, 앞으로 발전할 것이라고 보느냐는 질문에도 40%만이 대답해서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아직 개발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사람이 많은 것이다. 그러나 도시적인 개발으 ㄹ기대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점차 도시화되어 가는 중이라는 추측을 갖게 한다.
우리지역의 주산업에는 농업이 49%로 절반이고, 그리고 공업이 30%인데, 근처의 농공단지 덕분인 것 같다. 행정관청의 서비스는 59%의 사람들이 불평을 털어 놓았다.
이 지역에 계속 살 것이냐는 질문에 52%의 사람이 예라고 대답했고 4년이상 살겠다는 사람도 12%되었다. 하지만 대략 36%의 사람들은 언젠가는 떠나게 될 것이라고 대답했다.
지역에 대한 애착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질문한 문18과 19에서 지역사회에 적극활동하는 사람은 16% 우리지역의 전통에도 관심없는 사람은 22%였다. 농촌지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애향심은 적은 것은 유입된 인구가 많고, 대도시가 근접해 있어서 이사가는 세대들이 많기 때문이라는 추측이 나온다. 지역의 불편한 점으로는 산업 36%, 주거 32%, 교통을 22%로 꼽았다. 이는 대도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취약한 주민 민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Part Three 가정에 대한 의식분석
문21 가정에 문제점이 있습니까?
예 22%
아니오 39%
조금 10%
기타 29%
문22 있다면 어떤문제 일까요?
부부문제 13%
주거문제 21%
경제문제 20%
자녀 21%
기타 22%
문23 오늘날 우리 사회의 가장 큰문제는?
애정 11%
남편 9%
아내 8%
자녀 25%
범죄 30%
주거 12%
문24 시급히 개선되어야 할 가정문제는
순결 6%
부부애정 20%
노인 19%
자녀 27%
경제 21%
문25 가정에서 아버지의 권위는 세워지고 있습니까?
예 34%
아니오 16%
조금 21%
기타 22%
문26 자녀들의 고민을 알고 계십니까?
예 49%
아니오 31%
조금 15%
기타 32%
문27 자녀들의 고민을 알고 계십니까?
예 49%
아니오 31%
조금 22%
기타 7%
문28 노인을 모시는 것에 찬성하십니까?
예 36%
아니오 3%
조금 45%
기타 15%
문29 가족간의 행사는 잘지켜지고 있습니까?
예 15%
아니오 54%
조금 19%
기타 12%
문30 가족의 기념일을 아십니까?
예 25%
아니오 22%
조금 39%
기타 15%
가정에 문제점에 있다고 답한 사람과 조금이라고 답한 사람을 합하면 32%인데 전체가정의 3/1정도는 가정에 어떤 모양으로든 문제가 있는듯하다. 주거(21%), 자녀(21%), 경제(20%) 문제 순으로 가정문제가 있다고 대답했다. 오늘날 우리사회의 문제는 30%가 범죄문제요 25%가 자녀문제라고 보았다.
시급히 해결되어야 할 가정문제는 자녀문제 (27%)와 경제문제(21%), 부부애정이문제(20%)였다. 아버지의 권위가 세워지고 있다고 답한 가정은 34%에 불과했다. 또 어머니의 위치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60%였는데 가정에서 아버지와 어머니의 위치가 가장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그 역할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자녀들의 고민을 알고 있다고 답한 사람은 49% 약 절반정도의 사람들만이 자녀들의 동정을 살피고 있다고 보여진다. 노인을 모시는 부분에 대해서는 36%만이 찬성했다. 조금이라고 답한 사람도 45%나 되었지만 전통적인 효의 사상이 많이 퇴색한 것을 느낄 수 있다. 가족간의 행사는 15%만이 지켜지고 있고 가족의 기념일을 조금이상 알고 있다고 답한 사람은 64%였다.
이는 전통적인 가족윤리가 점점붕괴되면서 가족관에 대한 아니 이 현상이 조금씩 생기고 있고, 그것이 농촌지역에까지 확산되는 중임을 깨닫게 한다.
Part Four - 자녀문제와 교육에 대한 의식 분석
문31 청소년의 문제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애정문제 22%
용돈 19%
학업 38%
진로 22%
기타 9%
문32 자녀들을 어느정도 교육시킬 생각입니까?
고졸 11%
전문대졸 26%
대졸 56%
대학원졸 7%
문33 자녀들이 고민을 부모에게 털어놓습니까?
예 16%
아니오 51%
조금 19%
기타 4%
문34 가정에서 자녀에게 체벌하십니까?
예 31%
아니오 21%
조금 44%
기타 4%
문35 자녀에게 시간을 투자하십니까?
예 19%
아니오 38%
조금 28%
기타 15%
문36 자녀들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이성교제 19%
경제 18%
진로 46%
기타 2%
문37 길거리에서 비행청소년을 본다면
충고한다 24%
모른체한다 39%
신고한다 11%
기타 1%
문38 과외를 시키고 있습니까?
예 39%
아니오 28%
조금 22%
기타 11%
문39 교육제도의 개선을 바라십니까?
예 63%
아니오 5%
조금 24%
기타 8%
문40 자녀의 종교에 관심이 있습니까?
예 19%
아니오 18%
조금 46%
기타 17%
청소년의 문제는 학업과 이성교제 그리고 진로(38%, 22%, 22%)라고 보는 견해가 많았고 89%의 부모들은 자녀들을 전문대이상 진학시키겠다고 대답했다. 자녀들이 부모에게 고민을 털어 놓느냐는 질문에 16%는 털어놓는다고, 19% 조금 털어 놓는다고 대답했다. 자녀교육에 대한 관심은 높지만 올바른 자녀교육방법에 대해서는 많이 부족함을 보여준다. 체벌하는 가정이 31%, 조금이 44%였다. 또 자녀에게 시간을 투자하는 사람이 19% 조금이 28%, 자녀에게 바라는 것은 진로문제가 46%로 가장많았다.
길거리에서 비행청소년을 본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를 물었을 때 관심을 가지고 어떤 조치를 취하겠다고 답한 사람은 35%에 불과했다. 오늘 우리 사회와 청소년에 대한 우리의 의식은 내 자녀만을 챙기되 다른 청소년은 내버려 두는 무관심을 보여준다. 약72%의 사람들 어떤 모양으로든 과외를 시키고 있고, 63%의 사람들은 또한 현행교육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자녀의 종교에 관심이 있느냐고 물었을 때 19%의 사람이 있다고 대답했다. 자녀들의 종교에 대해서는 비교적 관용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종교에 대한 청소년 선도기능을 어느정도 인정한 것이라 생각되어 선교의 좋은 모티브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Part Five - 종교와 기독교에 대한 의식 분석
문41 가정과 지역사회를 위해 종교가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예 52%
아니오 19%
조금 21%
기타 1%
문42 종교 본래의 목적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선행, 도덕 32%
인간구원 41%
사회정화 11%
기타 16%
문43 이 지역의 종교는 종교 본래의 목적에 충실하다고 보십니까?
예 18%
아니오 19%
조금 41%
기타 12%
문44 현재의 종교는 무엇입니까?
기독교 18%
불교 26%
천주교 6%
유교 4%
기타 34%
문45 종교를 가지신 이유가 있다면?
올바른 삶 19%
마음의 안정 22%
구원 19%
축복 5%
기타 40%
문46 종교를 가지게 되었던 때는?
어린시절 26%
사춘기때 21%
청년때 10%
어른이 되어 19%
문47 기독교회가 가정문제에 관심을 가진다면?
좋은일이다 44%
별로 5%
조금 29%
기타 22%
문48 향후 종교를 가지신다면 어떤 종교를?
기독교 18%
불교 16%
천주교 4%
유교 1%
기타 6%
문49 교회가 가장 관심 가져야 할 부분은?
사회문제 19%
교육문제 13%
가정문제 19%
노인문제 14%
기타 36%
가정과 지역사회를 위해 종교가 필요하다고 보는냐는 질문에 52%가 필요하다고 답했고, 21%도 조금은 필요하다고 답했다. 현대인들은 물질문명을 풍부하게 누리지만 그러나 종교의 위치와 역할은 인정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어 고무적이다.
종교본래의 목적은 인간구원(41%)과 선행과 도덕(32%)이라고 보는 견해가 많았다. 또 이지역의 종교는 종교본래의 목적에 충실하라고 보느냐는 질문에 18%가 ‘예’라고 답했고 41%는 조금이라고 답했다.
현재 가진 종교는 불교가 26%, 기독교가 18%였다. 전통종교인 불교인이 상대적으로 많은 것은 농촌지역에 가깝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종교는 가지게 된 동기는 올바른 삶(19%) 마음의 안정(22%) 때문이라고 답했다.
처음 종교를 가지게 된 나이는 어린시절(26%), 사춘기때(21%) 어른이 되어(19%) 청년때(10%)의 순이었다. 기독교회가 가정문제에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라는 사람은 44%였다. 또 향후 종교는 종교를 가진다면 기독교를 가지겠다는 사람이 18%, 불교가 16%순이었다. 이것은 지역사회 복음의 좋은 신호라고 할 수 있는데, 지역사회에서 교회의 이미지 제고를 위한 사업을 꾸준히 벌인다면 많은 사람이 믿음을 가질 것으로 보인다.
교회가 가장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은 가정과 사회가 각각 19%였고 그다음 노인문제 14%, 자녀교육문제 13%의 순으로 나타났다. 교회는 지역사회의 가정문제에 대해 보다 높은 관심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음을 다시한번 확인하게 된다.
제 4 절 위지역의 교회적 특성
전통적으로 한반도의 중부권 중에서 서해안쪽은 감리교의 교세가 컸다. 왜냐면 감리교의 선교지였기 때문이다.
위지역의 교회적 특성을 들라며 일산지역이 주거지로 개발되기만 해도 전형적인 시골교회들이었다. 시골교회들이 대개 그렇듯이 씨족사회를 이루는 경향이 있다. 즉 할아버지가 교회에 나오시면 전체 식구들이 다 교회에 나오게 되는 전통적 유교사회의 경향이 짙은 것이다. 그러므로 위지역의 교회들은 씨족 공동체들이 교회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급격한 이농현상으로 그러한 특성들이 조금씩 무너지고 있으며 더더구나 도시화의 영향으로 아름다운 좋은 교회전통들이 무시되거나허물어져 가고 있다. 그러면서 서서히 도시교회의 경향들 즉 교회의 매머드화, 핵가정의 증가, 가정적인 문제의 신화등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일산지구내에는 벌써 2,000명이 넘게 모이는 교회들이 있는가 하면 과거 농촌교회들이 이농현상으로 교회들이 하나둘 사라졌던 것 하고는 달리 하루에도 몇군데씩 새로운 개쳑교회들이 들어서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현상들은 어쩔 수 없이 교회로 하여금 새로운 변신을 꾀하도록 유도하고 있고 결국엔 새로운 사회현상에 대처하는 쪽으로 흐르게 한다.
제 5 절 위지역의 문화적 특성
파주지역은 일산과 고양시를 인정으로 군사정권 시절만해도 접경지역으로 인식되어 사람들의 관심권 밖이었다. 그러던 것이 자유로가 생기고 일산신도시가 세워지면서 사정이 완전히 달라졌다. 게다가 정부의 북방지역 개발정책에 힘입어 그동안 꽁꽁묶여 있던 군사보호시설 구역들이 개발가능지역으로 풀리면서 금촌, 파주, 문산 지역이 서울의 신 주거벨트를 형성해 가고 있는 것이다. 이와관련 경의선, 통일로 307 및 310번 지방도로변에 아파트가 경쟁적으로 건립되고 있으며 파주시 교하면 문발리에 지방산업도시(6만2천5백평)가, 교하면 산남, 서패리 일대에 출판단지(48만2천평)가 각각 들어설 예정이어서 이 지역은 단순 베드타운이 아닌 자족 기능까지 갖춘 지역중심도시로 발전될 전망이다.270)
현재 이 일대에 조성된 택지개발 지구는 총 9곳, 민간이 직접 개발하고 있는 주택단지도 고양쪽 20여곳 1만가구 파주쪽 30여곳 2만여 가구등 모두 50여곳에 3만여 가구에 이른다.
일산 신도시를 중심으로 서울쪽에 행신, 능곡, 화정, 성사 지구도 개발중에 있고, 파주시 금촌동, 교하면 야당리, 상지석리와 조리면 죽원리를 중심으로 한 군락을 이루며 발전하고 있다. 이것은 파주일대의 경우 승용차로 10-20분 거리에 있는 일산 신도시내 각종 편의 및 유통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잇점이 이들 지역에 아파트 건립과 개발을 부추키고 있다.271)
한국사회는 1960년대부터 시작한 산업화의 영향으로 농촌과 도시가 다함께 도시화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라토렛(K. Latourette)은 초대교회가 크게 성장한 것은 교회의 독특한 영적인 능력과 아울러 사회학적 요인도 있음을 지적했다.272)
신흥도시의 사회학적인 요소들은 긍정적인 면에서는 교회의 성장과 갱신을 촉진시켰으나 부정적인 측면에서는 범죄와 타락과 세속화를 그리고 전통적인 가치관 윤리의 붕괴 특히 가정의 문제로 나타나게 된다. 그러나 부정적인 면을 영적인 눈으로 파악해서 대처해 나간다면 그것이 오히려 교회갱신과 변혁의 촉진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앞서의 설문조사에서도 느낄 수 있지만, 신흥지역민들의 의식변화는 가족제도의 기능변화, 맘몬니즘, 아파트문화, 환경오염등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이것은 항목별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신흥지역민들의 의식변화
현대사회의 특징은 도시화, 산업화, 기계화, 전문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비콕스(Harry Cox)는 도시를 익명성, 기동성, 소외현상이 있는 곳이라고 했는데273) 이는 우리교회가 있는 농촌형 지역도 예외는 아닌 듯 하다.
또 알빈 토플러(Alvin Toffler)는 도시는 안정된 곳이 아니라 급격히 변화하는 곳이라고 제안하고 농업단계인 제1물결에서 산업화 단계인 제 2물결을 지나서 지금은 제3의 물결로 진행되고 있다고 했다.274) 이로인해 산남교회의 교우들이나 지역민들의 의식속에 편리주의가 가장 많이 파고들었다. 수고와 노력의 땀이 없이 안락함만을 추구하는 경향이 짙어져 이제는 자가용 없는 집이 거의 없게 되었다. 또 주부들의 가사도 모두 기계나 전자제품으로 대치되게 되어 상대적으로 주부의 여가 시간이 늘어나게 되자 가정내 주부들의 문제가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대중성의 문제가 있다. 그렇다고 대중의 시대라고 해서 대중의 주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상업주의의 조작대상이 되어 TV나 매스컴에서 조정하는대로 움직이는 주체성을 상실한 군중으로 점점 전락되어 가는 현상이다. 이는 우리지역의 주부들이나 청소년들도 유명상표의 옷을 선호하게 되고 유행과 패션을 따라가는 현상이 짙다. 이는 메스미디어의 발달이 도시와 농촌의 경계를 허물어 버린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합리성과 전문성, 그리고 결과주의로 대별된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는 긍정적인 면과 함께 부정적인 면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합리성과 전문성, 그리고 결과주의는 이기주의로 변모될 가능성이 많다.
이러한 문제들이 우리교회가 속해있는 지역의 새로운 사회문제로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2)가족제도의 기능변화
전통적인 농촌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이전됨으로 가족제도의 기능변화가 나타났다. 전통적인 농촌사회에서는 가족이 노동력과 생활의 중심이므로 장기적으로 유익하였으나 신흥도시 사회에서는 가정과 직장이 분리됨으로 가족단위가 적을수록 유리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핵가족화의 추세가 발생했다. 핵가족이란 부모와 미혼자녀들만이 생활하는 것을 말한다.275)
핵가족의 부모들은 도시가 제공하는 풍부한 교육의 기회, 교통의 기회, 보다 나은 임금수준, 오락, 문화혜택, 의료시설 등의 혜택을 받으려고 도시로 나왔고 또한 결혼후 5내지 10년동안 내집을 가지려는 꿈의 실현을 위해 도시에 들어와 핵가족을 이룬다. 이렇게 형성된 신흥도시의 가족제도에는 새로운 기능의 변화가 대두된다. 첫째 경제적 생활단위로서 제도적 기능이 상실혹은 축소되었다. 전통적인 가정에서는 생산과 소비를 전담함으로 자급자족의 체제였는데 신흥도시에서는 가족과 직업이 분리되어 생업은 가족밖에서 이루어지고 가족은 자녀양육과 소비생활의 중심을 이루게 되었다. 뿐만이 아니라 소비생활도 분업화되어 식당, 세탁소, 탁아소, 인스턴트 식품등의 등장으로 인하여 가정의 기능이 축소되었고 가정에서의 하는 일이 점점 줄어들게 되었다. 그러므로 가정이 행복한 삶의 보금자리 라기 보다는 여관과 같은 느낌을 갖게 되었다.
둘째 가족통제가 약화되었다. 전통사회에서는 가부장이 전권을 행사하였다. 가족을 보호하고 자녀의 장래를 결정하고 가정의 대소를 결정하였다. 그러나 산업사회에서는 학력이 지휘를 결정하는데 큰 기능을 담당하게 부모는 자녀에게 큰 도움을 주지 못하였다. 직업도 지위도 자녀의 능력에 의존하게 되었고 부모는 방관자의 자리로 물러나게 되었다. 따라서 부모와 자녀와의 거리가 생기고 반항아와 불효자가 나오며 부모에 대한 의무와 책임의식이 약화되었다.
셋째 자녀중심의 가정분위기가 강조되었다. 전통사회에서는 가정은 조상 중심적이고 가문중심적이었다. 그것은 조상의 위신을 통하여 자기 존재가 인정을 받게 됨으로 절대 효성이 강조되었지만 산업사회에서는 조상의 영향은 약화되고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짙어졌다. 자녀의 양육도 부모의 의무로 생각하지 않고 즐거움의 측면에서 이해되었다. 자녀에게 어떤 혜택이나 노후의 의뢰를 바라지 않고 다만 부모의 의무로 생각하지 않고 즐거움의 측면에서 이해되었다. 자녀에게 어떤 혜택이나 노후의 의뢰를 바라지 않고 다만 부모의 꿈을 이루어 주기를 소원한다. 부모의 꿈을 이룰 대타자로 등장시킴으로 가정생활이 자녀중심적이 되었다.
넷째 남녀평등사상과 여성의 지위가 상승하였다. 남편이 가정밖에서 취업을 하면 부인은 여유가 생기고 그 여유시간에 취업을 하게되면 자유시간을 가지며 또한 남편보다 더 능력을 인정받기도 한다. 그리하여 남성의 예속화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권리를 주장하게 되고 경제권까지 강화되으로 남녀평등사상이 강화되고여성의 지위가 높아졌다.
다섯째 출산율이 감소되고 가족이 소규모화되었다. 신흥도시의 생활은 아직 안정된 생활이 아니지만 여가와 생활의 충분한 문화적 생활을 누리고 싶어하는 의욕 때문에 자녀의 수를 줄이고 출산하지 아니하려는 부부가 늘어나며 심지어 독신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276)
이와같은 가족제도의 변화는 병리현상을 발생시켰다. 그리하여 애정의 결핍에서 오는 가정불화와 이혼율 상승277) 충분한 대화의 단절로 가족세대간의갈등, 지나친 개인주의의 팽창, 고부간의 갈등, 유아들의 대리부모의 양육에서 오는 유아교육문제, 결손가정의 청소년 문제, 가족안에서의 인간관계의 긴장등이 신흥도시화된 지역에 있는 산남교회가 직면한 사회적인 문제들이다.
3) 맘모니즘(Mammonism)
전통적인 농촌사회에서 키워온 꿈을 안고 도시로 이주한 사람들은 돈을 벌어야 한다는 의식에서부터 삶이 시작된다. 역시 농촌지역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의 관심도 돈이다. 처음에는 정직하게 시작하지만 얼마가 지나도 꿈을 실현하기에 불가능하게 되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돈을 벌려고 한다. 왜 돈을 벌어야 하느냐의 첫째가 재산축적이요 둘째도 사업에 투자한다는 것이요 셋째는 소비생활로 인생을 즐긴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보듯이 황금만능주의요 배금사상이요 황금을 위한 삶인 것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이러한 삶은 여러가지의 문제를 내표하고 있다. 첫째 가치관의 혼란이다. 행복하고 정의롭고 평화로운 삶보다는 돈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으며 돈만 많이 벌면 행복하고 정의롭고 평화롭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둘째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도덕적 타락이다. 돈을 많이 모으는 결과만 중히 여기고 선한 수단과 방법, 준법정신는 저하되었다. 그러므로 올바른 시민정신, 올바른 가치관 확립, 도덕과 윤리관 확립이 시급하다. 셋째 만약에 자기의 욕구에 만족하지 못하게되면 실패와 가난에 대한 피해의식, 자격지심에 빠져 또한 끝내는 부에 대한 허망스러운 자학의식에 빠져 정신건강까지 해치게 된다.278)넷째 모든 것을 상품화 하으로 비인격화된 대인관계와 이성간에도 성적타락을 초래한다. 성까지도 윤락행위가 흥행하게 된다.279)
다섯째 빈부의 격차가 심해지므로 경제분배가 불균형을 이루어져 각종의 갈등과 불신이 일어난다. 여섯째 교회적으로도 이러한 사상의 영향을 받아 복음의 상품화, 기복신앙이 강조됨으로 복음의 세속화, 복음의 샤머니즘화가 심각하게 일어난다.280) 일곱째 교회의 매매행위, 성직의 매매행위가 일어날 조짐을 보인다.
이상과 같은 맘모니즘(Mammonism)의 사회학적 현상은 신흥도시화의 소용들이 속에 있는 산남교회가 직면한 사회적인 문제다.
제4장 역사적으로 본 산남교회의 상황
제1절 산남교회의 설립동기
교회는 생명체이다. 그러므로 성장한다. 교회의 탄생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의 결과이다. 그리고 산남교회는 지역교회에서 탄생한 것은 1947년이다. 토속신앙으로 점철된 산남리가 하나님의 역사로 권남순씨와 황길순씨가 성령충만함으로 일산역전 초등학교에 예배처와 구산리 기도처를 내왕예배 드리다가 1947년 3월에 송포교회를 설립한 것이다. 그후 1955년 2월 14일 황길순 성도가 자신의 구산리 논 411평 팔아 초가 3간을 구입하여 초대교역자로 김형택 전도사를 모시고 세례교인 4명으로 창립예배를 드림으로 본격적인 지역 복음화에 나섰다.
이렇게 산남교회가 세워진데에는 하나님의 큰섭리가 있었다. 그것을 이야기 해 보면 다음과 같다.
우리마을은 전형적인 한국농촌으로 뒤에는 심학산이 우뚝 서 있고 앞으로는 평야가 펼쳐져 있고, 한강이 인천 앞바다를 향해 유유히 흘러내리는 기름진 옥토를 가지고 있는 아주 살기 좋은 마을이었다. 적어도 쌀밥을 마음껏 먹을 수 있었던 이곳도 앞서 이야기한데로 일제의 김제 공출로 다빼앗가고 나니 빈곤하기 이를 때 없을 지경이었는데 이런 와중에서도 여기의 사정도 잘 모른체 서울에 사는 사람들 중에는 서울에서도 살기 힘이 드니 농촌은 그래도 낫겠지 생각하고 이곳으로 몰려 들었다.
그런데 이러한 것도 우리산남지역에 하나님이 예비하신 뜻이 있어 사람들을 불러 들였나보다.
1945년 3월경인가부터 이상한 조집이 보이기 시작했다. 300여년 전부터 토속신앙으로 섭철되어 온 여기 김씨가문에서도 특히 극성스럽던 동서지간인 권남순씨와 황길순씨 두분께서 갑자기 가정이 혼란해 지면서 평소에 안하던 이상한 행동을 하는 것이었다. 어느날부터인가 무조건 하늘을 향해 빌기도하고 엎드려 기도도하고 앞마당에 멍석을 펴놓고 식구들을 불러내어 엎어놓기도 하였다. 어느때는 한밤중에 자녀들을 심학산으로 데리고 올라가 사방을 향해 빌라고 하기도 하니 문중에서 뿐만 아니라 마을 사람들까지도 입을 모아 미쳤다고도 하고 무당이 내렸다고도 하는 소문이 근동에까지 퍼질 지경이었다.
이렇게 몇 개월이 지나고 나서는 이 두분들을 ‘할렐루야’, ‘할렐루야를 부르며 그것을 식구들에게도 하라고 시켰다.
이러던 중 마침 서울서 이사와 황길순씨댁 건너방에 사시는 할머니가 계셨는데 할머니께서 벌벌 떨면서 “하나님의 특별한 계시”라고 말씀하시고는 방에가서 찬송가를 가지고 나와 찬송 265장(헌찬송가201장)를 부르시는게 아니가.
“할렐루야 할렐루야 내가 예수를 믿어 그의 흘리신 피로 내죄 씻었네
할렐루야 할렐루야 내가 예수를 믿어 그의 흘리신 피로 내죄 씻었네. 아멘”
“할렐루야, 할렐루야”하는 이상한 역사는 더욱 강하게 나타나고 그때마다 정말 미쳐서 그러는 것인가 아니면 무당이 내리는 것인지 서로간에 수근거리기만 할뿐 말들을 못했다. 더욱 이상한 것은 “할렐루야”징조가 나타나면 두집 식구들은 아무런 반항도 못하고 그냥 쫓아하게 되는 것이었다. 그러던 중 송아무개라는 목사와 여자전도사가 찾아와서 보더니 이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계시라며 책을 두권씩 내 놓고는 예배를 드려야 한다고 간청하였지만 어디 외간 남녀를 집에드릴 수 있겠느냐고 그냥 돌려보냈다. 그들은 그대로 쫓겨나면서 앞으로도 교회에 나가보라고 몇번이고 전도했다. 나중에 안일이지만 그들은 이지역의 전도를 맡은 목사와 전도사였다. 이런일이 있고 난 얼마후 현 송포교회 장백원장로가 찾아와 자기도 경상도에서 예수 믿다 이곳으로 이사를 온 사람이라고 소개하고 이러한 징조는 하나님의 특별한 계시이므로 하나님께 예배를 들려야 하며 교회에 나가야 한다고 설득하였다. 이러한 인연으로 1945년 10월경부터 장백원씨와 함께 일산역앞에 있는 일산초등학교를 교회로 정하고 일산, 송포지역 사람들이 모여서 주일예배를 드리기 시작하였다. 또한 밤예배와 수요예배는 황길순씨 가정과 권남순씨 가정이 모여 황길순씨 집 마루에서 예배를 드렸다. 1946년 1월부터는 장백원씨 집을 예배처로 정하고 장백원씨 가정과 두가정이 모여 예배를 드리기 시작하면서 경기노회의 지원을 받아 노루메가 중심이 되어 송산, 가좌, 산남, 장월교우가 함께 모여 서울북부지역의 전도목사로 파송된 차경성목사의 인도로 주일예배를 드리고 심방도하면서 본격적인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다.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열심을 내어 신앙생활의 틀을 잡아 갈 무렵 이북에서 넘어온 김판석 집사를 부흥강사로 초청해 3일 금식기도를 하는데 성령의 은혜를 충만히 받아 예배당을 건축하기로 하고 모든 교우가 힘을 모아 귀중품까지 헌납하여 1947년 송포교회 12간을 짓고 차경성목사를 담임목사로 모셨다. 여기 산남에서는 눈비를 무릎쓰고 신앙생활에 열심을 내었으나 주위의 핍박도 만만치 않았다. 1950년 6월 25일 주일 새벽부터 대포알과 총알이 날아와 겨우 주일 밤예배를 마치고 교인들은 흩어지고 말았다.
전쟁으로 흩어진 교우들과 마을사람들은 어디로 가야 죽음을 면하고 살 수 있을까 하고 당황들하였다.
그 당시에는 라디오가 없어서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수화기에 이어폰을 귀에 꽂고 듣는 것인데 오히려 성능이 더 좋았다. 전쟁중이라 거의 뉴스가 절반이나 되어 늘 귀에 꽃고 다니며 들었는데 주 내용은 “국민 여러분, 안심하십시요”였다. 그런데 대포소리며 총소리는 더욱 극성을 부렸으니 안심만 하고 있을 마음들이 아니었다.
당시 군에 나갔던 마을청년 하나가 패잔병이 되어서 돌아왔는데 그의 말을 들으니 서울이 함락되었다. 하고 전세(戰勢)가 불리하다고 하지 않는가 큰일났다 싶어 심학산에 올라가 서울쪽을 살펴보니 서울 각처에서 불이나고 연기가 옹기집에서 나오는 연기처럼 솟아오르고 있는게 아닌가 그런데도 이승만 대통령은 직접라디오 뉴스에 나와서 방송을 하는데 그때에도 “국민여러분 안심하십시오”라고 하지 않는가 훗날 안 것이지만 이승만대통령은 그때는 이미 서울을 벗어나 혼자만 안전한 곳으로 피난을 한 후였고 그 방송은 미리 녹음을 해 두었던 거라니 기가막힐 노릇이었다.
우리마을에서는 아직은 패전병 외에는 국군도 인민군도 들어오지는 않았지만 문제는 남로당이 마을에 결성되어 매일 밤이면 회의를 하고 공산당에 대한 세포교육을 시켰다. 또 인민의용대에 나갈 것을 종용하기도 하였다.
서울이 함락되고 수원, 대전까지도 인민군의 손에 들어갔다고 하는 등 전쟁으로 이제는 나라가 어떻게 되는 건가 하고 걱정이 태산이었다. 그래도 오직 희망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뿐이었다. 기도로 하나님께 매달려 하나님을 의지하며 사는 날들이 계속되었다. 여러 고초와 역경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로 교우들은 1950년 10월 수복으로 감격의 예배를 드리며 감사의 눈물을 흘렸다.
6·25전쟁은 밀고 당기는 접전을 벌이면서 피난 행렬과 월남행열이 줄을 이었고 많은 희생자들을 내면서 온 국토를 피바다로 만들었다. 불안에 떨며 하루하루를 지내야만 했던 전쟁은 1951년 3월 서울 재수복이후 38선을 중심으로만 접전이 있어 후방에서는 조금 안정되는 기미가 보였다.
우리 산남리에도 어느정도 안정은 되었으나 신자들의 수는 늘지않은 상태로 권남순, 황길순집사와 김봉호, 이순례집사, 아이들 4-5명정도가 가정예배로 신앙생활을 겨우 유지하고 있었다.
이무렵 황길순집사께서 구산리에 있던 자신의 논 411평을 팔아 초가3간을 마련하고 궁촌동에 있던 회관를 14,000환을 들여 수리하는 등 우리 산남교회의 근간을 마련하였다.
이렇게 신앙생활에 열심을 내면서 전쟁이 하루속히 끝나고 우리마을에도 평화를 달라고 기도를 드렸다. 드디어 1953년 휴전으로 전쟁은 끝나고 마을에도 다시 평화가 찾아왔다. 또한 조명월, 황동주, 김재호씨 가정이 예수를 믿기 시작하였고 두산리에서 김일남집사, 이씨할머니, 이경선씨 등이 나오면서 교인수가 많이 늘어났다. 이제는 가정예배의 수준을 넘어 교역자의 인도가 절실히 요구되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보고 초대교역자로 김형택전도사를 모시고 1955년 2월 14일 창립예배를 드림으로 드디어 ‘산남교회’가 창립되었다.
이후 강성원전도사가 새로 부임하면서 ‘경기노회 제67회 노회’에서 대한예수교 장로회 산남교회로 허락을 받았다.
제 2 절 산남교회의 구성원
제 3 부 가정목회를 통한 교회 갱신 방안
제5장 가정목회의 실천방안
A. 교회와 가정
챨스 엠셀은 “가정은 사랑의 공동체요 교회는 신앙의 공동체”라고 말하고 있다. 또 “가정은 작은교회요, 교회는 확대된 가정”이란 말도 있다. 가정의 권위가 성경에 있고 교회의 권위가 역시 가정으로부터 나온다 할 수 있다. 가정과 교회의 권위중 하나가 무너지면 둘다 무너질 수 박에 없는 관계가 있는 것이다. 만약 이 세상을 각 가정과 교회가 사랑의 사회, 신앙의 사회 주도하지 못한다면 사회는 계속 악화디고 퇴폐될 것이다. 그러므로 가정문제에 있어 교회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1) 케뤼그마의 회복
교회는 그동안은 “가정에 대한 설교”를 등한히 해 왔다. 교회는 말씀선포를 통하여 가정의 권위를 선포해야 한다. 아버지의 권위와 가족들의 책임에 대해서 창조원리와 구속원리에 따른 설교를 강화해야 하는 것이다.
(2) 가정목회의 회복
한국교회는 그동안 개인 개인의 구원을 강조해왔다. 그결과 짧은 시간에 경이적인 교회성장을 이룬 것이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성도들이 속하여 있는 가정이나 직장, 그리고 지역사회와 국가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책무을 다히지 못했다. 선교 2세기에는 문화적으로도 기독교가 뿌리내려야 한다. 그러므로 교회는 가정목회에 대한 관심을 갖고 전담팀을 구성해야 한다. 전가족의 복음화 뿐 아니라 성도들의 개개가정이 성경적인 원리안에서 서로 사랑하고 복종할 수 있는 각종 가정 셈나와 부부웤샵을 개최해서 그들이 실제적으로 부딪히고 있는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해결책을 찾도록 도와주어야 할 것이다.
(3) 상담센터의 운영
교회으 역할은 직접적이기 보다 간접적일수록 좋다. 이때 교회나 목회자는 가교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교회내에 “가정생활상담소”를 설치 운영함으로써 교회와 지역사회의 가족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또 정기적으로 교회와 지역사회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뒤에 이에 대한 교회의 역할에 대해 방향을 제시하거나 조언해 줄 수 있을 것이다.
(4) 정기적인 세미나 개최
지역사회를 위한 가정상황세미나 아버지 역할 세미나, 부부수련회들을 기회해서 매년 모임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오늘날 부부들은 대화의 시간이 부족하다. 그러므로 앞장에서 제시된 여러 가지 문제들을 놓고 토론의 시간을 가진다면 실제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3. 가정과 교회
가정의 권위와 질서를 회복하고, 아버지의 역할을 부여 받으려면 이것을 인정해주는 더큰 권위가 필요하다. 그 권위는 어디서 나오는가? 성경은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되심같이”라고 말함으로 “남편이 그 가정의 머리”로서 아내를 희생적으로 사랑하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모든 권위는 성경과 교회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행복한 가정, 멋진 아버지로 변화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가정의 영적인 생명을 회복 시켜야 한다.
(1) 가정예배의 회복
적어도 가정은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은 모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서로 마음을 털어놓고 이야기 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을 제공하는 가장 좋은 모티브는 정기적인 가정예배와 기도회이다. 하나님앞에서 아버지부터 그 마음을 열오놓고 하나님아버지의 사랑을 받으려고 할 때 모든 가족들은 평안해 질 것읻. 그리고 손을 잡고 서로의 필요를 위해서 기도해 줄 수 있다면 ··· 아버지도 결코 전능자가 아니다. 우리 아버지도 하나님 앞에서 필요를 공급받아야 가족들에게 줄 수 있는 인간이란 것을 솔직히 자녀들에게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이다. 어려움과 부족함을 위해서 서로 기도할 때, 그리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성경을 공부할 때 가정의 질서와 행복은 보장 될 수 있다.
(2) 가족수련회
적어도 1년에 한번이상은 가족들이 수련회를 가질 필요가 있다. 단순히 휴가를 가서 몇일밤 호텔에 머물다 오는 그런 수련회가 아니라 자연을 벗삼고자녀들과 아내와 깊은 대화의 시간을 나눌 수 있는 그런 수련회라면 아내와 자녀들은 평생의 추억으로 간직할 것이다. 아버지가 제안을 하고 가족들이 함께 의논해서 모든 일정은 정한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좋은 프로그램을 살피고 그리고 완벽하게 준비한 다음 수련회를 갖는다면 가정은 곧 천국이 될 것이다.
(3) 이웃을 돌아보기
사랑을 나누어주면 두배가 된다는 말이 있다. 우리 가정의 행복을 이웃에게 나누어 줄 때 우리 가정의 행복은 두배가 되는 것이다. 소년소녀가장 돌아보기, 독거노인 도와주기, 결손가정 위로하기, 그리고 이웃을 위한 봉사활동들은 진정 우리 가정의 행복이 얼마나 큰지 다시금 되돌아 보게 하는 귀중한 시간이 된 것이다.
제1절 결혼식
1. 결혼식은 결혼준비사역(Mariang Preparation and Development Ministry)281)
A. 개관(Overview)
1. 목적(Statement of Purpose)
이 사역은 결혼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결혼할 때까지 올바른 관계를 유지시키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관계를 가지도록 성경적인 통찰력을 배양하고 서로의 관계가 원만히 발전할 수 있도록 지원하며 상호책임성을 가르친다.
2. 철학(Philsoply)
① 예수 그리스도가 개인적으로 당신과 어떻게 관계하는 지를 이해하는 것은 배우자와의 관계를 배우는 토대가 된다.
② 교회의 시낭의 성격와 사역의 효율성은 주로 교회에 속한 사람들의 결혼과 가정의 힘에 달려있다.
③ 사람들은 성경의 진리를 들을 필요가 있으며 종종 그 진리가 그들 자신의 계획과 욕국에 변하는 것을 때조차도 기꺼이 순종의 반응을 한다.
④ 교회는 죄스러운 행동과 생활방식 속에 빠져있는 부부들에 대해서 애정을 가지고 잘못을 지적하며 권면할 책임이 있다.
⑤ 문제 가정이나 영적으로 미성숙한 가정에서 자란 많은 커플들이 결혼의 가장 기본적인 개인적, 관계적, 영적인 면들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⑥ 약혼과 결혼은 성경상 과도기적인 면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새로운 관계들을 찾는 커플들은 그리스도와 서로간에 대하여 배울태도가 되어 있으며 유순하다.
⑦ 데이트 기간동안 관계적인 그리고 영적인 성장을 충분한 시간을 갖는 것은 건강하고 균형 잡힌 결혼을 건설하기 위해서필요하다.
⑧ 모든 재혼의 상황에는 많은 변수들이 있다. 이 변수들은 매우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에, 획일적인 기준으로 재혼을 다루어서는 안되며, 그 각각의 경우에 따라서 커플들을 달리 다루어야 한다.
⑨ 결혼전의 준비는 오랜 기간동안 결혼생활의 건강함을 이루는데 중요한 차이를 만들 수 있다.
⑩ 약혼한 한 쌍의 남녀와 이들을 가르치는 부부사이에 친교 관계를 가지는 것은 초기 결혼양육을 위한 토대가 된다.
3. 전략(Strategy)
이 사역의 목적은 한 쌍의 남녀가 약혼, 결혼식 그리고 결혼의 초기 단계를 지날 때 신앙적으로 건강한 가정을 세울 수 있도록 개인적인 지도와 지원을 제공하는 것이다. 우리는 약혼한 한 쌍의 남녀가 성숙한 평신도 부부와 관계를 가질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서 이 사역을 행한다. 성숙한 평신도 붑와 고나계를 가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서 이 사역을 행한다. 성숙한 평신도 부부는 약혼한 한쌍의 남녀에게 가르침과 친교관계와 상호책임성을 제공함을서 이들의 진정한 필요들을 채울 수 있다.
한쌍의 남녀가 일단 결혼을 하게 되는 경우, 우리는 그 부부가 특별히 신혼부부를 위해서 만들어진 소그룹에 참여하는 것을 통해서 결혼의 튼튼한 기반을 쌓도록 돕는다. 이 그룹들은 신혼부부가 결혼 첫 일년동안 정서적, 영적 그리고 관계적인 훈련을 개발하는 것을 도울 수 있는 가르침과 관계 형성을 주기 위해서 매진한다.
4. 프로그램(Program)
결혼준비 사역은 다차원적인 사역이다.
① 일단계: 결혼준비를 위한 설문작성(Marriage Preparation Packet)
결혼준비를 위해서 인터뷰를 원하는 사람에게 결혼안내와 설문지가 주어 지고 이들을 위해서 오나전하게 기입된 설문지가 교회에 제출되면 인터 뷰의 약속시간이 정해진다.
② 이단계:결혼준비를 위한 인터뷰(Premarital Interview)
인터뷰는 성숙한 신앙을 가진 기혼부부와 하게된다. 처음의 인터뷰를 통 해 커플이 문제가 없다고 여겨칠때는 결혼 날짜를 정한다. 그러나 문제를 가진 커플에게는 한번 더 인터뷰가 있으며, 과제물을 부여한다. 그 과제 물을 그 커플들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계속적인 양육미팅이 있는지, 아 니면 교회가 그들의 결혼에 참여하기를 거절하는 통고를 하게된다.
③ 삼단계:예비부부 세미나(Premarital Seminars)
과제물을 읽고 Tayolr Johnson의 기질 분석이 모든 커플들에게 시행되며 예비부부 세미나와 예비부부를 위한 예산 세미나에 참석해야 한다.
④ 사단계:개인양육(Personal Follow Up)
전과정동안 예비부부는 처음에 인터뷰했던 부부와 지속적인 접촉을 하게 한다. 이것은 친교관계를 가질 수 있는 기회와 제자도의 기회를 제공한 다.
⑤ 오단계:피정의 시간(Post Marriage Retreat)
주말에 결혼한 커플을 위한 피정의 시간이 제공된다. 이것은 이것은 그 동안의 관계의 질을 돌아보고 점검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서로의 의사소 통 방식을 재점검하고 서로에 대한 헌신을 새롭게 하는 것이다.
⑥ 육단계:소그룹(Small Group)
관계, 상호책임성, 가르침을 주도록 디자인된 소그룹 사역은 결혼한지 6 개월에서부터 24개월 이하의 모든 부부들에게 개방된다.
* 결혼준비팀의 멤버는 그리스도와 성숙한 동행, 결혼생활의 정열, 젊은 부부와 개인적인 관계를 통하여 그들의 삶을 건강하게 세우려는 열망을 가져야 한다. 결혼 준비팀에는 유급직원과 자원봉사자가 있다.
결혼준비팀 사역의 전체를 책임지는 유급직원이다. 그는 자원봉사자의 훈련, 커리큘럼 개발, 인터뷰 사역, 예비부부 세미나, 결혼일정, 소그릅 사역, 목사들의 주례등을 주용한 자원봉사자로는 예비부부와 결혼전의 인터뷰를 담당하는 기혼커플이 있다. 이들은 윌로우 크릭에서 결혼을 하기를 바라는 모든 사람들과 인터뷰를 한다. 그들은 그들이 인터뷰한 커플들을 상담하고, 지도하며 교우관계를 갖는다. 결혼식의일정, 결혼식 장소, 피로연의 일정과 등록비 등을 책임지는 세민나행정관리자가 있다. 그리고 결혼일정에 필요한 모든 것과 결혼 리허설을 도와주는 결혼 상담자와 결혼 이후 젊은 부부들이 참석하는 소그룹 리더들이 있다.
예비부부와의 인터뷰를 기혼부부가 한다. 이들은 예비부부에게 상담, 지도, 교우관계를 제공한다. 때때로 예비부가 잘못된 길로 들거나 행동할 때 견책하는 역할도 해야한다. 그들은 결혼에 대한 윌로우 크릭 교회의 원리에 따라 예비부부의질문에 대답하고, 그들을 지도한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이들의 역할은 부부들이 결혼에 대해 얼마나 준비되어 있는지를 스스로 평가하도록 돕는 것이다.
B. 번번히 제기되는 질문들(Frequently Asked Questions)
1. 결혼 준비사역이 비교회인들을 교회로 들어오게 하는데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
이 사역은 아마도 구도자들의 존재에 의해서 가장 깊은 영향을 받은 영역일 것이다. 종종 어떤 커플들이 한 두 달 이 교회에 나와서 그들이 보고 들었던 것 좋아하여 교회에 뿌리를 내리기로 결정하는 일들이 있다. 그래서 그들은 윌로우 크릭을 그들의 모교회라고 부른다. 결과적으로 만일 그들이 약혼을 하고 결혼하기를 원한다면 그들은 당연히 결혼을 위해 우리에게 의존하게 된다. 그들은 복음의 진리를 받아들일 만큼 충분히 교회에 나오지는 않았지만 윌로우 크릭에서 결혼할 것을 결혼할 것을 결사적으로 바란다. 그들은 우리와의 만남을 통해서 처음으로 복음을 접하는 놀라운 기회를 갖기도 한다. 종종 그들 중에는 개인적으로 얼굴을 대면하고 앉아서 일대 일로 복음을 듣는 것을 처음으로 경험할 때가 많다.
2. 윌로우 크릭에서 결혼을 하기 위한 하나의 과정으로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면 그들의 신앙고백에 잘못된 동기가 있을 수 있다는 우려는 하지 않았는가?
그것은 매우 중요하게 고려한다. 회심의 동기를 분별하기 위해서 때로 우리는 결혼 날짜를 육개월에서 일년 정도 미는 것을 요구한다. 이것은 기독교가 그들의 약혼과 궁극적으로는 그들의 결혼에 끼칠 영향을 보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그들에게 제공한다.
3. 인터뷰 과정에서 만일 한명은 그리스도인이 되고 다른 한명은 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는가?
그들과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절대적이다. 만일 그들과 인터뷰를 가진 사람이 친교관계를 형성하고 신의를 가진다면, 대개 결혼 날짜에 대해 선택의 여지가 있다. 갱생의 증거는 성경에 마음을 여는 것이다. 종종 먼저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이 기다리며 약혼자에게 영적인 상태와 씨름할 시간을 준다. 어떤 경우에도 사람들이 불평등하게 멍에를 메지 않도록 하는 것은 우리의 책임이다.
4. 양쪽 모두 불신자일 때 결혼을 집행하는가?
이것은 대답하기 쉬운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비교회인들을 끌기 위해서 어떤 사역의 스타일을 개발할 것인가를 결정하려는 모든 교회와 관계되는 문제이다. 두사람 모두 불신자인 결혼을 집행하는 것이 어떤 성경적인 원리들을 범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이런 성격의 모든 상황은 개인적인 상황을 고려하여 다루어진다.
종종 결혼을 원하는 커플이 면접자와 처음 만날 때, 결혼을 바라는 남자와 여자 사이에 영적인 것들에 관한 태도에서 의미있는 차이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종종 예비신부가 영적인 진리에 마음을 여는 반면, 예비신랑은 그녀의 마음을 맞추어지기 위해서 따라온다. 두 사람의 태도를 분별하는 것과 결혼의 적기를 결정하는 것이 결혼 집행의 가장 중요한 요소들이다.
5.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리기 위해서는 예비커플들은 교회출석이라는 조건을 받아들여야 한다.
교회는 왜 그러한 조건을 가지는가?
우리는 목표는 사람들을 결혼시키는 것이 아니다. 성자응ㄹ 위해 함께 노력하는 것이다. 결혼식 이후에도 결혼생활에서 성장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우리의 의도이다. 우리의 혼전사역은 우리가 계속적인 양육사역을 개발시킬 때에 비로소 효과적일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단지 결혼만이 아니라 결혼후의 관계에 대해서도 지속적인 사역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커플의 교회출석이 긴요하다.
C. 적용가능한 원리들(Transferable Principles)
1. 교회는 당회에서나 제직회에서부터 결혼/이혼 그리고 재혼에 대하여 일관된 입장을 견지하여야 한다.
2. 교회는 누가 결혼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 이유에 대해 확고한 입장을 가져야 한다. 때때로 문제는 결혼이 타당한지 아닌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결혼의 시기에 있다.
3. 커플의 유익을 위한 자기평가의 도구로서 그리고 카운셀러를 위한 지침선으로서의사용을 위해 결혼질문서나 설문조사가 만들어져야 할 필요가 있다.
4. 교회와 사역의 리더쉽은 이혼 후 재혼을 위해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사역하는 방법을 결정해야 한다.
5. 교회는 결혼을 위한 예비기간의 준비가 얼마나 중요한 가치를 가지는 지를 결정해야하며 그 결정에 근거하여 시간과 자원을 필요에 맞게 배분하여 사용해야한다.
6. 목사나 사역의 리더는 커플의 필요들이 무엇이며, 그러한 필요들을 가장 효괒거으로 되어있는지 결정하는데 귀중한 도움이되낟.
7. Taylor Johnson의 기질 분석과 같은 테스트 도구들은 커플이 얼마나 결혼의 준비가 되어 있는지 결정하는데 귀중한 도움이 된다.
8. 간접적인 사역의 경험은 사역의 리더에게 그의 사람들을 아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러한 경험은 장차 평신도 리더쉽을 훈련하는데 필요한 성실함을 제공한다.
9. 교회가 크든 작든간에,책, 테이프, 간접적인 사역의 관찰과 경험ㅇ르 통한 평신도 리더쉽 훈련은 사역을 개발하는 초기단계에서부터 형성되어야 한다.
10. 교회가 크든지 작든지 간에 평신도 카운셀러 팀을 만드는 것은 사역의 리더에게 통찰력을 주며 힘이 될 것이다.
11. 영적으로 성숙한 커플들을 약혼한 커플의 정신적인 스승으로서 제공하는 것은 결혼전 준비와 결혼후 양욱을 고양시키는데 효과적인 방법이다.
12. 결혼 전 준비가 결혼 초기 단계의 관계를 통한 양육으로 발전될 때 보다 더욱 가치를 가질 것이다.
13. 새로 결혼하는 커플은 다른 신자와의 지속적인 관계를 가질 필요성이 있다. 특히 소그룹은 이들에게 지속적인 가르침과 관계의 형성을 위한 좋은 환경을 제공할 것이다.
제2절 결혼갱신사역282)
A. 개관(Overview)
1. 목적(Statemnt of Purpose)
이 사역은 결혼생활의 붕괴를 경험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경외할 결심을 갖도록 성경적인 통찰력과 관계적인 지원을 제공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2. 철학(Philosophy)
① 하나님은 관계를 상실함으로 인하여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을 치유하도록 교회를 자신의 대리인으로 부르셨다(시10:12-14, 146:7-9)
관계로 인한 고통과 이혼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로 나아가는 거사은 교회의 책임이다(사1:17, 약1:27). 교회안에서 그들은 예수님의 충고와 위로를 받고 그와의 관계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영원한 치료를 얻는다(요4:1-42)
② 상처 입은 자들이 하나님의 진리 앞에 노출되어 자신의 실제 모습을 깨달을 때, 현실을 바꾸든지, 부정하든지, 아니면 피하든지 간에 이들 중에 하나르 ㄹ하는 선택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고통스러울 정도로 두려운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참된 사랑을 가지고 사역할 때, 그것은 사람들을 치료하고 교회를 정화하는 일을 효과적으로 수행한다. 이러한 진리를 개인적으로 적용하기 위해서는 성경을 이해하고 자신의 삶의 실체를 직면하고 받아들일 때 만이 가능하다(요8:32).
③ 결혼의 붕괴나 이혼으로 인해 깨진 사람들과 가족들은 하나님께 주용하다. 이것은 그들을 열매맺는 삶과 만족스러운 관계를 개발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예비후보자로 만든다.
결혼의 붕괴속에 있는 사람들을 해결하고 치료하는 역동적인 힘을 이해하지 못하고서는 상처입은 구도자들을 복음화하고 깨어진 신자들을 하나님께 쓸모 있는 사람으로 만드는 독특한 기회를 얻지 못한다. 이런 사람들은 우리사회에서 절망에 빠진 사람들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을 위해서 구원하시려 오셨고, 그들을 위해 죽으셨다(눅15:1-24).
④ 대개의 불신자들과 많은 신자들이 결혼에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모르고 있다.
⑤ 결혼의 붕괴를 경험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배우자의 필요나 그들 자신의 필요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이다. 이러한 필요들은 분별하지 못하는 무능함은 개인의 본성에 있는 죄의 결과이며 그것은 죄에 오염된 어린시절동안 제대로 자라지 못함으로 인하여 더욱 악화될 수 있다. 대개의 경우 이런 사람들은 비정상적인 관계나 영적으로 그릇된 환경속에서 자란 사람들이다.
⑥ 결혼의 붕괴를 경험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과 그리고 동무을 주는 친구들과의 의미있고 신실한 관계를 정말로 필요로 하고 있다.
⑦ 깨어진 관계와 개인적인, 감정적인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서 성장에 대한 지속적인 헌신의 과정이 필요하다.
깨어진 관계를 해결하든지, 관계의 상실에서 회복하든지간에, 이들의 치료를 위해서 필요한 모든 가능한 방법들을 찾아내는 일에 최우선적으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여야 하낟. 이러한 과정은 교회라는 환경속에서 가장 잘 수행되어진다.
⑧ 결혼의 실패로 인한 고통과 깨어짐을 하나님을 공경하는 가운데 견디는 것은 믿는 자에게 동일한 고통을 당하는 다른 사람들을 돕는데 필요한 인격을 만들어준다.
하나님은 언제나 가장 어려운 시련속에서도 목적을 가지고 계신다(롬8:28). 시견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신자들에게 개발된 인격은 하나님을 높이고, 신자들을 세우며,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확장하는 일을 이루는데 큰 역할을 한다.
egy)
① 정기적임 모임(Regular Meetings): 결혼의 붕괴로 인한 감정적인 고토오가 상처로 인해, 도움을 기꺼이 찾는 사람이 가장 절실한 필요로하는 것은 불안감 없이 자신을 받아들일 수 있고, 상처를 치료할 수 있는 분위기 속에서 다른 사람들과 지속적인 접촉을 갖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속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로부터 그들에게 필요한 지혜가 주이지지만, 그들에게 이것을 강요할 수느 ㄴ없다. 그들이 하나님의 양식을 받아들이든 아니든 간에, 참석하는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그리고 그를 통한 구원의 예비후보로서 자신들이 커다란 가치가 있는 존재임을 알게된다.
② 규칙적으로 성경을 배움(Regular Expository Teaching): 결혼의 붕괴라는 사건을 겪게되면 대부분의 저항적인 사람조차도 삶의 변화에 대해 상대적으로 강한 관심을 가지게 한다. 성경은 우리에게 삶의 변화가 마음의 갱신을 통하여 온다고 말한다. 그러므고 개인의 감정적, 관계적인 건강에 관련된 주제들이 그룹내에서 성경에 기초한 가르침과 간증과 토론들을 통해서 창조적으로 설명되어야 한다.
③ 정기적인 관계를 통한(Regular Relational Support):결혼에 대한 가장 미묘하고도 공통적인 잘못된 개념 중의 하나는 결혼이 개인의 관계적인 모든 필요를 채운다는 것이다. 이런 기대 때문에 사람들은 결혼생활에 과부하를 줌으로서 결국 실패를 경험하게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처럼 지나치게 의존했던 관계의 상실로 인하여 더 큰 고통을 겪는다. 이것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균형잡힌 관계를 가진 사람들의 경험들이 정기적인 모임을 통해서 이런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제공되어야 하낟.
이것은 평신도 리더에 의해서 인도되는 10명 이하의 소그룹에서 효과적으로 일어난다. 이들 그룹은 멤버들에게 비슷한 결혼 상태에 있고, 가정의 붕괴나 회복 등에서 동일한 경험을 가진 개인들과 지속적인 만남을 제공한다. 여기서는 가르침으로부터의 통찰력을 나구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며, 대안을 묻고, 기도를 요청하고 받아들이는 모든 것을 용의하게 한다.
④ 정기적인 社交(Regular Social Fellowship): 결혼의 붕괴는 당사자를 어색한 사회적인 상황속으로 던져 놓는다. 때에 따라서, 이들은 기혼자도, 독신자도아닌 사람으로 여겨진다. 그들의 이런 과정이 길고 불확실하면, 그들은 사회적인 상호작용을 몹시 갈망하게 된다. 만일 그들의 사회적인 필요들이 합법적으로 채워지지 않는다면, 불법적으로 그것들을 채우려는 시도를 하려는 욕구가 그들을 압도하게 된다. 그러므로 교회는 특별히 안전하고 건강한 상호작용을 제공하도록 의도된 사교적인 행락들을 그룹을 통하여 이런 출구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제공한다.
4, 프로그램
① 결혼과 이혼에 관한 웤샵(Marriage and Divorce Workship):이 프로글맹느 일주일에 한번씩 8주간의 웤샵에서 다루어진다.:결혼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 이혼, 자아존중, 용서와 사랑에 과한 성경의 가르침, 6-8번째 웤샵에서는 결혼생활을 회복하는데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의 필요, 기대를 이해하고, 새롭게 하며, 화해하는 것에 관해서 배우게 된다.
사실상 이혼상태에 있든지 실제 이혼산 상태에 있든지 간데 자신이 겪은 상처로부터 치유함을 얻으려는 사람들은 독신, 관계의 상실 그리고 새로운 관계를 세우는 것에 대해서 성경이 가르치는 별도의 수업을 받는다.
② 후원그룹(Support Groups):웤샵 후에 한달에 두 번 후원그룹에 의한 모임을 가진다. 후원그룹들은 결혼생활을 복원하는 과정에 있거나, 이혼으로부터 회복의 과정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지속적인 지도와 훈련을 제공한다. 여기에서는 개인적인 고통으로부터 회복과 인간관계에서의 건강함을 얻는데 적절한 주제들이 가르쳐지고 토의된다.
③ 교제를 위한 모임(Fellowship events): 결혼생활의 붕괴나 상실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한달에 한번 사교모임이 계획되고 추진되며 실행된다. 이러한 행사들은 사람들이여러가지 다양한 사람들과 대화하고 격의 없는 만남을 가지도록 기회된다. 롤러스케이팅, 성탄만찬, 음악회, 스포츠관람, 연극공연과 같은 활동들은 결혼생활의 붕괴나 상실로 인하여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의 사회적인 필요들을 채워주는 감정적으로 편안한 환경을 제공한다.
④ 리더쉽을 위한팀(Leadership teams):참석자들이 개인적인 상처를 치료받고 인관관계에서 성장하고 있으며, 영적인 성숙으로 나아가고있다면, 그들은 자연스럽게 동일한 문제를 가지고 고통을 겪는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후보자가 된다. 이런 예비리더들은 지속적으로 후원하고 성장시키는 것을 용이하도록 하기 위해서, 그들은 리더쉽 위한 팀으로 조직된다. 각팀은 감독자를 가지며, 매달교육, 격려, 상담 그리고 기도를 위한 모임이 가진다. 이와함께 리더쉽 팀의 연속성을 촉진하기 위해서 3개월에 한번씩 리더쉽 교육이나 교제의 시간을 가진다.
제3절 부부세미나
가정은 하나님이 세우셨다. 인간은 가정에서 행복과 평화를 얻으며 인생을 살도록 하셨다. 그러나 도시화 되면서 가정의 형태와 기능이 변하게 되었다. (표7)에 의하면 볼스윅(Jack O Balswick)은 4가지를 지적하고 이것을 기독교적으로 치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 기독교적인 실제적 치유방안은 무엇인가?
(표7) 가정에 대한 현대화의 충격과 갈등, 그리고 기독교적 대응283)
현대화의 갈등 |
가족간의 갈등 |
기독교적 대응 |
1. 의식의 분열 |
가정의 윤리와 권위가 상실됨 (사적 생활과 공적 생활의 상호 모순) |
교회에서 제공한 가치와 믿음을 의존하게 함 타인에게 타인에게 개방성을 갖게하고, 주님께 봉사, 헌신, 증거하게 한다. |
2.의사소통의 복잡성 |
다양한 배경과 언어적 형태로 세대차이가 형성됨 |
가족의식을 공급하고 공동사업을 장려한다. |
3.지역사회의 해체 |
고립된 핵가족, 부모의 권위가 약화, 공도사회의 지원과 통제가 미흡함 |
가족 소속감을 갖도록 격려 |
4.상품의 지배 |
강화된 소비성향, 일과 가족이 분리됨, 개인차를 존중함으로 인간관계보다 상품위주의 삶 |
상호능력을 이해시키고 부여한다. |
1) 가정을 위한 신앙강좌를 개설하는 일이다.
매년 가정의 달 5월을 맞이하여 가정생활을 위한 신앙강좌를 개설하여 신불신간에 관심이 있는 사람을 교회에 인도한다. 안내문을 만들어 전 교우들이 전도하게 하여 가가호호 방문을 한다. 세부사항은 다음과 같다.
① 전도기간:4월초부터 실시한다.
② 전도방법:안내문과 초청장을 들고 축호전도 한다.
③ 환영순서:매일 신앙강좌가 끝난후 새로나온 가정이나 개인을 환영하고 성 경책과 찬송가를 선물한다.
④ 상 담:가정생활에 대한 상담실을 매일 운영한다.
⑤ 기 타:논술자인 본인이 실시한 안내문과 내용은(표8)이다.
이상과 같이 하면서 불신가정의 실제문제를 기독교적으로 해결하도록 유도하여 기독교 가정을 형성하게 한다. 칼빈은 그의 에베소서 주석에게 “기독교의 가정은 믿음과 사랑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곳이 되어야 한다.284)고 했다.
2) 가정학교(Home school)를 실시한다.
가정학교는 1970년대에 미국 서부지역 오리곤(Origon)에서 시작했다. 자녀들이 학교에서 좋은 본 보다는 나쁜 본을 더많이 본 받은 것에 고민하다가 부모들이 자녀들을 가정에서 가르치고 지도하게 되었다.285) 특별히 불안한 사회에서 불충분한 학교생활은 어린 자녀들의 인격성장과 지식발달에 문제가 된 것을 통감하고 자녀를 학교에만 맞길것이 아니라 부모들이 가정에서 가르치고 지도하려는 것이였다. 몇가정이 한팀이 되어서 전문지식과 예술을 교육하게 되었다. 이것을 발전하여 기독교 가정학교로까지 발전하게 되었다. 여기서는 주일날에 주일학교에서의 신앙교육은 너무 부족하여 적당한 시간에 모여 집중교육하기로 했다. 웅천교회가 가정학교를 운영할 실제는 다음과 같다.
① 구 성:서로 마음을 같이하는 가정 4-5가정의 한팀이 된다.
② 모 임:주1-2회 야간
③ 교 사:부모들 중에 전공한 사람
④ 학 급:유치반, 국민학교반, 중학교반, 고등학교반
⑤ 특수교사:부모들이 지도할 수 없는 초청한 교사
⑥ 시 간 표:
(초등학교반)
시간 |
과목 |
교사 |
보충교제 |
다음준비 |
10분 |
기도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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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분 |
대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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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분 |
학과지도(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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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분 |
휴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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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분 |
학과지도(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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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분 |
정 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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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자녀들이 모임이지만 사실은 가정들과의 좋은 친교의 장이 되기 때문에 공동체 의식을 가지고 지역사회 공동체 사업에 참여하는 기회 제공에 가장 적합한 모임이 된다.
불신 가정부터 실시하여 차츰 이해도가 높아가면 기독교 가정학교로 까지 이어지며 가정 복음화의 지름길이 되기도 한다.
3) 신흥도시 공동체의 프로그램에 참여할 자원봉사대(가정)를 조직한다.
유대인들은 나라를 잃고 세계에 흩어져 디아스포라(Diaspora)가 되었을 때 그들은 가는 곳마다 가족단위로 모여 회당을 짓고 주기적으로 모여 종교의식과 교육을 함으로 공동체 의식을 가졌다. 이때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이 바로 마을 공동체를 위한 자원봉사대(가정)이었다.286)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가나의 혼인잔치에 친히 오셔서 봉사하셨다(요2:1) 주님은 “네 형제중에 지극히 작은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것이니라”(마25:40)하셨다. 그러므로 서로 봉사의 멍에를 매는 것은 합당하다.
신흥동시에는 교회가 돌보아 줄 사람들이 많은 곳이다. 가난하고, 병들고 고민하고, 상처입은 사람이 많다. 이들을 위하여 자원봉사대(가정)가 주님의 봉사사역을 대행해야 한다. 이것은 응천교회가 실시하고 있지 못하지만 앞으로 연계할 사항이다. 그러므로 복음을 받아들이게 하고 구원에 이르는 기회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자원봉사대(가정)의 실제는 다음과 같다.
① 정원: 6가정에서 10가정
가정학교를 수료할 대 바로 자원봉사대(가정)를 발족하는 것이 좋다.
② 조직: 대장 1인, 총무1인
③ 모임: 정규모임은 매월1일로 하고 비정규모임은 수시로 대장이 소집한다.
④ 운영:자체운영을 원칙으로 하되 타봉사대와 연계활동을 할 수도 있다.
⑤ 내용:앞교앞 교통정리 봉사, 자연보호, 불우이웃돕기, 재해대책, 적십자, 기 타 국제봉사 기구와 연계할 수 있다.
⑥ 기타:운영의 정상화를 위하여 내규를 정하여 운영한다.
이렇게 하므로 신흥도시안에 도사리고 있는 사회학적 문제들을 해결하여 소속감과 일체감을 갖고 공생 공영을 향해 나아가게 한다. 그러므로 도시의 밀집한 많은 인구와 풍요로운 문명이 차츰차츰 기독교문화 창달을 이룩하게 한다.
제4절 유아세례식
A. 신앙과 부모역할
현대한국은 도시화, 산업화, 대중화로 인하여 生活의 개념화, 다양화 현상을 띠게 되었고, 기술의 자동화의 조직의 대형화는 인간의 소회현상을 초래시키게 되었다. 과학화와 기술화의일종의 부산물인 가정부재와 교육부재, 人間부재의 비극은 서구사회으 문제일 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문제이기도 하다.287) 흔히 우리사회에서 “부모됨”이라 할 때, 부모들의 성장과 발달을 우선적으로 생각하기 보다는 자녀들의 성장과 발달을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부모 자신의 삶과 행동이 變化되지 않고는 자녀들이 올바른 성장을 기대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녀교육과 함게 부모교육이 이루어져야 하는 일이 급선부이다. 어린이가 성장하고 발달함에 따라 부모들도 成長해야 하며, 삶의 폭을 넓혀가야 한다.288)
1. 父母敎育의 正義
부모교욱에 관계되는 여러분헌을 살펴보면 부모교육은 가정에서의 교육 부모 특히 어머니가 중심이 되는 환경과 유아교육기간 紈境간의 상호작용 및 연결을이미하는 것으로서 부모교육(parent education), 부모훈련(parent training), 부모참여(parent ??ticipation), 부모개입(parent involvement)이라는 용어가 구별없이 혼합되어 사용하고 있다.289)
교육학 사전에는 부모교육을 “이미 성인이 된 사람을 위한 일종의 성인교육”으로 정의를 내리고 부모교육의 목적, 방법, 부모교육 담당기관을 통해 그 성격을 설명하고 있을뿐 아니라 부모참여나, 부모훈련, 부모개입과는 특별한 구분을 하고 있지 않다. 그래에 와서는 부모교육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고 엘리언슨(Eliason)과 젠킨스(Jenkins)는 주장한다. 또한 랜지(Rangr), 레이튼(Layton), 로우비낵(Roubinek)에 의하면 학교에서 아동의 초기 성공여부는 교사 학교와 관련된 변인보다 가정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하였다. 부모교육이란 부모로 하여금 자녀교육의 責任을 인식하고, 주어진 책임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지식과 기능을 습득하여 부모에게 要求되는 기본적인 태도를 니니도록 하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주어지는 敎育의 과정을 뜻한다.290)
2. 父母敎育의 必要性
부모교육의 重要性과 함께 그것이 필요한 근거를 몇가지 측면에서 제시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바른 아동관을 정립하기 위하여 부모교육의 필요하며, 유아교육에서는 부모의 참여가 필수적으로 要求된다는 점에서, 그리고 가정의 교육기능 약화와 대중매체의 기능 증대라는 사회변화의 양상에서 父母敎育의 필요성을 찾을 수 있다. 또한 가정의 어린이 교육에 대한 현실진단에서 부모교육을 통한 바른 교육기간의 확립이 필요하다고 하겠다.291)
부모교육을 함으로써 유아교육에 관한 父母들의 잘못된 견해를 바로 잡아주고, 자녀교욱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제공해 주며, 부모들이 원하는 여러 가지 분야를 넓게 알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며, 부모 자신의 위치와 役割을 바로 인식할 수 있게된다.292)
부모교육의 목적은 부모들에게 성인으로서, 효과적인 敎師로서의 부모역할을 증진시키고 자녀의 성장 발달과 교육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認識을 증진시키며, 이에 적절한 지식 및 능력을 갖도록 도와서 부모 자신의 발달은 물론 효과적인 교육자 교육동반자로서의 부모가 되록 하는데 있다. 따라서 자녀와의 상호관계를 개선시키고, 자녀의 모든 발달과 교육효과를 촉진시키며, 바람직한 家庭과 지역하회 건설을 이룩하게 하는 것에 그 의의와 目的이 있다.293)
지상의 가정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을 통해 그의 자녀들에게 아버지이신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도록 가르쳐야 하는 道具이다. 신앙은 각 사람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개인적인 응답을 이루는 것으로 한 세대의 영적인 태도는 다음 세대에 영향을 끼친다. “그러므로 기독교 가정은 그들이 聖靈안에서 자신의 피와 몸을 나누며, 기쁨과 책임을 나눌 필요가 있다. 이때 새로운 자녀의 출생과 그리고 유아세례를 통한 신앙공동체로서의 의식을 개발시켜 주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 의미깊은 효과를 줄 수 있다. 부모교육의 효과도 대단히 높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제5절 세례식
개교회에서 가정 사역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장려될 수 있는 또하나의 프로그램은 세례식이다. 오늘날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전통이요 개혁교회의 자랑중의 하나인 세례식의 그저 지나과는 통과의례요 이름뿐인 전통으로 남아 있어 우리의 많은 각성을 촉구하고 있다.
그러므로 교회는 세례식의 복음적 으미를 다시한번 새롭게 하고 그것을 가족전체의 축제로 승화될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연구하고새롭게 시행할 필요가 있다. 가령 예를 들면 가족 구성원중 어린자녀가 세례를 받게 된다면 그를 위해 가족 전체가 그를 위해 준비하고 기도하며 세례식 당일날도 함께 강대상 앞에 나오고, 또 교회에 그 가족을 소개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 가족구성원중 늦게라도 예수 믿게되어 세례받는 사람이 있다면, 이 사실 또한 가족 전체의 잔치로 승화시켜 함께 축하하고 세례후에 가족찬양이라고드릴 수 있도록 준비한다면 매우 뜻깉은 일이요. 가족공동체의 중요성을 새롭게 인식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또 결혼을 앞둔 부부는 꼭 세례교인이 되도록 교회가 신앙고백을 받아 세례식을 베풀고, 그들을위해 온 교우가 기도해주는 순서와 축화하는 순서를 가지도록 한다면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축복된 가정으로 세워지게 될 것이다.
제6절 회갑연 , 고희연
사실 지금까지 개혁교회내에서 별도의 노인프로그램이 없었다. 특히 한국적 전통인 회갑이나 고희에 맞추어 예배를 드리거나 축하잔치를 교회차원에서 진행한 경우는 전무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한국교회선교 초기는 우리나라는 전통적 유교사회요 가부장적 권위가 화고하던 시기였다. 하지만 시간아 지난 지금 한국사회는 상황이 정반대가 되었다. 핵가족화에 다가 아서 설문조사에서도 살펴 보았지만 노인을 모시고 살아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전체이 4/1이 되지 않는다. 이럴 때 교회는 뭔가 해이해져가는 효사상을 교회차원에서 성격적으로 새롭게 고취시켜야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회갑이나 고희등도 교회에서 프로그램과 시켜서 진행할 필요도 있을 것이라 보여진다.
가령 가정적 형편이 여의치 못하거나 전후사정이 여이치 못한 교회내외의 어른들을 매월 준비해서 각기관이 협조를 얻어 회갑연 예배나 고희연 예배를 드릴 수도 있을 것이다. 예배후에는 기관에서 준비한 잔치를 가지든지 아니면 효도관광을 준비해서 보내드리든지 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되어진다.
한국사회도 선진국화 되면서 점점 노령인구가 많아지는 추세에 있다. 동시에 교회내에 노년세대도 증가하고 있다. 이들을 위한 목회 프로그램 개발차원에서 우리는 보다 더 연구된 프로그램으로 이들을 구원하고 복음화시킬 수 있도록 점점 전력해야 하겠다.
제7절 장례식
많은 목회자들이 장례식후에 많은 가족들이 예수를 새로 믿게 된다고 보고 하고 있다. 그도 그럴것이 장례식은 사람을 영적인 존재가 되게 한다. 전도서 7장에서도 장례식에 가는자가 지혜로운 자라고 했다. 또 사람들은 어려운 일에 와서 헌신적으로 돕는 기독교인들을 보면서 마음에 감동을 받는다. 그래서 대개의 경우 장례식후에는 구원이 역사가 있는 것이다.
이렇게 귀중한 복음전도의 기회인 장례식을 우리는 지금까지 교회내의 다른 프로그램처럼 형식이나 제도에 얽매인채 습관적으로 진행하였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가정목회사역적 차원에서 본다면 장례식이야 말로 그리스도이 사랑과 교회의 아름다운 덕을 자랑 할 수 있는 귀한 기회이다.
그러므로 우리 산남교회는 이를 위해 특별히 장례위원회를 만들어 임종예배에서부터 다음해 추도예배때까지 세심하게 섬길 수 있도록 프로그램화 했다. 이프로그램이 봉사자들은 다음가같이 매년 선정한다.
· 장례위원회 구성
위원장:장로
부위원장:안수집사
장례예배후:집사3인
장례봉사부:권사1인, 여집사회
운구위원:청년, 대학생 10인
* 매년임명
제8절 가정문제 상담
교회지도자들은 교육적 관점에서 볼 때 부러워할 만한 입장에 놓여 있다. 인생의 가장 귀중한 순간 - 출생, 결혼, 투병, 죽음등 - 에 교회지도자들은 친밀한 방법으로 사람들과 접촉하게 된다. 그리스도의 종들이 그러한 기회에 민감할 때 그들은 그러한 경험들을 특별한 성장의 기회로 삼을 수 있다.294)
결혼하는 사람들의 경우, 특히 혼전 상담이 있을 때가 가장 독특한 기회가 될 것이다. 이것을 어떤 사람들은 혼전교육(premarital education)이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주로 준비 교육면에 역점을 두고 있다. 그러나 혼전 상담(premarital counseling)은 결혼을 앞둔 남녀가 이사결정이나 대화의 장벽과 같은 결혼전의 문제들과 관련된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강조점을 두고 있다.
또 결혼한 부부를 상대로 가정 상담이나 이혼의 위기에 놓인 부부들은 상대로 회복하도록 유도하는 것도 가정상담이 중요한 목표이다.
상담이 기능은 크게 예방 사역이 기능과, 치유의 기능이 있다. 특히 목회자가 가정사역에 눈을 뜨게 될 때 예방을 위한 방편으로 상담에 힘쓰게 된다. 심리학자 안토니오 플로리오(Antonio Florio)는 예방사역을 할 수 있다는 목사의 정택적 위치 때문에 목사의 책임을 강조한다. 그는 목사들이 상담을 위한 시간을 내지 않고 마땅히 해야 할 훈련을 시키지 않기 때문에 많은 사람을 실패하고 있다고 비난한다.295)
상담의 최종목표는 결정하게 하는 것이다.296)고 할 때, 내담자들로 하여금 결정하게 하는 것은 예방이 기능이 있다. 이런 여러 가지 이유들 때문에 가정상담은 교회내의 정규적인 프로그램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살고있는 이 복잡한 사회에서 사람들이 언제나 결혼 준비를 올바로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깨어진 가정과 부적합한 부모상들 때문에 종종 사람들은 결혼에 대한 올바른 결정과 결혼후의 적응에 대한 지침이나 기술도 없도 결혼을 하려고 부모를 떠난다. 직업을 위해서 수년간을 허비하고 때론 운동경기를 위해서 수백시간을 연습하는 것에 비하면, 결혼과 같이 중요하고 가치 있는 중대사를 위해 서너 차례의 상담과 거기에 따른 공부정도로 시간을 들인다는 것은 너무나 작은 것 같다.
그러므로 본 목회자는 산남교회의 가정 사역을 위해서 정규적인 가정상담프로그램과 시간을 준비해서 예방과 치유에 힘쓴다.
제6장 가정목회를 통한 교회 갱신 방안
제1절 가정목회를 위한 예배갱신
A. 산남교회 가정사역을 위한 년중 예배계획
1. 목표
산남교회 공동체 내의 가정들이 주안에서 건강해지고 또 그리스도의 사랑을 이웃가정에 나눌 수 있는 가정이 되도록 하기 위해 산남교회는 모든 예배아 모임시 다음의 목표를 이루도록 노력한다.
1) 하나님 사랑이 곧 이웃사랑으로 사람들을 사랑하고 공동체 안에서 삶의 감격을 나누는 예배가 되도록 한다.
2) 성경을 배우고 익히도록 교육적인 예배가 되도록 한다.
3) 하나님이 은혜속에서 말씀과 사랑이 조화를 이루도록 예배때마다 강조한다.
4) 가정의 중요성을 인식시킨다. “교회는 큰 가정이며 가정은 작은 교회”라는 진리를 깨닫게 한다.
5) 지도력 훈련을 위해 봉사하는 교회가 되게 한다.
이익을 위해 교회는
① 가족이 함께하는 예배와 교회학교를 이루어나간다.
② 교인들이 서로 배울 수 있는 가정 성경공부 교재를 만들고
③ 작은 그룹교회를 퍼트려 지역마다 예배드리게 하며
④ 또한 가정마다 가정예배를 드려 가정의 기초를 그리스도 위에 튼튼히 세우도록 한다.
6) 또한 이일을 위해 교인 개개인은
① 짜임새있는 시간 생활화
② 모임때마다 찬양과 기도생활을 하게 하고
③ 신실한 약속생활과 책임생활
④ 그리고 숨은 봉사의 생활로 모범이 되게하여
⑤ 자녀들이 모범이 되어 자녀들이 가정안에서 아름다운 인격이 형성되게 하며
⑥ 이것이 자연스런 선교의 생활로 이어지도록 정해야 한다.
B. 산남교회이 예배계획
1. 매주일 예배
매주일 드리는 예배는 한달 4주를 기준으로 매주 주제를 가지고 예배를 드리도록 한다.
내용 주 |
주 제 |
비 고 |
첫 주 |
“찬양과경배” |
예배와 찬양의 중요성고취 |
둘째주 |
“말씀과 치유” |
시편19:1-14 |
셋째주 |
“기도와 성령충만” |
간구화 중보 |
넷째주 |
“가정과 교회” |
교회생활의 유익과 가정의 축복에 대하여 |
2. 5월 가정의 달을 위한 주일 저녁예배 프로그램
매년5월은 가정의 달이다. 그러므로 한달간 주일저녁예배시마다 각 주제를 맞ㅊ어 예배를 드리는 것도 가정목회 프로그램에서 빼서는 안될 중요한 목회계획이다.
내용 주 |
주 제 |
비 고 |
5월 첫주 |
어린이 주일 |
하나님나라와 어린이 사역의 우연성 |
5월 둘째주 |
어버이 주일 |
성경적인 효도와 부모의 위상 정립 |
5월 셋째주 |
스승의 주일 |
가정과 교육 그리고 스승의 중요성 고취 |
5월 넷째주 |
청소년 주일 |
청소년 지도와 청소년 사역의 중요성고취 |
제2절 가정목회를 위한 설교
1. 말씀사역의 중요성
1) 설교
기독교회는 계시되어진 성경말씀을 사도의 신앙전통에 따라 설교함으로써 그 영적인 권위와 질서, 그리고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를 선포한다. 그러므로 가정 사역에 있어서도 설교의 위치는 가장 중요한 방법중의 하나이다.
목회자는 설교를 통하여 가정에 대한 기독교 신앙을 가르치고 또 강화시킬 수 있는 기초를 삼는다. 특히 가정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설교를 조언한다. 주로 가정의 달에 집중해서 설교하게 되는 것이 보통이지만 산남교회는 매달 마지막 주일 예배는 가정에 초점을 맞추어 설교하는데 이때 주로 인용하게 되는 성경의 본문은 아래와 같다.
신명기 6:6-9 엡 5:21-26, 고전13장 수24:15, 출18:24, 잠31:30, 행20:20, 막10:9, 창24:67, 잠언31:10-12, 28-29, 잠언15:17, 출15:21, 고전6:19-20, 고전10:13, 고후6:14, 삼하18:29, 삼상11장, 딤후1:5, 고전16:19등이다.
2) 설교를 통한 지시적 상담
상담학자들은 상담을 크게 지시적 상담과 비지시적 상담으로 나눈다. 전자는 내담자가 결정을 내리지 못하거나 뚜렷한 방향 제시를 원할 때 유용한 상담방법이고 비지시적 상담법은 내담자의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내담자 스스로가 문제를 풀어가도록 하는 방법인데, 설교는 이때 훌륭한 지시적 상담의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가정내의 문제들이 대개 프라이버시와 관계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중에 스스로 깨닫게 만드는 것이 때로는 효과적일 수 있다.
3) 가정심방
심방은 한국교회의 아주 좋은 목회전통이다. 이러한 좋은 전통을 가정사역을 위한 방법으로 활용하는 것은 ‘온고이지신’의 전략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심방을 통해 목회자는 그 가정의 목사가 되는 것이며, 가정문제에 깊숙히 관심을 가지고 도와 줄 수 있게 된다.
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좀더 깊숙히 다루도록 하겠다.
4) 가정목회 설교를 위한 년중계획
가정사역위원회를 구성하여 년중 계획을 세우고 이를 계속적으로 실천하기 위해 목회자는 목회계획과 함께 년중설교계획도 세우는 것이 바람직하다.
1월:가정신년 축하예배 자료 배우(주보에 삽입
가정주간(휴가)계획, 가족이 밤 행사후에 복서
작성하기 “가정이 새해 계획세우기에 대한 설교”
2월:부부들의 모임, 젊은 부부들을 우한 연구계획
결혼준비 모임가동
“성서적 결혼에 대한 설교”
3월:가족의 밤 모델 발표, 가족경건회 자료 배부(주보삽입)
불신남편(혹은 가족) 초청의 밤 행사
“가족구원에 대한 설교”
4월:부활절과 가정의 관계에 대한 연구, 주일학교 공개수업(학부모 초청)
“어린이 신앙교육의 중요성에 대한 설교”
5월:가정의 달 행사 준비와 실시(교회행사와 기관별 행사)
가정생활 세미나(외부강사 초청)
“가정과 교회의 중요성에 대한 설교”
6월:가정 개방과 심방이달 우리가정에 이웃초청하기 운동
행복한 결혼생활 심포지엄
“성공적인 결혼생활에 대한 설교”
7월:가족세미나 휴가 수양회 계획, 가족캠프등 참가학
“가정과 휴가에 대한 설교”
8월:부부 영적 세미나
“부부의 신앙성장에 대한 설교”
9월:청소년지도세미나, 부보와의 만남 프로그램실시
“가정에서의 교육에 대한 설교”
10월:추수감사절 가정예배자료 배부(주보에 삽입)
편부모 가정을 위한 모임
11월:할아버지 할머니들을 위한 잔치
“노인공경의 축복에 대한 설교”
12월:가족별 크리스마스 준비를 위한 교육, 크리스마스 가족대항 찬양대회
가족별 연극대항등 준비,
“성탄과 가정의 평화에 관한 설교”
위와같이 전체적인 계획을 세워놓고 이에따라 매달 필요한 예산을 확보하여 산남교회내의 가정들이 바로 세워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여 사역한다.
교회내에 가정사역을 위원회가 이를 주관하게 하고 한달전 협의를 통해 각 기관과의 연대를 통해 이를 추진한다.
제3절 가정목회를 위한 성경공부
인간의 특징은 일생을 통해 배운다는 것이다. 그런데 배움에는 좋은 배움과 나쁜배움이 있다. 또한 스승도 좋은 스승이 있고 나쁜 선생이 있다. 가정 공동체도 일생을 통해 좋은 것을 배워야 한다. 이 세대를 바라보고 이 세대를 배우면 같이 망하게 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날마다 그것을 가까이 하면 부부와 자녀사이에 축복이 임하는 것이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은 행하기에 온전케하려 함이니라”(딤후3:16)고 했다. 성경은 인간은 작품이 아니라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대책이다. 성경은 명구로 된 어록이나 철학서가 안다. 성경속에 많은 사건이 있고 또 그때에 주시는 하나님의 메시지가 있다. 그것을 이해하고 그 말씀의 뜻에 순종할 때 인간의 문제는 해결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교회내에서 실시하는 가정 성경공부 부부가 함께 하는 부부성경공부 자녀들과 함께하는 자녀성경공부를 실시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활용가능한 교재는 다음과 같다.
1)부부 성경공부 교재
· C C C간「부부팀잌 성경공부 교재」
· 두란노서원간, 「부부생활 성경공부교재」
· 한글간, 「성서 속의 여인들」
2) 가정생활 성경공부(예배시)
· 박종순 외 3인 「가정예배서」한국문선선교회간.
· 한국기독교 가정생활위원회, 「하나님의 뜻을 따라」밀알기획간
· 김선도, 「가정예배」예목출판사간
· 한국기독교장로회 교육원 「일일기도서」한신대학교출판사간
3)자녀와 함께 하는 성경공부 교재
· 어린이 성경교재 편찬위원회, 「어린이 십단계 그림성경공부」예손출판사간
· 윤영복, 「어린이 제자훈련 교재」엠마오출판사간
· 김기선, 「예수님의 비유」할렐루야 서원간
· 극동방송, 아세아방송 「예수꾼 만들기」생명의 말씀사간
제4절 가정목회를 위한 구역활동
가정을 일컬어 사회의 기본 단위이며, 가장 작은 사회공동체라고 한다. 그리고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한다. 따라서 가정은 사회를 외면하고는 살 수 없게 되어 있다. 가정과인간은 사회속에서 함께 사는 것을 잘해야 한다.
아무리 자기개인적으로 유아독존적인 도를 통하고 신성한 자가되고, 또 기독교 신앙으로 큰 은혜를 받았다고 해도 인간사회의 이웃들과 잘 어울려 친교가 되지 못하면 이 가정은 고독해진다. 특히 요즈음 같이 아파트 문화 개인주의가 뚜렷한 시대는 이웃이 없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그러므로 산남교회는 가정과 가정들이 소그룹단위롤 묶이어져 서로 격려하고(Tender) 사랑하고(Love) 보호해 주도록(Care) 구역활동을 장려하고 있다. 특히 구역예배는 한주에 한 번씩 가정을 옮겨 가면서 드리는 까닭에 서로간의 담을 허물수 있고 또 접대하는 즐거움과 서로 방문하는 즐거움이 넘치는 귀중한 가정목회 프로그램이다.
이를 위해 산남교회는 구역장을 선발하여 매주일에 한 번씩 구역장 교육을 시키며 이들이 가정에서 인도한 예배와 성경공부교재는 담임목사가 매주 만들어서 배부해 주고 있다. 또 구역장들의 보고에 따라 심방도 하고 별도의 교육도 시키는 등 구체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
제5절 가정목회를 위한 심방
심방은 가정사역의 효과를 극대화 시킨다. 그러므로 산남교회는 일년에 두차례의 정기적인 대심방을 실시하는데 이때 구역별로 날짜를 지정해 담임목사는 전교우의 가정을 일일이 심방한다. 평소 가정의 문제뿐 아닐 온 가족을 대상으로 꼭 필요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어서 그들의 말씀을 중심으로 화목될 수 있도록 한다.
또한 목사는 그 가정을 위해 특별히 기도하고 하나님이 성경적 명령대로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며’ 살기를 격려한다. 그뿐아니라 일년에 두차례의 대심방외에도 문제가 있는 가정이나 환자가 있는 가정, 특히 환란중에 있는 가정은 담임목사가 면밀히 파악하여 그 주간에 곧 심방하여 그 가정을 살피는 것이다.
이러한 심방은 한국교회가 가진 특별한 전통이요 축복이라고 생각된다. 이러한 좋은 프로그램이 가정사역의 한방법으로 좀더 활용된다면 많은 교회에 유익이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를 위해 산남교회는 부교역자들을 구성된 심방위원회를 조직해서 항상 양떼들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피도록 하고 있다.
제7장 결론
1. 요약
한국의 현실은 지금까지 가정문제나, 사회문제에 대하여 그렇게 크게 민감하지 못했다. 6·25이후 짧은 시간에 국민소득 만불이라는 경이적인 성장이 있었다는 것은 그만큼 주위를 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렸다는 얘기가 된다.
교회역시 그렇다. 전체 남한인구 4,200여만 명중 20%가 넘는 인구가 기독교인이 되기까지는교회도 오로지 구령과 복음회에만 매진해 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정의 문제가 불거져 나오기 시작했다. 산업화 사회에서 정보화 사회를 바뀌어가는 시점에 교회도 이제 겨우 선교와 구제를 생각하력 하는 싯점에 인구가 급증하고, 명퇴, 조기퇴직자가 급증하면서 아버지의 역할 문제등이 사회문제, 교회으 문제로 등장한 것이다. 거기에다 터지는 대형사건마다 청소년 범죄이고, 결손가정의 문제이다보니 이에 대한 논의가 사회일각에서 활발히 빈행되고, 출판계에서는 “아버지”란 주제의 소설들이 날개돋친 듯이 팔려나가고 있는 실정인 것이다.
아직도 교회는 “가정목회”란 말자체가 어색하게 들리고 일부 가정문제 연구소나 가정사역연구소에서 단편적으로 이문제를 다루고 있는 실정이었다.
지금까지 한국사회에서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지키고 있던 권위는 유교문화에서 나온 것이다. 그렇다 모든 문화는 그 바탕에 종교적인 배경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산업화와 함께 서구의 포스트모더니즘 사상이 따라 들어오면서 가정의 가치와 권위를 흔들어 버렸다.
그러므로 교회는 절대 변할 수 없는 가치와 권위를 선포하는데 주저함이 없어야 한다. 세월이 아무리 바뀌어도 하나님이 남자와 여잘 창조하신 원리는 사라지지 않으며, 가정을 통하여 후대의 주인공들이 받게 할 뿐 아니라 그러한 가족의 울타리 속에서 부부가 친밀감으로 세상마지막날까지 동반자가 되게 하셨다는 이 진리를 선포할 책임이 있는 것이다.
가정은 태초에 하나님이 만드신 신적기관으로서 창조질선 안에서 시작된 영원한 약속과 믿음과 사랑의 공동체다. 그러므로 이땅에 수없이 태어나는 모든 가정들은(불신자들까지 포함해서) 하나님이 제정하신 결혼제도에 의한 것이다.
기독교 가정은 한 인간이 태어나서 전반기 세대를 경건된 신앙의 부모품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Christ like) 양육을 받은 독화 훈련의 원초적인 장(Context)이오 하나님이 인간과 맫은 언약 공동체의 기초단위로서 하나님은 이 가정의 기능을 통해서 인간과 언약하신 은총을 내리시고 건전한 가정들을 통해서 당신으 뜻을 이루신다. 그러므로 가정은 하나님의 축복이 장소이고 인간과 인간이 처음 만나는 곳이며 태어난 생명이 양육을 받고 성숙한 후 결혼을하여 가정을 갖게 도고 평생 가정을 가꾸며 살다가 가정에서 생의 막을 내리는 이 땅에서의 영원한 보금자리다. 인간이 인간됨의길이 이 가정에서 이뤄지기에 가정은 교육의조정기관으로서 학교 이전이작은 학교이고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사회 이전의 작은 사회, 국가 이전의 작은국가, 법가 질서의 울타리, 교회 이전의교회, 천국 이전의 천국이다.
성경은 결혼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이 출발로 명령했다. 불완전한 남녀가 결합하여 서로의 부족을 채워주고(창2:18), 땅을 정복하고 생육하고 번성하며(창1:28) 하나님을 경외하며 자녀를 낳아서 양육하며(시128:6, 신6:7) 순결을 유지하기 위해서(고전7:9), 그리고 삶 전체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뤄드리는 거룩한 사명이 부여된 것이다. 바빙크(H. Bavinck)는 “가정은 부부가 하나님의 사업을 공동로 일해 나가는 일터이다”고 했다. 그러므로 크리스챤 가정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그의 말씀에 기초를 둔 삶의 공동체이며 그리스도 예수가 평강의 왕으로 그 가정에 좌정하셔서 통치하시는 이스라엘의 집(Israel-하나님의 통치)이어야 한다. 즉 하나님의 주권이 살아 통치되는 곳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하신 일도 타락된 가정을 회복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의 가정들은 집(House)과 가구은 잘 정돈해 놓고 전자문명의 편리한 혜택을 풍성히 누리면서 살아가지만 하나님이 창조하신 본래의 가정모습은 점점 퇴색되고 부식돼가는 가정부재의 위기를 맞게 된 것이다. 그래서 성급한 어떤 학자는 ‘가정은과연 존재하는가?’라고 충격적인 말을 했고 사회학자들(Edward Shorter)의 ‘흔들리는 가정’, ‘사라져가는 가정’, ‘무엇이 가정을 대신할 것인가’라고 가정 붕괴의 위험을 탄식하기도 했다. 그 원인은 원수 마귀가 인류 최초의 가정이었떤 아담의 가정을 공격하여 파괴시킨 이래, 오늘에 이르기까지 오고가는 역사속에서 끊임없이 그들이 제1공격 목표를 가정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가정을 통해서 생명의 탄생과 양육, 구원 창조의 역사를 이루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일을 지속적으로 방해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의 국가 사회의 혼란이나 모든 공동체의 갈등은 가정이 병들어가는데서 그 원인을 찾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교회 공동체의 갈등들도 가정갈등의 확대라고 할 수 있다. 마귀들은 병들어버린 탕자문명을 교묘히 발판삼아서 우리의 가정 깊숙이 침투해서 가족들의 영성과 정서를 오염시키고 병들게 해서 가정을 파괴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21세기를 눈앞에 둔 한국교회는 더 이상 재래식 목회에 안주해서는 안되고 더 이상 재래식 목회에 안주해서는 안되고 과감한 목회개혁을 해야 한다. 아직 실천신학의 영세성을 면치 못하고 미래지향적인 목회철학을 정립못한 한국교회는 서구 교회가 치른 교회의 열병을 이미 앓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해야 한다. 필자의 교회에 등록하는 사람들 중에는 이미 가정을 잃어버린 피해자들이 방황하다가 교회를 찾아오는 수가 점점 많아지고 있음을 느낀다. 그러므로 오늘의 교회는 가정목회에 초점을 모으고 사역을 해서 병들어 가는 가정을 치유하고 예방하고 이미 깨어진 가정들을 어루만지는 사역엔 전심을 써야할 것이다.
끝으로 각가정은 그것이 작은교회라는 가치를 인식하고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기 위한 연구와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부부와 자녀가 성경공부와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이 부여하신 권위에 순복하여, 자녀 역시 부모공경을 배워야 할 것이다. 그리고 기도회를 통하여 서로 사랑의 중보자가 되도록 할 때, 우리 모든 가족이 하나님안에서 자유를 누리게 돌 것이다. 자식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다. 그러므로 잠시 맡기워졌다가 가정을 이루면서 떠나간다. 그들이 역시 좋은 가정을 꾸리어 가도록 그 기초를 만들어 주는 것이 아버지의 역할임을 인식할 때 완전한 남성이 되는 것이다.
본연구의 미진한 부분은 다음 연구자의 연구과제로 남겨놓기로 보다 더 많은 연구들이 줄이어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 부 록-
1. 참고도서
2.설문지 내용
참 고 문 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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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산 파주지역 주민들에 대한 앙케이드 조사
안녕하십니까? 저는 산남교회 담임목사입니다. 저희교회에서는 교회의 사업들이 지역교회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새해들어 새로운 사업계획을 세우면서 지역주민들의 의식을 조사하기 위해 설문지를 배포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이 연구는 본인이 미국에 소재하고 있는 플러신학대학원의 박사과정 연구자료로도 활용되는 귀중한 조사입니다. 특히 현재 한국사회의 가정의 문제와 위기들이 심각해 지면서 이에 대한 개선이 시급하다고 외치고 있습니다만 아직도 뾰족한 수가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산남교회에서는 가정과 자녀교육문제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도는 사업을 하고자 이 조사를 실시하게 되었사오니 바쁘시더라도 답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내용은 무기명이며 연구자료로만 사용될 것이오니 기탄없이 적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997. 1. 27.
산남교회 당회장드림
* 아래의 질문을 일고 생각나는대로 V표해 주십시오.
Part, one- 대상자의 일반적인 상황
1. 성별은 어떻게 되십니까?
남:27% 여:63%
2. 나이는 어떻게 되십니까?
10대:10%, 20대:11%, 30대:26%, 40대:37%, 50대:23%
3. 주거환경은 어떻습니까?
아파트:26%, 단독:45%, 전세:22%, 월:5%, 기타:2%
4. 월수입은 어느정도입니까?
백만원:42%, 150만원:29%, 200만원:11%, 250만원:10%, 300만원이상:8%
5. 학력은 어떻습니까?
고졸:45%, 전문대졸:13%, 대졸11%, 대학원:9%, 기타:22%
6. 가족은 어떻습니까?
1명:8%, 2명:15%, 3명:37.4%, 4명:34%, 5명이상:7%
7. 결혼은 하셨습니까?
기혼:76%, 미혼:14%, 이혼:3%, 별거:2%, 기타:5%
8. 결혼의 과정은 어떠했습니까?
소개:26%, 중매:31%, 연애42%, 기타:1%
9. 현재의 생활에 만족하십니까?
만족:51%, 불만족:17%, 보통:19%, 기타:23%
10. 살고 계신곳의 주거환경은?
농촌:41%, 어촌:2%, 도시:27%, 읍면:22%, 산골:8%
Part, Two - 지역에 대한 의식
11. 우리의 주거환경은?
좋다:62%, 별로다:21%, 보통:17%
12. 우리지역에 이사오신지는?
1-2년:11%, 3-4년:24%, 5-6년:41%, 7년이상:24%
13. 우리지역은 발전했습니다.
예:39%, 아니오:36%, 조금:25%
14. 앞으로 발전한다고 보십니까?
예:40%, 아니오:36%, 점차로:24%
15. 우리지역의 주산업은 무엇입니까?
농업:49%, 수산업:2%, 공업:30%, 상업:15%, 기타:4%
16. 행정관청의 서비스는?
좋다:41%, 부족하다:34%, 미흡하다:11%, 불편하다:14%
17. 이 지역에 계속사실겁니까?
예:50%, 아니오:10%, 1-2년후 이사:26%, 4년이상후 이사:12%
18. 지역사회활동에 참여하십니까?
예:16%, 아니오:68%, 조금:10%, 기타:8%
19. 이 지역의 전통을 아십니까?
예:22%, 아니오:41%, 조금:16%, 기타:26%
20. 우리지역의 불편한점은?
주거:32%, 교통:22%, 산업:36%, 교육 문화:9%, 기타:1%
Part, Three - 가정에 대한 의식
21. 가정에 문제점이 있습니까?
예:22%, 아니오:39%, 조금:10%, 기타:29%
22. 있다면 어떤 문제일까요?
부부문제:13%, 주거문제:21%, 경제:20%, 자녀:21%, 기타:22%
23. 오늘날 우리 사회의 가정의 큰 문제는?
애정:11%, 남편:9%, 아내:8%, 자녀:23%, 범죄:30%, 주거:12%
24. 시급히 개선되어야 할 가정문제는?
순결:6%, 부부애정:20%, 노인:19%, 자녀:27%, 경제:21%
25. 가정에서 아버지의 권위는 세워지고 있습니까?
예:34%, 아니오:16%, 조금:31%, 기타:22%
26. 가정서 어머니의 위치는 중요합니까?
예:60%, 아니오:3%, 조금:15%, 기타:32%
27. 자녀들의 고민을 알고 계십니까?
예:49%, 아니오:31%, 조금:22%, 기타:7%
28. 노인을 모시는 것에 찬성하십니까?
예:36%, 아니오:3%, 조금:46%, 기타:15%
29. 가족간의 행사는 잘 지켜지고 있습니까?
예:25%, 아니오:54%, 조금:19%, 기타:12%
30. 가족의 기념일을 아십니까?
예:25%, 아니오:22%, 조금:39%, 기타:15%
Part, Four - 자녀문제와 교육에 대한 의식
31. 청소년의 문제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이성교제:22%, 용돈:19%, 학원:38%, 진로:22%, 기타:9%
32. 자녀들을 어느정도까지 교육시킬 생각입니까?
고졸:11%, 전문대졸:26%, 대졸:56%, 대학원:7%
33. 자녀들이 고민을 부모들에게 털어 놓습니까?
예:16%, 아니오:51%, 조금:19%, 기타:14%
34. 가정에서 자녀에게 체벌하십니까?
예:39%, 아니오:21%, 조금:44%, 기타:4%
35. 자녀들에게 시간을 투자하십니까?
예:19%, 아니오:38%, 조금:28%, 기타:15%
36. 자녀들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이성교제:19%, 경제:18%, 공부:46%, 진로:15%, 기타:2%
37. 길거리에서 비행 청소년을 목격한다면?
충고한다:24%, 모른체한다:39%, 신고한다:11%, 기타:24%
38. 과외를 시키고 있습니까?
예:39%, 아니오:28%, 조금:22%, 기타:11%
39. 교육제도의 개선을 바라십니까?
예:63%, 아니오:5%, 조금:24%, 기타:8%
40. 자녀의 종교에 관심이 있습니까?
예:17%, 아니오:18%, 조금:46%, 기타:17%
Part, Five - 종교와 기독교에 대한의식
41. 가정과 지역사회를 위해 종교가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예:52%, 아니오:19%, 조금:21%, 기타:1%
42. 종교 본래의 목적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선행 도덕:32%, 인간구원:41%, 사회 정화:11%, 기타:16%
43. 이 지역의 종교는 종교 본래의 목적에 충시하다고 보십니까?
예:18%, 아니오:19%, 조금:41%, 기타:12%
44. 현재의 종교는 무엇입니까?
기독교:18%, 불교:26%, 천주교:6%, 유교:4%, 기타:34%
45. 종교를 가지신 이유가 있다면?
올바른 사람:19%, 마음의 안정:22%, 구원:19%, 축복:5%, 기타:40%
46. 종교를 가지게 되었던 때는?
어린시절:26%, 사춘기때:21%, 청년때:10%, 어른이 되어:19%
47. 기독교회가 가정문제에 관심을 가진다면?
좋은일이다:42%, 별로:16%, 조금:31%, 기타:11%
48. 산남교회가 지역사회를 위해 봉사한다면?
좋은일이다:44%, 별로:15%, 조금:29%, 기타:22%
49. 향후 종교를 가지신다면 어떤 종교를?
기독교:18%, 불교:16%, 천주교:4%, 유교:1%, 기타:61%
50. 교회가 가장 관심을 가져야할 부분은?
사회문제:19%, 교육문제:13%, 가정문제:19%, 노인문제:14%
대단히 감사합니다. 댁내에 하나님의 큰축복과 영광이 넘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1997. 1. 27
산남교회 조기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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